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페라리 F8 트리뷰토를 직접 몰아봤다

<에스콰이어> 300호 특집을 기념하기 위해 300km/h까지 달려보고 싶었다. 300에 300을 더해 600마력이 넘는 차를 모았다.

BYESQUIRE2020.09.07
 
 

BORN TO BE 300 

  

Aston MartinㅣDBS Superleggera

 
파워트레인 5204cc V12 트윈 터보, 8단 자동 최고 출력 725마력 최대 토크 91.8kg·m 0-100km/h 가속 3.7초 0-200km/h 가속 10.3초 가격(VAT 포함) 3억원대
 

강병휘 Final Speed 273 km/h

상대성 이론
‘빠르다’는 개념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토끼를 잡는 치타와 치타를 잡는 포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전속력으로 달리는 치타는 시속 100km를 넘나들지만, 포수의 손을 떠난 총알의 관점에선 치타나 토끼나 멈춰 있는 것과 다름없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시속 200km로 달리다가 시속 60km로 속도를 줄이면 창밖 풍경이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려도 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Aston MartinㅣDBS Superleggera

Aston MartinㅣDBS Superleggera

애스턴마틴에서 맏형 역할을 맡고 있는 DBS 슈퍼레제라의 특별함은 앞서 말한 ‘속도의 상대성’을 누그러뜨린다는 점이다. 어느 것과 비교해도 느리다고 할 수 없을 이 차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고작 3.7초 걸린다. 거기서 6초쯤 더 엔진을 재촉하면 시속 200km의 차원으로 이동한다. 725마력이라는 출력도 무시무시하지만 91.8kg·m에 달하는 엔진 회전력은 이미 이 세상 텐션이 아니다. 엔진 블록이 뒤틀리지 않고 버티는 게 신기하다.
아무리 담력이 좋다 해도 이만한 가속력에는 으레 압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슈퍼레제라는 다르다. 앞서 잠시 타본 트리뷰토와 비슷한 페이스로 맹렬하게 가속했음에도 편안했다. 1.8톤을 받치고 있는 넉넉한 휠베이스가 좌우 흔들림을 든든하게 버텨주기 때문이다. 고속으로 빗물이 고인 노면을 지나갈 때 초광폭 타이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수막 현상의 두려움도 들지 않는다. 슈퍼레제라는 빠르게 달릴수록 타이어를 땅바닥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힘이 작용해서 실제 땅바닥에 닿는 타이어의 면적을 더욱 넓게 만들어준다. 자세히 살펴보면 옆 창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공기 통로가 숨어 있다. 이 바람길은 뒷바퀴 위쪽을 지나 트렁크 위를 통과해 자그마한 리어 스포일러 근처에서 빠르게 기류를 뿜어낸다. 앞바퀴 뒤쪽에 자리한 아가미 형태의 공기구멍 역시 유사한 임무를 수행한다. 모두 1초에 90m까지 이동할 수 있는 슈퍼레제라의 고속 안정성을 더해주는 장치다.
 
Aston MartinㅣDBS Superleggera

Aston MartinㅣDBS Superleggera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속도가 빨라지면 공기저항과의 ‘밀당’이 시작된다. 요즘은 150마력 내외 출력의 일반 양산 차도 어렵지 않게 시속 200km에 도달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 빠르게 속도를 올리려면 기하급수적인 출력이 필요하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건 마치 투명한 공기의 벽을 뚫고 달리는 것과 같다. 슈퍼레제라가 시속 337km의 최고 속도로 달리며 공기의 벽을 박살내야 할 때 받는 부담은 시속 100km와 비교해 11배가 넘는다. 공기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슈퍼레제라의 V12 엔진 덕분에 초고속 영역에서도 공기의 벽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차라면 시속 200km도 밟기 힘든 구간에서 이 차는 시속 300km에 도달하고도 남는다. 럭셔리 GT 카를 표방하지만 스로틀을 완전 개방하면 4500RPM을 기점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12개의 실린더가 순차적으로 만들어내는 폭발음은 흡사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의 협주곡 같다. 하지만 기어를 올리면 같은 속도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8단 기어에서 고작 2500RPM으로 시속 200km를 유지할 수 있다. 참고로 트리뷰토가 최고 단수로 같은 속도를 내려면 4500RPM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날 트랙에서는 좀 달랐다. 젖어 있는 노면과 안전 제일주의를 강조하는 에디터 탓에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기록한 슈퍼레제라의 비공식 기록은 시속 273km. 그러나 트랙을 오가며 ‘V12 엔진은 불필요한 과거의 유산’이라는 내 생각은 무너져 내렸다. 슈퍼레제라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일은 오디오 볼륨을 돌리는 것만큼 간단했다. 비단 출력이 월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느 빠르기로 달려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빠르게 달릴수록 운전석에서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마저 든다.
 
Comments
류민 생각보다 더 진지한 스포츠카다. 그런데 성능을 온전히 끌어내기 쉽지 않다.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최고 속도에 도전하는 과정이 매우 짜릿할 것이다.
박호준 두 얼굴의 사나이 같다. 한없이 럭셔리 GT 카 같다가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성격이 돌변한다.
이충섭 초반부터 힘이 넘친다. 트리뷰토보다 부드럽고 레이스보다 재밌다. 미천한 운전 실력으로 차가 가진 성능을 반의반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게 한이다.
 
WHO’S THE WRITER? 강병휘는 카레이서이자 자동차 칼럼니스트이다.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입담으로 방송, 잡지, 유튜브를 넘나들며 자동차 관련 콘텐츠 제작에 힘쓰고 있다.
 
 

 
 

Ferrariㅣ F8 Tributo 

 
파워트레인 3902cc V8 트윈 터보, 7단 자동 최고 출력 720마력 최대 토크 78.5kg·m 0-100km/h 가속 2.9초 0-200km/h 가속 7.8초 가격(VAT 포함) 3억원대
 

박호준 Final Speed 277 km/h

값비싼 필살기
“어제 양양고속도로에서 시속 230km까지 밟았어. 빨리 달리니까 너무 재밌더라!” 이 짧은 문장에는 잘못된 표현이 두 군데나 있다. 첫째, 고속도로에서 시속 230km로 달리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둘째, 빨리 달려서 재밌는 게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속도는 재미와 상관관계가 낮다. 시속 60km도 빠르다고 느끼던 초보 운전 시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이고 속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속도가 빠른 차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속도가 차의 성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속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빠른 속도로 달려서 재밌었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3번 코너에서 실수로 한계 속도를 초과해 진입했는데도 차가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를 일으키지 않고 잘 버티더라. 횡가속도가 심하게 걸려서 정신이 아득해지긴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최대 토크가 낮은 RPM부터 발휘되는 덕에 중저속에서의 가속이 답답하지 않더라고.” 무생물인 차와 호흡을 맞춘다는 비유가 생긴 이유다.  
애석하게도 전문 드라이빙 교육을 받지 않은 대부분의 운전자는 이런 경험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명 ‘칼치기’라고 부르는 행위를 일삼으며 그릇된 운전 재미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쥐고 있는 운전대가 페라리 F8 트리뷰토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트리뷰토는 어설픔을 넘어 미천한 수준의 운전 실력일지라도 앞서 말한 ‘호흡’을 실현시켜주는 필살기 같은 존재다.
 
Ferrariㅣ F8 Tributo

Ferrariㅣ F8 Tributo

트리뷰토의 효과는 막강했다. 최고 출력 720마력, 최대 토크 78.5kg·m를 쏟아내는 V8 트윈 터보 엔진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200km까지 7.8초 만에 도달한다. 말이 7.8초지 실제로는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을 때 뒤통수가 헤드레스트에 밀착되기 바쁘다. 정신 차려보니 시속 200km라는 표현이 알맞다. 트리뷰토는 3단에서 시속 100km, 5단에서 시속 200km에 도달한다. 하지만 시속 200km에 만족할 거면 트리뷰토를 불러내지도 않았다. 속도를 더 높였다. 시속 230km를 넘기자 축지법처럼 땅을 접어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1초당 65m를 달리는 셈이니 그럴 법도 하다.
피드백도 강렬하다. 일반 승용차가 주는 느낌이 100원짜리 넣고 하는 문방구 앞 오락기 수준이라면, 트리뷰토는 VR 기기를 착용하고 상하, 전후, 좌우로 움직이는 6축 모션 시뮬레이터다. 머릿속으로 예상한 움직임 그대로 차가 반응한다. 시속 200km로 달리던 중 돌발 상황을 가정해 급 차선 변경을 해도 양쪽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버티며 중심을 잃지 않는다. 최적의 기어 변속 타이밍은 운전대 윗부분에 탑재된 RPM 인디케이터를 참고하면 된다. 페라리는 트리뷰토에 포뮬러 1에서 갈고 닦은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을 잔뜩 집어넣었는데, 이전 세대 488 GTB에는 없었던 전면부의 S 덕트를 비롯해 인터쿨러, 리어 스포일러, 범퍼 디자인까지 새롭게 다듬었다. 덕분에 속도를 높일수록 차가 지면에 달라붙어 안정적이다.
 
Ferrariㅣ F8 Tributo

Ferrariㅣ F8 Tributo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페라리에도 한계치는 존재한다. 비 오는 날 1.5km의 직선 주로에서 드래그 레이스하듯 달렸을 때 내가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는 230km였다. 이날 트리뷰토로 달린 최고 기록은 강병휘가 냈다. 그는 277km로 달렸다. 강 선수와 나의 차이는 탈출 속도와 담력에서 나왔다. 곡선 주로에서 미리 속도를 120km까지 올려놓고 직선 주로에 진입해도 시속 260km 이상은 무리였다. 만약은 있다. 비가 내리지 않고 직선 주로가 1km만 더 길었다면 나 역시 트리뷰토로 시속 300km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날 모인 다른 차들 모두 막강한 퍼포먼스를 자랑했지만,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빠르게 달리면서도 ‘그래도 아직 안전하다’고 느낀 차는 트리뷰토뿐이다.
 
Comments
강병휘 맹렬한 가속으로 태코미터 바늘이 비틀어지는 과정도 놀랍지만, 300에 가까운 숫자가 순식간에 0을 향해 수렴하는 과정이 더 놀랍다.
류민 이전보다 한층 완벽해졌다. 더 빠른데, 더 편안하다. 핸들링은 물론 최고 속도에서의 움직임도 빈틈이 없다. 페라리는 자동차가 아닌 예술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이충섭 물아일체의 경지. 안전하게 빠르다는 말은 트리뷰토에 가장 잘 어울린다.
 
WHO’S THE WRITER? 박호준은 차는 타봐야 안다고 믿는다. 잠은 포기해도 시승은 포기 못 한다. 〈에스콰이어〉에서 자동차 칼럼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