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ing for Nostalgia
」세기말의 재림은 TV와 음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향수는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강렬하게 우리를 자극할 수 있다. 2020년에 출시한 모바일 게임들이 ‘향수’를 셀링 포인트로 들고 나온 이유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지나간 시대의 명작들이 대거 새로운 옷을 입고 시장에 등장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4개의 게임을 뽑았다.

TAKEHIKO INOUE/I.T.PLANNING, TOEI ANIMATION
광고부터 자극적이었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라고 노래하는 박상민의 목소리가 흐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슬램덩크 모바일을 다운로드한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니까. 게임을 켜자마자 다시 익숙한 선율이 흐르고, 화소 깨진 영상이 전두엽을 자극한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재해석을 거부한다. 여타의 올드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작품들과 다르게 원본을 그대로 제공했다. 슬램덩크의 애니메이션 라이선스를 받아 게임 인트로를 만들었고, 스토리 모드 역시 원작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신의 한 수는 원작의 성우를 기용했다는 점이다. 잊은 줄 알았던 박상민의 목소리가 내 기억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것처럼,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애니메이션을 보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게임에선 만화의 중요 캐릭터인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외에도 이달재, 안영수처럼 비중이 적은 캐릭터의 개성을 살렸다. 한 차원 입체적인 흐름이 안온한 향수에 흥미를 더한다. 게임은 보통 3 대 3 대전 모드로 진행하며 모바일 게임답게 조작법이 단순한 편이다. 위치 선정과 타이밍, 슛의 정확도가 중요한 농구 게임이지만 캐릭터 고유의 스킬로 실력의 차이를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다. 특정 캐릭터를 사용하려면 돈을 써야 한다. 그러나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라서 플레이어의 실력과 현질(돈으로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사는 것)로 얻을 수 있는 캐릭터의 편차가 적당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는 평이다.

세계에서 제일 오랜 기간 동안 서비스한 MMORPG가 뭔지 아는가? 바로 대한민국 2030세대의 추억 한편에 자리 잡은 ‘바람의 나라’다. 모바일 게임업계에 몰아치는 ‘바람의 나라: 연’의 바람이 거세다. 정식 출시 일주일 만에 철옹성 같던 리니지 형제의 자리를 밀어내고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2위를 기록했다. 노림수도 분명하다. 첫 화면부터 그 시절 그래픽의 향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술은 이미 아몰레드 시대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바람의 나라’는 1998년 원작의 도트 그래픽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도트 그래픽은 일일이 픽셀의 색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일찌감치 일러스트와 렌더링 방식에 밀려난 기술이지만, ‘바람의 나라: 연’에서 느끼는 향수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를 위해 넥슨은 자사의 개발자 외에 도트 그래픽을 다루는 20대 엔지니어를 수급해 함께 게임을 개발했다고 하니 칭찬받아 마땅한 영리함이다. 도트 그래픽을 사용했다는 건 이 게임을 돌릴 수 있는 기기의 최소 그래픽 사양이 낮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래된 모바일 기기로도 무리 없이 플레이할 수 있다. 뉴트로의 핵심도 잘 파악했다. 뉴트로는 절대 레트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람의 나라: 연’은 원작과 사냥 방식이 동일하지 않다. 조작법은 단순한 반면 여러 스킬을 같은 조작법에 매칭해 플레이어가 스킬을 배치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도록 했다. 한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오래 플레이하는 게임의 가장 큰 적은 지루함이다. 원작의 단순성을 버리고 훨씬 다양한 요소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 지루함을 막았다. 또한 그래픽의 큰 틀은 원형을 따랐지만, 몹들의 움직임은 매우 현대적이다.

영화든 게임이든 1000만을 찍으면 ‘국민’을 붙일 수 있다. ‘포트리스 배틀로얄’의 원작인 ‘포트리스 2+’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첫 국민 게임이다. 1999년에 출시한 후 최초 1000만 회원이라는 기록을 세워, 현재 상용 중인 PC방 유료화 비즈니스의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포트리스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인 ‘포트리스 배틀로얄’이 지난 8월 정식 론칭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작과 가장 큰 차이는 ‘배틀로얄 모드’다. 최근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모드로 7분 동안 20명이 경쟁해 마지막 1인을 가리는 것이다. 이전 포트리스 시리즈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기존의 헤비 유저를 신규 유저가 이길 수 없다는 점과 관리 부실이었는데 ‘포트리스 배틀로얄’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배틀로얄 모드는 20명 각자가 단독으로 싸우고 기존 턴(순번)제 방식이 아닌 실시간으로 공격과 이동을 같이 하는 방식이다. ‘좁혀오는 자기장’ 등 모든 플레이어에게 적용되는 게임적인 변수가 많아 아무리 고수라도 안심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하수와 고수의 실력 간극을 좁혀 박진감을 더한 셈이다. ‘포트리스 2+’ 이후 공개한 이 게임 시리즈의 완성도가 아쉬웠던 포트리스 팬이라면 반드시 플레이해볼 것.

‘바람의 나라: 연’,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가디언 테일즈’를 비롯해 앞으로 나올 ‘던전앤파이터 모바일’까지 넥슨의 2020년 하반기는 ‘IP의 복귀’가 최대 중점이다. 콘텐츠 회사가 당장의 이익에 앞서 IP를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는 4개의 게임 중 가장 뉴트로에 가깝다. 새 시대에게 먹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존 카트라이더의 여러 요소를 가져왔으며 그래픽은 오히려 PC보다 좋다. 다른 올드 IP 게임이 3040세대에 향수를 자극하는 것에 그쳤다면, 오히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의 유저는 새로운 유저인 10대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기본적인 방향키와 드리프트, 부스터라는 아주 단순한 조작법이지만 드리프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종류가 나뉜다. 카트라이더를 오랜만에 접하는 유저라면 드리프트가 심오해졌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예전의 카트라이더는 드리프트 직후 순간 부스터를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에선 커팅 드리프트, 쇼트 끌기, 쇼트 커팅 게이지 등의 드리프트 테크닉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조작법을 익힐 수 있지만 세심한 플레이를 위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유료 카트가 존재하긴 하지만 실력을 기반으로 승부해야 한다. 한 게임당 플레이 시간이 3분 안팎으로 가볍게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