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친환경 건축의 미래, 나무

가볍다. 안전하다. 빨리 지을 수 있는 데다 친환경적이다. 건축의 미래로 떠오르는 재료가 있다. 나무다.

BYESQUIRE2019.11.07

UNDERNEATH THE TRESS



(왼쪽) ⓒ Seagate Structures Photographer: Pollux Chung, Acton Ostry Architects. 캐나다 브록 커먼스 공사 현장에서 CLT 목재 패널을 올리는 작업 중. (오른쪽) ⓒ Øystein Elgsaas, Voll Arkitekter. 주상 복합 건물인 노르웨이의 미에스토르네는 85.4m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다. 내부의 나무 계단.

(왼쪽) ⓒ Seagate Structures Photographer: Pollux Chung, Acton Ostry Architects. 캐나다 브록 커먼스 공사 현장에서 CLT 목재 패널을 올리는 작업 중. (오른쪽) ⓒ Øystein Elgsaas, Voll Arkitekter. 주상 복합 건물인 노르웨이의 미에스토르네는 85.4m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다. 내부의 나무 계단.

대기 중으로 유해 물질을 내뿜기는커녕 온실가스를 빨아들인다. 강철만큼 단단하지만 그보다 훨씬 가볍고, 화재와 지진에도 안전하다. 한두 달 안에 고층 빌딩을 뚝딱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시공 속도가 빠르며, 짓는 도중에 소음과 분진이 거의 없기에 건설 노동자와 건물 주변에 사는 사람들 모두 불편함이 없다. 더 나아가 완공 후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으로 가격이 날로 저렴해지고, 쓰임새는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건축의 미래’라 할 만한 이것의 정체는 동굴 밖으로 나온 인류가 집을 지을 때 가장 처음으로 사용한 건축 재료, 나무다.
철근과 콘크리트 일색이던 전 세계의 도심 한복판 마천루 사이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때나 쓰던 나무로 만든 고층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이 거대한 인공 나무 숲의 탄생은 CLT(Cross-Laminated Timber) 또는 매스 팀버(Mass Timber)라 이름 붙은 새로운 목재의 개발 덕이다. 1990년대 중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종이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오스트리아 정부는 울창한 숲에서 생산하는 막대한 목재의 새로운 활용법을 찾아 대대적 연구를 시행한다. ‘CLT의 아버지’라 할 만한 그라츠 대학의 공학자 게르가르트 시코퍼 교수가 두께가 균일한 목재를 섬유 방향과 평행하게 배치해 접착한 집성판 여러 겹을 가로세로 직각으로 교차해 다시 접착하고 고압으로 압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른바 슈퍼 합판. CLT 방식으로 개발한 목재는 나무의 고질적 단점인 휨과 뒤틀림이 없고, 가로와 세로 방향 압력에 모두 강하다. 수분과 공기를 빼는 압축 과정을 거치면 강도가 더 높아져 불과 콘크리트의 20% 무게로 동일한 강도를 낼 수 있으며, 나무 판을 가로세로로 여러 겹 붙여 두껍고 단단하기에 불이 나도 바깥층만 그을릴 뿐 안까지 번지지 않는다. 지진이 나서 땅이 흔들리면 건물은 무게와 비례해 힘을 받는데, 목조 건물은 콘크리트 빌딩보다 훨씬 가벼워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훨씬 덜하다.
시코퍼 교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재료 공학자들은 강도와 안정성, 내구성이 모두 높고 열과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향으로 이 새로운 목재를 계속 개량했다. 환경에 이롭고 유연하며 가벼운 목재 고유의 장점은 그대로 지닌 채 불에 타지 않고 강하기에 초고층 건물의 뼈대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CLT 목재는 일반적으로 길이 20m, 너비 4m까지 제작 가능하며 두께는 용도에 맞춰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건설 현장에 적용하기에 앞서 공장에서 미리 크기와 형태를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구조재와 바닥, 벽, 계단을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같은 높이와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기존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드는 건물에 비해 시공 기간이 30% 이상 단축되고, 소음과 분진, 건축 폐기물이 모두 큰 폭으로 감소한다.
 
ⓒ Katja Effting, RO&AD Architecten. 친환경 목재 아코야를 활용해 건축한 네덜란드의 야외 공연장 폼페유스.

ⓒ Katja Effting, RO&AD Architecten. 친환경 목재 아코야를 활용해 건축한 네덜란드의 야외 공연장 폼페유스.

그리하여 CLT라는 새로운 재료를 활용한, 전에 없던 목조 고층 건물이라는 새로운 건축 형태가 전 세계 곳곳의 도심에 등장하고 있다. 2016년 완공된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18층, 53m 높이의 학생 기숙사 브록 커먼스는 올 3월 노르웨이 브루문달에 주상 복합 건물 미에스토르네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이었다. 캐나다의 액턴 오스트리 건축 사무소의 설계를 바탕으로 나무로 쌓아 올린 이 건물 안에는 학생 404명이 거주하는 생활 공간과 독서실, 라운지 등이 자리한다.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목재 구조물을 트럭으로 실어 와 현장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작업했기에 착공한 지 불과 65일 만에 18층 건물을 완공할 수 있었다. 예정된 공사 기간을 무려 4개월 앞당긴 결과다.
CLT를 비롯해 최신 공학 기술로 개발한 목재와 목조 건축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이트 싱크우드(thinkwood.com)에 따르면 영국과 노르웨이, 미국, 스위스 등 전 세계 각국에 10층 이상 높이의 목조 건물 44개가 완공되었거나 2020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아직 CLT 목재를 활용한 고층 건축이 초기 단계이기에 현재 완공된 대부분의 목조 고층 건물은 100% 목재를 사용한 순수 목조건축물이 아니다. 브록 커먼스의 경우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목조 프레임 내부를 콘크리트와 철골이 지지하는 형태다. 네덜란드의 야외 공연장 폼페유스는 CLT와 비슷한 친환경 목재 아코야(accoya)로 건축했으나 뼈대는 철골 구조다. 재료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캐나다 등 일부 나라에서는 건축법상 순수 목조건축을 일정 높이까지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은 목조건물의 높이 제한을 없앴고 그런 나라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인 노르웨이의 미에스토르네는 사무실과 호텔, 아파트, 대규모 수영장 등이 자리한 주상 복합 건물이다. 수도 오슬로 근처의 작은 마을 브루문달에 위치한 이 빌딩의 층수는 18층으로 브록 커먼스와 동일하지만 높이를 85.4m로 크게 높였고, 무엇보다 순수하게 목조 구조로 완성해 의미가 크다. 노르웨이는 20세기 초반 대형 화재로 도심에 밀집된 목조 주택이 몽땅 불에 타버린 참사 이후 1997년까지 법적으로 3층 이상 높이의 목조건물을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에스토르네를 시공한 친환경 목재 기업 메사 우드(Metsa Wood)는 이 건물이 스위스에서 가장 안전한 고층 건물 중 하나라고 밝힌다. 이미 열에 강한 CLT로 만든 건물의 뼈대에 화재를 방지하는 특수 도료를 사용했기 때문. 이에 더해 미에스토르네를 시공한 방식대로라면 높이가 그 두 배에 가까운 150m에 이르는 초고층 건물이라도 거뜬하다고 주장한다.
 
ⓒ Øystein Elgsaas, Voll Arkitekter.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축, 노르웨이의 미에스토르네 내부 계단 모습.

ⓒ Øystein Elgsaas, Voll Arkitekter.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축, 노르웨이의 미에스토르네 내부 계단 모습.

미에스토르네와 브록 커먼스는 모두 실용적으로, 멋을 부리지 않고 직육면체를 쌓아 올린 평범한 구조다. 화재에 약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나무라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디자인도 아니다. 목조건축이 품은 거대한 가능성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외관이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캐나다 밴쿠버에 2020년 완공 예정인 테라스 하우스와 2021년 프랑스 보르도에 지을 하이페리온은 발전하는 목조건축이 완전히 바꾸어놓을 미래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개성 넘치는 건축물이다.
테라스 하우스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의 작품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고급 주거 지역에 목조와 콘크리트, 스틸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구조가 19층, 70m 높이를 지탱하는 이 건물에 20채의 럭셔리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름처럼 건물 밖으로 테라스를 적극적으로 배치한 저층부에는 온갖 푸르른 식물이 자라고, 그 위에 삼각형 모양 목재 프레임의 상층부를 더했다. 사선 구조는 보기에 근사할 뿐 아니라 자연광과 밴쿠버 해안 풍경을 극대화하고, 발코니 공간도 넉넉하다. 건물 외부는 물론 실내에도 목재의 따뜻하고 밝은 느낌을 강조했다. 목조건축의 또 다른 장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혈압을 낮추며, 교실 안 학생들을 차분하게 만들고,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회복 속도를 높인다. 오래전부터 쓰던 목재와 최신 공법으로 개발한 목재가 공유하는 속성이다.
‘도심 속 정글’을 설계 콘셉트로 한 하이페리온은 디자인이 보다 전위적이다. 나무 블록을 제멋대로 쌓아 올린 것 같은 외관이 마치 순서를 번갈아 한참을 빼고 다시 쌓은 젠가 게임 중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보르도에 신축하는 TGV 역 근처에 자리할 이 18층 건물 안에 총 98채의 아파트가 들어선다. 프랑스 최초의 목조 고층 빌딩. 바로 옆에 함께 짓는 2채의 빌딩 역시 목조 구조로 호텔과 오피스 빌딩으로 쓰이며 두 건물은 나무로 만든 다리로 서로 연결된다. 교각 아래위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도심 속 정글이 따로 없을 것이다.
 
(왼쪽) ⓒ PortLiving, Shigeru Ban Architects. 2020년 완공 예정인 캐나다 밴쿠버의 테라스 하우스. 목조건축은 밋밋하다는 편견을 깼다. (오른쪽) ⓒ Jean-Paul Viguier et Associs. 프랑스 보르도에 2021년 완공될 예정이다. 도심 속 정글을 콘셉트로 한 하이페리온.

(왼쪽) ⓒ PortLiving, Shigeru Ban Architects. 2020년 완공 예정인 캐나다 밴쿠버의 테라스 하우스. 목조건축은 밋밋하다는 편견을 깼다. (오른쪽) ⓒ Jean-Paul Viguier et Associs. 프랑스 보르도에 2021년 완공될 예정이다. 도심 속 정글을 콘셉트로 한 하이페리온.

일본에서는 목재 회사 스미토모린교가 2041년까지 도쿄 도심에 높이 350m, 지상 70층의 초고층 목조 빌딩을 짓는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건축학과 연구 팀은 높이 300m, 80층의 목조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높이가 249m이니 그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가 커지는 것은 물론, 목재가 본격적으로 고층 빌딩의 구조재로 쓰이게 되면 그 특성에 맞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 역시 계속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물론 CLT는 여전히 더 많은 개량이 필요한 재료다. 완공 후에는 불에 타지 않는다지만 공사 중 화재 발생에 취약하고, 잘라낸 목재를 가로세로로 붙이는 접착제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삼림 화재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기에 향후 목재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사소하게 보일 만큼 건축 재료로서 목재는 엄청난 가능성과 장점을 지니고 있다.
시멘트 1톤이 제작 과정에서 공기 중에 거의 동일한 분량의 탄소를 방출하지만, 1톤의 목재를 생산하는 나무는 생장하며 대기로부터 2톤의 탄소를 흡수한다. 나무가 죽어 썩거나 탈 때 나무는 다시 탄소를 공기 중으로 내뿜는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나무 안에 그대로 저장해두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숲에서 자라는 목재는 베어 쓴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다 자란 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기에 50년 이상 된 나무는 베어내 목재로 쓰고, 왕성하게 온실가스를 빨아들이는 젊은 나무를 새로 심는 것이 기후변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재활용 역시 손쉽다. 제대로 시공한 목조건축의 자재는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잘게 쪼개어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UN은 21세기 중반 지구 인구가 98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하다. 콘크리트와 철강으로 계속 높은 건물을 쌓아 올린다면 도시가 배출하는 탄소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지구온난화 역시 가속될 것이다. 이제는 너무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을 꼭 한 번 다시 써야 한다면 그 대상은 목조건축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