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세는 없다
」스케줄 잡기가 진짜 어려웠어요.
그러게요.
우리가 촬영을 3개월 전에 했었나요? 〈모범형사〉를 보고 인터뷰하려고 기다렸는데, 3회 차부터 나온다면서요? 반전 캐릭터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홍보 영상을 안 본 시청자라면 충격일 수는 있어요.
영화 〈콜〉은 언제 개봉해요?
미정이에요. 하반기로 넘어갔는데 정확한 날짜는 안 정해졌어요.

재킷 8 by 육스. 셔츠 바구타 by 맨온더분.
올해 초에 〈스토브리그〉랑 단막극 〈남편한테 김희선이 생겼어요〉가 나왔고, 6월에 〈사이코지만 괜찮아〉, 7월에 〈모범형사〉를 시작했어요. 이런 작업량이 가능한가 싶어요. 힘들지 않아요?
작품이 없어서 쉬는 것보다는 안 힘들어요. 그래서 그냥 하는 거죠.
작업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남편한테 김희선이 생겼어요〉는 작년에 찍어둔 걸 올 1월에 방영한 거고요, 〈스토브리그〉는 지난겨울까지 찍었어요. 영화 〈콜〉에서 맡은 역할은 사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요. 그사이 〈모범형사〉를 다 찍었고요.
제가 〈콜〉 감독이면 오정세가 나오는 분량을 늘리고 싶었을 거 같아요. 찍던 시기에 〈동백 꽃 필 무렵〉이 터졌으니까요. 노규태는 뭐, 거의 신드롬이었죠.
〈콜〉은 역할이 좋아서 뛰어든 작품이 아니에요. 작품을 정할 때 역할이 탐나는 게 있고, 작품이 탐나는 경우가 있어요. 〈콜〉은 후자죠. 그 감독님의 〈몸값〉이라는 단편을 너무 재밌게 봐서 이 단편 감독(이충현 감독)이 입봉하는 상업 영화는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얼굴이 나오지 않고 뒤통수만 나오는 행인 1역이라도 참여하고 싶었어요. 회사에서 이충현 감독이 장편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게 뭐가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비중 있는 역할은 남은 게 없어서 단역으로라도 출연하게 해달라고 했죠.
그런 식으로 참여하게 된 작품이 또 있나요?
사실 〈모범형사〉도 〈콜〉만큼은 아니지만, 인물보다는 작품에 대한 매력이 더 큰 작품이었어요. 오종태(오정세가 맡은 역할)란 인물보다 〈모범형사〉라는 작품에 더 끌렸어요.
따지고 보니, 단역이든 뭐든 우리나라 상업 영화의 톱 감독들 작품에 거의 한 번씩은 다 나왔어요. 충전은 언제 해요?
작품 수가 많아서죠.(웃음) 저도 달린다고 달린 결과고요. 그런데 그해의 결과물을 보면, 많다고 생각한 해도 있고 아닌 해도 있어요. 재작년을 돌아보면, 그렇게 막 쉬면서 재충전한 것 같지도 않은데 드라마 한 작품밖에 안 했더라고요.
2018년요?
그해에 〈미스트리스〉라는 작품 하나밖에 없어요. 〈극한직업〉이 있긴 한데, 사실 두 신밖에 등장하지 않아요. 결과물이 많이 잘되어서 테드 창이란 인물이 크게 보이지만, 잘 보면 두 장면 나오는 역이거든요. 그해에는 〈극한직업〉에서 두 신, 드라마 〈미스트리스〉 하나였던 거죠. 올해처럼 결과물이 많이 나오는 해도 있고요.
테드 창이 두 신밖에 안 나왔군요.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는데.
그건 감독님과 작가님 덕이죠. 저도 그 작품이 이렇게까지 큰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테드 창은 거의 밈화되었죠. 신하균 씨와의 시너지도 대단했죠. 두 분이 맞붙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원래 좀 친하세요?
예. 〈런닝맨〉이란 영화를 같이 했었거든요.
노규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로코 정세’에 대한 요구가 하도 커서 소속사도 차기작에 고민이 좀 많았겠어요.
사실 큰 그림을 그리고는 있었어요. ‘로코로 탄력을 받았으니까 다음 작품은 이러이러한 작품을 해야지’라는 식의 큰 그림은 있었지만, 그게 우리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작품이 들어오면 그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노규태 역할 다음에 시나리오가 엄청 많이 들어왔을 거 같은데요.
노규태 다음이 〈스토브리그〉였죠.
이미 잡혀 있는 상태였나요?
찍던 중에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의 반응과 무관하게 들어왔어요. 권경민 역도 (테드 창이랑) 비슷한 점이 있어요. 〈스토브리그〉의 경민도 분량으로 보면 그렇게 크지 않아요. 한 회에 적게는 두 신, 많게는 다섯 신 정도 분량이었죠. 일반 대중에게 한창 노규태로 사랑받고 있는데, 배역이 작아진다는 느낌을 줄까 싶어 걱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스토브리그〉의 결과물이 너무 잘 나와서 분량은 문제가 아니게 되었죠.
입덕 계기를 보면 〈동백꽃〉의 노규태가 훨씬 많을 줄 알았는데, 〈스토브리그〉의 권경민 역이 압도적이었다면서요. 작품의 짜임새를 봐도 너무 좋은 작품이라 특히 야구 좋아하는 남자들이 좀 깊게 빠졌었죠. ‘이게 한화 이야기냐, 롯데 이야기냐’라는 얘기도 나돌았고요.
그런데 저는 막상 야구를 잘 몰라요.(웃음)
좋아하는 팀 없어요?
잘….
야구는 좀 유전이라 아버님 영향이 있을 텐데요.
아버지도 야구를 잘 모르셔서….

팬츠 발렌티노. 체인 브레이슬릿 디올 맨. 셔츠, 블루종, 슈즈 모두 에디터 소장품.
고향이?
경남.
경남이면 옛날 분들은 백 프로 롯데인데.(웃음)
이제부터 롯데로 가겠습니다.(웃음)
제가 유명인 롯데 팬 하나 늘렸다고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네요. 제 주변에 롯데 팬이 많아서요.
아, 롯데 팬이에요?
아뇨, 저는 두산이에요. 근데 사실 저는 모든 구단을 다 좋아해요. TV 틀었는데 게임하고 있으면 다 보는 스타일입니다. 노규태로 인기가 확 올라갔을 때 가족들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그때부턴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을 거 같아요.
그게 분명히 차이는 있었을 텐데. 일반 분들이 생각했을 때, 예상하는 차이까지는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그런 차이가 드러나도 그 차이를 못 느끼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음… 〈동백꽃〉 15, 16회 차를 찍을 때 스케줄이 꼬여서 전철 타고 이동한 적이 있었거든요. 보통은 노규태가 전철을 타면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하실 텐데, 한 시간을 탔는데도 편하게 왔어요. 신기했던 건 옆자리, 옆의 옆자리 승객들이 〈동백꽃〉을 보고 계시더라고요.(웃음)
비슷한 에피소드를 다른 인터뷰에서 본 거 같은데, 진짜였군요.
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했죠.
그 에피소드도 들었어요. 〈해피투게더〉에서 얘기한 에피소드 아닌가요? 영화 찍으러 촬영 현장에 갔는데 스태프가 막아서길래 “금방 가서 대사 하나만 치고 올게요”라고 하셨다는 얘기죠?
그게 두 번이에요. 〈해피투게더〉에서 얘기한 건 〈부당거래〉 촬영 때 현장에 못 들어갔던 얘기고, 〈동백꽃〉 촬영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15, 16회 차 찍을 때였으니까, 한창 핫할 때였죠.(웃음) 제 촬영은 없었지만, 숙소도 현장인 포항이라 숙소에 있다가 현장에 들렀거든요. 제작부 스태프가 막아서더라고요. “촬영 중이라 못 들어가십니다”라고 하면서요. 옆에서 매니저가 “이분 배우세요”라고 했더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라고 묻더군요.(웃음) 오정세라고 말했는데도 “아무리 배우라도 못 들어갑니다”라고 했어요. 물론 지원 나온 지역 스태프이긴 했어요.
어떻게 못 알아볼 수가 있죠?
보통 저를 알아보셔도 ‘와~!’ 이런 느낌이 아닌, 그냥 ‘어?’ 하고 속으로 알아보시더라고요. 분명히 알아보긴 한 것 같은데 티를 내거나 접근은 하지 않는 느낌.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안 서는 거 아닐까요? ‘오정세랑 비슷한데 오정세 맞나?’ 하고 의심하는 거죠.
그런 일이 진짜 많아요. 팬클럽 회장 친구를 데리고 시사회에 갔다가 경호원한테 쫓겨난 적도 있어요. 팬클럽 회장이랑 통화하다가 초대받은 시사회에 손님으로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보통 시사회장에는 배우들이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잖아요. 그쪽으로 들어가는데 막더라고요.(웃음) 혼자 그런 걸 겪는 건 괜찮은데, 팬클럽 회장이랑 같이 있으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팬클럽 회장이 당황하며 “어떻게 해요?” 하길래 “너도 익숙해져야 된다”고 말하고 멀리 돌아서 들어갔어요.(웃음)
근데 본인도 남을 잘 못 알아보잖아요.
저도 잘 못 알아보죠.
제가 석 달 전에 촬영할 때 분명히 말했거든요. “오정세 씨 다음 번에 인터뷰할 때는 반드시 구면으로 만나요”라고. 그런데 아까 들어올 때 저를 보는 눈빛이 완전 초면이더라고요.
(웃음) 저희 홍보 팀장님을 알아보는 데도 3년이 걸렸어요.
잘 못 알아보시는 건 익히 알고 있어서 장난을 좀 쳐봤어요.(웃음)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좀 재밌는 걸 발견했어요. 노규태(〈동백꽃〉), 문상태(〈사이코지만 괜찮아〉), 오종태(〈모범형사〉)로 이어지는 배역이 ‘태’ 자 돌림이더라고요. ‘태’가 영어로는 ‘form’ 내지는 ‘figure’죠. 작가들이 그냥 지은 건 아닐 텐데, 전형성을 구체화하는 힘 있는 배우로 캐스팅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모범형사〉 캐릭터는 어때요?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나쁜 사람에게 접근할 때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유명한 지강헌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강모 씨’를 생각해봐요. 당시 지강헌과 함께 탈주한 범죄자 강모 씨는 ‘도피 중 인질극’을 벌였지만 나중에 오히려 인질들이 “강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탄원서를 써줘서 감형되었어요. 2박 3일 동안 자신들을 인질로 잡고 있던 사람을 선처해달라며 법원에 탄원서를 낸 거죠. 강 씨는 인질들의 집에서 2박 3일을 숨어 지내고, 떠나는 날 아침밥을 먹고는 “잘 먹었습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며 “저희가 떠나면 신고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겼다고 하죠. 이 강 씨 같은 경우는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뭐나 정서를 봤을 때 이해가 가고 동정심이 생기는 입체적인 나쁜 인물이죠. 그런데 그 반대편에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나 정서, 열등감을 알더라도 ‘그냥 나쁜 사람’인 경우가 있더라고요. 오종태란 인물은 후자의 느낌으로 접근했어요. 물론 제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어요. 왜 오종태가 악행을 저지르는지 나름의 이유를 세워놨어요. 그러나 시청자들에게는 이 이유가 납득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목표였어요. 사람들이 “그럼에도 오종태는 개새끼야”라고 지탄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어요.
* 오정세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