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텔레그램 N번방을 잠입 취재한 한겨레 오연서 기자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나는 2018년 8월 〈한겨레〉에 입사했다. 4개월가량의 수습 기간을 마치고 배치받은 팀에서 처음 맡게 된 취재가 ‘버닝썬 사건’이었다. 수사를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당시 종로경찰서를 중심으로 한 사회부 종로 라인(종로서, 종암서, 성북서 등) 관할인 탓에 당시 나를 포함한 종로 라인 기자들은 2019년 2월부터 석 달 내내 ‘버닝썬 사건’과 뒤이은 ‘정준영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 사건’을 취재했다. 그 당시 경찰은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 간담회를 열었는데, 4월 초 어느 날 열린 기자 간담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그날 기자들이 가장 많이 질문한 건 ‘정준영 씨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대화방이 모두 몇 개였고 이 방에 몇 명이나 참여했는가’라는 사실관계였다. 경찰은 당시 정 씨가 23개 단톡방에 영상물을 유포했고, 참여자는 16명이며, 이 가운데 정씨와 그의 친구 로이킴 등 8명을 입건했다고 했다. 뒤이어 경찰은 ‘추측성 보도가 나올 우려가 있다’며 굳이 묻지 않은 사실까지 친절하게 추가 설명했다. 연예 매체 등에서 단톡방 참여자로 언급된 일부 연예인에 대해 ‘이들은 영상을 올리지 않고 방에 있었던 사람들이어서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 신분’이라는 것이었다. 정준영의 단톡방에 함께 있었음에도 입건되지 않은 8명에 대한 얘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그 8명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단톡방 참여는 그저 늘 있던 일이었을 뿐일까? 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의문으로 묻어뒀던 이야기를 계절이 두 번 지나고 나서야 다시 시작하게 된다. 지난해 11월 13일, 나는 탐사 보도 경험이 풍부한 선배 김완 기자와 ‘텔레그램 성 착취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선배가 사흘 전 인천의 한 고등학생이 텔레그램 메신저 안에서 성 착취 영상 2만여 개를 유포했다는 단독 보도를 한 뒤 관련 제보가 쏟아지던 차였다. 그 제보들을 요약하면 인천의 한 고등학생은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일 뿐이며, 이미 텔레그램 내에는 이런 방이 수천 개가 있고, 그 안에서 수만 명이 공범이 되어 ‘성 착취 세계’를 구축했다는 내용이었다. 곧 ‘박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그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여성들의 신상을 캐고 이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 등을 찍게 했으며 그렇게 찍게 한 영상을 유포하는 방의 입장료로 비싸게는 15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제보자의 도움으로 그 방들에 먼저 잠입한 선배는 사태가 심각하다며 ‘이 세계를 함께 고발해 완전히 무너뜨려버리자’고 내게 제안했다.
사실 그 전까지 선배와 나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단둘이 밥 한 번 따로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 사이에서 성별이 다른 동료 기자에게 잔혹한 성 착취 영상의 실태를 선뜻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별취재팀으로 첫 취재를 시작한 지 4시간 정도 지나서야 선배는 내게 조심스럽게 문제의 텔레그램 방들의 링크를 보내줬다. 링크를 열자 마자 실시간으로 성 착취 사진과 영상, 그리고 대화방의 채팅들이 어지럽게 올라왔다. 곧 머리가 아파왔다. 성 착취 사진과 영상은 잔혹하고도 처참했다. 이런 사진과 영상을 한데 모아둔 방을 수만 명이 바라보고 있으면서 아무도 신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역겨운 감정이 일었다. 속으로 ‘이 새끼들 다 조져버려야지’라고 마음먹었다. 내 안에 먼저 타오른 건 정말 순수한 분노였다. 정준영 단톡방 사건에서 입건되지 않은 8명의 ‘참여자’에 대해 가졌던 의문은 이렇게 수만 명의 텔레그램 N번방 회원들을 고발하겠다는 의지로 내게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취재 과정이 무력감과 죄책감의 연속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나와 선배보다 먼저 N번방에 잠입해 이들을 취재한 ‘추적단 불꽃’(이하 ‘불꽃’)을 만났다. N번방은 ‘박사’ 조주빈과 함께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의 3대 핵심 피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닉네임 ‘갓갓’이 만든 텔레그램 성 착취 방을 일컫는다. 1~8번까지 번호를 매겨 텔레그램에 대화방을 만들고 이 방에서 미성년자 등의 성 착취 영상을 유포한 사건이었다. 불꽃은 그동안 기록해둔 자료를 내게 보여줬다. 그 자료를 보니 미성년자로 보이는 여성들이 주로 피해자였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 등 개인 정보가 성 착취물과 함께 공유됐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 있었다. ‘내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너의 나체 사진을 학교에 뿌릴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N번방에서 성 착취물을 받아보는 회원들에게 “얘들(피해자들)은 절대 신고하지 않을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회원들은 그 말에 안심하며 마음껏 성 착취물을 내려받고, 공유하고, 소비했다. 신상 공개 협박으로 인해 공포 속에 살면서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피해자들, 이를 이용해 마음껏 성 착취물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가해자들, 그리고 신고당할 걱정 없이 서로 ‘성 착취물 소비자’로서 공고하게 공범 의식을 공유한 회원들. 이렇게 텔레그램 성 착취 범죄는 공포와 협박, 소비와 방조와 함께 철저히 바깥 세계와 차단된 채 묵인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세계에 틈입하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서 나는 겨우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방으로 알려진 ‘박사방’ 피해자 A와 전화 연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A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린 적이 없다며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경계심이 잔뜩 담겨 있었다. A는 ‘박사’ 조 씨가 신고를 하면 피해 영상을 더 많은 곳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심지어 조 씨와 조 씨의 ‘직원’들이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협박해 친구 집에 피신해 있는 상태라고도 했다. A는 나와 통화하다가 친구가 집으로 들어오면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친구 역시 피해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A는 피해를 겪은 이후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살던 집에서도 간신히 짐만 챙겨 나오느라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A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와 어렵게 연락이 닿은 피해자들은 모두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바깥출입을 극도로 꺼렸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만 잠시 외출한다고 했다.
나의 설득과 A의 주저함이 거듭 오갔다. 나는 “더 많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당신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미 그날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일상이 무너져내린 A에게 이런 설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A는 결국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피해 사실을 들려주는 통화가 끝날 무렵, 나는 잠시 생각을 놓은 채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죄책감이 내가 A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전혀 몰랐던 세계에서 같은 여성들이 잔혹하게 착취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명징하게 인지한 탓인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 죄책감은 특별취재팀 취재 내내 나를 괴롭혔다. A와 통화한 그날 밤, 나는 잠입해 있는 박사방을 보다가 A의 피해 사진과 영상, 그리고 신상 정보가 그 방에 떠다니는 걸 마주하게 됐다. 박사방 회원들은 그 성 착취물을 공유하며 A에게 성폭력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혼란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A와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다고 해서 A의 송두리째 무너진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을까? 나는 혹시 공익적인 기사를 쓴다는 명분을 내밀어 나와 A를 동시에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박사방에는 공중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여성들을 불법 촬영한 영상도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박사방에 처음 발을 들인 이들은 으레 ‘기숙사 몰카가 어딨냐’며 찾았다. 그럴 때면 선배 관전자들이 ‘이미 한물간 자료를 찾고 있다’며 신입 관전자를 비웃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내 일상이 떠올랐다. 층이 낮고 건물 간 간격이 좁은 집에 사는 나는 샤워를 한 뒤 창문과 커튼을 열어뒀다는 사실을 잊고 맨몸으로 좁은 방을 오갈 때가 있다. 뒤늦게 창문과 커튼이 열린 상태라는 걸 인지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창문을 닫곤 했다. 박사방에서 화장실 불법 촬영 영상을 본 그때, 나는 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 순간을 빠르게 떠올렸다. 나 역시 언제나 불법 촬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구든 언제든 내 영상을 가지고 나를 협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의 위협이 되어 강하게 몰아쳤다. 그때 온몸을 타고 흐르던 공포는, 아마 피해자들이 실제로 느낀 공포에 견준다면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박사방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어떤 공포심을 이용해 협박할 수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A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공포가 나의 것이 되었다.
죄책감과 공포심, 각종 성 착취물과 잔혹하고도 무심한 대화가 오가는 세계에 잠입해 억지로라도 관찰해야 하는 상황, 이 모든 것이 선배와 나를 극한의 피로로 몰고 갔다. 선배와 나는 3주 동안 그 세계를 관찰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고, 내부 제보자들과 경찰을 만나 취재한 기록을 써 내려갔다. 3.3㎡(1평) 남짓한 한겨레신문사 사옥 6층 취재 방에서 주말도 없이 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는 줄었다. 선배와 나는 한쪽이 “박사가 잡힐까?”라고 물으면 “잡힐 거야, 박사는”이라고 버릇처럼 답하곤 했다. 그건 우리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 착취’ 기획 시리즈는 4회에 걸쳐 보도됐다. 피해자 심층 인터뷰와 텔레그램 성 착취 범죄의 실태와 현황,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의 계보, 처벌과 대책 등을 빈틈없이 다뤘다. 그러나 현실 속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기획 기사 첫 회 출고를 하루 앞둔 11월 24일,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등졌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과거 구 씨를 촬영한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구 씨를 협박했다. 그녀가 세상을 등진 이유를 단정할 수 없지만 그 남성은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고 솜방망이 처벌만 받은 채 잘 살아갔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구하라 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복잡한 생각으로 나는 그날 밤 잠을 못 이뤘다. 우리의 기사가 처음 나간 그날, 한 시민 단체는 군 간호 사관학교 남생도들이 단톡방에서 여성 동기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성 발언을 했으며, 학교 쪽이 이런 남생도들의 성범죄를 묵인하고 방조했다고 폭로했다. 우리는 이제 ‘단톡방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게 승리의 단톡방 성희롱인지, 서울교대 남학생들의 단톡방 성희롱인지, 군 간호 사관학교 남생도들의 단톡방 성희롱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그만큼 단톡방 성희롱 사건은 일상처럼 흔하디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 됐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열심히 준비해서 기획 시리즈를 쓰는 일로 이런 일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사 작성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기획 시리즈가 나간 뒤 박사 조 씨는 피해자의 성 착취 사진에 ‘한겨레(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라는 워터마크를 새기고 박사방에 이 사진을 유포하는 행태까지 보였다. 무엇보다 경악한 건 기사가 나간 뒤 되레 박사방을 비롯한 텔레그램 성 착취 방에 들어오는 인원수가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인터뷰한 피해자 A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와 선배의 기사가 이 은밀한 범죄에 더 불을 지른 건 아닐까? 기사가 나가고 A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갖가지 생각이 나를 파고들어 괴롭혔다. 그날 취재 방은 유난히 더 고요했다.

기획 시리즈를 본 〈한겨레〉 동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어떻게 그 끔찍한 걸 다 봤느냐’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기사를 끝까지 못 읽겠더라’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도 있었다. 동료들은 내가 취재한 범죄의 잔혹성이나 잔인함이 나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기사가 나가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회, 여전히 활보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더욱 조롱하는 가해자들, 기사를 통해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에 새로 참여한 사람들의 존재, 보도 이후에도 나에게 ‘대화 좀 하자’며 위풍당당하게 텔레그램으로 말을 걸어온 박사 조 씨의 행동이 나를 힘들게 했다. 기사가 보도되는 와중에도 텔레그램 방에서는 피해자들이 발생했고, 기존의 피해자들은 공포감을 느끼며 더욱 꼭꼭 숨었다. 취재 초기에 가졌던 ‘무조건 잡힌다’는 확신은 점점 옅어졌다. 기자로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A의 아픔과 고통보다 가해 행위의 기괴함에 더 주목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피해자들의 피해를 나의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특별한 누군가의 피해라고 여기며 한쪽으로 치워두려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외쳤던 피해 사실을 ‘선정적이고 가학적’이라는 이유로 모두 기사에 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문제를 축소시킨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내가 기사에 담은 내용은 피해의 단순한 조각일 뿐이었다. 훨씬 더 혹독하고 악랄하고 잔인한 범죄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야 옳았을까? 죄책감과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고통스러웠던 건 범죄의 잔혹성을 봐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죄책감과 무력감 때문이었다.
11월 28일, 그렇게 죄책감과 후회에 갇힌 상태로 시리즈 4회 보도를 끝냈다. 특별취재팀의 활동은 끝났다.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를 고발한 보도는 언론사 중 한겨레 특별취재팀이 처음이었다. 나는 간절히 기다렸다. 세상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라도 동료 언론들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나는 나의 공명심 때문이 아니라, 이 피해 사실이 그냥 이렇게 잊히지 않길 바라며 다른 언론사들도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를 보도해주길 기원했다. 누구든 취재 방법과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2019년이 저물 때까지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를 다룬 언론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우리와 공조해 수사에 착수했던 경찰 역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죄책감과 무력감이 더욱 커져갔다.
세상은 조용했지만 내게는 후폭풍이 남았다. 기획 시리즈 보도가 끝난 직후 선잠을 자다가 박사 조 씨가 경찰에 검거되는 꿈을 꿨다. 선배와 함께 TV를 통해 박사가 집에서 체포되는 장면을 보는 꿈도 꿨다. 회사는 잔혹한 성범죄 보도가 내게 정신적 충격을 줬을 수 있다며 심리 상담을 권했다. 나는 상담사를 만나 ‘피해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 못할 정도로 미안하다’, ‘어쩌면 이 보도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피해자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에게, 잡히지 않는 박사 조 씨는 얼마나 큰 공포일까. “꼭 좀 잡아주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뒤 통화가 되지 않던 또 다른 피해자 B의 목소리가 내 귀에 맴돌았다. 검거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범죄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릴 것이다. ‘내가 범죄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몸서리칠 것이다. ‘신상 정보만 더 알려지게 인터뷰 같은 건 왜 했나’라는 생각을 하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사가 잡힌다 해도 피해자들의 일상을 좀먹는 공포가 다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괴로움을 이기기가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는 공고하게 돌아갔다. 일부 방은 활동이 뜸해졌고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종적을 감춘 운영자도 있었으며, 폭파된 방도 있었다. 하지만 박사 조 씨는 달랐다. 그는 더 대범하게 범행을 저질렀고, 관련 보도나 방송이 나올 때마다 ‘소용없는 짓’이라며 비웃었다. 그의 곁에 남은 다른 가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도가 나가고 난 뒤에도 이들이 모인 방에선 온갖 불법 촬영물이 매일 올라왔고,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역겨운 말들이 오갔다. 특별취재팀 텔레그램 계정으로 “제 방도 소개해주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내온 텔레그램 성 착취방 회원도 있었다. 이들에게서 ‘절대 잡히지 않는다’는 확신이 엿보였다. 이런 조롱을 받을 때마다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사건이 더 크게 공론화됐다면 적어도 겁이라도 먹었을까? 성범죄 관련 보도를 할 때마다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 태도를 비난해왔던 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만 목을 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또 다른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다. ‘이렇게 많은 성 착취방 회원들 중에 내 주변인은 없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법은 물론 최소한의 상식과 피해자의 인격마저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가 여기 있다.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안에 이런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면 분명 더 은밀한 곳에는 더 잔혹한 범죄가 판을 칠 것이다. “이 방에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걸어 다닐 거잖아요. 그게 가장 소름 돋아요.” 피해를 당한 이후로는 집 밖에 나서지 못하는 또 다른 피해자 C의 말이었다.
특별취재팀은 해산했지만 제보 이메일이 끊긴 건 아니었다. 나는 우리 기사로 새로운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기를, 기존 피해자들이 우리 이메일 계정으로 제보한 뒤 더 이상 숨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랐다. 결론적으로 두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사 조 씨에게 직접적으로 당했거나 또는 유사 범죄를 당한 피해자 4명이 기사가 나간 직후 ‘어디에 신고해야 하느냐’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획 취재를 통해 이미 범행 수법을 익숙하게 알고 있던 나는 ‘모든 SNS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고, 경찰서보다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팀에 신고하라’고 성심성의껏 상담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 단체에서도 ‘보도 이후 지원을 요청하는 피해자가 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우리가 텔레그램방에서 본 피해자만 수십 명. 이들은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은 유난히 더 크게 보였다. 기사에는 ‘피해 여성들이 성 착취 범죄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는 악성 댓글이 종종 달렸다. ‘신고하면 유포되니까’, ‘아직 유포되지 않은 피해 사진이나 영상도 유포시킬까 봐’ 어쩔 수 없이 박사 조 씨의 협박에 따르고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그들에겐 가닿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당시 피해자들은 그런 댓글을 보고 “나도 잘한 건 없으니까” 같은 말을 되뇌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기사를 쓴 나 역시 댓글에 달린 반응을 보며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다.
이 시기에 나는 ‘지인 능욕’ 범죄를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 제보를 받았다. 지인 능욕은 피해자의 얼굴과 나체 사진을 합성해 유포하는 범죄다. 피해자 D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잡기 위해 직접 해당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해 자신의 사진이 유포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했다. D의 학교 졸업 사진, 학창 시절 이야기, 인스타그램 사진 등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까지 그 대화방에 올라왔다. 자신이 텔레그램 회원들의 성희롱 대상이 되는 걸 보면서 D는 잠시 친오빠까지 의심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 결과 가해자는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드러났다. D는 환멸감을 느꼈다. 가해자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에야 D는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D는 나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방에서 나오면서 ‘너희 다 범죄자’라고, ‘경찰에서 다 잡아갈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끝내 못했어요. 왜냐하면 저처럼 잠입해서 증거를 찾는 피해자들이 그 방에 또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제가 그런 말을 하고 나와서 그 방이 폭파되거나 해서 다른 가해자를 못 잡게 되면 어떡해요.” 직접 증거 수집에 나선 피해자는 D뿐만이 아니었다. 박사 검거 한 달 전에 피해를 당한 C는 최근까지도 박사방에 잠입해 피해 사진이나 영상이 다른 방에 유포되는 것은 아닌지 일일이 확인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사진과 영상이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혹시나 다른 사이트에 퍼졌을까 매일 검색해보는 끔찍한 시간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의 나날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쓰라렸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을 보며 나는 무력감과 죄책감에 갇혀 있었지만 다른 피해 여성들과 동료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올 초부터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N번방과 텔레그램 성 착취 문제에 대한 생각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관련 국민청원과 국회청원이 올라오고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여러 방송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지난 3월에는 〈국민일보〉가 이 문제를 연속 보도했다. 가해자의 끔찍하고 역겨운 행위에 사람들은 ‘잔혹한 범죄’라고 분노하며 엄벌 촉구로 응답했다. 분노의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퍼진 분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지속적이었다. ‘이참에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처벌 강화를 담은 디지털 성범죄 관련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런 분노가 가닿은 걸까. 그렇게나 세상과 언론과 경찰을 조롱하던 박사 조 씨가 3월 16일 마침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24살 남성이었다. 경찰은 그가 보이스피싱, 마약 등 사기로 돈을 벌다가 성 착취물로 범죄의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그게 돈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피해자의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착취의 가해자는 피해자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당당히 고개를 든 채 검찰에 송치됐다.
박사 조 씨가 검거된 주말, 나는 또 다른 피해자 B에게 전화했다. B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말에 B는 잘 지내고 있었다며 ‘박사가 정당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는 짧은 말로 답했다. A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C는 ‘박사가 무기징역을 받을 것 같지도 않은데, 출소 뒤가 두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모두가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여전히 공포감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박사 조 씨가 검거되고 일주일이 지난 지난달 25일 새벽 1시께에 B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전 단답형으로 대화를 이어갔던 B는 ‘사실은 그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며 긴 이야기를 꺼냈다. 박사의 검거 소식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박사의 얼굴, 박사의 목소리가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고 했다. ‘차라리 잡히지 않았다면 생각도 안 났을 텐데, 왜 간신히 마음 다잡고 살고 있던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걸까’ 하는 마음에 엉엉 울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B의 감정은 요동쳤다. 집에만 있으면 위험해질 것 같아 밖에 나가 숨을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남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나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공포감이 엄습해 무섭다고도 했다. 그날 밤 B는 갑자기 다른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에게, 박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B는 말했다. “죄책감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와 박사가 가져야 하지 않나요?” 어쩌면 B는 그날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날 B와의 통화는 한 시간을 넘겼다. 그러나 B와의 대화에서 ‘박사’와 관련된 얘기는 그게 다였다. 우리는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 중인지, 주말에는 보통 뭘 하는지 등을 물었다. 밥 먹자는 약속도 잡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B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오래 연락이 끊겼던 A와도 며칠 뒤 연락이 닿았다. A는 최근 전화번호를 바꿔서 연락이 어려웠다고 했다. 피해 직후에도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최근에 또 한 번 바꾼 건 역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A에게 박사 검거에 대한 심정 같은 건 묻지 않았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A에게 나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병원에 가는지 물었다. A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간다고 답했다. 피해 직후 입원까지 했던 상황에 비하면 자주 가는 게 아니라고 A는 덧붙였다. 우리의 대화에서 박사는 없었다. ‘조만간 만날 날을 잡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A 역시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박사 검거 한 달 전에 피해를 입었던 C는 아직까지 수면 유도제를 먹고 잠을 청한다. 잔혹한 범죄를 당하고, 이를 신고하고, 수사가 진행되는 걸 지켜봤다. 그러면서 C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고, 올여름에는 경찰 시험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화할 때마다 늘 담담했던 C는 지난 4월 6일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또 다른 핵심 가해자인 닉네임 ‘와치맨’(감시자)의 재판 관련 기사를 보고 밤늦게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너무너무 힘들고 모두가 괴물 같아 보인다. 괜찮았는데 요새 갑자기 또 눈물이 많이 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감정이 요동치고 주체가 안 되는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박사 같은 놈들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한다”, “무너지면 지는 거다”, “가해자들한테 복수하려면 이겨내야 한다”와 같은 말로 피해자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봤다. C는 “다들 괜찮다고, 다 해결될 거라고 말해주는데 전 뭐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응원을 받는 와중에도 문득 그날이 떠올라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한다. 이들에게 용기를 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들이 누군가를 ‘이기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잘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인간이니까 사람답게 잘 살 권리가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려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흔들리고 무너져도 삶의 의지만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가까이서 보고 나니 그 선을 넘는 위로는 무책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일 정준영 씨가 성매매 혐의 재판에서 벌금 100만원 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미 불법 촬영물 범죄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지만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며 항소했다. 다크웹 운영자 손정우 씨는 오는 27일 출소를 앞두고 있다. 미성년자 성 착취물 20만 개가 올라온 웹사이트의 운영자가 겨우 징역 1년 6개월을 살고 다시 사회로 나온다. 우리는 잔혹한 디지털 성범죄를 수없이 마주했고, 수없이 많이 흘려보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어딘가에서 오늘도 괴로움을 곱씹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잔혹한 범죄의 역사는 언제 끝이 날까.
텔레그램 N번방을 잠입 취재한 한겨레 오연서 기자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