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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주비엔날레가 전시장에 제주 화산암들을 늘어놓은 이유

변화, 그것이 예술의 본령이자 지금 비엔날레에 가장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6.09.28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리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 전경.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리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 전경.

전시 투어를 이끌고 있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호추니엔.

전시 투어를 이끌고 있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호추니엔.



올해 광주비엔날레 기자간담회의 포문을 연 것은, 예술감독 호추니엔의 다소 개인적인 기억이었다. 때는 2년 전. 그가 자신의 작업실로 향하던 지하철 안이었다. 작가로서 막 대규모 전시를 마친 그는 굉장히 지친 상태였고, 한동안 “이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감도 잡을 수 없는” 공허감에 휩싸여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지하철 안에서 읽고 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가 모든 것을 바꿨다. 정확히는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Archaic Torso of Apollo)’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릴케는 고대 조각상의 파편을 감상하며 쓴 시에서 이런 감상에 도달한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해당 구절을 읽은 호추니엔 감독의 마음에도 그 명령이 날카로운 울림으로 남았다. “저는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지만 그 문장을 만난 순간 내 역량이 확장되는 듯했습니다. 다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다시 꿈꿀 수 있을 것 같았죠.” 16회 광주비엔날레의 타이틀이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가 된 이유다.

이 배경을 곱씹는 것이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몇 가지 특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를 테면 전시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예술이 가진 힘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올해 참여 작가는 43팀으로 이 아시아 최대의 비엔날레 역대 최소 규모인데, 호추니엔 예술감독은 그것이 외형적 확장보다 내적 밀도에 집중한 결과라고 했다. “저조차도 평소 비엔날레에 갈 때마다 방대한 작품을 다 소화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지난 20년간 세계 비엔날레들은 점점 더 규모를 키우는 데에 집중해 왔지만, 그건 관람객의 한계를 넘어설 때가 많았죠.” 참여작가의 라인업이 비엔날레의 명성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관람객 개개인이 예술과 만나는 순간,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우선순위로 삼는다면 확장보다 집중을 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실 곳곳에 배치된 제주 화산암. 변화의 방향과 속도, 반복과 변주를 상징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실 곳곳에 배치된 제주 화산암. 변화의 방향과 속도, 반복과 변주를 상징한다.

제1전시실 전경. 바닥에 2t 분량의 송진을 부어 만든 골딘+세네비의 <송진 연못>(2026)이 보인다.

제1전시실 전경. 바닥에 2t 분량의 송진을 부어 만든 골딘+세네비의 <송진 연못>(2026)이 보인다.

제2전시실 전경. <신체와 관계>를 주제로, 신체와 정신의 훈련,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몸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한다.

제2전시실 전경. <신체와 관계>를 주제로, 신체와 정신의 훈련,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몸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한다.

화산암, 그리고 변화의 방향과 속도

하지만 예술의 힘을 통해 우리가 각자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변화는 어떤 형태여야 할까? 어떤 속도여야 할까? 그에 대해 호추니엔 예술감독이 내린 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릴케의 시 역시 당신이 바꿔야 한다고 외칠 뿐 어떻게, 그리고 왜 바뀌어야 하는지, 어떤 존재로 바뀌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그 명령을 광주로 옮겨오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한 사람과 예술 작품 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만남에서 나오는 강렬한 울림이 ‘빛의 도시’, 민주주의의 도시, 변화가 빚어낸 도시 광주의 풍요로운 토양으로 이식된다면 개인을 넘어 타인, 이웃, 동네, 공동체 그리고 도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로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호추니엔 예술감독의 설명이다.

호추니엔 감독과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 최경화 큐레이터는 이번 비엔날레를 변화의 범주에 따라 다섯 전시실로 구분했다. 분자와 나Molecules and Me, 신체와 관계Bodies and Bonds, 풍경과 배움Landscapes and Learning, 우주와 변화Cosmos and Change, 공기와 발화Air and Articulations까지. 흥미로운 지점은 한 작가의 다양한 작업을 전시장을 넘나들며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작업 세계를 통해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제주돌문화공원이 보존해 온 화산암들 역시 수천 년의 풍화와 침식, 단시간의 폭발적인 분출을 형태로 보여주며 직관적으로 ‘변화’를 상징하는 전시품목인데, 제1전시실과 제4전시실에서 반복된다. 물론 새로운 변주를 통해서. 제1전시실에서 화산탄, 용암종유, 용암석순, 풍화혈 등 다양한 속도와 방식으로 빚어진 다채로운 화산암을 곳곳에서 보여줬다면, 제4전시실에서는 이 암석들을 형성 과정에 맞춰 나란히 배치해 두었다. 자연의 힘이 만들어내는 반복과 그 안의 변주에 좀 더 주목한 것이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제주화산암 이외에도 임동식, 사사키 켄, 니나 카넬, 로셀라 비스코티, 골딘+세네비의 작업이 분리된 전시실을 넘나들며 비엔날레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준다.




제3전시실에 전시된 제임스 T. 홍의 <사과>(2012-).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전시관 외벽 삼면에 투사되기도 했다.

제3전시실에 전시된 제임스 T. 홍의 <사과>(2012-).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전시관 외벽 삼면에 투사되기도 했다.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을 잇는 외부통로 다리에서 매일 네 차례 펼쳐진 작가 겸 안무가 안젤라 고의 커미션 작품 <크래프트>(2026)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을 잇는 외부통로 다리에서 매일 네 차례 펼쳐진 작가 겸 안무가 안젤라 고의 커미션 작품 <크래프트>(2026)

권병준과 박찬경의 커미션 작품 <불림>(2026) . 비엔날레에 앞서 광주 및 전남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금속을 녹인 후 악기와 사운드 장치로 제작해 한국 전통 무속 의식인 ‘쇠걸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권병준과 박찬경의 커미션 작품 <불림>(2026) . 비엔날레에 앞서 광주 및 전남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금속을 녹인 후 악기와 사운드 장치로 제작해 한국 전통 무속 의식인 ‘쇠걸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점, 선, 면, 그리고 다시 점으로

광주비엔날레가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도모한 것은 ‘점’에서 ‘선’으로의 확장이다. 하나라도 놓칠 새라 전시장들을 빠르게 유람하고 그 중 인상에 남은 몇 작품을 다시 찾는 ‘백화점식’ 감상이 어느새 비엔날레 감상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면, 이를 탈피해 한 작가가 수년에서 수십 년 이어온 예술적 실천을 보여주며 나아가 ‘면’, 즉 연대의 순간까지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미덕이 새로운 형식에만 있는 건 아니다. 개별 ‘점’에도 놀라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배경의 관람객에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묘사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 지점들이. 제1전시장 바닥에 약 2톤의 송진을 부어 만든 골딘+세네비의 <송진 연못>(2026>부터, 전시 기간인 총 496시간 동안 재생되며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의 흐름을 소리로 연결하는 김선익의 신작 <공장의 불빛>(2026), 세계 각국 정치인들의 사과 장면을 수집하고 편집한 영상이 제3전시실을 넘어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전시관 외벽 삼면에 투사되기까지 하는 제임스 T. 홍의 <사과>(2012-), 호흡하듯 움직이는 구조물과 테크노 사운드가 가득 채운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에 이르기까지. 권병준과 박찬경의 커미션 작품 <불림>(2026)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비엔날레에 앞서 광주 및 전남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금속을 녹인 후 악기와 사운드 장치로 제작해 한국 전통 무속 의식인 ‘쇠걸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기획자가 아닌 현역 작가 신분으로 광주비엔날레 최초의 예술감독이 된 호추니엔은, 과거 광주비엔날레에 작가로 참여해 커미션 작업을 하기도 하며 광주라는 도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 바 있다. 그리고 올해 비엔날레를 앞두고, 광주라는 지역의 의미와 광주 비엔날레의 연결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트가 지적했듯 과거의 아픈 역사를 맹목적으로 반복하여 환기하는 행위가 도리어 그 트라우마를 고착화할 수 있다고. 다만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5.18의 기억이 축적된 광주는 ‘변화’라는 개념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삶과 역사 속에서 경험된 사건이 되는 장소며, 그렇기에 더 폭넓은 영감이 탄생할 수 있는 장소라고. 5·18 민주화운동의 당사자이자 목격자인 오월 어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예술과 농업과 배움을 하나로 엮었던 허백련의 작업들과 무등산 자락 춘설차, 1980년대 광주의 매체 운동 아카이브를 다루는 GB 토크 프로젝트 등에서 지역성을 풀어내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근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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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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