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개콘> 폐지로 엿본 예능 프로그램의 '세대 적체 현상'

기울어지는 슬로프에 올라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BYESQUIRE2020.09.06
 
 

지독하게 꼬인 세대가 시작되고 있다 

 
ⓒ facebook.com/kbs2tvgagconc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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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오래 본 사람들만 나오네? 이게 무슨 복학생 잔치야?’ 지난해 말 예능 종가 MBC의 〈방송연예대상〉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고인 물이 좀 빠져줘야지 말이야. 방송을 서너 개씩 하면서도 비켜줄 생각을 안 하고. 피디와의 짬짜미가 잘 엮인 40~50대 예능인들이 중요한 자리는 다 꿰차고 있구먼’이라며 TV 앞에 앉아 방구석 여포처럼 떠들었다. 그해 MBC에서 방송연예대상 예능 개인 부문의 주요 상을 받은 사람을 나이순으로 정리하면 양희은(67), 이영자(52), 김구라(49), 유재석(47), 김성주(47), 송은이(46), 김숙(44), 전현무(42), 노홍철(40), 조세호(38), 성훈(36), 안영미(36), 김윤주(35), 박세진(35), 기안84(35), 박나래(34), 양세형(34), 유병재(31), 헨리(30) 등이다. 24살의 화사가 버라이어티 여자 부문을 수상했다. TV 주요 부문 중에서는 유일하다. 화사를 제외하면 20대는 산들이 〈산들의 별이 빛나는 밤에〉로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게 전부다. 군대에서 가끔 ‘군번이 꼬였다’는 얘기를 한다. 20명이 생활하는 내무반에 한 달 차이 선임이 4명쯤 쌓여 있는 상황. 상병을 달았는데 같은 분대에 막내가 안 들어오는 상황. 사번이 꼬이는 경우도 있다. 과장을 달았는데 같은 부서에 후배 직원이 없는 상황, 차장은 달았지만 같은 부서에 선배 차장이 두 명 더 있는 상황. 20대가 사라진 지난 연말 시상식을 보며 ‘시대 적체로 세대가 꼬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게 당연해 보였다.
 
얼마 전 길고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공개 코미디의 전설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가 사라졌다. 〈개콘〉의 마지막 회를 보면 후배 박진호가 선배 김대희에게 농담을 던진다. “김대희 씨, 21년 동안 날로 먹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머릿속에 세대 적체의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대사를 듣자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무수한 소문이 있었다. 개그계에선 선배들이 기획 회의 때는 들어오지도 않고 주요 역할은 전부 독점하면서 차려놓은 상에 밥숟가락만 얹는 게 일상화되었다는 소문이다. 그 와중에 지난 5월부터 JTBC에서 〈1호가 될 순 없어〉라는 예능이 방영 중이다. 박미선(53), 팽현숙(55), 최양락(58), 김지혜(41), 박준형(47), 강재준(38), 이은형(37), 장도연(35)이 출연한다. 코미디언 커플은 이혼한 케이스가 아직 없어 ‘1호가 될 순 없다’로 콘셉트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시청자의 눈엔 그 밥에 그 나물이 모여 자기들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 혹은 자신의 브랜드를 광고하는 걸로 비쳐진다. 시청률이 보여주는 바가 있다. 초기에는 ‘코미디언 커플은 이혼한 부부가 없다’는 화제성으로 인기를 몰아 3%대로 시작했으나 불과 3회를 넘기지 못하고 2%대로 하락했다. 최근 시청률은 2.1%다. 대체 왜 이런 고인 물 잔치가 계속되는 걸까? 어쩌면 이런 예능 프로그램의 세대 적체 현상이 〈개콘〉의 폐지에까지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공개 코미디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탈출하지 못한 노땅들이 밥숟가락만 얹으며 〈개콘〉이나 〈코미디 빅리그〉에 남아 있다 보니 점점 재미가 없어진 건 아닐까? 〈개콘〉이 사라지는 마당에 나이 든 코미디언들이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걸 지켜보자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채로 방송사에 발을 들이민 코미디언의 커리어 패스에서 중간 보스는 예능 프로그램 패널이고, 끝판왕은 MC다. 그런데 이 자리의 수는 정해져 있다. 공개 코미디에서 예능 패널로, 패널에서 MC로 제때 빠져주지 않으면 적체가 생기고 세대가 꼬인다. 최근에 이번 호 커버를 장식한 차은우 씨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20대 고정 출연자는 차은우 씨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차은우 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또래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내부 사람들의 시각은 달랐다. 〈개콘〉 전성기에 이름을 날리던 한 코미디언은 “그렇게 단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다”라며 “고인 물이 빠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장도연이나 박나래가 나오기 때문에 그 시청률이 유지되는 것이다. 시청자 눈에 익숙하지 않은 신인들만으로는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시청률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실 선배들이 밥숟가락을 얹는다는 얘기도 정확하지 않다. 깔아주는 역할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선 그나마 대중에게 익숙한 선배 개그맨들이 시청률 방어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개콘〉의 마지막을 함께한 김상미 CP는 다른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판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한다”라며 “정확한 데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산출할 수도 없겠지만, 예전 같으면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을 재능 넘치는 친구들이 유튜브 등의 채널로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있다”라고 밝혔다. 〈개콘〉의 대선배 중 한 명인 박성호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모바일 영상은 TV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더 많이 표현한다. 특히 지상파에서 개그하는 것은 ‘건강한 맛’일 수 있으나 ‘맛이 없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들의 답도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든 답이 될 수 없다. 〈개콘〉이 왜 폐지되었는지에 대한 답은 될 수 있지만, 왜 지금의 20대, 이토록 지독하게 꼬여버린 세대가 탄생했는지에 대한 답은 될 수 없다. ‘꼬인 세대가 있다’는 건 분명한 현상이다. KBS 공채 시험에 합격했지만 갈 곳을 잃어버린 세대가 있다. tvN의 〈코미디 빅리그〉에서 몇 년째 조연만 맡고 있는 세대가 있다. 새로 생긴 JTBC의 〈장르만 코미디〉에 10초라도 출연하고 싶지만 기회를 얻을 동아줄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세대가 분명히 있다. 꼬인 세대의 담론은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공대 졸업자가 아닌 이상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한 세대가 있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부모가 5억원쯤 물려주지 않는 이상 결혼 적령기에 맞춰 회사 통근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아파트를 사는 게 불가능해진 세대가 있다.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인 허지웅 씨는 약 13년 전인 2007년 한 패션지에 ‘20대가 사라졌다’라는 칼럼을 통해 울분을 토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를 인용했다. 20대 취업자의 과반이 비정규직이며, 그들 대부분이 85만원에서 150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는다고. 그때는 나도 2000년대의 20대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인 줄 알았다. 나뿐 아니라 모든 20대가 그랬다. 토익 800점을 겨우 넘기고도 삼성전자에 합격했던 엑스세대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니까. 최근에 만난 한 Z세대에게 〈88만원 세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88만원 세대가 그 엄청나게 꿀 빨고도 엄살 심하다는 그 세대 아닌가요?”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부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세대들은 아마 포스트코로나 세대로 불릴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세대는 Z세대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Z세대가 그 엄청나게 꿀 빨고도 엄살 심하다는 그 세대 아닌가요?” 기울어지는 슬로프에 올라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WHO’S THE WRITER?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