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은 지금 스스로 묻는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예술가이길 꿈꾼 정진영은 스스로 예술가인지 되묻는다. | 인터뷰,배우,정진영,판도라,원전

인터뷰에서 원전 반대를 주장하셨더군요. 촬영 전부터 그랬나요?2014년 6월경이었을 거예요. 저녁에 집에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이거 한다, 무조건 해야겠다, 그랬어요. 아니, 원전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 있다니. 이런 얘기가 없었잖아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고, 재고의 여지가 없었어요.사실 는 스토리 라인에 동의를 해야만 가능한 영화잖아요.자연스럽게 동의했어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생각해보니까 스토리가 있었어요. 제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잖아요. 환경 운동이 시작될 때예요. 그때만 해도 환경 운동은 개량주의적인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80년대의 핵심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고 봤죠. 저도 큰 관심은 없었지만 중요하단 건 알았죠. 제가 83학번인데, 그때는 원전 문제를 제기해도 급하게 떠오를 때가 아니었단 말이에요.당시에는 공기 오염을 해결하는 데 원전이 좋다고 홍보했죠.당시 원전은 눈앞의 과제가 아니었던 거죠. 이를테면 원전보다 ‘원진 레이온’ 문제가 더 심했던 거지. 그래서 당시는 원전에 반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뚜렷하게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고 있는데, 이번에 대학에 가는 우리 아들 초등학교 때 꿈이 원자핵 물리학자였어요.오, 구체적이네요.당시에 가족 영화를 했기 때문에 영화 홍보 인터뷰를 하다가, 가족 영화니까 아들 이야기를 물어보잖습니까? 아들 꿈을 얘기했던 기사를 보고 지금의 한수원에서 저한테 원전 안전에 대한 홍보물을 찍자고 하더라고요.역설적입니다. 원전 홍보 영상을 제안받았던 배우가 원전 반대 영화를 찍게 되다니.그때도 들여다봤죠. 판단을 정확하게 할 계기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자료를 들여다본 결과 원전은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죠. 그쪽에 정중하게 얘길 했지. “원전이 안전하다는 얘기를 할 수 없다.” 그 계기로 나는 원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인터뷰 중에 기억해낸 거죠.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받고서 후끈 달아올랐던 거예요, 오히려.에서의 사고와 수습 과정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상황하고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책을 하나 읽었죠. 박정우 감독이 그 책을 줬어요. 왜냐하면 난 소장이니까. 전체적인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영화를 보면서 계속 걸렸던 게 하나 있어요. 도대체 왜 저들은 도망가지 않는가. 이건 그냥 재난이 아니라 방사능이잖아요?난 의문을 갖지 않았어요. 그런 의문을 가질 역이 아니에요. 이 영화 속에 소장의 가족이랄까 그런 상황은 표현되지 않잖아요. 그걸 다 표현한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되는 거죠. 난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망설이고 그런 것도 표현하지 않았고.그 장면이 아주 기억에 남는데, 초반이에요. 원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근데 그 소장은 해임당한 상태이고 책임질 이유가 없어요. 근데 책임지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와요. 현실에서는 책임자여도 아니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거든요. 지금 한국적 현실을 반영하자면 특히. 우리가 원하는 어떤 리더의 모습이었어요.내가 그렇게 단호하게 돌아가야 나중에 가족들의 오열이 성립해요.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건 다른 노동자들이 해야 되는 거죠. 지금 또 다른 게 기억나네. 내가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글을 쓴 게 있어요. 에 정기 기고를 부탁해서 했는데 내가 한 번 쓰고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더라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바라본 무엇이었어. 한번 찾아봐요. 정확하지 않아. 나도 청문회 가면 혼나겠네.소위 '기억이 안 납니다?'실제로 나이 먹으면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남들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화가 나는 거지. 이거는 사적인 일이니까 괜찮죠?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취지는 그거였어요. 마지막에 노동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갔잖아요.나중에 그들을 ‘후쿠시마 50’이라고 불렀죠.그것을 보면서 그 희생정신을 근간으로 한 많은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정신이 또 다른 면에서는 그 사회의 영원한 영예로 남을 것이다, 그런 취지의 글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때 감명을 받았거든요. 저건 분명히 일본사의 비극인데 죽을 걸 알면서도 들어간 사람들의 그 모습이 일본 사회에 또 다른 힘이 될 것이다, 희망이 될 것이다. 와, 제가 그 칼럼 쓴 건 정말 방금 생각났어요. 그러니까 난 의심을 안 한 거예요. 그 인물에 대해 이미 사고한 적이 있었던 거죠.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메시지가 있어요.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국가나 정부라고 생각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신뢰, 희생 이런 것들이 바탕이라는 거죠. 후쿠시마 사태도 마찬가지예요. 일본 정부도 무능했고, 후쿠시마 50이라는 사람들이 희생했죠. 그런 사람들이 삶을 지탱하는 것이란 메시지가 있었던 걸까요?소장이 이런저런 갈등을 했겠지? 그런 고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별로 입체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스트레이트한 인물이에요. 돌아가서 구하고 거기에 뛰어들어야 되는 사람. 난 의심이 없었어요.굉장히 논리적인 인물이라는 건가요? 내가 원전을 알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가야 한다는?논리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인물인 거죠. 보통 우리가 캐릭터를 대할 때는 이게 가능하다고 믿는 게 기본적인 접근법 중 하나인데, 이번 경우엔 그런 걸 전혀 할 필요도 없었어요. 사실은 제가 나이가 들면서 연기를 의심에서 시작하지 않고 확신에서 시작해요. ‘이 인물은 왜 이럴까?’가 아니라 ‘이 인물은 이런 인물이야’라고 생각하면, 다음은 ‘이 사람은 무슨 감정일까?’를 생각하죠. 연기법이 좀 달라졌어요.내가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라도 그냥 받아들여서 연기했다는 건가요?연기자는 의심하라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남들의 의심을 없애주라고 배역을 맡기는 거거든요. 전에는 의심하는 방식을 많이 썼어요. 그게 더 논리적이죠. 근데 그러면 내가 의심하는 것밖에 해결하지 못 해요. 맹점이에요. 남들이 무슨 의심을 할지는 모르면서 내가 의심한 것에 대한 답만 갖고 연기를 하는 거죠. 의심이 나쁜 방법론이란 게 아니에요. 배우의 상상이 바로 그 부분에 있거든요. 근데 내가 의심을 하면 내가 의심한 것만 답을 갖고 들어간다니까. 다른 사람은 다른 의심을 할 수 있어요.어쩌면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인물을 믿고 들어가는 게 더 맞다는 걸 믿으면서 인물을 따라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심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그건 인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말로도 들리는데요.그럴 수 있어요. 전에는 논리적 구축에 포인트가 있었다면, 이제 더 감성적인 구축법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논리적인 방법으로 연기를 했거든요. 예외가 딱 하나 있어요. . 그건 논리적으로 따라가면 할 수 없는 역이었기 때문에. 연기는 결국 감정을 전달하는 건데, 내가 감정을 전달하려면 당연히 느껴야 하는 것이고, 논리적으로 뭘 의심하는 순간 그 감정은 쪼그라들어요.인물이 해체되는 느낌인가요?그 논리 속에 갇혀버린다는 얘기죠. 풍부해지지 못해요.연기하실 때는 행동이 먼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아니, 감정이에요. 결국 연기자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에요.저도 원자력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있지만 한편으론 한국 경제 안에서 원전의 비중이 상당히 크잖아요. 산업용 전기의 가격이 낮은 이유도 원자력 비중이 높기 때문이고요. 미세 먼지의 큰 원인은 화력 발전 때문이기도 하고. 결국 이게 이해 충돌의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를 본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아 원전은 위험하구나’라는 감정적 격동에 빠지는 건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원전 옹호론자의 논리가 바로 경제성이죠. 그런데 그게 그렇지도 않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의 반감기가 20만 년이랍니다. 지구에 그걸 20만 년 동안 안전하게 격납할 시설이 없어요. 그런 것도 생각해야죠. 이건 원전 반대론자들의 기본적인 논거죠.만약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원전은 안전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 비용을 계산해서 상대적으로 다른 발전을 시킬 수 있다면?지금 말씀에 딱 맹점이 있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를 어떻게 붙여요?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건데? 결국 대책을 마련하자는 거죠. 어느 나라 원전이든 사고가 날 걸 알고 건설한 데는 아무 데도 없죠. 체르노빌이 그랬겠어요, 후쿠시마가 그랬겠어요. 그런데 일어났다 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는 거죠. 0.01퍼센트의 가능성이었더라도 일어난 다음에는 대책이 없다는 게 원전의 속성이에요.결국 의 미덕은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원전의 무서움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고리 원전 얘기가 나오면, 를 본 사람들은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를 테니까요.독일이 지금 탈핵 사회로 가는 이유는 명확해요. 체르노빌 원전이 터졌을 때 선배가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어요. 체르노빌 원전 사태 터지고 독일의 모든 사람들이 차를 몰고 서쪽으로 갔답니다. 방사능을 피하려고. 영화에 나온 장면과 똑같이. 길이 똑같이 막혔죠. 그 안에서 오도가도 못 하고 있던 그 시간이 너무너무 공포였대요. 그런 체험적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회가 탈핵 사회로 가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거예요. 독일 사람들이 특별히 더 이성적이고 환경 의식이 뛰어나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사회의 입장에선 원전이 위험하다는 걸 경각할 계기가 그리 많지 않았던 거죠.대중을 움직이는 건 결국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는 것도.그분들은 직접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놀라운 결론을 도출한 거죠. 다만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었고요. 이번에 지진 왔을 때 불안했지만 곧 지나갔죠? 우리 흥행 스코어가 부산, 울산에서 엄청나게 나온대요.연기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원래 대학에서 연극반을 했고 연극반에서 꿈은 영화감독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하는 연극을 해본 경험이 있었고. 저희 교회는 약간 진보적이라서 성극을 하지 않고 진보적인 연극, 김지하 씨가 쓴 같은 걸 했어요. 중3 때인지 고2 때인지 모르겠는데. 첫 공연을 했을 때 그날 눈이 왔거든. (긴 침묵) 아, 잠깐만요, 감정 올라와서. 내리고. 그러니까 음, 눈이 막 왔는데 연극을 하고 (다시 침묵) 연습을 하고 딱 올릴 때와 끝났을 때의 감정이 있거든. 이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지? 아, 담배 피우면서 해야 안 운단 말이야. 하하. 눈이 막 왔는데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는 거죠. 뭐 그 기억이 있어요.오늘도 눈이 왔어요.그때 그런 게 싹튼 거 같아요. 예술 하면서 살아야겠다. 무대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 눈이 하얗게 왔는데, 굉장히 투명한 감정이었던 거 같아요. 이제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고, 예술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거 같아. 그 경험이 강렬했어요.근데 왜 지금 북받치신 거예요? 영몰라. 술 먹어서 그런가? 대학교 때는 진보적 시각을 가진 몇몇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극단이 있었어요. 노동극을 하는 극단이었죠. 그런 데서 잘한다고 좋은 역도 주고 하면서 계속 연기를 했는데 직업 배우로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거 하염없이 길어지니까 이야기를 좀 줄여야겠다. 내 얘기 20페이지 쓸 것도 아니면서.이창동 감독님과 원래 인연이 있었던 거예요?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선생님이셨어요. 계속 연극 쪽 일을 했으니까 영화 쪽으로 간다는 생각을 못 했죠. 연기 동력이 떨어져서 잡지 르포 쓰면서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그러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여균동 형 연출부에 들어갔어요. 대학 선배이지만 대학 다닐 땐 몰랐고, 그 뒤에 무슨 단체를 같이 했어요. 균동이 형이 갑자기 프로듀서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야, 너 여기 빨리 들어가. 빨리 경험해야 돼.” 그래서 제가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을 하게 된 거죠.곧바로 카메라 앞에 배우로 선 거예요?원래 연출부였어요. 대체 투입된 거였지. 끝난 다음에도 나는 감독을 준비했어요. 집에서 혼자 시나리오 쓰고 그러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는데 벌이가 없잖아. 암담하더라고. 밤에 시나리오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써지나. 바둑이나 두고 앉았고. 그럴 실력이 안 됐던 거죠. 그런 상태였는데 아내가 “오빠, 다시 연극을 해보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연극을 다시 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때 돈이 없어서 병원도 못 갔어요. 삐삐도 끊겼으니까.진짜 한 푼도 없었어요?난 한 푼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때, 97년이죠. 근데 아내가 그 얘기를 해서 연극을 했어요. 그럼 10만원은 가지고 올 수 있잖아. 그럼 당장 병원은 갔다 올 수 있잖아. 그래서 한 건데 너무 재미있더라고. 그때 이후로 배우 생활하고 있는 거예요. 연극을 하나 했고 운이 좋게 캐스팅이 들어왔어요. 이 얘기도 길어요. 막내 연출부의 유학 간 옛 애인이 나의 팬이었다는 거야.하하하하하.그래서 의 엄기탁 역할이 캐스팅이 안 되던 시점에 날 김유진 감독님한테 소개했다는 거지. “에서 계란 장수 했던 사람이오” 했더니 김유진 감독님이 화를 냈대. “엄기탁을 어떻게 계란 장수가 하냐” 하시면서. 하하.엄기탁이 되게 중요한 역할이긴 하죠.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일관되게 연기를 계속했어야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물론 아예 다른 길은 아니었지만 내 연기의 순수성을 스스로 의심하게 돼. 평생 이쪽으로 매진해야 되는 건지.다른 길 간 적 없잖아요. 설마 ?아니, 영화 연출하겠다고 그러고 뭐 그런 거. 사실 내가 연기를 썩 잘하는 배우도 아니에요. 할 줄 아는 걸 하는 배우지.그러면 잘하는 배우의 기준은 뭘까요?송강호 같은 배우가 잘하는 배우죠.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장으로 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고, 감사한 거죠.사실 늘 논리적인 배우라는 인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논리의 틀을 놓았다는 느낌이 있어요.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요. 난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었거든. 근데 내가 지금 예술가로 살고 있는가, 그런 질문을 요즘 하고 살아요. 예술가는 직업과는 다른 거거든.이상적인 예술가의 모습은 어떤 걸까요?돈도 명예도 부귀도 다 싫다, 그런 거지.그건 한량인데.진리를 향해. 우리가 아는 예술가들은 그렇게 살았잖아요. 그래서 좀 예술가로 살고 싶어.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그걸 느끼는 시점이에요. 아니 ‘시점입니다’라고 하면 인터뷰가 끝날 것 같다.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배우 정진영 씨는 행복하세요?그게 질문이에요? 무슨 이런 파쇼적인 질문이 있어.저희 공식 질문이에요.행복해요.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래, 그게 맞겠다.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빨리 끝내고 술이나 마시러 갑시다. 여기 내 단골집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