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4차 산업혁명? 우린 ‘아날로그적 버그’가 되자. | 경제,4차 산업혁명,산업,자본,노동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요즘 정치권에서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에서 칩거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클라우스 슈밥의 베스트셀러 을 열독하고 있으며 대선 출사표를 던진 다수의 후보가 경제정책 첫머리에 4차 산업혁명을 올려놓고 있다. 아마도 올 대통령 선거에선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을 게 확실하다.그러나 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들을 때마다 속이 편치 못하다. 가슴이 탁 막히고, 알 수 없는 우울감과 초조함을 넘어 공포 비슷한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결론부터 말하면 난 이 4차 산업혁명을 영화 를 현실화시키는 첫 단계로 보고 있으며 자본이 인간(인류)을 합법적으로 지배하는 노예화 작업의 완성 단계로 보고 있다.지금 다들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가 엄청난 성장 동력을 찾자고 난리인데 웬 딴지 걸기냐고? 글쎄, 정말 내가 딴지라도 제대로 걸 수 있으면 좋겠다.4차 산업혁명의 정의?4차 산업혁명의 사전적 정의는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이 정보 통신 기술(ICT)과 융합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및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라고 한다.혹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으로도 표현하며 ‘사물인터넷을 통한 초 연결 사회에서 펼쳐지는 데이터 기반 혁명’이라고도 한다. 좁게 해석해 ‘고객 맞춤형 스마트 제조 및 공장(공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자, 그럼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난 이에 대해 ‘3차 산업혁명의 주체인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의 일상과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3차 산업혁명이 디지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의 완성이다.가령 비행기에 컴퓨터 자동 조작 장치를 달아 운행하는 게 3차 산업혁명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드론’이란 녀석이 생활에 들어와 촬영도 하고, 택배도 하고, 인명 구조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사물인터넷(IOT)과 공존하고, 당연히 AI(인공지능) 시대와 만날 수밖에 없다.왜 3D 프린팅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보는가. 디지털로 프린팅하는 것(3차 산업혁명)에서 나아가 옷이나 책상, 피아노, 자동차, 탱크 등의 생산이 ‘생활’로 가능하기 때문이다.자율주행차도 그렇다.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가 3차 산업혁명이라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구글맵과 결합하고, 도로에 부착된 센서를 읽고, 신호등과 송수신을 하며 혼자 달리고 멈추는 전기 자율주행차가 주인공이다.AI 의사, AI 변호사, AI 경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원격 진료까지 가능케 했던 게 3차 산업혁명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AI 의사인 왓슨이 등장해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이어 죽음까지 예측하는 그런 세상을 가리킨다.정말 산업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그래서 지금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목을 매고 있다. 성장 동력이 사라진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려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데 이걸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만들어보자는 포석이다.그러나 이 대목에서 4차 산업혁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1차 산업혁명을 보자. 혹자는 이때부터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빈부 격차가 시작됐다지만, 그래도 인간을 혹독한 맨몸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의미가 있다.2차 산업혁명?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묶인 채 일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고용’이란 엄청난 효용을 가져왔다. 또한 부를 축적한 중산층이란 계층을 만들어냈다.3차 산업혁명도 비슷하다. 닷컴 버블이란 충격으로 우리에게 찾아왔지만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 혁명을 만들어냈고,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고, 금수저가 아니라도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다.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아무리 봐도 앞선 세 차례의 산업혁명과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은 고용을 다르게 바라본다. 즉 기업에서는 더 이상 정규직을 뽑지 않으니 각자 도생하라는 이야기다.물론 이걸 창업과 스타트업이란 긍정적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보면 이 스타트업 역시 3차 산업혁명 때와는 사뭇 다르다. 가령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구글을 창업해 돈을 벌었지만 4차 산업혁명 때는 구글이 이미 모든 ‘판’과 ‘수단’을 선점해버렸다.그래서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은 ‘골드 컬러(반짝반짝하는 창조적 사고로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는 사람)’가 기발한 서비스를 만들어도 거대 공룡들이 선점한 틀 안에서 이뤄지기에 그들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고 결국엔 그 공룡들이 돈을 번다고 한다.이뿐만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에는 특출할수록 기존 시스템과 틀에 더 순응해야 한다. 틀을 선점한 그들의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쫓겨나기 때문이다.공유 경제란 것도 살펴보자. 현재 공유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적 사례로 꼽힌다. 우버는 기존 택시 서비스와 SNS의 장점을 결합해 생활 속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3만원 내던 택시비를 1만원으로 줄일 수 있으니 당장 소비자는 기뻐한다.그러나 공유 경제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지도 못하고 창조적 혁신도 아니다. 개인들의 편익이 높아졌고 유휴 가동 능력도 활용됐지만 전체 산업 생태계로 보면 성장 축소에 가깝다.자동차 한 대를 새롭게 생산해 이걸 팔거나 수출하고 렌트하고 중고차로 돌리는 것과, 기존의 차로 사람을 태워서 부수입을 올리는 것의 부가가치 크기는 비교도 안 된다. 그리고 돈 버는 주체도 문제가 있다. 큰돈은 이 시스템 운용사가 수수료로 다 가져가기 때문이다.난 4차 산업혁명을 자본이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마지막 완성 단계라고 파악한다. 현재 우리가 독보적 기술이라고 말하는 것, 시스템이라고 표현하는 것, 그것들의 실질적 주인은 바로 자본이다.4차 산업혁명은 결국 ‘인간 노예화’의 완성이다.1차에서 3차 산업혁명까지만 해도 어떤 식으로든 혁명의 주체는 인간(노동)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은 완전히 배제됐다. 노동이 힘을 못 쓰니 당연히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창업을 할 순 있지만 이 또한 시스템(디지털)의 종속체가 돼버린다.이렇게 말할 수 있다. AI 의사가 우리 건강을 잘 챙겨주고, 수술도 완벽하고, 과잉 진료도 하지 않고, 병원비 정산도 깔끔하다. 일부 건방 떠는 인간 의사에 비해 얼마나 좋은가?AI 펀드매니저와 로보어드바이저가 나의 금융자산을 제대로 관리해주고, 냉혹한 마인드로 차익 실현과 손절매도 해준다면 얼마나 이상적인가. 수수료만 뜯어가는 증권사 직원들과 실력이 형편없는 인간 펀드매니저에 분노가 쌓였는데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하지만 이건 단편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AI 의사도 공짜로 내 암 수술을 해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그렇다면 이런 4차 산업혁명의 베스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텐데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고용을 막아 자본 축적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역설적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맞서 싸우면 된다고? 증권사에서 잘린 전문가가 나와서 ‘너 AI, 나하고 제대로 붙어보자!’며 결국 AI에게 본때를 보이는 극적 반전도 있다고? 그러나 이 또한 역설이 적용된다.4차 산업혁명에 우리가 몰입할수록, 발전시킬수록 인간의 능력은 더 퇴화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길 확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그래서 난 4차 산업혁명을 자본이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마지막 완성 단계라고 파악한다. 현재 우리가 독보적 기술이라고 말하는 것, 시스템이라고 표현하는 것, 그것들의 실질적 주인은 바로 자본이다.고(故) 스티브 잡스가 외친 애플의 혁신이 인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혁신이 멈출 경우 자본은 언제든 가차 없이 애플을 내동댕이치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다. 직물 기계로, 컨베이어 벨트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그 모습을 바꿔가며 인간의 노동을 야금야금 빼앗아갔던 거대 자본은 이제 4차 산업혁명이란 명분으로 마지막 쐐기를 박으려 하는 것이다.우리만의 러다이트 운동을 펼쳐야 한다그런데 자본은 과거 1차 산업혁명 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1810년대 직물 기계 발명으로 배고파 굶어 죽던 영국 중부와 북부 직물 공업 지대의 수공업자들이 한밤에 공장으로 찾아가 기계를 모두 부숴버린 ‘러다이트 운동’이다. 당시 이들은 한동안 산업자본가들을 벌벌 떨게 했다.컨베이어 벨트 시대에도 임계점을 벗어날 땐 어김없이 인간은 존엄성을 외쳤다. 멋진 자동차가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건 좋지만 그것이 비인간적인 노동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주인 정신’이었다.그러나 3차 산업혁명 때부터 우린 힘이 빠져버렸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면서부터 자본은 손쉽게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갔고 몸은 편해져만 가는데 정신은 불안해 미칠 지경이 됐다.4차 산업혁명이 생활의 엄청난 변혁을 이룰 거라고? 디지털과 초합금으로 중무장한 드론이 아파트 앞에 비치된 택배 저장소로 완벽하게 배달하는 세상이 좋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국 5만 택배 종사자들은 당장 어디로 갈지 누구도 모른다.5세대 통신 시대가 오면 한 일주일 정도는 신기함에 즐거워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연인과 맘 놓고 섹스도 못 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이 대목에서 ‘그럼 뭘 어쩌자는 것인가. 이미 세상은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데, 나 홀로 산으로 들어가라는 거냐’고 화를 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 역시 뭘 어쩔 도리는 없다.물론 최선은 입법적 접근이라고 본다. 전기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더라도 택시기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든지, ‘왓슨’이 완벽해져도 병원에선 일정 이상 인간 의사를 고용해야 한다, 개인 정보를 유출 또는 악용했을 때는 삼대(三代)를 멸족시킨다는 식의 법률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하지만 3차 산업혁명까지 과정에서 목도했듯이 자본의 로비력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과거 러다이트 운동 같은 인간의 노동 회복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더 밀리면 이젠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기 때문이다.우리 인간의 성공 문법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 이상 하루 4시간만 자고 공부해도 AI보다 더 많은 학습을 할 수 없고, 하루 10시간씩 볼을 쳐도 AI 골프 머신을 이겨낼 수 없는 세상이 됐다.지금부터는 디지털의 괴물적인 학습 능력과 지루한 패턴 플레이, 냉정한 빅 데이터 분석을 깨부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런 능력을 갖출 때 디지털도 우릴 두려워할 것이고, 그 뒤에 숨은 자본 세력도 한 발 뒤로 물러설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그런 능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고? 방법은 연구 중이지만 완성된 모습은 확실하다. 일명 ‘아날로그적 버그’이다.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최종 목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