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미넴 VS 에미넴
」
그가 이 무대를 수락한 이유는 당시 공연은커녕 상을 받으러 오지도 않았던 지난날에 대한 벌충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미넴은 무대 직후 SNS에 ‘Lose Yourself’ 도입부의 그 유명한 가사 ‘If you only have one shot’을 개사해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If you only have another shot) … 18년이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적었다. 평소 에미넴은 투어를 비롯해 활동 자체가 매우 적은 편이고, SNS 역시 공식 채널만, 그마저 관리자를 따로 두고 운영한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은둔형 인간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아카데미 무대를 수락한 배경은 새 음반과 관련 있어 보인다.
1월 중순, 이전 앨범도 그랬듯 기습적으로 내놓은 11번째 정규 앨범 〈Music to Be Murdered By〉는 나오자마자 반응이 있었다. 리스너들은 12개 나라에서 차트 1위라는 성적으로 응답했고, 열 군데가 넘는 주요 음악 매체가 일제히 리뷰를 싣는 등 평단도 들썩거렸다. 소란스러운 상황 자체가 성공을 암시하는 셈인데, 그 안에서도 엇갈리는 반응들이 ‘팝콘’을 찾게 만든다.
피치포크는 “엄밀히 말해 지난 10년간 에미넴이 낸 앨범들은 충분히 위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럴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라며 칭송의 앨범 리뷰를 시작했다. 그 외 다른 많은 리뷰 역시 결론은 달라도 에미넴의 전성기를 기준 삼아 지금의 에미넴이 왕년의 에미넴을 뛰어넘느냐 아니냐 논쟁하는 양상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미넴이라서 대중은 인간의 노화에 대한 반전을 기대한다. 나이가 들면 무뎌지고 유순해진다는 가설이 에미넴의 앨범에서만큼은 깨지기를 말이다. 다른 힙합은 전혀 안 듣고 오직 에미넴 외길만 파는 팬, 에미넴 덕분에 힙합에 입문해 그를 신으로 추앙하는 팬이 워낙 많은 데다 안티팬마저 “실력으론 깔 게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붙이곤 하는 에미넴이라서 더욱 그 기대치는 내려올 줄 모르는 것이다.

에미넴 〈Music to Be Murdered By〉
에미넴의 이번 새 앨범은 앨프리드 히치콕이 음악감독 제프 알렉산더와 함께 1958년에 발매한 컴필레이션 음반과 같은 제목이다. 히치콕이 한 손에는 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머리를 겨눈 앨범 커버까지 그대로 오마주했다. 그에 더해 에미넴의 〈Music to Be Murdered By〉는 이번 앨범 수록곡 ‘Gozilla’에 참여한 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래퍼 주스 월드, 역시 최근에 사망한 에미넴의 보디가드 등 그를 둘러싼 죽음에 헌사한다.
에미넴이 여태껏 가사로 썼던 주제들은 새 앨범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에미넴이 평생 먹어온 여러 종류의 약, 그의 이중 자아인 슬림 셰이디가 갇혀 살고 있는 과거의 트라우마들, 그 상처들과 싸우면서 소진되는 에너지와 불안감, 죽어야 끝날 듯 도대체 줄지 않는 분노…. 다른 래퍼가 돈과 여자 이야기로 질펀한 랩을 뱉어낼 때 에미넴은 한결같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끌어낸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이 한결같은 면모가 “바깥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 여전히 화를 내고 있는 그의 가사가 갑갑하다”는 리뷰가 나오게 된 경위다. 그러나 에미넴이 좁고 어두운 세계에 갇혀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해석은 이 앨범에 어울리지 않는다. 에미넴은 그저 자신만의 힙합 상아탑으로 걸어 들어가 긴 수련을 하고 있는 편에 가깝다. 도입부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들추는 듯 보이지만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을 포함한 대규모 살인 사건들을 보도한 뉴스 리포트로 곡을 마무리하며 (여전히) 가장 개인적인 시선을 사회적인 문제로 유연하게 잇는 〈Music to Be Murdered By〉의 수록곡 ‘Darkness’처럼 말이다. 에미넴은 그 자체로 장르다. 이번 앨범은 에미넴이라는 장르의 생명 연장이자, 고통을 연료로 음악을 만드는 그에게 아직 연료가 충분히 남았으니 좀 더 달리겠다는 선전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