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연 매출 600억에 달하는 초통령 도티의 새로운 면모들

25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어린이들의 대통령. 연 매출 600억원에 달하는 굴지 스타트업의 설립자. 그리고 당신이 미처 몰랐을 도티의 면모들.

BYESQUIRE2020.04.25
 

도티, 초통령, 기업가, 그리고 나희선 

 
재킷, 셔츠, 팬츠 모두 더 레스큐. 노란색 터틀넥 톱 코스. 모자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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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길을 헤맸다. 회사가 크다.
과찬이다.
직원이 몇이나 되나?
상주 직원은 220명 정도 된다. 소속 크리에이터는 360명 정도. 합해서 500~600명 정도다.
샌드박스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관리해주는 MCN(Multi Chanel Network)업체다. 회사에서 도티 씨가 맡은 업무는 뭔가?
일단은 콘텐츠 총괄 책임자(CCO)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업무는… 사실 내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서.(웃음) 일단은 내 콘텐츠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사내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한다거나 할 때, 방향성에 고민이 생긴 크리에이터가 상담을 원할 때, 크리에이터 간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책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꾼다〉에 샌드박스의 기치와 구조가 잘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출간한 지 1년 반 정도가 흘렀으니 많은 게 바뀌었을 것 같다. 워낙 빠르게 바뀌는 업계이기도 하고, 샌드박스도 굉장히 빠르게 성장 중이고.
맞다. 일단 그 책은 샌드박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던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지금은 O&O(Owned & Operated: 직접 채널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형태)의 비중이 좀 더 많아졌고, 연예인이나 기획사에 디지털 콘텐츠 제작 노하우와 기반을 제공하는 등의 비즈니스 모델도 생겼다.
예전에는 크리에이터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 환경 전반으로 다각화되었다고 생각하면 될까?
물론 회사의 본질은 여전히 크리에이터의 매니지먼트다. 그 부분에서도 더 고도화됐다. 매니지먼트 부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체계가 더해졌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작년에 유병재 씨를 전속 매니지먼트로 영입한 것도 그가 레거시 미디어(TV, 라디오, 신문 등의 전통적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의 문화가 교차하는 현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TV 방송에서 할 수 있는 부분과 온라인 콘텐츠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양립해서 잘 이끌어가는 것 같다. 그 시너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창작의 밤’ 카피추인 것 같고.
유병재 씨는 10년 전쯤 UCC가 한창 화두에 떠올랐을 때부터 활동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재능이 넘쳤는데, 돌아보면 당시에 주류 문화에서 그런 형태의 재능을 흡수할 시스템이 없었던 것 같다. ‘작가’라고 소개하면 대중은 의아해했고. 이제야 날개를 단 것 같다.
유병재 씨는 늘 작가로서 재능을 발휘하고 싶어 했다. 근데 또 출연진으로서의 재능도 있었고. 그 두 가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상의 플랫폼이 유튜브였던 것 같다, 병재 씨한테는. 정형화된 콘텐츠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채널의 편성권자이자 기획자로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영감이 생기는 대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
유튜브에서 풀 수 없는 건 또 TV에서 풀고.
맞다. 레거시 미디어만의 장점이 또 있으니까. 오랜 세월 콘텐츠를 만들어온 프로덕션만의 노하우가 있다. 제작비나 여건의 문제로 아직까지 디지털에서 소화할 수 없는 콘텐츠도 많고.
도티 씨도 최근 레거시 미디어에 힘을 쏟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디지털 기반으로 활동한 게 이제 햇수로 8년째다. 그간 3000개가 넘는 콘텐츠를 만들었고, 그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가치 있는 것들을 이루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힘들어졌다. ‘유튜브 번아웃’은 온라인 콘텐츠업계에서 작년 한 해 가장 큰 이슈였다. 유튜브 CEO가 직접 언급했을 정도로. 워낙 무한 경쟁 플랫폼인 데다 초 단위로 무수한 콘텐츠가 업로드되다 보니 어떨 땐 숫자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더 나은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하는 거다.
일단은 몸부터 지쳤을 것 같다. 그 시절 도티 씨 일과를 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이었으니까.
내가 봐도 그렇다. 대체 어떻게 그랬나 싶다,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도티TV는 1년 365일 연중무휴로 매일 영상이 올라오는 채널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준비, 촬영, 편집을 하고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에 업로드하고, 영상 올라간 후에는 댓글 확인하고 피드백을 했다. 거기까지 끝내면 밤 9시 정도 됐다. 그걸 매일 한 거다. 그때는 그게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성실함. 그런데 사실은 성실성이라기보다 늘어나는 구독자를 실망시키는 게 무서웠던 거다. 멈추는 게 훨씬 용기가 필요했던 거지. 몸이 힘들더라도 차라리 해버리는 게 쉬웠고.
번아웃됐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었나?
그냥 정신적으로 확 무너졌다. 공황장애가 온 거다. 휴식이 필요했던 건데 그걸 참고 참다가 아예 정지할 수밖에 없게 된 거지. 일상생활도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사실은 요즘 공황장애와 관련된 언급을 줄이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내가 아직도 아픈 줄 알고 걱정을 하니까. 이런 인터뷰 맥락 안에서 이야기하는 건 괜찮을 것 같지만 말이다.
공황장애로 시달릴 당시에도 아이들에게 그 얘기를 전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고 했다.
너무 어려웠다. 너희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지금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니까. ‘도티도 사람이야, 도티도 아파’ 그 말을 어떻게 하나, 그 친구들한테. 그래서 콘텐츠를 아무것도 못 올리면서도 한동안은 그 이유에 대해서 공지도 못 했다.
TV 방송 활동과 공황장애는 어떻게 연결되나?
쉬고 있던 중에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섭외가 왔다. 워낙 동경하던 프로그램이라 나도 용기를 냈다. 그런데 출연해보니 예상치 못한 소득이 있었다. 방송국의 콘텐츠 제작 시스템에서 내가 다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출연 자체가 아니라 제작 시스템에서?
도티TV라는 채널 안에서는 상황과 결과의 모든 게 내 책임이었다. 재미가 없어도 내 탓, 조회 수가 안 나와도 내 탓, 영상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내 탓. 그런데 방송에서는 내가 탤런트로서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환기가 되고 보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여기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2017년 케이블TV 방송대상에서 1인 크리에이터 상을 수상했을 때는 ‘끝까지 크리에이터로 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맞다. 지금도 변함없다. 크리에이터는 구독자, 시청자와 소통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으면 그냥 올리면 되는 직업이지 않나. 은퇴가 없는 아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내가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환갑잔치도 유튜브 라이브로 할 수 있을 테고. 그 정도로 나는 오래오래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고 싶다. TV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건 또 하나의 도전이다.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공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여기서 배우는 것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휴식이 되기도 했고.
맞다. 사실 개인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방송하면서 나았으니까. 도티가 아닌 ‘인간 나희선’을 보여주는 게 엄청 힐링이 됐다.
인터뷰 시작 전에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물었던 것도 사실 그것 때문이었다. ‘도티’와 ‘인간 나희선’ 사이의 괴리가 번아웃에 일조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으니까.
그건 호칭에 대한 부분이라기보다, 이런 거다. 도티는 정말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한다. 그래서 방송을 종료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도티는 저렇게 성장했는데 나의 일상은 그대로네?’ 도티의 구독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런 생각이 더 커진다. 그러다 채널의 성장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일 때면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거다. ‘만에 하나 도티가 잘 안되면 인간 나희선도 의미 없어지는 게 아닐까? 나는 나희선이 아니라 도티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사람은 아닐까?’ 그래서 샌드박스의 성장이라든가 외부 활동, 강연 같은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인간 나희선의 역할이 생긴 거니까. 도티TV의 게임 방송과 달리 내 모습이 실제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이 특히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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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쪽에서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생기지는 않았나?
목표라. 글쎄. 이런 건 있다. 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기사가 뜨지 않나. 옛날에 보면 기사에 그런 댓글이 많이 달렸다. “유튜브의 B급, C급을 왜 지상파로 데려오냐.” “유튜버는 유튜브에만 있어라.” 무슨 뜻인지는 안다. 아이돌이나 셀럽은 오랜 시간 훈련을 거쳐 데뷔하고, 개그맨도 공채를 통해 뽑혔다는 명분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분들 시선에는 방구석에서 별것도 아닌 영상을 찍는 애들이 인기 좀 생겼다고 지상파에 나오는 것 같은 거다. 상처받지는 않았다. 이해가 되니까. 나도 28살까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 그래도 이제 나한테 기회가 왔고,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크리에이터들의 운신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미디어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재능도 충분히 훌륭하고, 몇 년 동안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며 만든 히스토리가 기존의 셀럽들이 자기 개발했던 시간 못지않게 가치 있다는 거, 그걸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그런 새로운 사명감이 생기니까 나도 삶의 활력이 돌고 말이다. 내가 뭐 연예인병에 걸렸다거나,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TV에 나가는 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소개할 일이 있으면 ‘크리에이터 도티’라고 말한다.
전부터 느낀 건데 굉장히 명료한 성격인 것 같다. 도티TV나 유튜브 생태계에 대해서 사람들이 비난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그걸 외면하지 않고 자신만의 답을 내리고, 필요할 때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가릴 수 없는 거니까. 그런 댓글은 다 공개되어 있는 거고.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도 다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악랄한 말들도 있으니까. 나이 먹고 아이들 위한 콘텐츠 만들면 자괴감 안 느끼냐는 질문도 받아봤다고 했다.
그것도 악랄하다기보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때도 이야기했지만 어떤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일을 사랑하게 된다. 만약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가식적으로 일종의 연기를 해야 한다면 그건 절대로 오래 못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그냥 ‘일이니까 한다’는 생각으로 몇 년씩 채널 운영을 한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장담한다.
어린이 문화에 대한 사명감을 말하는 걸까?
물론이다. 사명감이 굉장히 크다. 의도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콘텐츠의 주제나 톤앤매너가 10대 친구들한테 호응을 얻었다. 그때 깨달은 사실이 이랬다. ‘어라, 아이들이 왜 내 영상을 좋아하지? 아하, 볼 게 없었구나.’ 아이들이 직접 얘기해준다. TV에 재미있는 거 하나도 없고, 취향에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그제야 나도 알게 된 거다. 아이들은 진짜 문화 콘텐츠의 사각지대에 있었구나 하고.
왜 우리 어릴 때는 〈판관 포청천〉 같은 게 굉장히 유행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한테 그게 뭐 그리 재미있었을까 싶다. 그냥 해주는 것 중에 그게 제일 나아서 본 게 아니었을까 하고.
어른들에 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그렇고. 재미있는 걸 보고 싶은 건 본능 같은 거니까 아이들에게도 재미있는 걸 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다. 그래서 “오늘 영상 올려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런 댓글이 정말 많이 달린다. 영상을 봐주면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매일매일 콘텐츠를 올릴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영상을 올리지 않으면 아이들의 하루에서 즐거운 20분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몸이 아파도 어떻게든 일어나서 저녁에라도 올렸다. 그만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도 어릴 때 〈디즈니 만화동산〉이 뉴스 속보나 편성 이슈로 결방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니까.
반면에 아이들의 세상이 너무 손쉬워진 건 아닐까? 할 게 없어서 공책에 그림을 그려보고, 시 같은 걸 끼적여보고, 종일 기타만 연습하고, 그렇게 스스로의 재주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쉽게 말해 방대한 콘텐츠가 아이들이 스스로와 대화할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나는 전혀(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간접경험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꿈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할 게 없어서 종일 기타만 연습했다는 건 그 외의 다른 가능성이 안 보였다는 것이지 않나. 어쩌면 기타를 시작한 것 자체가 우연적인 영향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아이들이 많이 경험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예를 들어 그냥 집에 기타가 있어서 기타만 쳤는데 사실 이 사람은 드럼 신동이 될 운명이었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
기타가 적성에 맞는다고 해도 정성하 씨 유튜브 채널 같은 걸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도티는 놀 거 다 놀면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고 들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학창 시절부터 게임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했는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지 않았나. 법대로 전과도 했고.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훌륭한 학생이라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잘난 체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 스스로도 분석을 해봤다. 결론은, 나는 그냥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학생이었을 뿐이다. 숙제가 있거나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그걸 하지 않고 노는 게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하니까. 숙제 다 끝내고, 내가 원하는 정도의 성적이 나온 다음에 게임을 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것저것 활동도 많이 하고, 법대로 전과도 하고, JYP에서 오디션도 봤다고 들었다.
글쎄…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까불고 다녔던 것 같다. JYP 오디션도 휴학 중일 때 포털 사이트 메인에 광고가 뜬 걸 보고 ‘아, 재미있겠다. 한번 가볼까?’ 했던 거다. 그런데 거기서 인생의 큰 진리를 깨달았다. 나는 장난 삼아 왔는데, 주위에 보니까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몇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르고, 그런 친구들이 있는 거다. 정말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되게 충격이었다. ‘아, 내가 누군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꿈을 장난스럽게 대했구나’ 하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누군가의 꿈을 함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그게 반대로 돌아왔다고 들었다. 친구들이 요즘 뭐 하냐고 물어서 유튜브를 하고 있다고 답하면 ‘그런 거 말고 일 뭐 하냐고’ 되묻곤 했다고.
그건 뭐, 무시했다기보다 아예 이해도가 없었던 거다. 내가 2013년에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그때 그게 직업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됐겠나. 유튜브 한다고 하면 그게 취미라고만 생각했던 거다.
유튜브는 이력서에 스펙 한 줄 넣을 생각으로 시작한 거였다고 했다. 팔로워를 1000명 보유한 채널을 운영하면 방송국 입사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언뜻 헐렁하게 들려도 사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 개월을 업로드했다는 건 대단한 거다. 조회 수가 계속 두 자리, 세 자리가 나오는 채널을.
그게 지금 환경이면 힘들 수 있다. 워낙 성공한 케이스도 많고,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것도 피부로 와닿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는 개인 채널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조회 수가 그 정도 나오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워낙 의미 부여를 되게 잘하는 스타일이다. 그게 나의 재능이라면 재능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튼 이렇게 생각했다. ‘어, 조회 수 100이 나왔네. 20분짜리 영상을 올렸는데 조회 수가 100이면 내가 누군가의 2000분을 책임지고 있네?’ 이런 사명감을 스스로 되게 잘 만드는데, 그러고 보니 너무너무 의미 있는 일처럼 보이는 거다. 그래서 뭐 상상하는 것처럼 그 과정이 지리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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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직업 크리에이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뭘까?
그렇게 1000명을 모으자는 목표로 채널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구글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광고 플랫폼에 연결하라고. 연결했더니 돈이 나오는 거다. 얼마였지? 한 20만원 됐던 것 같다. 물론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어쨌든 돈이 들어오지 않았나. 왜 UCC 열풍이라고 해서 2005년쯤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 열풍이 지속 가능하지 않았던 건 결국 그 콘텐츠들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수익 구조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다들 현업으로 돌아가야 했던 거고. 그런데 유튜브가 그 생태계를 만들어줬고, 내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해줬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줬고, 그게 나에게는 ‘지속 가능하다’는 신호가 된 거다.
타이밍이 좋았다. 딱 유튜브가 가능성을 보여줬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지는 않을 때였고.
맞다. 나는 분명히 선점 효과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덜 치열했고, 진입 장벽이 낮을 때였으니까.
너무 다 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런 것 같다. 운이다. 물론 전부 운은 아닌데… ‘운칠기삼’ 정도?
운이 7에 재주가 3이면 근면성은?
근면성은 기본이지. 뭔가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성실해야 하는 건 기본 아닌가.
하긴 근면이 안 받쳐주면 ‘운칠’도 찾아오지 않는 거니까.
맞다. 너무 당연한 거다. 성실함이라거나 노력 같은 게 없었다면 운이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이 과정을 돌이켜보자면, 이 정도 크기의 성공에서 기여도를 따져보자면, 운과 시기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는 거지.
유튜브에서의 성공은 또 근면성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 사람이 얼마나 호감이 가는 사람인가에 달려 있는 부분이 크다.
그것도 사실은 어떻게 보면 운이지. 타고난 운. 어쩌면 그것도 재능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 내가 35살인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운이지 않나. 아저씨 같지 않은 목소리도, 키가 작은 것도 부모님이 주신 거지만 내가 하는 일에 다 도움이 되는 거고. 타고난 재질이자 재능이자 운인 거다.
하지만 도티는 무엇보다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어린이들이 달아준 댓들을 다 읽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답을 달아주고, 여력이 안 되면 하트를 찍어주고, 결정적으로 그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그걸 썼는지 그 마음에 감정이입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건 진짜 내 강점이지. 내가 ‘덕질’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 나는 실제로 누군가를 어마어마하게 덕질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대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굉장히 잘 이해할 수 있는 거다. 그걸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른다. 물론 감사하긴 하겠지만 온전히 느낄 수는 없을 거다.
김연아 선수를 좋아했다고 들었다.
대학생 때는 김연아 선수, 고등학생 때는 이효리 씨. 어떻게 보면 다른 면에서도 이게 강점이 됐던 것 같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덕질하는 것이 의미 없고, 시간 낭비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 않나. 물론 결과론적인 시각이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이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인생의 과정이었던 거다. 실제로 김연아 선수의 경기 영상을 편집해서 팬 무비를 만들어보려다가 독학으로 영상 편집을 배우기도 했고. 그게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만난 28살의 나희선에게는 굉장히 큰 계기가 됐던 거다.
영상 편집 능력이 없었다면 유튜브에 대해 들었어도 ‘저런 것도 있구나’ 하고 지나갔을 수 있겠다. 당시의 여느 사람들처럼.
맞다. ‘내가 영상 편집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럼 채널 운영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 식으로 진입 장벽이 낮았던 거다. 당시에는 시간 낭비이고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던 것들이 꿈을 발견하면서 의미를 찾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고 의미가 전혀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라 조심스럽지만, 지금 하고 있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이 어느 순간 의미를 가지는 지점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도티의 현재 목표는 뭘까?
어쨌든 시작한 거니까 레거시 미디어 일을 조금 더 열심히, 많이 해보고 싶다. 그게 온라인 콘텐츠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해서 좀 다른,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 회사 차원에서는 샌드박스가 디지털 미디어의 한 축이 되었으면 한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선도하는 회사라는 자부심이 있으니까. MBC, SBS 같은 큰 회사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한술 더 뜨자면 디즈니 같은 회사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아시아, 특히 콘텐츠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면 세계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테고. 실제로 지금도 해외 트래픽이 절반 이상이니까 말이다.
‘샌드박스 타운’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맞다. 마을처럼 단지를 만들어서 거기서 크리에이터들이 거주하면서 촬영을 하고, 교류하고, 오픈 스튜디오나 숍 같은 것도 넣고… 근데 그건 내가 경영자가 아니니까 굉장히 이상적으로 떠올린 거다. 꿈이다.
도티 씨가 꿈을 꾸면 이필성 대표가 다듬어주는 그런 관계인가 보다.(샌드박스는 도티와 구글에 재직 중이던 친구 이필성 대표가 함께 세운 회사다.)
필성이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지.(웃음) 나는 약간 이상적인, 크리에이터의 마음으로 비즈니스를 보는 거다. 내가 경영하면 망한다. 이필성 대표는 디지털 시장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자본의 영역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두 영역 사이에 시너지가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샌드박스가 여타 MCN 업체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뭘까?
크리에이터가 만든 회사라는 거. 크리에이터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거기에서부터 모든 비즈니스를 시작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다는 거다.
번아웃을 겪어본 CCO가 있으니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마인드 컨트롤에도 기민할 수 있겠고.
어우, 그럼.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파트너십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크리에이터가 내일도 즐겁게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크리에이터들은 사실 굉장히 외로우니까. ‘1인’ 미디어지 않나.
나는 우리나라 대표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도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자극적이고 위악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서.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이 업계에 대해 가진 인식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다.
그런 사명감도 되게 크다. 소위 말하는 ‘조회 수 장사꾼’이 나도 밉기도 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생태계를 흐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플랫폼이 발전하면서 그런 콘텐츠를 필터링하는 기술이 많이 늘긴 했다. 하지만 결국 크리에이터들이 내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제작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개인적으로는 콘텐츠 안에서 욕을 해도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콘텐츠에 필요한 요소라면. 그런데 연출을 위해서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조회 수를 위해서 욕을 한다면 그건 너무 잘못된 것이지 않나. 언론에서도 자꾸 유튜브로 돈을 어떻게 버니,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부업으로 할 수 있느니 그런 부분만 이야기한다. 조회 수는 콘텐츠에 따라오는 보상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말 그대로 콘텐츠 창작자가 아니라 조회 수 창작자가 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지만, 내가 하는 활동이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그런 인식을 바꾸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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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ATURES EDITOR 오성윤
  • FASHION EDITOR 임일웅
  • PHOTOGRAPHER 신규식
  • ASSISTANT 윤지수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