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과학이 미술을 보존하는 법

보존과학자 권희홍 학예연구사를 만나 과학이 예술을 어떻게 보존하는지 물었다.

BYESQUIRE2020.06.22
 

과학은 미술을 어떻게 보존하는가 

 
국내 220여 개 국·공·사립 미술관 중 보존과학 시설이나 전문 인력을 갖춘 기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삼성 리움미술관 네 곳뿐이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부터 보존과학 측면에서 공·사립 미술관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사진 속 작품은 지원 대상작인 모란미술관 소장품 〈피에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든 김세중 작가의 작품이다. 청동 소재 조각에 페인트칠을 했다. 변색을 가리기 위한 행위로 보인다. 페인트칠을 벗겨낸 후 어떤 색상으로 보존 처리를 할지, 최대한 작가의 의도와 작품 원형에 맞는 색을 찾기 위해 리서치와 테스트 중이다.

국내 220여 개 국·공·사립 미술관 중 보존과학 시설이나 전문 인력을 갖춘 기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삼성 리움미술관 네 곳뿐이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부터 보존과학 측면에서 공·사립 미술관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사진 속 작품은 지원 대상작인 모란미술관 소장품 〈피에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든 김세중 작가의 작품이다. 청동 소재 조각에 페인트칠을 했다. 변색을 가리기 위한 행위로 보인다. 페인트칠을 벗겨낸 후 어떤 색상으로 보존 처리를 할지, 최대한 작가의 의도와 작품 원형에 맞는 색을 찾기 위해 리서치와 테스트 중이다.

 
니키 드 생팔 작가의 〈검은 나나(라라)〉(1967) 전시 전경. 국내 보존과학계에 중요한 선례를 남긴 작품이다.

니키 드 생팔 작가의 〈검은 나나(라라)〉(1967) 전시 전경. 국내 보존과학계에 중요한 선례를 남긴 작품이다.

학창 시절에 과학을 잘했나요, 미술을 잘했나요?
문과생이었습니다. 원래는 미술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미술 하면 굶어죽기 딱 좋다고. 그래서 문과로 진로를 정한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어느 날 신문에 난 특집 기사를 봤는데, 스크랩해서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신음하는 문화재’라고 우리나라의 문화재나 미술품이 많이 훼손되고 있지만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이나 교육 시설이 전무해서 어려운 실정이라는 내용이었어요(〈한국일보〉, 1997년 8월 6일 자). 그때 머릿속에서 번쩍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어요. 대중에게 잘 알려진 미술 관련 직업으로는 큐레이터, 미술이론가,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미술품이 존재해야 가능한 거죠. 훼손되어 사라져가는 미술품을 복원하고 잘 보존해서 후대에 물려주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눙치듯 드린 질문이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보존과학자’를 검색해보면 어떤 일을 하는지, 보존과학자가 되려면 무슨 학문을 배워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은 있지만 명확히 공유된 정보는 없어 보였습니다. 보존과학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에는 아직 역사가 짧다고 봐야 할까요? 한국 보존과학의 역사는 198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술품 보존과학이 1980년대부터이고 문화재 보존과학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습니다. 미술품 보존과학과 문화재 보존과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첫 근무지가 국립춘천박물관인데 제가 입사한 2006년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보존과학에서는 주로 문화재 중심으로 과학적인 분석과 보존 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국내 대학 관련 학과의 커리큘럼 자체가 문화재 보존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개인적으로 보존과학에서 문화재는 과거를, 현대미술은 현재를 보존한다고 봅니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현재는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문화재 보존과학 쪽이 체계가 더 확립된 상태죠. 이에 대해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해외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 컨템퍼러리 아트, 현대미술에 대한 커리큘럼을 갖춘 학교나 기관이 많지 않다고요. 계속해서 연구해나가야 할 부분인 거죠. 이런 상황이 제가 박물관에서 현대미술관으로 옮기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있습니다. 당시 국립춘천박물관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 현대미술관 조각 보존 분야에 채용 공고가 났는데, 박물관에서 금동관, 칼, 이런 번쩍번쩍한 것만 다루다가 현대미술을 다루려고 생각하니 낯설고 막연하더라고요. 그때 같이 근무했던 보존과학부장님께서 그랬어요. 앞으로는 박물관이나 문화재 보존보다는 미술품, 근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것이 이슈로 떠오를 거라고. 그때가 2010년이나 2011년이었는데, 미술관에 저같이 젊은 친구들이 가서 개척도 하고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미술관에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했죠. 그곳이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입니다.
그때 그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님은 어떻게 그리 단언할 수 있었을까요?
문화재 보존은 미술품 보존과 비교했을 때 이미 역사가 오래되고 체계가 잡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문화재 보존은 금속, 도토기, 석재, 섬유 등 각각의 재질에 따른 보존 처리 방법론과 재료 조사 연구 등이 이미 상당히 정립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현대미술품은 재료의 다양성과 실험적 기법 등의 이유로 손상 유형을 예측하기 어렵고, 작품에 내재된 작가의 메시지 역시 특수성과 독자성을 가지기 때문에 각각의 조사 연구와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하는 거죠.
더 도전적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그래서 미술관에 왔을 때 처음에 엄청 힘들었어요.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거죠. 일반 관람객은 작품을 보고 ‘와, 창의적이다. 새롭다’ 감탄한다면 저희는 ‘저거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 이렇게 접근하는 거죠. 신소재가 나오면 헉 합니다.(웃음) 저 작품이 내게 오면 어떻게 보존 처리할까 고민하죠.
그 ‘어떻게’가 궁금합니다. 과학이 현대미술을 어떻게 보존하는 건가요?
지금 보존 처리 중인 작품을 예로 들어볼게요. 저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플라워 트리〉입니다. (권희홍 보존과학자가 두 명의 연구원이 작업 중인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 색색의 꽃송이가 나열되어 있고, 두 연구원은 꽃잎으로 보이는 파편들에 무언가 바르는 중이었다.) 원래 〈플라워 트리〉는 꽃송이들이 구형을 이루는 조각인데, 꽃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프레임 자체가 심하게 손상된 상황이었어요. 상태 조사를 통해 단순히 구조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재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작가가 생존해 있어서 작가와 만나 제작 의도를 들어보고 보존 처리 방안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후 현미경 촬영 등을 거쳐 작품에 사용한 페인트, 바탕 재료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동일한 재료로 훼손 부위를 색 맞춤하고, 시아노 아크릴레이트(의료용 등의 강력 순간 접착제) 및 에폭시계(열경화성 플라스틱 종류) 복원제 등을 활용해 접합 및 복원 처리를 하죠. 재제작한 프레임과 복원한 꽃은 작가와 협의해 조립할 예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은 계속 이루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작가가 생존해 있어도 보존과학자가 복원 등 보존 처리를 하는군요?
우리 미술관 소장품이기에 저희가 보존, 복원을 합니다. 이게 중요한 부분인데, 표면 클리닝이나 접합 복원 등 일반적인 보존 처리의 경우에는 작가와 협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작권에는 저작 소유권과 저작 인격권이 있어요.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수집할 때 저작 소유권은 가져올 수 있지만 저작 인격권은 작가에게 남아 있습니다. 저작 인격권은 작품에 대한 작가의 정신적, 인격적 권리를 말하죠. 이 안에 동일성 유지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왜곡, 무단 변경 등의 행위에 금지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이에요. 작품 전체를 재도장해야 한다든지, 작품의 구성 재료를 아예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든지, 어쩔 수 없는 보존 처리 방법일지라도 동일성 유지권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작가의 동의를 얻습니다.
작가가 생존해 있지 않을 경우에는요?
이게 또 힘든 부분입니다. 민감한 부분이라 잘 써주셔야 해요.(웃음) 그렇다면 작가가 타계한 이후에는 유족이나 작가 재단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희가 법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작가의 저작 인격권은 작가가 생존해 있을 때만 존재합니다. 작가 사후에는 자동 소멸되는 거예요. 권리가 유족이나 재단으로 이전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우리(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는 작가 재단이나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협의 과정을 거칠 때가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이번 〈보존과학자 C의 하루〉전에서 전시 중인 니키 드 생팔 작가의 〈검은 나나(라라)〉(1967)예요.
 
 
보존 처리는 여러 작품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사진 속 작품은 대기 중인 조성묵 작가의 나무 조각 〈무제〉. 권희홍 보존과학자는 과학적인 팩트 체크가 이뤄져야 하는 예를 들려주었다. ’조성묵 선생님은 이 나무들을 아카시아라 했어요. 자신은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라 산에 죽어 있는 아카시아만 벌채한다고. 하지만 수종 분석을 해보니 참나무더라고요. ‘나는 작품을 만들 때 살아 있는 나무는 안 썼다’는 의도는 명백할 수 있어도 작가가 재료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후에 보존 처리해야 합니다. 미술 보존에 과학이 필요한 이유죠.“

보존 처리는 여러 작품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사진 속 작품은 대기 중인 조성묵 작가의 나무 조각 〈무제〉. 권희홍 보존과학자는 과학적인 팩트 체크가 이뤄져야 하는 예를 들려주었다. ’조성묵 선생님은 이 나무들을 아카시아라 했어요. 자신은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라 산에 죽어 있는 아카시아만 벌채한다고. 하지만 수종 분석을 해보니 참나무더라고요. ‘나는 작품을 만들 때 살아 있는 나무는 안 썼다’는 의도는 명백할 수 있어도 작가가 재료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후에 보존 처리해야 합니다. 미술 보존에 과학이 필요한 이유죠.“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 〈비너스〉(1998).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 〈비너스〉(1998).

〈검은 나나(라라)〉는 이례적으로 전체 재도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존 처리 과정 소개에 작가 재단과의 소통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던데 ‘이례적’이라는 설명에는 이 과정도 포함되는 거였군요.
맞습니다. 제가 미술관에 2011년에 입사해서 10년째 접어드는데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한 〈검은 나나(라라)〉의 보존 처리 전후로 제 자신을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 현대미술을 좀 알겠다’ 싶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문화재와 현대미술 보존 과정에서 테크닉적으로는 유사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화재 쪽에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현대미술 쪽에서는 고민하거든요. 그게 작가의 의도와 비물질성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법적으로는 작가가 타계한 이후 저작 인격권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보존, 복원을 하는 데에는 작가의 의도가 아주 중요해요. 〈검은 나나(라라)〉는 야외에 설치돼 있어 자외선으로 인한 손상이 너무 심해서 전체 재도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이미 세상에 없지만 보존 처리의 원본성과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미술관 내외부 전문가들의 의견만큼 작가 재단과의 협의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진행했고요. 처음에는 재단이 인정한 스튜디오에서만 보존 처리를 진행하겠다고 했던 작가 재단도 해외에서 보존 처리 시 현장 감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 한국 내 보존 분야 육성을 위해서는 이번 과정이 매우 중요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점 등에 동의하며 국립현대미술관에 일임했습니다. 이후로 현대미술품 보존을 위한 새로운 보존 윤리, 철학적 연구의 필요성, 작품 관계자들의 권리 범위에 대한 연구가 대두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전에는 이러한 보존 윤리나 철학적 연구가 없었다고 봐야 하나요?
없었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준비가 덜 됐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새로운 재료가 계속 출현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금속의 부식 메커니즘이나 이에 대한 보존 처리 방법론은 문화재와 미술품 모두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반적인 재료가 아니라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의 경우죠. 새로운 재료에 대한 연구, 작가에 대한 연구, 작품을 둘러싼 여러 권리 범위 등의 연구의 필요성이 계속 대두되는 상황입니다. 1980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보존과학실인 양화수복실이 생겼을 때만 해도 강정식 선생님 한 명 계셨어요. 이후에 지류, 유화, 조각 보존 처리, 과학 분석 등 전문 분야가 세분화됐고, 2018년에 청주관이 개관하며 그동안 없었던 뉴미디어 보존 처리, 사진 보존 처리, 유기물 분석 분야가 신설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 미술관의 보존과학 팀이 교육기관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보존과학을 공부하고 오긴 했어도 이런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에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여기서 실무를 하면서 그런 부분을 배워나가고 체계도 잡고 하는 거죠.
검색해봤더니 보존과학자가 되려면 특히 화학을 잘해야 한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화학 잘하면 좋죠.(웃음)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대학에 보존과학과로 진학하고 나서 따로 노량진 학원에 화학을 배우러 다녔어요. 인문계에서 배운 화학보다 수준이 확 높아지니까 버겁더라고요. 화학을 전공한 분들은 재료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미술 전공자는 테크닉이나 센스가 있고, 인문학 전공자는 스토리에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존과학자에게는 그 모든 게 필요하군요.
융합 학문이죠, 보존과학은.
아까 말씀 중에 무엇보다 작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 작품 중에 특히 신미경 작가의 〈비너스〉를 보며 궁금해졌어요. 〈비너스〉는 비누로 만든 조각상이죠. 작가가 1998년 작품 제작 당시 비누라는 재료 특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이 소멸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누라는 소재를 보존 처리한 예로 지금도 이렇게 전시되고 있어요. 보존과학의 선은 어디까지일까요? 작가가 소멸을 원하는 작품도 기록이라는 현대 미술관의 역할 앞에서는 보존 처리되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요?
그 부분도 보존과학자인 저희가 많이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작가가 처음 비누로 작품을 제작한 당시에는 재료의 특성대로 소멸되길 원한 게 맞아요. 그러나 이후에 작가가 작품 표면에 바니시(투명한 피막을 형성하는 도료)를 발랐어요. 저희는 그걸 보존 처리 행위로 봅니다. 작가 스스로 작품이 소멸되는 걸 막는 행위를 했다고 보는 거죠. 만약 작가가 바니시를 바르기 전에 작품이 저희 미술관에 수집되었다면 작가의 의도대로 보존 처리를 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작가가 바니시를 바른 순간부터 작가의 의도가 바뀌었다고 판단할 수 있고, 이후 미술관에 수집됐기에 저희 내부에서는 작품이 손상된 부분을 보존 처리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현재 국내외 현대미술 보존에서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보존과학자로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현대미술을 왜 보존 처리해야 해?’이거든요. 그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해나가야 하는 거죠.
왜 ‘보존과학자의 고민’이라는 소주제가 이번 전시에 포함되었는지 조금 알겠습니다.
매일이 고민입니다. 이번 전시를 잘 보면 일반 전시와 다르게 작품 뒷면을 볼 수 있게 해두었어요. 일반 전시에서는 회화 작품이 벽에 걸려 있어 앞모습만 볼 수 있잖아요. 저희는 유리에 걸어서 작품 뒷면까지 보이게 배치했습니다. 보존과학자에게는 앞에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부분이 더 중요하거든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유진 학예연구사와 이야기 나눌 때 이런 부분이 꼭 전해지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순히 보존 처리 전후 비교가 아니라, 그 사이의 많은 과정과 고민이 보이면 좋겠다고요.
 
 
보존 처리 중인 최정화 작가의 〈플라워 트리〉(2004).

보존 처리 중인 최정화 작가의 〈플라워 트리〉(2004).

 
장 뒤뷔페의 〈집 지키는 개 II〉 조각상 앞에 앉은 권희홍 보존과학자. 그 왼쪽에 보이는 기계는 현미경 카메라로, 보존 처리에 앞서 시행하는 과학적 조사에 활용한다.

장 뒤뷔페의 〈집 지키는 개 II〉 조각상 앞에 앉은 권희홍 보존과학자. 그 왼쪽에 보이는 기계는 현미경 카메라로, 보존 처리에 앞서 시행하는 과학적 조사에 활용한다.

실제 보존과학자의 하루는 어떻습니까?
저희는 하루 일과로 말씀드리기가 애매합니다. 연 단위로 일정을 짜거든요. 환자(작품)가 많으니까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8500점 정도 되는데, 5년에 한 번씩 전체 상태 조사를 거쳐 어떤 작품을 먼저 보존 처리할지 계획을 세웁니다. 연간 전시 계획과 전시 출품작 리스트 등도 참고하여 정합니다. 연간 계획 안에서 월별 계획과 주간, 하루 일과를 세부적으로 짠다고 보면 되죠. 보존 처리 과정이라고 하면 아까 〈플라워 트리〉를 예로 말씀드린 것처럼 작품 상태에 따라 물리·화학적인 방법으로 클리닝, 안정화 처리, 강화 처리, 색 맞춤 등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한 작품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각 과정 사이사이 시간이 필요한, 한마디로 기다림의 미학이기도 한 게 보존과학이라서요. 의사가 한 환자만 맡는 게 아니라 여러 환자를 동시다발적으로 케어하듯 저희도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보존 처리를 고대하는 작품이 있나요?
프랑스 조각가 장 뒤뷔페의 〈집 지키는 개 II〉(1969)를 대표적으로 꼽고 싶네요. 옆방에 있는데 가보실래요? (권희홍 보존과학자가 옆방인 대형 작품 보존 처리실로 안내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으로 이뤄진 3m가량의 커다란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이름은 ‘집 지키는 개’인데 말이죠.
생긴 건 전혀 개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죠. 그래서 이 작품을 3D 스캐너로 스캐닝한 다음에 도면처럼 쫙 펼쳐서 보려고요. 회화적으로 구현했을 때 작가가 의도한 대로 개로 보일지 어떨지. 단순히 복원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조사 과정을 통해 발견된 사실이 미술사적으로 자료가 될 수 있잖아요.
그렇게 펼쳐 보았을 때 개 모습이면 정말 소름 돋겠어요. 궁금해지네요.
이런 작품을 페인팅 조각이라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페인팅 조각이 앞으로 현대미술 보존과학에 중요한 부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집 지키는 개 II〉는 플라스틱 소재에 붓으로 페인트칠을 했는데, 페인팅 조각은 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이뤄졌고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초기작이에요. 페인팅 조각은 10~20년 정도 지나니까 손상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보존 처리 절차나 방법론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제 출발하는 단계라고 보면 돼요.
색깔만 맞춰 페인트를 덧칠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지 않으니까 보존 ‘과학’인 거겠죠.
첫 번째로 중요한 건 원인을 알아내는 거예요. 왜 이런 손상이 발생했을까? 저는 보존 처리 방법도 중요하지만 손상된 원인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음에는 손상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페인트칠을 했다 하더라도 그 페인트가 에폭시 페인트인지, 어떤 페인트인지 알아야 해요. 그리고 페인트는 배합 비율을 잘못하면 이렇게 (갈라진 부분을 가리키며) 갈라지게 돼 있거든요. 지금 이 작품에 대해서는 우선 해외 보존과학 기관들을 통해 자료 조사를 하고 있어요. 말씀드렸듯이 아직 페인팅 조각에 대한 보존 처리 사례가 많지 않은데 네덜란드의 한 기관이 장 뒤뷔페 작품을 보존 처리하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존 처리하는지 접촉해볼 예정이에요. 여기 붓털 같은 거 보이죠? (붓 칠 중에 빠졌을 걸로 추정되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의 털이 마치 호박 속 모기처럼 흰색 페인트 너머로 비쳤다.) 이걸 분석하면 작가가 당시 어떤 붓을 사용했는지도 알 수 있어요.
듣다 보니, 물리적인 이면뿐 아니라 작품의 뒷이야기도 주목하고 연구하는 직업이구나 싶습니다.
정말 재밌는 직업이에요. 거북목이나 디스크 같은 직업병만 빼면.
이번 전시에는 현대미술가들이 보존과학이라는 키워드에 상상을 더해 풀어낸 작품도 포함되어 있죠. 실제 보존과학자 시선으로는 어떤 작품이 가장 흥미로웠나요?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어느 하나 꼽기가 정말 힘들어요. 다들 보존과학에 대해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새롭게 해석도 해주셔서 보존과학자로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보존과학자 시선으로 얘기하자면, 예를 들어 류한길 작가는 손상된 작품을 보는 보존과학자의 심정을 찢기는 파음으로 형상화한 사운드를 선보였는데, 만약 저 소리를 보존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더라고요. 냄새도 마찬가지예요. 김지수 작가가 보존과학자의 체취와 보존과학실 냄새를 작은 유리병에 담은 설치물을 완성했는데, 저 냄새는 또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비물질의 보존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이것 역시 직업병이네요. 그래서 비물질의 현대미술을 어떻게 보존하면 좋을까요?
저라면 이 비물질성 작품이 설치됐던 공간, 환경을 자세히 기록해둘 것 같아요. 벽 색, 분위기, 공간감, 감각…. 작가와 인터뷰해서 실제 의도도 기록으로 꼼꼼히 남기고요. 세계적인 미술이론가이자 피렌체 대학교 역사 및 복원기술학과의 조르조 본산티 교수가 급변하는 현대미술과 그에 대한 보존과학의 향방에 대해 이런 말을 했어요. “무엇보다 미술 작품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미술 작품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복원할 수 없고, 한다고 해도 그것은 복원이 아닌 그저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다.”
 
현대미술 보존과학의 과정과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에 질문을 던지는 〈보존과학자 C의 하루〉전은 국립현대 미술관 청주 기획전시실에서 10월 4일까지 열린다.

Keyword

Credit

  • EDITOR 김은희
  • PHOTOGRAPHER 송시영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