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세운홀에서 개막한 박경근의 개인전 '릴레이'

기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수몰 마을과 제사의 이미지, 허구적 유물의 파편으로 탐구하는 우리의 시선에 대하여.

프로필 by 박세회 2026.10.15

장소특정적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다. 박경근 개인전 <릴레이(RELAY)>가 2026년 10월 8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세운홀에서 열린다. 댐 건설로 물에 잠긴 마을을 탐사하는 과정을 기술의 눈으로 기록하고, 그곳에서 건져 올린 듯한 가상의 유물을 함께 펼쳐 놓았다. 세운홀 1층은 발굴된 옛 유구가 유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공간이다. 관객은 땅속에 묻혀 있던 도시의 과거를 밟고 서서, 물속에서 건져 올렸다는 가상의 유물을 마주한다.

이 배치는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유리 아래의 유구는 땅이 덮어 둔 시간이고, 진열대 위의 유물은 물이 덮어 둔 시간이다. 묻힘과 잠김, 발굴과 탐사라는 두 개의 층이 한 공간에서 위아래로 포개진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영상 작업은 두 개의 관점을 병치한다. 하나는 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찾아 나선 한 사람의 모습. 다른 하나는 탁한 물속을 더듬어 나아가는 수중 로봇의 카메라다. 사람의 눈에 그곳은 기억과 그리움의 장소다. 로봇의 눈에 그곳은 수심과 탁도, 좌표와 형상 데이터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박경근은 이 둘 중 어느 쪽에도 우위를 두지 않는다. 기계가 측정한 물 밑의 지형과, 한 인물이 떠올리는 마을의 풍경이 같은 화면 안에서 서로를 비춘다.

영상의 중간에 엄숙한 제사 장면이 끼어든다. 조상을 기리는 의례는 사라진 마을과 이어지는 몇 안 되는 끈이다. 동시에 우리가 일상에서는 방치해 온 전통이기도 하다. 보도자료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전시는 전통을 방치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마음이 동시대를 보는 방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묻는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데이터와 오브제가 뒤섞인 이 화면은 하나의 서사로 정리되지 않는다. 박경근은 정리하지 않음으로써, 물에 잠긴 시간이 실제로 그런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이미지는 상충하는 현실을 묶어, ‘보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출발점이 된다.<릴레이>에서는, 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찾는 한 인물의 관점과 물속을 탐색하는 로봇의 시선이 교차하고, 엄숙한 제사의 모습과 허구적 유물의 파편들이 서로를 관통한다. 다큐멘터리, 픽션, 데이터, 오브제들로 드러난 현재의 지층은 하나의 서사로 담아낼 수 없는 장소와 시간을 묶어낸다.

영상 작업의 옆에는 가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이를 '허구적 유물의 파편'이라고 부른다. 수몰 마을에서 실제로 출토된 물건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오브제들이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길게 잡아 보면 이 구분이 흔들린다. 200년 뒤를 상상해 보자. 2226년의 누군가가 이 오브제들을 마주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에게 이것은 꾸며낸 물건이 아니다. 2026년, 한 작가가 안동 지역의 수몰된 마을을 탐사하고 기록해 남긴 실제 유물이다. 그 안에는 당시의 재료와 기술, 로봇과 데이터로 과거를 더듬던 방식, 사라진 마을을 대하던 한 세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물의 가치는 처음부터 '오래된 것'에 있지 않았다. 그것의 가치는 어느 시대의 관념을 증언하느냐에 있다. 그렇다면 박경근의 오브제는 수몰 이전 마을의 유물이 아니라, 수몰된 마을을 기억하려 애쓴 2026년의 유물이다.

전시 제목 '릴레이'를 다시 읽힌다. 박경근은 우리의 관점이 실은 물질과 기술, 언어와 사회 같은 체계들이 개인을 통해 이어 달리는 결과가 아닌지 묻는다. 그의 유물 역시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건네지는 바통이다. 지금은 허구로 시작했지만, 다음 주자의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은 기록이 된다.

전시는 관객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넨다. 이 체계들은 어떻게 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가. 유리 바닥 위에 서서 물속에서 건져 올렸다는 유물을 들여다보는 순간, 관객 역시 땅속의 시간과 물속의 시간,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을 잇는 한 명의 주자가 된다.


“이 체계들은 어떻게 나를 통해 바라보는가?”



기간: 2026년 10월 8일–10월 30일

장소: 세운홀 Sewoon Hall, 서울 종로구 장사동 2-1 (세운상가-종묘방향)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 11:00–18:00, 휴관: 매주 월요일, 오프닝: 10월 8일, 3-7pm

Credit

  • WRITER 박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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