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 슈타이얼이 국립현대미술관에 펼쳐 놓은 세계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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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이 국립현대미술관에 펼쳐 놓은 세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드디어 아시아 최초로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이 열린다. 그 어느 전시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봤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6.10
 
 
지난 달 13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선 프레스 비표를 목에 건 사람들이 전시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히토 슈타이얼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인 〈데이터의 바다〉 언론공개회가 열리기 전에 기자들이 먼저 와 작품을 예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기자는 약속된 시간 직전에 간담회장에 도착하며, 오히려 조금 늦는 편이 더 정상에 가깝다. 약속된 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공동 인터뷰가 열릴 국립현대미술관의 멀티프로젝트홀에는 어림잡아 50명이 훌쩍 넘어 보이는 취재진들이 모여 있었다. 팬데믹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 인원 중 최대였다. 히토 슈타이얼이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의 제작 발표회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이날 슈타이얼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공동 인터뷰가 진행되는 자리에서 한 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일어나 물었다. 그는 3개의 질문을 던졌고 그중 두 번째 질문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작가님은 전시란 무엇인가,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이런 미술관과 전시의 정체성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 저는 전시라고 하면 ‘하나의 사건을 일으켜야 좋은 전시다’라고 알고 있다. 전쟁과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전시란, 미술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이 말을 통역하는 과정에서 통역사가 작은 실수를 했다. 다른 말은 그대로 옮겼으나 ‘전시라고 하면 하나의 사건을 일으켜야 좋은 전시라고 알고 있다’라는 말을 ‘전시에는 사건 혹은 사고가 일어나야 좋은 전시라는 말이 있다’로 잘못 전달했다. 엉뚱한 말이다. 그러나 그때 이 엉뚱한 말을 들은 히토 슈타이얼의 표정이 반짝이는 걸 봤다. 마치 흥미진진한 놀잇거리를 발견한 듯 그의 눈이 반짝였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두 번째 질문의 아이디어는 정말 브릴리언트합니다. 제 새로운 작업을 위한 멋진 아이디어가 될 것 같습니다. 전시를 위해서 완벽한 사건을 어떻게 만들지, 시위 혹은 개입 혹은 스캔들을 어떻게 디자인할지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든 전시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 기자가 말한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는 전시’라는 것은 당연히 전시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될 만큼 센세이셔널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통역사의 작은 실수로 히토 슈타이얼은 다음번 전시에 인위적인 사건 혹은 사고를 계획해 일으켜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작은 사건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히토 슈타이얼의 가치는 그가 던지는 심오하고 복잡한 메시지의 무게에 있기도 하지만, 그의 고유한 매력은 그 메시지를 던지는 유머러스한 태도와 함축성에 있기 때문이다.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중 ‘미션 완료 : 벨란시지’의 전시 전경.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중 ‘미션 완료 : 벨란시지’의 전시 전경.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중 ‘미션 완료 : 벨란시지’의 전시 전경.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가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13년이다. 당시 그녀가 접한 작품은 〈안 보여주기 :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이었다. 배 학예사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 디지털이라는 장치를 몸에 장착하다시피 하고 인터넷이라는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런 세상에서 ‘본다’ 혹은 ‘보여진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업이에요. 거의 10년 전이니까 지금은 흔한 메시지이지만 당시에는 그 메시지 자체도 신선했고, 무엇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머러스한 방식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배 학예사의 말이다.
 
언론공개회에서 나를 포함한 수많은 기자는 배 학예사가 놀란 9년 전 작품 앞에 서서 다시 놀랐다. 심지어 나는 여러 번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사실 영상은 놀라울 것이 없었다. 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 중 동명의 에피소드에서 차용한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다. 데이터의 거미망이 집 안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숨길 수 있는가?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방법, 시야에서 안 보이게 하는 방법, 이미지가 되는 방법, 사라짐으로써 안 보이는 방법, 이미지로 이루어진 세상에 병합되어 안 보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글로 써두면 엉터리 같아 보이는 이 말들은 영상 속에서 함축적 유머와 결합하며 그 메시지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그 의미는 더욱 풍성해진다. 예를 들어 ‘시야에서 안 보이게 하는 방법’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중 히토 슈타이얼의 함축적이고 유머러스한 전달 방식을 보여주는 예는 ‘스크롤 하기’다. 긴 설명 없이 ‘시야에서 안 보이는 방법’이라는 자막이 스크롤되어 시야에서 사라진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재밌어요. 그러나 그 영상을 보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학습합니다. 디지털 시각장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며 그 장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인식되고, 또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요.” 배 학예사가 말했다. “슈타이얼의 작품을 통해 관객은 디지털 시각장에서마저 사라지는 무국적자라든지 데이터 위계라든지 가시성을 결정하는 해상도 등에 대한 매우 복잡하고 무거운 개념이나 메시지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부가 설명을 듣지 않고도 영상을 보고 쉽게 이해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워요.”

 
이번 전시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가가 발표한 텍스트와 작업을 정리한 전시로 3개의 대형 전시실에 5개의 챕터로 나뉘어 총망라되어 있다. 각각의 챕터들은 작가가 주창한 주요 개념 혹은 메시지를 둘러싸고 모여 있다. 첫 챕터 ‘데이터의 바다’라는 제목은 슈타이얼의 에세이 ‘데이터의 바다 : 아포페니아와 패턴(오) 인식’에서 따왔다.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 움직이는 자동차의 GPS 정보, 단말기에서 서버를 거쳐 다시 단말기로 전달되는 텍스트들이 클라우드 등에 모여 데이터의 바다를 이룬다.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우리는 잡음을 걸러내고 정보를 찾으려 발버둥 친다. 데이터의 잡음을 걸러내기 위한 무급 노동자로 알고리듬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고 이 인공지능이 해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세계를 인식하려 든다. 작가가 ‘인공 우둔함(Artificial Stupidity)’이라 지칭하는 주요 개념이 첫 번째 챕터의 〈이것이 미래다〉 등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두 번째 챕터인 ‘안 보여주기’는 앞서 언급한 동명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다. 디지털 시각성을 주로 다루며, 그 방식이 매우 직관적이라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세 번째 챕터인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에서 작가는 기술과 전쟁 사이의 내적 연관성에 주목하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재편된 세계상에 의문을 던진다. 작가의 유명한 텍스트 중 하나인 ‘면세 미술’을 바탕으로 한 작품 〈면세 미술〉이 이 챕터에 포함되어 있다. 제목에 사용된 면세(duty free)의 ‘duty’가 ‘의무’와 ‘관세’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네 번째 챕터인 ‘유동성 주식회사’는 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순환주의로 명명하고 사람, 자본, 사물, 정보, 이미지의 끊임없는 이동에 대해 말한다. 캡처되고, 압축되고, 전송되는 과정에서 픽셀이 풍화되어 조야한 상태에 이른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는 순환주의의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다섯 번째 챕터 ‘기록과 픽션’에서는 작가의 첫 영화 작업 〈독일과 정체성〉에서부터 〈비어 있는 중심〉 〈정상성1-X〉 〈11월〉 등에 이르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의 영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슈타이얼이 ‘다큐멘터리즘이란 무엇인가’ 등의 에세이에서 논한 다큐멘터리의 부확정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슈타이얼은 다큐멘터리가 객관적이어야만 기록의 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구성과 자료, 가상과 현실, 신화와 창작이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도 줄곧 섞여왔다고 말한다. 글로 설명하는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처럼 들리지만, 막상 가서 보기엔 마냥 흥미롭고 신기할 것이며, 무엇보다 재밌을 것이다. “작가는 AI 등의 알고리듬을 비판하면서도 알고리듬이나 아바타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지요. 〈소셜심〉 등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작가가 시뮬레이션화하는 작동의 원리가 빅브라더가 인간을 통제하는 원리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도구를 활용하면서 도구에 대한 성찰적 사고를 요하는 작품들이 전시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배명지 학예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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