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뭐길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이쯤은 알아야 냉면 좀 먹을 줄 안다고 말하는 ‘면스플레이너’들에게 묻고 싶다. | 냉면

이쯤 되면 논문이 나올 시점도 됐다. ‘냉면 면수의 농도와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태도)’에 대한 사회적 해석 인지도 연구’, 뭐 이런 제목이라도 달고서. 고백하자면 나도 ‘면스플레이너’다. 좀 다른 게 있다면 ‘면스플레인’하지 말라고 면스플레인 한다는 거다(뭐냐). 그렇다. 이 글은 내 방식대로의 면 스플레인인 셈이다. 먼저 묻자. 왜 다른 음식은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지 않으면서 냉면에 대해서 만큼은 말들이 많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김치찌개에 돼지 앞다리살이 좋은지 삼겹살이 좋은지, 그리고 두 부위가 언급된 역사적 배경은 뭔지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우리는 냉면 보다 김치찌개를 더 즐겨 먹으니까. 혹은 일본과 한국의 짬뽕은 뿌리가 같은지 알아 보는 게, 하다못해 동아시아 근대사 공부에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원인은 냉면의 모호함으로 인한 것이다. 평양에서 냉면이 생겨났다는데, 1949년 이후 북한 정권이 수립되고 나서 남북한 왕래가 쉽지 않아졌다. 갈 수 없으니 모호해지고 신비화된다. 그간 남한에서 팔린 냉면이 적어도 수천 억 그릇(물론 통계는 없다)이라 추정할 정도인 지금까지도 평양에서 본격적으로 냉면을 취재한 기록물이 없다. 초밥 간장을 옆구리에 묻 히는지, 고명에 묻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도쿄까지 가서 별 셋짜리 스시집의 ‘이타마에’ 상에게 설명을 듣고, 도쿄 대학 식문화 전공 교수를 만나 브리핑을 듣는 것도 하루만에 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냉면은 아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이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하지만 택시 요금 2만원이 있어도 갈 수 없다. 설사 간다 하더라도 그곳의 냉면은 이미 화석화된 원형이다. 우리의 냉면은 이미 우리 것이 돼버렸다. 남한의 실향민을 취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이미 흐릿해진 지 오래일 것이다. 남한에 사는 실향민들이 이북에서 냉면을 먹었던 건 대개 어린 시절이다. 그들의 경험담은 대체로 함량이 떨어지는 기억일 테다.'슴슴하다'는 말을 써야 냉면 언어가 된다. 언어의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슴슴하다고 해야 냉면 맛이 사는 것 같다. 뭐, 나쁘지 않다. 그러나 실은 '슴슴하다'가 간이 심심하다는 뜻으로 통용된다면 사실이 왜곡된다. 냉면은 짜다. 짤 수 밖에 없다. 원래 짰고, 영원히 짤 것이다. 안 짜면 맛이 없다. 냉면은 동치미나 이북식의 물 많은 김치에서 왔다. 남쪽 김치보다는 싱겁다. 추운 기호 덕분에 짜게 담그지 않아도 잘 쉬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냉면 육수가 심심하기는 어렵다. 맛의 과학 때문이다. 아주 차가운 국물에 어지간히 간을 해서는 간이 잘됐다고 느끼기 어렵다. 염도가 상당히 높아야 대부분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뜨겁든 차갑든 염도가 높을수록 맛이 좋다고 느끼는 법이다. 냉면의 염도는 1이 넘는다. 보통 국물은 0.8만 돼도 충분한 염도를 느낀다. 냉면은 차가우니 1 이상이다. 심지어 1.2가 넘는 집도 있다. 그런 냉면을 두고 슴슴하다는 건 어폐가 있다.면을 잘라도 된다, 자르면 안 된다, 이를 두고도 논란이다. 어떤 국수는 길이가 적당해야 맛있다. 아주 긴 건 상관없어도 짧으면 맛이 없다고 느낀다. 물리적 이유다. 보통 건조 국수의 길이는 뻔하다. 수송과 삶기의 편리(냄비의 너비)를 고려해 25~33cm 정도다. 냉면 같은 즉석 면은 더 길다. 우동이 그렇듯이. 우동 면을 자르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리적 촉각에 의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후루룩하는, 입술과 목구멍이 조응하는 물리적 목 넘김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면을 자르지 않는 건 그런 물리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평양 사람들이 그리 먹으니 따라 하는 게 아니다.식초와 겨자도 논란이다. 칠 것인가, 말 것인가. 도대체 이런 논란을 처음 퍼뜨린 게 누구인가. 원래 평양에서는 식초와 겨자를 쳐서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식초는 일종의 이미테이션이다. 김치 국물(동치 미국물)로 만들지 않고 고기 육수만 내서 냉면을 말게 되니 김치 국물의 신맛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식초가 동원됐다. 다른 설도 있다. 당시 위생과 관련된 이야기다. 대장균을 비롯해 세균이 심해서 식초로 소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식초를 치면 입 맛이 돋는다. 전채 요리의 핵심 양념이 식초인 까닭은 그래서다. 참고로 우래옥의 50년 지킴이, 국내 최장기 갑근세 납부자인 김지억 전무는 “식초와 게자(겨자)를 쳐야 맛있디. 이유는 없어. 원래 그랬어”라고 한다. 겨자는 심심한(?) 냉면에 ‘에지’를 주는 양념이다.고명과 육수도 늘 논란이다. 이쯤에서 결론을 밝히자면, 무엇이든 냉면 육수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 원조라는 평양도 가지각색이었으니까. 다만 시초는 김치 국물(동치미 국물이든 그냥 김치 국물이든)에 메밀 면을 말았던 것 같다. 고기는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고. 그런데 여기서 꿩이 등장한다. 꿩을 넣어야 진짜라는 ‘설’ 말이다. 꿩은 농한기인 겨울에 잡기 좋다. 먹이를 찾아 내려와 사람 눈에 잘 띈다. 일도 없으니 꿩 사냥을 나가는 이도 많다. 잡으면 육수에 썼겠지. 소고기,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았겠지.참고로 북한의 여러 ‘원조’ 냉면 조리법을 탐색한 결과, 수십 개의 버전이 존재한다. 소만 넣는 것, 소와 돼지를 섞는 것, 소·닭·돼지를 섞는 것, 소 뼈를 넣거나 빼는 것, 닭 뼈의 유무, 김치 국물도 선택적으로 들어가고 빠진다. 북한에서 온 양반들의 증언도 다 다르다. 거기서 무슨 요리연구가나 요리사를 했다는 분들도 서로 다르다. 김용과 전철우도 서로 다르다. 그러니 이제 원조 논쟁이나 '육수플레인'은 의미 없지 않을까? 설령 카르보나라 육수를 만든다 해도 나는 지적할 의사가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요즘 냉면에서 메밀향이 난다는 이도 있던데 그게 어떤 건지 나도 좀 가르쳐주시길. 혹시 소다 향을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