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 미워할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사회학자 오찬호에게 오늘날 만연한 우리의 혐오에 관해 물었다. | 인터뷰,오찬호,혐오,페미니즘,여혐

남자와 여자가 편을 갈라 싸우는 이런 판은 왜 벌어진 걸까? 이 혐오는 어디서 온 걸까? 도대체 이건 누구를 위한 싸움일까?이 수많은 물음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서 를 쓴 사회학자 오찬호에게 지분지분 물었다.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과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젠더 이슈가 요즘같이 달아오른 적이 없었으니까.책에 실린 칼럼은 6년 전부터 쓰던 거다. 출판사와는 2년 전에 계약했다. 초고는 작년에 끝났다. 그런데 계속 미뤄지다가 마침 출간됐다.작년에도 그런 기운을 느꼈지만 지난 5월 17일 강남역 살인 사건과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 이후 현상을 보니까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을 벗어나는 지형이 마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더 일찍 나왔다면 그때 논쟁에도 참여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 시기는 내가 맞춘 게 아니고, 이제는 언제든지 이런 책을 내면 시의성을 갖는 시대가 된 것 같다.참 쉬운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이 바닥의 고수가 아니다. 이 글도 급진적이지 않다. 실제로 여성권을 신장시키려고 노력해온 운동가, 활동가가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썼다는 게 민망하기도 하다. 그저 이런 책을 남자가 썼으니까 주목하나 보다 정도의 생각은 한다. 6년 전에 쓴 글을 지금 끄집어낼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두 가지다. 하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이 넓어졌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이후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여성 비하는 더 드러났다. 지형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넓어진 것이다. ‘메갈리아 사태’로 대표되는 최근의 사건을 둘러싼 그 공격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거의 패턴화되다시피 한 증오였다. 비슷한 이슈마다 거의 복사한 것 같은 양상의 댓글이 달렸으니까. 하지만 결국 피해자들끼리 치고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암담했다. 어떻게 정리해야 양쪽이 다 진보라고 느낄 수 있는 변화가 나올까?그게 중요하다. 어느 시점에 패턴화된 것도 있지만 큰 구도에서의 싸움은 그렇게 복합적이지 않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해석에 온갖 고수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는 그 논쟁을 못 따라가겠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확장됐다. 내가 이해하고 해석한 내용이 맞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지금은 어느 편인지 손 들기 같은 분위기가 됐다.언젠가 만난 핀란드 정치인은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는 핀란드를 평등하고 아름다운 복지국가라고 생각하잖나? 하지만 그들도 차별 지수가 0은 아니다. 우리보다 월등히 낮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아직도 불평등한 사람이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내일은 한 사람이라도 더 없애는 게 목표라는 거다. 100퍼센트 평등이 올 때까지 노력한다는 거다. 완전히 다른 인식이다.는 남자 잡지니까, 어떻게 보면 곳곳이 뇌관인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제야말로 남성지가 다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진짜 신사에 대해 말해야 하니까.물론 의미가 있다. 페미니즘은 일상적 차원에서는 여성을 배려한다고 할 때 도대체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문 잡아주고 그런 인간적인 배려의 차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을 할 때는 어떤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단어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적 배려의 시작이다.요즘은 정말 재미있는 걸 경험하고 있다. 책이 나오면 약 2~3주는 검색만 하고 지낸다. 안 가본 사이트도 다 가본다. 가보면 반응이 정말 똑같다. 남초 사이트에서 일단 “야, 이 새끼 군대 갔다 왔냐?”라고 묻는다. 네이버에서 오찬호랑 군대는 아예 연관 검색어다.첫 번째 챕터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에 소개된 그 칼럼 얘긴가? “비록 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만실 40시간이었지만 남자들이 흔히 핏대 세우는 ‘26개월’(내 경우)의 ‘군 생활’은 실로 장난이었다”라는, 그 옛날 칼럼에 쓴 한 문장 때문에? 당신이 시작부터 뇌관을 제대로 건드린다고 생각했다. 그 반응은 어떤 상처를 건드렸을 때 “아이고, 아파!”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군대는 어쨌든 특정한 시기에 강제로 가는 거니까. 나는 군대의 습성, 병영 문화가 사회로 확장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위로라고 생각한다.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강한 남성성에 부여되는 나쁜 결과에 대해 남자들이 스스로 아는 것이 진짜 위로라는 거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억울하니까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흔한 ‘힐링’을 원하는 거지. 내 생각은 좀 다르다.그들이 지금까지 착각 속에 살았네, 잘못 알고 있었네, 그런 것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 진짜 위로 아닐까? 옛날에 내 블로그에서는 같이 댓글 달고 막 그랬다. 그랬는데 논쟁이 생산적으로 흘렀던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원래 그런 남자들하고는 얘기가 안 통해요”라며 나를 위로하는 남자가 더 많았다.그런 벽을 자주 느낀다. 더 절망적인 건 그 사람들이 감화될 필요가 없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군대의 논리와 문화에 익숙한 채 사는 게 더 편할 때가 있으니까.우리는 몸이 편하면 질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강한 남성성이 있고 거기에 맞춘 여성성이 있었다. 내조, 성적 상품화로 대표되는 여성성이었다. 그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완벽하게 적응하고 불만이 없으면 사회가 화목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누구의 정체성을 그렇게 강제할 수는 없는 거니까.그런데 그런 사회적 가치, 고정관념을 후대에도 물려줘야 할까?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논쟁을 해서 생각을 고쳐나가고 남을 설득시키는 것처럼 나도 설득되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그게 없다. 이미 있는 것에 개인이 끼워 맞추는 훈련을 더 받게 된다.한국의 고지식한 남성성에 대해서라면 세 번째 챕터, ‘남자로 살기 너무 힘들어’에 1990년대 말 IMF 사태가 한국 남자들한테 미친 영향에 대한 부분에 설득력이 있었다.IMF 사태는 1997년 11월에 왔다. 폭풍은 1998년부터 불었다. 정리 해고, 인수·합병, 조기 퇴직, 명예퇴직, 아버지, 자살, 벤치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라는 소설도 크게 유행했다. 그때 실질적인 상흔을 경험한 자는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건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 IMF 사태를 주저 없이 꼽는다.한국 남자로서의 가부장적 정체성이 뿌리부터 흔들린 시기 아니었나?집에 제때 월급을 못 갖다 주게 된 가정이 많았다. 가장이 집에서 가졌던 위치와 권력이 무너졌다는 거다. 더불어 미래도 무너졌다. 왜냐하면 당시의 40~50대는 자기보다 10~20년 위를 보면서 안심할 수 있었다. 65세 정년까지는 그렇게 안정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배신당한 거다.2016년에 40대 후반이 명예퇴직당했을 때의 절망감과 그때의 절망감은 아주 다를 것이다. 어느 쪽도 옳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이미 그런 식의 정리 해고가 너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IMF 사태 당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개인적으로 느낀 엄혹함도 기억나나?나는 1998년 2월에 군대에 갔다. 거기서도 피부로 느꼈다. 일단 반찬을 줄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찬 종류가 네 가지에서 세 가지로 줄었다. 6주 훈련 동안 컵라면을 딱 두 번 먹었다. 원래 일주일에 3~4개씩 먹던 거였다. 우편으로 보내던 옷도 쇼핑백에 담아 100일 휴가에 들고 나갔다. 군대에서 우편비를 아낀 거다.6주 훈련이 끝났을 때 부모님 모시고 하는 행사의 표정도 달라졌다. 못 오는 부모님이 생기고, 갑자기 편지가 왔는데 부모님의 잠적을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위장 이혼도 늘었다. 군이 그걸 인지하게 되면서 1998년 1월 1일부로 그 행사가 없어졌다. 대신 100일 휴가가 생겼다. 그 전에는 100일 휴가가 없었다. 일병 휴가가 있었지. 그래서 1998년 6월에 첫 휴가를 나왔는데 서울역 앞에 노숙자가 파도처럼 늘어서 있었다. 진짜 무슨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IMF 사태는 그 이후의 한국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등장하는 변수다. 학교 폭력의 결, 학생들의 꿈과 진로도 그 이후에 완전히 달라졌다.지금 우리가 왜 이토록 힘든가, 지금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식으로 분노하는가 고민하다 보면 일단 그 시기에서 멈칫하게 된다.국가는 개인을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시기였다. 어느 날 갑자기 동료, 옆집 누군가가 노숙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94년까지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 차가 크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대기업이 100만원 벌 때 중소기업이 버는 액수가 97만원까지 갔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70만원대 후반, 80만원대 초반으로 유지됐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였다.그렇다고 그 시절이 파라다이스였다는 게 아니다. 남자가 산업사회의 전사처럼 살면 전사를 우러러봐주는 엄마와 가족이 있고 현모양처라는 역할 안에서도 삶과 사회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굴러가지는 않았다는 거다. 지금은 결과가 아주 안 좋게 흘러가니까 따져봐야 하는 거다.그때부터 모두의, 모든 것에 대한 생존 경쟁이 시작된 것 같다.1990년대 후반부터 대학 진학률이 팍 올라갔다. 옛날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아이 둘 가질 수 있고 가장 노릇도 하고 자전거 사서 산책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IMF 사태가 터지니까 고졸 출신이 제일 먼저 잘렸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소용없었다. 대졸자는 모아놓고 경영학과, 법학과 빼놓고 인문대 출신을 다 잘랐다.남녀는 여자부터 잘랐다. 농협의 첫 번째 해고자가 사내 결혼한 사람 중에 한 명을 내보낸 거였다. 90퍼센트 이상이 여자였다. 1998년 즈음 은행 합병하고 그럴 때였다. 그때 이걸 체험한 사람들은 굉장히 큰 상처를 입었다. 어떻게든 다 살기는 하겠지만….그때 서울역 지하도를 걸어가면 양쪽에 노숙자가 두 줄로 쭉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를 사람들은 정말 조용하게 걸었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열심히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상징 같은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고졸보다 대졸, 국문학이나 철학보다 경영학과 이공계였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조직에 적응을 잘해야 하고 상사 말을 잘 들어야 했다. 학생들이 학원을 다닐 때도 전략이 필요했다. 엄청난 해고의 물결이었다.그런 시대를 버텨내고 나서 지금의 젠더 논쟁까지 온 것을 몇 걸음 진보했다고 여겨도 될까? 삶을 부정당한다는 측면에서 어떤 남자들에게는 낯설고 공격적인 이슈겠지만.그래서 어떤 남자들은 이런 이슈에 대해 IMF 사태 이후에 남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버텼는지를 토로한다. 회사에서 3차, 4차까지 접대하고 주말에는 상사의 산행을 따라가야 하는.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 삶을 얘기한다.그게 방어 방법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우리더러 여자나 차별하는 ‘한남충’이라고 하면 누가 기분이 좋겠느냐는 거다. 나는 그 억울한 삶에 대해 분석해보자는 거다. 왜 지금 남자는 억울한가, 왜 남자라서 3차, 4차까지 접대를 하고 버텨야 하는지를 알아보자는 거다. 아, 이건 진짜 남자를 위로하는 책이다.놀라운 건 20~30대 젊은 사람들의 방어적인 반응이었다. 역시 생존 경쟁 때문인가?20~30대는 생애 주기상 원래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에선 2016년의 삶의 고충과 생애적 고충이 겹친 거다.이번 책은 페미니즘의 맥락에선 굉장히 초보적인, 중 ‘집합’ 정도 수준의 얘기다. 그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데 교육적으로 안 받쳐주니까 논의가 심화되지 않는다. 정치인, 지식인, 언론, 교육 체계 등 거의 모든 것이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까 연령을 불문한 남자들이 역차별 같은 단어에 귀가 솔깃한 거다.한국 남자야말로 페미니즘에 의지할 수 있는 여지가 클 텐데, 한국에선 학문자체가 굉장히 곡해되어 있다.맞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을 통한 여성의 권리적 해방도 있지만 권리를 누르고 있는 자가 자신의 과오를 알 수 있다는 측면의 해방도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남성성을 가진, 멋진 남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좋아할 것 같다.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거부하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압력의 해방과 맥을 같이하는 거니까.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분홍 코끼리 옷을 입고 조롱했던 남자, 하필 거기서 ‘역차별’ 운운했던 남자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세월호 폭식 투쟁과 연결되는 오프라인 퍼포먼스로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웬만해선 등장하지 않을 텐데 그렇게 계속 등장한다는 건 그들이 본인의 논리에 확신이 있다는 거다.‘일베’가 주로 비판하는 것은 노무현과 전라도다. 계속 욕을 한다. 그러나 세월호와 강남역의 경우 일베에게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세월호는 ‘무임승차’라는 거였고, 강남역의 경우는 역시 역차별이라는 거였다.“저 사람 군대 다녀왔나?”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나?” "역차별이라는데?” “초등학교 교사는 여자가 많아지는데 왜 남성 할당제 안 하냐?” 그런 논의는 세 번만 랠리를 해보면 그들이 다 지게 돼 있다. 그걸 표피적으로만 이해하고 그런 식으로 폭력적인 여론만 형성해놓고 도망치는 거다.그런 폭력 자체를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 그 자체가 공포였다.그들은 당사자에게 논리를 펼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약자인 여성이 약자로서의 여성성을 깨려고 할 때,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자기보다 만만해 보일 때 위해를 가한다. 응암역이었나? 담배 피우지 말라고 얘기한 아기 엄마를 때린 남자. 그건 그냥 미친 거다.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담배 멋대로 피우던 시절이 분명히 있긴 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거다.요즘 느끼는 또 하나의 벽은 이런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 아닌 말을 말로 설명해야 할 때 말문이 막히곤 한다는 것. 명백하게 미친 짓인데 그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디에 기대야 하느냐는 거다.재미있는 지점이다. 유모차와 담배 연기의 경우는 명확하다. 흡연권은 자유에 기초하는데 혐연권보다 아래에 있다. 이미 판결이 있다. 누군가 너의 담배 연기를 싫어할 수 있는 권리가 네가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리보다 위에 있다는 거다. 아파트에서 담배 연기 때문에 생긴 소송이었다. 그게 공부다.옛날에는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으니까. 내가 그러듯이 저 사람에게도 싫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거다. 우리의 상식은 몸 가는 대로 익숙한 대로 맞춰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미래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심지어 “니들도 군대를 가든가!”, “그럼 니가 애를 낳든가”라는 말을 실제로 하는 사람도 봤다. 말이 아닌 말을 들어야 할 때의 허무를 그럴 때 느낀다. ‘한남충’, ‘맘충’ 같은 온갖 은어가 격돌하는 지점도 여기 아닐까? 관용의 여지가 없는 미개한 논쟁의 장에서.그건 그냥 남녀를 갈라놓는 말, 그 자체가 벽이다. 강단에 서는 입장에서는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같은 질문도 벽이다. 비판 같은 건 듣지 않겠다는 자세다. 보복 운전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럼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 보복 운전의 가해자를 화나게 만든 사람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묻는 경우도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저 인간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건 중세의 논리 아닌가?강단의 현장, 대학생들의 이해도는 어떤가? 공감해주는 친구도 많고 성찰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자기 삶을 성찰하고 사회적 가치를 뽑아내는 게 그들의 대학 생활에서는 썩 중요하지 않다. 일부에게는 중요하겠지만 대부분은 스펙 관리를 해야 하니까 그냥 무감하다. 반감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냥 무감이다.무심하니까 감정이 없어지고, 무감해지니까 무례해지는 굴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게 바로 폭력의 고리 아닐까? 그들에게 허락된 여유가 없으니까 본의 아니게 다들 괴물처럼 되는 것 같다.누구를 때려서 괴물인 게 아니라 누가 맞고 있는데 관심이 없으면 그것도 괴물인 거다.우리가 젠더 이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폭력의 역사를 짚고 넘어간 이유가 거기 있다. 군대와 IMF 사태는 시스템의 폭력일 것이다. 일베는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의 폭력이다. 젠더는 이 노골적인 폭력을 다 딛고 서서 지금, 기꺼이 다뤄야 하는 주제가 되었다. “자, 이제 젠더를 다뤄보자!”고 운을 띄우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린다.폭력이 있어야만 논의가 되는 것도 안타깝다. 일상에는 폭력적이지 않지만 성찰해야 하는 것도 굉장히 많은데. 폭력으로 촉발된 논의만 다루다 보면 사실상 폭력의 기조를 만들어주는 모든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많은 사람이 나는 저 정도의 인간쓰레기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다. 그 폭력의 기저에 흐르는 문화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는데 우리는 누가 맞거나 죽어야 성찰하기 시작한다. 훨씬 사소한 사건에도 촉발될 수 있어야 한다.‘여혐’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했던 폭력이라는 말을 혐오로 바꾸면 어떨까?그대로 가능하다. 여성 혐오라고 하면 많은 남자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혐오’라고 하면 누구를 밟거나 찌르거나 때리거나 하는 그런 행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혐오는 그런 게 아니다. “여자가 어딜 나서!” 같은 아주 일상적인 말이 바로 혐오다. ‘혐오’라는 우리말에 담긴 극단적인 뉘앙스 때문에 다들 너무 마음을 놓고 있는 것 같다.그 단어로부터 많은 남성들이 빠져나간다. 우리는 ‘불쾌’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상의 작은 언어적 폭력이 불러일으키는 불쾌, 그 폭력에 대해 적절한 피드백을 못 받으니까 혐오로 넘어가는 거다. 대부분은 불쾌에서 끝나겠지만 그중 일부는 폭력으로 가고, 또 그 대부분은 폭력에서 끝나겠지만 그중 일부는 혐오로 갈 수 있는 기반이 있는 거다. 그때그때 마땅히 지탄과 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폭력으로 나가는 거다.여자 입장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혐오 차원의 폭력에 많이 노출돼 있는 거 아닌가? 공포는 수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100명의 남자 중 한두 명으로부터만 그런 걸 느끼더라도 그건 정말 굉장히 큰 거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100명 중 한 명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어마어마하게 큰 공포다. 그걸 남자 전체가 매도당한다고 생각하고 억울해하면 안 된다. 그녀는 느끼지만 나는 못 느끼는 것, 나는 모르지만 너는 아는 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일단 상대를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닐까?거기서부터 시작해야 시민으로서 모두의 복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이해를 위해서 동참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네가 더 편하네, 내가 더 힘드네 하고 있는 거다. 여전히 고민이다. “네가 지금 힘든 게 여자들 때문은 아니야”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게 할 수 있을 것인가.양성평등은 남자의 권리를 없애자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얘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 과거에 비해 남자의 권리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고 여자의 권리가 살짝 신장했다고 해서 운동장이 평평해진 게 아니다.여성이 여자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인권에서 배제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그것이 잘못이라고 주장을 해야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더 과도하고 과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힘든 남자의 삶을 정말 줄여주는 시작점이 양성평등의 시발점이라는 얘기다.남자다움, 여자다움 같은 말을 떠나서 그것이 남녀를 가르고 시야를 흐린다면 그건 잘못된 거다. 우리는 그저 사람다움에 대해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