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로렌, 50년의 스타일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넥타이 하나로 시작된 폴로 랄프 로렌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제 패션을 넘어 레스토랑, 인테리어 디자인, 향수 분야로 확장하면서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됐다. 올해 78세인 설립자 랄프 로렌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아직 최전방에서 쟁쟁하게 활동 중이다. 일본 <에스콰이어 빅블랙북> 편집장 아쓰시 오쓰키는 랄프 로렌을 만나 브랜드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인터뷰,패션,브랜드,디자이너,폴로

6월의 어느 날 랄프 로렌을 만났다. 두말하면 입 아픈 패션계의 거물이자 전 세계 남성 패션 시장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말이다. 랄프 로렌은 브랜드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과의 인터뷰를 제안했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장 랄프 로렌 본사가 있는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에 대한 사전 조사를 했다. 수많은 자서전과 도서가 시중에 나와 있었지만 랄프 로렌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의 자매지인 지난 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전통 스타일을 추구했던 은 1976년 12월 특별호를 발간하며 그와 독점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는 폴로가 처음 일본에 상륙한 해로, 젊은 랄프 로렌이 브랜드의 전망과 정체성에 대한 관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인터뷰는 값어치가 충분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그의 발언은 ‘모든 옷은 어떤 옷과도 매치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폴로 컬렉션은 트위드 재킷과 회색 바지, 산악 부츠를 매치해 영국의 컨트리 스타일과 아웃도어 의류와의 적절한 조합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랄프 로렌의 상징적인 스타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꽤 대담한 조합이었을 것이다. 현재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말이다. 조사를 계속하던 중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신념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지난 40여 년 동안 브랜드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성장해왔는지 알고 싶어졌다. 뉴욕은 소위 랄프 로렌 브랜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에는 홈 컬렉션, 키즈 컬렉션, 두 곳의 RRL 매장, 폴로 바, 랄프 로렌 본사 건물이 들어선 본점이 있다. 나는 JFK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본점으로 향했다. 도쿄 오모테산도점처럼 클래식하게 꾸며놓은 매장은 퍼플 라벨, 폴로, RRL의 컬렉션을 취급할 뿐만 아니라 레이싱, 세일러, 정장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상품을 각각의 공간에 담아냈다. 모든 공간은 브랜드 철학에 어울리는 장식과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엄청나게 광범위한 제품을 한데 모아놓아 랄프 로렌 백화점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하루 종일 구경해도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았다.랄프 로렌의 제품 디스플레이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도 특히 상반신 디스플레이 방식은 브랜드 철학을 고수하기 위해 꼼꼼한 지침서를 따른다. 나는 본점에서 개별 아이템보다는 체계적인 상반신 디스플레이에 좀 더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본점에는 나무 계단도 있었다. 오모테산도점에 있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전체 층을 잇는 5층짜리 계단이다. 마치 영국 귀족의 저택에서나 볼법한 미술품들이 좁은 간격으로 배치된 계단 벽과 거대한 난간은 전형적인 랄프 로렌 스타일이었다. 이와 거의 똑같은 계단이 랄프 로렌 본사 건물에도 있다. 뉴욕의 알짜배기 땅에 들어선 이 고층 빌딩에는 3층짜리 목제 계단이 있다. 인터뷰 당일 랄프 로렌의 전담 사진작가 카터 버그는 디자이너를 이 계단 앞에 세우자고 했다.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그 장소에서 랄프 로렌을 촬영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라 얘기했다. 테스트 사진이 매우 훌륭해서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랄프 로렌이 등장하길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약속 시간 10분 전, 랄프 로렌이 트위드 재킷과 청바지, 하이테크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났다. 전혀 80세를 앞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서 랄프 로렌의 여성복 책임자 버피 버리텔라가 그의 옷매무새를 정갈하게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브랜드 창립 때부터 디자이너를 돕고 있는 멤버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그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음이 느껴졌다.“트위드 재킷은 랄프 로렌이 항상 즐겨 입는 옷이에요.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버리는 일이 절대 없어요.”그가 포즈를 바꾸는 동안 옷 주름을 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배경으로 쓰이는 이 계단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해요.” 그녀는 랄프 로렌에게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라고 재촉했다.사진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에게 물었다.“이 계단은 전 본사 사무실 건물에 있던 것을 다시 제작한 거예요.” 그가 이어서 말하길 “예전 사무실은 오래된 아파트 같은 구조였어요. 사업이 확장될 때마다 1층 위에 2층을 증축하고 또 그 위에 3층, 이런 식으로 계속 증축했죠. 가끔 계단에서 중요한 논의를 하기도 했어요. 심지어는 거기서 직원 생일을 축하할 때도 있었고요.”바로 이 계단에서 그가 폴로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런웨이 디자인을 선정했고, 무엇보다 직원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것이 랄프 로렌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랄프 로렌은 그 계단을 현대식 빌딩에 설치함으로써 그의 브랜드가 발전시켜온 정신과 역사를 기억하고자 했다. 친절한 직원들 덕분에 모두가 웃으면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때때로 모니터를 보며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랐다. 촬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랄프 로렌의 개인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눌 차례였다.그의 사무실은 마치 장난감 상자 같았다. 공간 전체에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피겨, 미니어처 빈티지 자동차, 그림, 사진랄프 로렌의 경력이 넥타이 생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당시의 이야기를 물었다. “24살 때 넥타이 회사에서 처음 일했어요. 브룩스 브라더스 같은 고급 사립학교 스타일이었죠. 그 시절에 저는 영국 스타일과 세련되고 도시적인 디자인을 더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 회사는 그런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죠. 저는 직접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지만 세상은 아직 랄프 로렌의 데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회사를 나와 제게 넥타이 디자인을 맡길 회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어요.”이후 그는 오하이오에서 ‘폴로’라는 이름으로 넥타이를 론칭하면서 고급 넥타이 제조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당대의 트렌드를 거스르는 대담한 결정이었다.“뭐, 괜찮은 넥타이였어요.(웃음)” 랄프 로렌이 말했다. “그때는 폭이 좁은 넥타이가 유행이었어요. 하지만 제 디자인은 폭이 9.5cm로 넓은 넥타이였죠.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측에서 ‘좁은 넥타이를 만들어 오시면 저희 상표를 붙여서 취급하도록 하죠’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 제안을 거절했어요. 저는 제가 만든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거든요.”당시 그의 브랜드는 매우 작은 규모여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한구석을 빌려 사무실로 썼다. 겨우 책상 서랍 한 칸 정도만 빌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랄프 로렌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가 제안을 거절한 지 6개월이 지났을 즈음,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측에서 그에게 연락해 넥타이 판매를 권유했다.“돌연 그들의 태도가 바뀌었죠. 당시 패션 산업의 노동력은 완전히 분화되어 있었어요. 넥타이나 셔츠, 재킷도 마찬가지였고요. 영역이 완벽히 나뉘어 있어서 서로 협력할 생각을 못 했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한 일은 셔츠를 디자인하고 거기에 걸맞은 넓은 넥타이를 같이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니먼 마커스나 다른 상점에서 제 제품을 취급하기 시작한 겁니다.”많은 사람들이 랄프 로렌이 만든 넥타이와 셔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곧 재킷과 슈트를 포함해 아이템이 점점 더 확장되어갔고 마침내 로고도 탄생했다. 그의 사업은 랄프 로렌 기업으로 재조직되었다. “저는 말을 사랑하고 스포츠도 좋아해요.” 랄프 로렌이 말했다. “폴로를 브랜드명으로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고 폴로 선수를 자수로 그려 넣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여성 셔츠에 가장 먼저 선보였는데 소매에 정성 들여 수놓았죠. 그 후 남성 셔츠에는 가슴에 넣었어요.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된 거예요.”그 아이콘은 셔츠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폴로셔츠, 니트, 모자, 양말을 포함해 수많은 아이템에 사용됐다. 남성복이 특화됐던 시기에 폴로 로고를 여성 셔츠에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은 의외였다. 또 로고는 아무 옷에나 쓰는 것이 아니며 차별화를 위해서 오직 특정 아이템에만 사용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사실 랄프 로렌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아이템들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였다. 예전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모든 옷은 어떤 옷과도 매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40년 전에 그는 심지어 아메리카 원주민 스타일의 코트를 도시적인 스타일과 조합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패션은 현재 믹스매치를 더욱 강조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젊은이들이 각양각색의 아이템을 이용해 특이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조화를 위해 사용하는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것들(예를 들면 트위드 재킷)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아 신선한 거죠.”젊은 시절 랄프 로렌은 그가 좋아하던 영국 스타일과 어떻게 당시 유행하던 컨트리 슈트를 믹스해 어떻게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지 고민했다. 그는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기로 했다. 그가 원하는 스타일은 일반 숍에서는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가 지금 입은 트위드 재킷과 파란색 셔츠, 청바지를 조합한 스타일도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탄생한 아이템들의 조합이며, 이건 랄프 로렌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 중 하나이다. “줄줄이 새로운 디자인만 내놓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죠.” 그는 내가 입은 시어서커 슈트를 언급했다. 클래식한 정장 스타일에 스니커즈나 티셔츠를 매치해 모던한 룩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덧붙여 랄프 로렌은 본인이 만든 옷의 소비자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만든다. 자신이 입은 옷을 다른 모든 사람도 원하길 바란다. 랄프 로렌은 브랜드 광고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의 조합처럼 광고 역시 특별하면서 압도적인 고급스러움이 흐른다. “저희는 광고 캠페인 영상을 마치 영화 장면처럼 보이도록 제작해요.” 랄프 로렌의 제안에 따라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과 그의 철학을 빈티지 자동차, 말, 모터사이클 등과 매치시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든다. 그가 원하는 것은 곧 수요를 의미하고, 이는 완벽한 마케팅 전략이 된다. 랄프 로렌 기업은 이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활동 영역을 성인 남녀, 어린이, 유아용 의류와 액세서리 사업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 향수, 레스토랑까지 넓혀가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할까?“아마 호텔도 가능성이 있겠죠.” 그가 답했다. “지금 당장 구상하는 건 아니지만 관심은 있어요. 만약 호텔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의류처럼 클래식과 스트리트 디자인을 모두 고안해서 매치할 거예요. 예를 들면 지역마다 각기 어울리는 다른 스타일로 디자인하는 거죠. 소호라면 이런 식으로, 브루클린이라면 또 다른 식으로 하겠죠.” 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의 강렬한 열정 덕분인지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의 모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미래에 호텔을 열지 모른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랄프 로렌 팀은 더더욱 결속이 강해진다고 말한다. “저는 동료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는 제 일까지 다 맡을 수 있으리라 믿어요. 그래도 저는 계속 그 주변을 맴돌 거지만요.(웃음)”랄프 로렌은 지긋한 나이임에도 무척 건강해 보였다. 퇴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의 뒤에 저 계단이 지키고 있는 한 그의 열정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