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은 강요하고 싶지 않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행복을 찾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인터뷰,음악,클래식,뮤직,김선욱

가장 유명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을 연주할 때도 김선욱은 악보에 최대한 충실하고 싶었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천재 피아니스트였으면서, 소년처럼 웃는 얼굴로, 연주로 감정을 강요하느니 차라리 침묵이 낫다고 말했다.정우성(이하 정) 서울시향과 베토벤 ‘황제’ 앨범 출시했던 게 2013년이었죠?김선욱(이하 김) 1월에 녹음하고 4월에 나왔을 거예요.정 내가 왜 김선욱 씨를 좋아하며 왜 클래식을 듣는가 생각하다가 정확히 2013년으로 돌아갔어요. 당시에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악기 소리만 들었어요. 그러다 그 앨범에 딱 꽂혀서 거의 가요처럼 반복해 듣기 시작했어요.신기주(이하 신) 나도 그 앨범 좋아해. 전 이번 주 내내 김선욱 씨 앨범만 들었어요.김 사람마다 포인트가 다른 것 같아요. 갑자기 미술 작품이 좋아질 수도, 책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빠지는 포인트가 다른데, 클래식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아할 수 없는 분야인 것 같아요.그냥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들어서 좋다고 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다음 단계는 공부를 해야만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왜 이런 곡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 곡이 나온 시초는 무엇인지.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고 공부를 해야지만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드는 거죠.첫 시작이 ‘황제’ CD를 듣고 좋아진 거였다면 저로서는 정말 너무 감사해요. 연주자로서 그럴 때 제일 보람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정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땐가 들었던 치고이너바이젠 LP가 생각나요. 그때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연주한 ‘황제’가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2013년의 김선욱의 ‘황제’와 20여 년 전의 ‘황제’가 연결됐어요. 그래서 김선욱 최초의 피아노도 궁금해졌어요.신 선욱 씨는 왜 그렇게 피아노가 좋았을까요?김 단순해요. 저는 1988년생인데 초등학교 다니던 당시에 이상하게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너무 많았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맞벌이이다 보니까 다섯 시 이후에 퇴근하시고.그 시간을 메우려면 학원을 여기저기 다녀야 했어요. 피아노 학원, 서예 학원, 한자 학원, 수학 학원 여러 개를 다니다가 처음에 음악이 좋다고 느꼈던 게 슈베르트 즉흥곡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어렸을 땐데.엄마한테 그 악보를 사달라고 졸랐고, 그래서 처음 제대로 된 세광출판사 이런 데서 받은 이만한 책을 선물 받았어요. 이걸 쳐보고 싶으니까 계속해보고.정 4살부터 치셨죠? 피아노.김 프로필엔 3살에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때 4살이었고. 그땐 다 악기를 하나씩 배워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40~50명 중에 피아노 안 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거의 다 피아노 학원에 다녔으니까. 뭐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신 전 설명할 수 있지만 여기서 설명하면....(웃음)정 또 정치, 경제로 설명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하지 마요.김 전 신기주 기자님 날카로운 글 너무 좋아해요. 팬이에요. 영광이에요. 제가 활자 중독은 아닌데 글이 많은 잡지가 영양가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그땐 악보 모으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걸 공부한 것보다 소장한다는 기쁨이 컸어요. 책은 안 읽는데 책 모으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악보랑 CD. 그리고 지하철 표. 어른 표, 어린이 표, 구간별로 다 모으고 싶은 거예요. 수집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악보도, CD도 수집.지금도 지도 보는 거 너무 좋아해요. 지하철 맵 보면서 명동역 도착해서 대한음악사 가서 악보 사고 압구정 신나라 레코드 가서 CD 사는 거 좋아하고. 그게 95, 96년도였어요. 근데 이게 돈이 없으니까... 초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요. 그래서 가끔 훔치기도 했어요.정 거기 훔치기 쉽지 않은데.(웃음)김 대한음악사에서도 악보를.... 가방을 하나 들고 가서, 구석진 데 가면 아저씨들이 잘 안 보거든요. 그럼 가방 열고 막 주워 집어넣고. 대한음악사 사장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냥 두신 거죠. 어머니는 제가 자주 그러는 걸 아니까 대한음악사에 가서 악보값을 지불하신 적도 있었어요.https://www.youtube.com/watch?v=wKCxpoJZ_po신 피아노가 내 직업이 될 거라고 느낀 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인 것 같은데요, 왜 피아노였을까요? 운명적인 것일까?김 일단 피아노는 큰돈이 요구되지 않았어요. 바이올린을 같이 했는데, 중학교 때 예원학교라는 특수학교에 진학하려면 피아노와 바이올린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어요. 그때 피아노를 선택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 금전적인 것과 관련이 있어요.첫째는 바이올린을 하려면 악기가 정말 좋은 게 필요한데 좋은 현악기는 뭐 끝도 없어요. 근데 피아노는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죠.두 번째는 항상 반주자를 대동해야 되는데 이 반주자 페이만 해도 굉장하거든요. 피아노를 하면 그게 내 수입이 될 수도 있다 생각했죠.(웃음)세 번째는 음정 맞추는 게 귀찮아서. 저는 진짜 단순하게 피아노를 한 거죠. 사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게 되고 싶었는데 항상 콩쿠르 나가면 바이올린은 떨어지고 피아노는 입상했어요.신 길이 그렇게 열리는 거죠.김 자연스럽게 됐어요. 운도 좋았고.신 어떤 연주자한테 악기도 운명이듯 어떤 레퍼토리, 작곡가도 운명적인 게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 잘 맞는 작곡가는 확실히 있어요. 연주자가 바흐부터 쇤베르크까지 다 잘 칠 순 없어요.신 그게 왜 베토벤일까요?김 취향 차이인데요. 다른 연주자들은 베토벤 음악을 듣고 재미없어할 수도 있어요. 딱 보기에 뻔하거든요. 구조도 뻔하고 치는 사람들도 비슷비슷하게 들릴 수 있고. 악보 자체가 너무 디테일하기 때문에 연주하는 사람의 자율성, 해방감, 만족감을 적게 느끼는 연주자들도 있는 것 같아요.쇼팽은 즉흥적으로 뭔가를 만들 수도 있죠. 감정 상태에 따라 연주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런 작곡가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마다 엄청 다른 거예요. 근데 베토벤은 기호 자체가 확실해요. 원하는 음악이 확실해요. 텍스트가 너무 선명하고 내용이 많으니까 여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연주자들이 있죠. 저는 퍼즐 맞추는 것처럼 딱딱 맞춰서 완성하는 희열이 좋아요. 베토벤이 맞는 거죠.신 나하고 맞으시는 것 같아.정 아까 성격과는 무관하다고 하셨지만 전 선욱 씨가 지도 보는 걸 좋아하신다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악보가 곧 지도 아닌가요? 베토벤은 확실한 지도인 거죠.김 맞아요. 무관하진 않은 것 같네요.신 제가 어제 JTBC 를 열심히 봤어요. 근데 거기서 하시는 말씀 중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베토벤 ‘월광’을 연주하지만 다들 ‘월광’이란 제목 때문에 감정을 싣는다는 거죠. 근데 그거보단 베토벤이 써놓은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 불필요한 감정적 요소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다. 다 이어지는 얘기인 것 같아요.김 그런 클리셰가 있어요. 저는 너무 마음에 안 드는 게 사람들이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들으러 가면 1, 2, 3악장이 50분 정도 돼요. 그런데 다들 ‘4악장은 언제 하나’ 하면서 1, 2, 3악장은 관심이 없는 거예요. 오직 4악장 마지막 2, 3분 노래 들으려고만 해요.합창교향곡의 제일 큰 매력은 1악장하고 3악장이라고 생각하는데. 4악장은 물론 좋지만 합창교향곡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이 음반을 만든 것도 음악 자체를 들어보면 좀 다를 것이다, 달빛 비치는 것 같은 연주 그런 거 말고, 그냥 음악 자체의 매력을 한번 주고 싶은 거예요. 이렇게 얘기 안 하면 모를 것 같았거든요.정 음악 시간에 그렇게 가르치니까요. 베토벤의 고뇌와 극복과.김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베토벤은 마치 불굴, 역경을 딛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성공한 작곡가. 이런 걸 어렸을 때부터 배우니까 마치 베토벤 음악은 모두 다 그런 느낌으로, 그런 판타지를 이미 부여하고 듣는 거예요.신 요즘 팝의 시대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팝 음악이라고 하는 음악은 단선적인 감정을 3분 안에 전달하는 게 목적이잖아요.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이 거기 고정돼 있는 거죠.김 근데 클래식, 팝이 나눠진 것도 웃긴게요, 비틀스 화성 들어보면 다 바흐부터 유래한 화성들을 쓰는 거예요. 하나의 음악이에요. 그냥 유행가고. 신작 쓰면 들으러 오고. 당시엔 베토벤이 대스타였고. 베토벤이 돌아가는 배에 2만 명이 모였다는데.정 약간 브루노 마스 같은 느낌.신 제가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땐 뇌파 조정을 하는 것 같아요. 요요마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면 마감할 수 있는 모드로 뇌파가 조종되거든요. 거짓말 안 보태고 그건 수만 번 들었어요. 베토벤은 사실 그 안에서 극렬한 드라마가 느껴지거든요.김 베토벤은 그런 감정 구조가 되게 선명해요. 버리는 음도 거의 없고 음악 자체가 피아노 음악이지만 아마 베토벤은 피아노 안에서 다양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많이 했을 거예요. 피아노로 총체적인 음악을 표현하죠.아까 바흐 얘기 하셨는데. 바흐 음악이 베토벤보다 더 강렬하고 더 고조되고 더 심해요. 오르간곡. 음악 안에 총 12가지 조성이 있어요. 메이저 마이너를 각각 만들면 24개가 돼요. 바흐는 24개의 조성을 갖고 평균율이란 곡을 만들었어요. 그게 완전 수학이에요. 바흐는 거기에 천재였던 거예요.C 메이저에서 음악이 시작됐는데 갑자기 E 마이너가 나왔다가 A 플랫 메이저가 나왔다가. 마지막 30분 동안 조성을 막 넘나들다가 C 메이저를 딱. 거의 블랙홀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제발 끝내줘, 힘들어, 나갈래. 그리고 딱 C 메이저로 끝내서 빠져버려요. 바흐의 매력은 이것 같아요. 아마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나 하이든이나 브람스한테 바흐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 같아요.정 바흐 들을 때, 오히려 미치겠던 적이 있어요. 미칠 듯이 현란한데 규칙적이고, 광활하고.김 우리가 하늘 쳐다보면 우주가 안 보이잖아요. 근데 태양과 여러 개의 행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잖아요. 베토벤은 그걸 선명하게 보여주는, 추상적으로 말하면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의 감정을 집어넣었다기보다 베토벤은 바흐 시절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많이 만들었죠.교향곡이 왜 항상 3악장이어야 돼? 4악장일 수도 있는 거지. 현악4중주 이런 게 항상 4악장이어야 돼? 7악장도 있을 수 있지. 틀에 박힌 형식만 써야 돼? 1악장이 느릴 수도 있는 거지. 마지막 악장이 느릴 수도 있는 거지. 당시에 다른 작곡가들이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베토벤이 만든 거예요.정 이번 앨범 되게 신나게 들었어요. ‘비창’, ‘월광’, ‘열정’. 피아니스트 김정원 씨는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했던 김선욱 씨가 다시 제 나이를 찾은 것 같다고 하던데요. 김 저는 점점 가고자 하는 음악관이 확실해진 게, 제가 이런 음악 연주하면서 사람들한테 감정을 요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신 어떤 면에서요?김 강요하는 게 불필요한 거죠. 사람들이 음악 자체를 들어주길 바라지, ‘내가 이 음악을 어떻게 쳐보겠다’를 들려주고 싶진 않은 거죠. 미묘한데요. 연주자 중에는 ‘내가 이 곡을 어떻게 쳐요’가 중요한 사람들이 있어요.그게 예술의 목표라고 생각하나 봐요. 똑같은 악보로 연주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너무 많고 존재감을 드러내야 돼.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아무리 그렇게 마음먹으려고 해도 잘 안 돼요.신 근데 어느 시기엔 그런 때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이걸 내 스타일대로 쳐서 사람들이 김선욱의 이름을 기억하길 원했을 텐데.김 옛날부터 안 그랬어요. 그리고리 소콜로프라는 피아니스트가 있는데요, 사람들은 그 사람이 50대 후반까진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갑자기 60대부터 엄청 신적인 존재가 됐어요. 저는 10년 전에 소콜로프 음악 되게 좋아했어요.되게 중독적이고 어떤 음악을 치든 이 사람 연주가 들리지, 이 사람이 뭘 연주하는지는 안 들려요. 이 사람이 어떻게 치는지만 들려요. 처음엔 그게 너무 중독이 되니까 소콜로프가 최고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곧 너무 공허해졌어요. 음악을 다 듣고 나면 여운이 남아야 되는데 그냥 이 사람이 만들어낸 긴장감이랄까요?이 사람이 청자를 딱 옭아매는 긴장감이 연주 기법이나 표현 방식에서 드러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못 견디겠는 거예요. 너무 세밀하게 잘 가꾼 공원 같아. 자연 그대로 유지된 게 아니라 너무 잘 만들어진 공원인 거죠. 난 저렇게 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신 그건 발전이고 진화고 성숙인 것 같은데요. ‘나 좀 봐’라고 하는 거 촌스러운 건데.김 근데 사람들은 그런 연주에 열광해요.신 오래가진 않겠죠.김 소콜로프는 지금 70이 다 됐는데 완전 신적인 존재. 신 저는 JTBC 에서 그 말씀하셨을 때가 되게 인상 깊었어요. 라흐마니노프, 신파적이란 표현이었던가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MSG를 넣어줘야 되는 거죠.김 저는 그렇게 음악을 연주하느니 차라리 아예 뮤트가 된 상태가 나아요. 아예 음악이 없는 게 나아요. 에서 제일 좋았던 게 음악이 없는 부분이었어요. 오히려 그때 더 선명하게 보이고. 음악은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면 그 외에는 다 소음인 것 같아요. 추구하고자 하는 건. 저도 아직 나이가 불혹도 안 됐고.정 불혹은 무슨. 이제 서른이잖아요.(웃음)김 이걸 한 30~40년 동안 유지하면 저도 어느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유지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정 그래서 저한테는 이 앨범이 되게 좋게 들렸다니까요.김 제 나이 30살이지만 역작이에요. 저한텐 역작이에요.신 근데 이 세 곡인 이유가 뭐예요? 사실 이게 굉장히 대중적인 곡이잖아요.정 다 벗겨내는 작업이 아니었을까요?김 내가 생각하는 베토벤 악보의 정답인 거예요. 내 정답인 거죠. 악보 자체는 변하지 않는 거니까. 근데 사람마다 ‘베토벤이 원했던 음악은 이것이다’라고 생각해서 표현하는 거거든요.연주자라면 그런 생각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이게 정답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다른 피아니스트가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이 부분은 이렇지 않은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하지만 저는 거기에 있어선 철저하게 내 주관이 확실해요. 그래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 이 앨범은 내 것인 거죠. 연습을 해서 이 정도로 매일매일 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https://www.youtube.com/watch?v=tRSWwhEW8tU정 연주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한다고 말씀하셨는데.김 연주하는 사람들은 딱 무대 위에선 그곳에서만 만들어가는, 나름대로 되게 마술적인 건데, 제가 이번 주 토요일에 독주하지만 이렇게 똑같이 치기 위해서 하진 않아요. 근데 머릿속에 만들어놓은 포맷은 있고, 내가 여기에 온 사람들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한단 계획은 있어요. 근데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리란 보장이 없어요. 지금도 몰라요. 토요일에 시작을 해야 알지 그 전엔 모르니까요. 걱정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매일 연습하는 거죠.정 여자 친구하고 연주회 간 적이 있는데 여자 친구는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선욱 씨 연주를 듣고. 미치겠대요. 묶어놓고 있는 것 같대요.김 힘들어야죠. 저는 제가 치는 음악이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썼을 때 두 가지 반응이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는 백그라운드로 그냥 음악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거, 아니면 ‘꺼!’ 이거 두 가지였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틀어놓고 편하게 일상생활을 영유하길 바라지 않아요. 제 건방진 욕심이에요.신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죠. 무대라는 건. 연주자라는 건 청중한테 홀로 서야 하잖아요. 어때요, 무대에 오르면? 긴장됩니까?김 저는 떨려요. 당연히 긴장해요. 첫 곡이 무사히 끝나면 다행인 거죠. 뭐 가장 큰 긴장은 스스로한테 실망하기 싫어서. 오늘 공연이 8시라면 아침부터 8시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어서 긴장을 하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난 준비가 돼 있는데. 8시까지 기다리면 지쳐요. 근데 막 사람들은 오고 있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8시가 안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그 순간엔 들고. 눈 감고 일어나면 10시였으면 좋겠다 생각하고.정 뭘 하세요? 그 시간에.김 그냥 견뎌요. 보통은 어디 연주회를 가면 호텔이랑 가깝다. 연주회장이랑 1, 2분 거리라면, 시작이 8시라면 7시 45분까진 방에 있어요. 그냥 누워 있다 바로 옷 갈아입고 나가서 하고. 아무것도 못 해요. 계속 그 시간만 기다리는 거죠. 무대가 어두워져 있고 사람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고. 무대에 불 켜지고.신 고독한 거죠.김 보면 검투사 입장이랑 똑같아요. 수많은 거장들 중에도 무대공포증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호로비츠도 결국 뒤에서 등 떠밀지 않으면 나가기 싫다잖아요. 폴리니도 등 떠밀어야 나가고. 아르헤리치는 10분 동안 안 나올 때 있잖아요.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기를 소진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내 안에 불빛이 있다면, 그 불빛을 최대한 밝게 하면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신 연주가 끝났을 때의 상태는 어때요?김 제정신이 아니죠. 연주자들 보면 다 연주 끝나고 새벽 2시까지 술 마시죠. 내가 원하는 대로 끌어가지 못하면 짜증이 나는 거죠. 1년에 한 번씩은 ‘아, 오늘은 최근 1년간 최악의 연주였다’ 이럴 때도 있어요.정 언제 가장 이완되는가, 김선욱은. 언제 비워지는가. 궁금했어요, 연주 들으면서.김 좀 스스로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게, 모든 삶의 패턴이 너무 연주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까.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좀 우울하긴 해요. 근데 그거만큼 행복한 것도 없죠. 다 양면이 있어요. 너무 행복해요. 연주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지는 게 얼마나 복 받은 건데요.어쨌든 2000석 되는 홀에서 독주회 할 수 있는데 배부른 소리죠. 저는 규칙적인 걸 좋아해요. 술을 마셔도 11시, 12시에 일어나는 게 너무 싫고요. 늦어도 9시, 10시 그때쯤 일어나서 규칙적인 생활하는 거 좋고. 달리기 이틀 하고 하루 쉬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하는 거 좋아하고. 공휴일도 똑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연습을 하루 서너 시간씩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해야 되는 거예요. 거기서 오는 답답함과 희열이 있죠.정 아내 분도 진짜 고생하시겠어요. (웃음)김 정말 맣이 이해해줘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여전히 많고 힘들 거예요. 나중에 되게 미안해할 것 같아요. 그런데 쳇바퀴 이거 되게 좋아요. 전 저녁에는 연습 안 해요. 무조건 안 해요. 런던에 있을 땐 10시부터 1시. 서울에 있을 땐 2시부터 5시?신 김선욱은 전성기가 언제인가요? 수학자는 전성기가 있어요. 20대 초반이죠.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견을 한 수학자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이에요.김 음악하는 사람들은, 이건 확실한데 60대 이후예요. 저는 그때가 제일 전성기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요. 연륜과 명예가 동시에 생기는 게 60대 같아요.신 그때까지 쳇바퀴의 삶을 꾸준히.김 보통 제 나이 때 연주자들이 많이 조급해해요. 30~40대가 제일 애매한 게 뭐냐면 신인들은 계속 나오는데, 사람들은 신인 아니면 60대 이후의 거장들한테는 관심을 갖고 인정하고 좋아하는데, 30~40대는 일단 익숙해져 있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서 관심도가 떨어지죠.이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 때문에 조급해져요. 사람들한테 주목받기 위해 노력해야 될 것 같고. 사회적인 위치를 가지려고도 많이 노력하고. 그래서 어떤 연주자는 가르치는 일로 복귀하게 돼요. 레슨하다 보면 연주자의 삶은 소멸되는 거죠.어떤 사람은 주목받기 위해 음악과 관련 없는 활동을 해요. 30~40대를 견디는 방식은 다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언드라스 시프는 49살까지 사람들이 영 헝가리안 피아니스트라고 했대요. 딱 50이 넘어가니까 많은 게 바뀐다고 하더라고요.신 저는 자꾸 손을 보게 되는데요. 외과의사들이 고민이 있죠. 30~40대에 손의 전성기가 있대요. 정말 정교한 손의 움직임이 있대요. 성형은 말할 것도 없고 정형도 그렇고. 근데 나이가 먹으면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거죠. 정교함이 예전만 못하고.김 피아니스트들은 대부분 건강한 것 같아요. 손가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몰라도 치매도 거의 없고요. 지휘자들이 장수하는 사람이 많고요. 하도 팔 쓰고 등 근육 쓰니까. 바이올린 하는 사람들은 인체학적으로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있어요.특히 고음을 많이 하니까. 바이올린 하는 분들 특징이 왼쪽 귀가 되게 안 좋고요. 그리고 이 손이 되게 부자연스럽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손 이상해서 쉬는 분도 많고. 저는 의식적으로 손에 무리 가는 활동은 절대 안 하죠. 야구, 이런 거 절대 하면 안 되고요. 손으로 하는 스포츠는 전혀 안 하고. 몸에서 제일 보호해야 되는 게 손이죠.정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행복하십니까? 저희 인터뷰 공식 질문이에요.김 뭐라고 얘기해야 돼요? 하루에도 감정이 이런데. 되게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네요. 행복하다고 말하면 뭐가 달라지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요?신 이 질문이 맞는 질문일까.정 (웃음) 선배가 시작한 거잖아요!김 저는 아직 어리지만 인생은 아름답고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말이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맞는 말 같아요. 한 치 앞도 모르니까 더 재밌고. 게임처럼 목적지가 없으니까 너무 좋은 거고.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되니까 더 재밌는 거고.저는 여태까지 성취감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예원학교 가고 고등학교 건너뛰고 한예종 갔을 때의 성취감? 전 다 빨랐거든요. 욕심도 있고 성취감이 컸어요. 옛날엔 뭔가 이루려는 성취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유지하는 데 성취감을 훨씬 더 느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때인 것 같아요.지금처럼 60세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전성기가 찾아올 것 같아요. 그때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을 찾기에, 지금은 너무 이른 것 같아요.https://www.youtube.com/watch?v=vd0MI64xoS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