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 양장본, 59.95파운드(배송비 별도), 파이돈.
영국의 유서 깊은 아트북 출판사 파이돈은 자사의 신간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을 이렇게 소개한다. ‘풍부하고 복잡다단한 한국 현대미술을 총체적으로 다룬 최초의 개론서’. 최초라는 표현이 으레 그렇듯 마케팅적 의도가 깃들어 있긴 하나 그간 한국의 현대미술을 다룬 책이 부족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적어도 책을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정연심 교수는 그렇게 생각한다. “뉴욕 주립대에 있을 때 주로 동아시아 미술, 현대미술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한국 미술을 가르치려고 할 때 사용할 만한 책이 없더라고요. 일본이나 중국의 현대미술을 다룬 좋은 책은 정말 많았는데 말이죠.”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와 한국 시각 문화 전문가인 킴벌리 정 박사, 시각 문화학자인 런던 대학교 키스 바그너 교수 역시 정연심 교수의 지적에 공감했고, 결국 네 사람은 직접 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은 시기에 따라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휴전부터 1987년까지, 2부는 1988년부터 현재까지. 민주화(직선제 개헌)와 세계화(88올림픽)라는 대변혁이 예술·문화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두 시기에서 15개의 주제를 제시하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망라한다. ‘단색화: 한국의 추상회화’, ‘북한 미술의 모더니티’, ‘한국 페미니즘 미술에서 여성 신체가 가지는 역설적 입지’, ‘전위, 전환: 한국 미술의 동시대성’ 등등. 정연심 교수는 각 파트의 원고를 국적과 직업을 막론하고 해당 주제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필자에게 맡겼다고 했다. “혼자 책 한 권을 다 쓰기보다는 스페셜리스트들과 함께 구성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국내에서는 좀 생소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최근에 많이 쓰는 방식이거든요. 글의 방향도 결론을 내리기보다 좀 열어두고자 했고요.” 일목요연하게 구획하고 답을 내리기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각자 주목하는 경향을 짚고자 했다는 뜻. 덕분에 책은 한국의 현대미술을 주변부의 역사로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세계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도 흥미로운 화두로 제시한다. 해외 독자에게든 한국 독자에게든. 아직 번역본 출간 계획은 없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