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재욱의 위엄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김재욱은 김재욱을 좋아하려고 노력 중이다. | 김재욱,던힐,배우 김재욱,김재욱 슈트,슈트

dunhill.com 셔츠, 팬츠, 버킷 해트 모두 던힐. 2020 S/S 파리 남성 컬렉션에 다녀왔죠? 해외 컬렉션 경험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처음 하는 경험을 좋아하고 즐기려고 하는 편이라 새롭고 좋은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배우로 알려지기 전에 저도 모델 일을 했던 터라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파리에 처음 가본 건 아닌데 패션 위크가 열리는 파리 거리 분위기가 평소와는 또 다른 것 같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모델로 데뷔를 했죠.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잘은 모르지만 요즘에는 후배들이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모델 일을 하던 때만 해도 남녀 누구든 해외 컬렉션 쇼에 서면 그 이야기가 패션계 사람들 사이에 다 알려질 정도로 흔한 일이 아니었죠. 지금은 모델로든 다른 어떤 분야로든 해외 컬렉션에 다들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아 보이면서 부럽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좀 들더라고요. 김재욱 씨는 이번에 배우로서 참여한 거네요? 그렇죠. 해외 컬렉션에 처음 가봤는데 배우로 가게 되니 미묘하더라고요.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이 종영한 지 3개월 정도 됐어요.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작품 하면서 갖지 못했던 개인 시간을 잘 즐기려 하고 있어요. 촬영할 때는 워낙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운동도 꾸준히 하고, 영어 수업도 받고, 못 만났던 사람도 만나고 그렇게 보내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우연히 영어 선생님한테 질문하는 모습을 봤어요. 틈틈이 공부하다가 올해 초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바로 드라마를 하게 돼서 한동안 수업을 못 받았어요. 드라마 끝나고 다시 시작했죠. 듣는 건 잘하는데 말하는 게 잘 안되니까 그게 진짜 답답해요. 작은 표현 하나하나를 프리 토킹식으로 배우는 수업이에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등생인가요? 아뇨,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웃음)       코트, 베스트,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던힐. <그녀의 사생활>은 아이돌 ‘덕후’인 성덕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잖아요. 동시에 ‘덕질’의 대상인 아이돌 이야기도 나오고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성덕미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너무 잘됐는데 어쩌면 배우들은, 김재욱 배우도 박민영 배우도 극 중 아이돌인 시안에게 더 감정이입이 잘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시안이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같은 업계에 있다고 해도 그 친구는 아이돌이고 슈퍼스타이고, 제가 체감하기보다는 주위에 그런 비슷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에게서 풍문으로나 들을 법한 에피소드들이라서, 그것도 드라마이다 보니까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렇겠구나’, ‘힘든 면도 있겠구나’ 이런 느낌이었지 제가 막 감정이입이 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민영이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슈퍼스타와 아이돌을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여름이 되면 항상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보거든요. 많죠.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아직도 <커피프린스>를 그리워하고 단순히 추억하는 게 아니라 계속 소비하시는 분들요. 신기해요. 당시에도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10년 넘게까지 많은 사람이 계속 사랑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그건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그 작품을 찍은 저희 모두. 왜 여름이면 꼭 생각날까? 객관적으로 그때 그 시절 김재욱 씨 캐릭터 역시 슈퍼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던 것도 같은데요. 그때는 그랬죠. 그때는 저희도 얼떨떨할 정도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방송하기 전과 방송이 나가고 나서의 촬영 현장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몇십 명씩 와서 기다려주시고 구경하고 응원해주시고,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말이죠? 배우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니까 그렇기도 했는데 작품 자체가, 거기 나온 인물 모두가 사랑받는 경험은 아직까지도 없는 것 같아요. 그때가 거의 유일하죠.       버킷 해트 던힐. 김재욱 씨도 챙겨 보세요? 여름마다 다시 보나요? TV를 자주 보지 않아서….(웃음) 그런데 저도 요즘 인스타그램 하거든요.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당시 방송 클립이나 사진, 특히 작년에 동욱이랑 같이 오랜만에 작품 할 때 <커피프린스> 때 둘의 모습을 SNS에 많이 올려주셔서 새롭죠, 감회가. 그러고 보니 작년에 드라마 <손 the guest>로 김동욱 배우와 10년 만에 다시 만났죠. 김동욱 씨와의 조우는 어땠어요? 10년 전 그때 그리고 지금, 같은 시간을 경험한 사람과 마주한 거잖아요. 100%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차이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관계가 맺어진 사람과, 그게 나이가 될 수도 있고 경력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소위 말하는 머리가 큰 뒤에 만난 사람과 관계가 맺어지는 형태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당시 동욱이와 저는 정말 신인이었고 이제 막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 친구들이어서 뭔가 더 거리낌 없을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니던 때를 아니까. 그동안 동욱이와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늘 꾸준히 연락은 했거든요. 계속 연락은 주고받았군요. 서로 바쁘니까 만나지는 못해도 종종 연락하면서 그렇게 이어져오다 같이 작품을 하니까 10년 동안 쌓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 <손 the guest>가 지방 촬영이 많아서 촬영지에서 잔다거나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아서 자연스레 서로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코트,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던힐. 아무래도 배우로서의 삶이나 연기, 이런 주제였으려나요? 두 가지 주제가 전부죠, 뭐. 어떻게 살았는지, 그동안 일은 어땠는지. 인상 깊게 본 작품에 대해 서로 물어보기도 하고. 상대방의 필모그래피를 아니까요. 인상 깊었던 경우에는 아예 신으로 물어볼 때도 있고요. “그 신 찍을 때는 어땠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찍었어?” 그런 것들. 배우가 직업인 사람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군요. 나눌 때가 있죠. 매번 그러는 건 아닌데. 같은 직업이기 때문에 작품을 볼 때 분위기나 상황이 대충 그려지는 신이 있는 반면에, 예를 들면 촬영 기법이나 기술적으로 상대방과의 호흡이 궁금해지는 신이 있죠. 제가 못해본 촬영 기법이라든가 그런 상황들. 동욱이는 영화 <신과함께>에서 와이어 액션이나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는데 저는 그런 경험이 많지는 않거든요. 그렇네요. 경험해보지 못한 연기 환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겠군요. 사실 배우들끼리 그런 걸 잘 물어보지는 않는데, 동욱이와 저는 그런 것까지 아무렇지 않게 툭툭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라서 물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르긴 몰라도 그런 게 서로에게 소중한 기회이자 경험일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것도 모를 때 만나서 둘 다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남다른 경험일 것 같고요. 정말 그러네요. 그렇더라고요.       재킷,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던힐. <커피프린스> 이후 배우 김재욱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누군가는 아깝다고 할 수도 있어요. 역할의 크기나 비중에 상관없이 선택해온 자취를 보여주니까요. 실제로 어느 인터뷰에서 스스로 “밖에서 보면 바보 같다고 하든지 잘못된 선택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 적도 있고요. 음, 더 좋은 제안이 없지는 않았어요. <커피프린스> 이후로 주연 작에 대한 제안도 많았고 조금 더 상업적인 작품 제안도 많았지만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지금 한 작품의 주연 자리에 갈 수 있을 만큼 실력이나 내공이 있는 배우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도 있고요. 연극영화과나 극단에서 연기의 기본기를 차근차근 다져온 케이스도 아니기 때문에 저의 부족함을 알았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감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감이 없는 거든 실제로 실력이 부족한 거든, 그런 상황에서 한 작품의 메인 롤을 맡는다는 게 저 스스로 무책임하다고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작은 역할부터 하려고 했던 것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운 좋게 지금까지 일을 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저는 그러지 않았던 게 바보 같았단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그 말 안 좋아해요. 그냥 제 타이밍에 저으면 되죠, 뭐. 굉장히 객관적이네요. 본인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 같아요. 생각보다 객관적이에요, 저. 사람들은 저를 되게 주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웃음)       스웨터, 팬츠, 슈즈, 스카프 모두 던힐. 지금까지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주관적으로 택해온 결과로 보였어요. 오히려 김재욱이란 배우는 굉장히 객관적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을 택해왔다고 들리네요. 양쪽 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에 더해 지금은 조금 달라진 점도 있어요. 30대 중후반이 되고 나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예전보다 훨씬 커졌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선택하는 순간에 내 생각을 좀 더 앞세우거나 고집부린 적이 있다면 지금은 보다 더 많이 열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저와 좀 다른 기준이더라도요. 김재욱 씨가 조금은 뜬금없이 등장한 두 편의 작업을 보았어요. 드라마나 영화는 아닌 작업이라서 어떻게 하게 된 걸까 궁금하더라고요. 첫 번째는 <디터 람스>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어떻게, 왜 하게 됐어요? 아, 예고편만 내레이션으로 참여했어요. 그 다큐멘터리를 수입하신 분이 영화 <두 개의 연애> 연출하신 조성규 감독님인데 그 양반이 원래 작품 수입을 하는 제작자거든요. 우리나라에 개봉하는 일본 영화의 80~90%는 다 그분이 수입해오고 그 외 비상업 영화, 소위 말하는 영화 정말 좋아하는 영화쟁이들이나 찾아볼 법한 그런 작품을 10여 년 전부터 굉장히 많이 수입해온 사람인데, 오랜만에 <디터 람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수입하셨어요. 제가 디터 람스라는 디자이너를 잘은 몰라도 워낙 유명한 디자이너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부탁하셔서 하게 됐죠. <두 개의 연애>를 보면서 김재욱 씨의 생활 연기스러운 모습에 참 많이 웃었는데.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모습이 얼마나 능청스럽고 좌충우돌하던지 말이죠. 그런 톤앤매너로 연기했죠. 톤앤매너였단 말씀이죠? 실제 모습을 반영한 건 아니고요?(웃음) 제 롤모델은 감독님이었습니다.(웃음) 극 중에서 제 직업이 영화감독이잖아요. 이건 조성규 감독이 자기 페르소나를 반영한 거구나 생각해서 감독님의 말투나 분위기에서 착안해 연기에 많이 썼죠.(웃음) 나중에 조성규 감독님 인터뷰 한번 해보세요. 되게 재미있을걸요. 제가 20대 때 감독님이 압구정 CGV 앞에서 ‘조제’라고 영화인들이 잘 모이는 술집을 운영하셨어요. 거기서 술 마시고 놀다가 알게 됐는데 아는 것도 너무 많고 제가 어릴 때부터 찾아서 보고 했던 영화 대부분을 감독님이 수입하셨더라고요.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던힐. 영화로 만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지낸 사이군요. 네, 그랬죠. 비단 영화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서 재미있게,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좋은 친구처럼 지내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함께 일도 하게 된 케이스죠. 두 번째는 뮤지션 수민의 뮤직비디오. 잠깐 등장해서 춤추고 사라지던데요? 수민이라는 아티스트가 속한 레이블의 대표가 제 친구예요. GDW라고 원래는 영상 프로덕션인데 작년에 레이블을 만들었거든요. 저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인데 저한테 처음으로 부탁을 하더라고요.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고. 갔다 왔죠. 그 친구도 정말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친구인데 어느새 지금은 영상 프로덕션 대표를 하고 있네요. 오늘 나눈 대화 중에 친구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어요. 사람들, 타인, 친구. 그러네요. 그런 것 같네.   재킷, 셔츠, 팬츠 모두 던힐. 예전보다 더 다른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게 됐다고도 했고요. 나이를 먹었으니까요. 나이를 먹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나이를 먹는다는 거요? 분노할 일이 점점 줄어들어요.(웃음) 화가 잘 안 나요.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도 좀 느는 것 같고. 그럼에도 내가 물러서지 않는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어떤 한 가지가 있지 않을까요? 있죠. 그게 뭐예요?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어요. 그렇지만 예전보다 다른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나이를 더 먹어서인 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인 것 같아요. 주위에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거죠. 내 생각보다는 더 높은 차원의 고민을 하거나, 아니면 나와는 다른 의견이어도 그 의견에 따를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그런 사람들. 좋은 사람들인 거죠. 제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요. 나이는 서너 번째 문제인 것 같고, 첫 번째는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는 거죠.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면 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맞아요. 동의하나요? 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을 해야 해요, 스스로. 제가 저를 좋아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저를 좋아할 수 있어요. 자기애와는 좀 다른 문제지만. 자존감에 더 가까우려나요? 어느 쪽이냐를 따지면 자존감에 더 가깝겠네요. 내가 싫어하는 내 부분, 내 콤플렉스는 싫어도 계속 만나야죠. 극복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한 일일지언정 그것이 반복되고 어느 정도 쌓이다 보면, 좋은 습관이나 예의범절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인성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게 분명 자기 것이 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작은 노력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재욱은 지금 김재욱을 좋아하나요?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