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

처음 시계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고백

50년 동안 시계와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남자의 고백.

BYESQUIRE2020.09.29
 
 

MY FIRST WATCH 

 
 
너무 정장용은 아니면서, 또 너무 화려하지도 않아야 한다. 거대한 쇳덩어리나 IT 페티시 혹은 기능투성이가 아니어야 하며, 해크니를 지나는 야간 버스에서도 안전하게 착용할 수 있는, 약간 다르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그런 시계.
 
남성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잡지 지면에 털어놓을 수 있는 최악의 고백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시계를 사본 적 없이 50세가 되어버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 번도 그런 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 초반에는 저렴하고 유쾌하며, 액정 화면에 고무 스트랩이 달린 카시오 F91W를 쭉 차고 다녔다. 훗날 회교도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CIA가 이 물건을 ‘테러리스트의 시계’라고 규정하는 바람에 꺼림칙한 명성을 얻기도 했다. 브릿팝이 아직 인기 있던 시절에 그 시계가 망가져버린 뒤 내 손목은 텅 빈 상태였다. 그동안 온 천지에 디지털 시계가 들어앉았다. 전화기, 랩톱의 모서리, TV와 라디오, 공항의 안내 전광판 한쪽 구석에 숨은 작고 무자비한 디지털 폭군은 인생의 모래알 하나도 낭비해선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해대며 시간을 소중한 ‘상품’으로 바꾸어놓았다. 눈만 돌리면 어디서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으니 따로 시계가 필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요 몇 년 새에 근질거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에스콰이어〉에서 ‘진정한 스위스의 핸드메이드 시계’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시계는 없었지만 취재를 위해 뭘 물어봐야 하는지는 아는 사람이니까. 스위스의 시계 공장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태키미터와 투르비용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장인 정신과 시계에 얽힌 수천 명의 인생, 상상력, 재주, 그리고 시력을 바치게 만드는 순수하고도 엄청난 집요함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몇 줄의 코드로 수정할 수 있는 문제를 보다 정교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 해결책이란 그저 숫자를 빠르고 무미건조하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엔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만큼 정교한 물리학에 대한 직관적이고 인간적인 통찰이 필요했다. 나는 기계식 무브먼트와 복잡한 로맨스, 그리고 특정한 시계가 그 형태와 헤리티지를 통해 표현하는 절묘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시계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기능이 시간을 알려주는 것임을 이해했고, 이 모든 것이 감탄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다시 젊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난 내가 여러 해 글을 쓰며 모은 책과 음반과 잡다한 소모품을 사랑하지만, 아름답게 설계되어 고유의 사물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를 지닌 물건은 매우 드물다. 예를 들면 바이닐인지 양장본인지보다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음악과 글이 더 소중하다. 이제 음악은 사실상 무료이고, 지금의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전자 제품 역시 내일의 쓰레기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게 될까? 후세에는 무엇을 전하게 될까? 애플 워치가 등장했을 때 내가 최신 애플 제품을 더는 원치 않는다는 무쇠 같은 확신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태생적으로 노후화할 수밖에 없으며 3년이 지나면 바꿔야 하는 물성의 주기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다른 것, 그 시간의 주기 밖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원했다. 내겐 여전히 시계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시계를 원하기 시작했다. 욕망은 항상 필요보다 강하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적당한, 그러니까 단순한 일상 도구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개념과 조화가 정수를 이룬 ‘제대로 된 첫 시계’를 어떻게 살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라는 개인에 대해 생각했다(절대로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감정 표현이 적고, 영국 북부에 사는 저널리스트이며, 음악은 EDM 장르를 좋아하고, 고급 맥주와 정치 논쟁, 옛날 사이언스 픽션을 즐긴다. 내 옷장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무미건조함’이다. 결혼식, 장례식, 그리고 법정에 출석할 때만 정장을 입는다. F-15 스트라이크 이글을 타고 마하2의 속도까지 추진시켜서 페르시아만 위를 저공비행하는 상상 따위는 절대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일단 스스로를 톱건이나 F1 드라이버로 상상하게 만드는 시계 브랜드를 마음속에서 전부 지웠다.
 
예산을 생각해보았다. 1000파운드(약 1백54만원)가 진짜 최소일 것이다. 아마 최대 5천 파운드(약 7백70만원)까지? 하지만 첫 시계에 5천 파운드를 쓴다는 건 사실상 1만 파운드(약 1천5백40만원)짜리 그레치 커스텀 기타를 들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초보 기타리스트나 다름없다. 아니면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마세라티를 몰고 나가 박살 낸 인스타그램의 부자 꼬맹이이거나.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중요한 요소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스위스나 독일제, 확실한 기계식. 골드가 아닌 스테인리스스틸이나 티타늄제 소재. 클래식한 1960~1970년대 외관. 크로노미터, 세계 시간, 가이거 계수기 등은 필요 없고 다이얼이 가득 채워지지 않은. 절제되고 믿음직한 브랜드, 명품의 스핀오프가 아닌 시계 전문 메이커. 너무 정장용은 아니면서, 또 너무 화려하지도 않아야 한다. 거대한 쇳덩어리나 IT 페티시 혹은 기능투성이가 아니어야 하며, 해크니를 지나는 야간 버스에서도 안전하게 착용할 수 있는, 약간 다르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그런 시계.”
 
조건을 정하고 나자, 내가 절대로 시계를 차지 않는다는 걸 아는 내 친구와 동료들이 갑자기 시계를 사겠다며 돌변한 나를 두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속마음: 튀지 않는 것을 제대로 고르면 아마 진정한 시계 애호가는 알아봐주겠지?) 아내에게 이 목록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내게 운석, 월석 혹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무기를 녹여 만들거나 〈스타워즈〉에 나오는 은하제국 해군의 기체인 ‘타이 파이터’처럼 생긴 시계를 사지 말라고 했다. 다행히도 데본 웍스의 스타워즈 워치는 2만 8천5백 달러라서 어차피 가격에서 탈락이었다. 온라인의 세계는 어떨까? 먼저 시계 애호가 포럼에 익명으로 가입했다. 미국에서 설립한 호전적이고 과격한 워치로드라는 시계 애호가 포럼이었다. 내 생각을 대략 말해줬더니 그들은 1천 파운드 이하의 예산에 맞게 중고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나 씨마스터 시리즈(‘자체 무브먼트를 사용한 스와치 합병 이전의 제품’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또는 스미스의 에버레스트 라인을 추천했다. 구글을 검색해 교차 검증하고 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행히도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 그는 나보다 몇십 배 더 멋지다. 내 친구인 페레두르 엡 귀네드는 드럼&베이스 그룹인 펜듈럼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또 사이클 애호가로 매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웨일스의 방송국인 S4C를 위해 실황중계를 한다. 연락할 때마다 그는 늘 마이애미나 아이슬란드 아니면 네덜란드에 있거나, 3만 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흥청망청하고 열광적인 록 무대를 펼치거나, 모음이 너무 적게 섞인 웨일스어로 ‘펠로통’(사이클 용어로 선수 집단이라는 뜻)의 뉘앙스를 설명하고 있다. 설명이 부족했다면, 페리(그의 애칭이다)는 시계광이기도 하다.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그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그는 오이스터 스틸 스트랩이 달린 1967 롤렉스 서브마리너 5513 200m, 베젤에 검은색 다이브-타임 게이지가 있는 롤렉스의 정수를 차고 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시계일 것이다. 페리의 시계는 전문가들이 추구하는 그윽한 멋을 지니고 있다. 돌출된 시간 표시는 예전에 흰색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은근한 오렌지빛 갈색으로 익었다. 그의 시계는 멋진 물건이다.
 
“이건 매일 차는 시계예요.” 그는 아주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난 항상 시계를 좋아했어요. 몇 년간 수집하면서 이 물건을 오랫동안 생각해오다가 결국 이렇게 정했어요. ‘그래, 사자!’” 이 특별한 에디션은 저 유명한 제임스 본드 롤렉스다. 조지 레이전비가 이 시계를 〈007과 여왕〉(1969)에서 착용했고, 〈007 죽느냐 사느냐〉(1973)에서 MI6의 수장인 M이 007이 납세자의 돈을 근사한 시계 제작에 낭비한다고 한탄하는 동안 로저 무어가 이 롤렉스를 자석화시켜 그의 접시에서 티스푼을 낚아채기도 한다. 나중에 본드가 이 시계로 미스 카루소의 드레스 지퍼를 내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페리는 방수 기능이 필요할 때 이 시계를 차기도 한다.
 
“난 무대에서 땀을 아주 많이 흘려요.” 페리가 말했다. “제대로 방수가 되지 않거나 가죽 스트랩이 있는 시계는 바로 망가지겠죠. 그래서 이 시계는 단순한 사치품은 아니에요.” 그는 포크로 자신의 시계를 다소 호전적으로 두드린다. “이건 필수 장비예요.” 페리는 이 소중한 아이템이 내리막길이나 글래스턴베리의 무대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을 걱정하진 않을까? “전혀.” 그가 말했다. “시계를 소유하되 차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죠? 이건 내 자긍심이고 기쁨이에요.” 언젠가 공연 도중에 그는 자신의 기타 네크를 가로질러 롤렉스를 내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망할! 근사해 보이잖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페리의 첫 번째 시계는 생일 선물로 받은 검은색 24시간 다이얼 페이스의 밀리터리 스타일 타이멕스였다. “아직도 난 그 시계를 찾느라 이베이를 뒤져요.” 당시 그는 여덟 살이었다. “그때 시계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어요. 하지만 그런 관심은 타고났을 거예요. 할아버지는 크고 작은 시계의 광이었거든요. 휴대용 시계를 전부 분해해서 부품을 늘어놓고 다시 조립하곤 했죠. 할아버지는 시계에 빠져 있었어요. 나처럼 말이죠.”
 
페리는 학창 시절에 스와치와 카시오를 거친 뒤 빈티지 스위스 시계에 끌리게 되었다. 1968년식 오메가 씨마스터 드 빌이 그가 처음으로 구입한 시계다. 오메가의 고전인 씨마스터의 극도로 우아하고 약간은 장식적인 버전(〈매드맨〉 시즌 5에서 돈 드레이퍼가 드 빌을 착용한 모습이 나온다)이다.
 
“그건 예술 작품이에요.” 페리의 말이다. “몇 년 동안 갖고 있었지만 수리할 일이 전혀 없었죠.” 드 빌은 페리가 수집한 60개의 시계 중 첫 번째였다. 그중에는 1915~1918년에 나온 오메가 회중시계도 있다. “그건 커요. 지름이 50mm인데 환상적이죠.” 그는 5~6년 전에 시계 구입을 그만두었다. “더는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궁극의 시계를 찾는 끝없는 모험을 중단해야 했죠. 다행이에요.” 공교롭게도 시계 탐색을 그만둔 시기는 그가 결혼할 즈음이었다. 그는 어쩌면 내 시계 고르는 걸 도와주며 런던을 돌아다니는 게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묻자 “어…”라며 그는 답을 얼버무렸다.
 
난 내가 찾는 물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고전적이며 유행을 타지 않고, 호화롭거나 기능이 과다하지 않고, 독일 혹은 북구적 외관이면 좋고, 약간 흔하지 않은 것. 하지만 페리가 그런 요소를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서 놀랐다. 그게 나와 어울린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당신과 오래 알고 지냈죠.” 그가 말했다. “당신은 1950~1960년대 룩에 빠져 있어요. 아주 깔끔하면서도 약간 오래된 것.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더 스미스, 더 스페셜스, 뉴 오더, 펫 숍 보이스, 크라프트베르크, 〈닥터 후〉의 지난 시리즈 등등. 그렇게 분명한가? 그렇다, 분명하다.
 
나는 바우하우스를 언급했다. 바우하우스는 뭐랄까, 디자인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자기 취향이 뭔지는 잘 아는 사람의 1차 피난처다. 페리는 스마트폰으로 융한스 막스빌의 라인업을 보여주었다. 1962년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자 스위스 디자인의 원로인 막스 빌이 디자인하고 최근에 재발매한 이 시계는 아름답고 미니멀하다. 다이얼은 부정적인 공간을 누그러뜨리는 넓게 펼쳐진 평원 같고, 크리스털은 아이폰의 모서리처럼 우아한 곡선을 이룬다. 하지만 다이얼에 실린 크로노스코프는 다소 위압적이었다. 그렇다. 나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이 충분히 ‘휘게(hygge)’하지 않다는 점이 걱정되었다.
 
페리가 그다음으로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한 시계는 오리스의 스테인리스스틸 다이버인 식스티-파이브 오토매틱(스테인리스스틸 스트랩의 경우 1천5백50파운드)으로, 스위스 홀슈타인에 있는 시계 회사가 1960년대에 만든 다이버 워치의 복각판이다. 검은색 다이브-타임 베젤, 1960년대 모더니스트 스타일로 재현한 검은색 다이얼의 밝은 오렌지색 아라비아 숫자 등이 추천 요소다. 고전적이라기보다는 솔 배스나 〈더 프리즈너〉(1960년대 영국에서 방영한 TV 시리즈)의 느낌에 가깝고, 절제된 블루 노트의 커버 아트가 생각나는 시계다. 소매 밑으로 슬쩍 드러나는 이 시계의 오렌지색 숫자가 미팅 분위기를 미묘하게 바꾸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게다가…” 페리가 말했다. “나는 이 시계를 꽤 좋아해요.”
 
그래서 우리는 시계를 구경하러 갔다. 맨 먼저 뉴 본드 스트리트에 있는 IWC의 부티크를 찾아갔다. 독일의 영향을 받은 스위스 북동부의 시계 회사가 최고급 호텔과 모더니스트의 도시 주택을 섞어놓은 듯한 쾌적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공간에 시계를 전시한 곳이다. IWC에서 그나마 간소한 라인은 여러 개의 크라운, 다이얼, 측정 기능 등 불필요한 요소로 정신을 사납게 만들지 않으면서 뚜렷한 남성성을 유지하고 있다. 차분하고 우아하며 ‘조금 다른 무언가’라는 항목을 확실히 충족시키는 시계다. 사람들이 “그 시계는 뭐예요?”라고 물으면 내가 고상한 척하며 대답하는 속물적인 장면을 상상했다. “아, 이건 IWC예요. 들어본 적이 없나 봐요. 뭐, 물론 그렇겠죠.”
 
IWC의 귀빈실에서 음료를 마시는 동안 굉장히 유쾌한 매니저인 구프란 아메드가 우리에게 IWC의 트레이드마크인 대형 다이얼을 지닌 포르투기저를 보여준다. 1939년에 처음 제작했고 1993년에 창립 125주년을 맞아 복각했다. 정교한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인 포르투기저는 대형 캘리버 위에 놓인 일력과 월력이 있는 2개의 보조 다이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명작이지만, 가격이 6천2백50파운드부터 시작해 나 같은 초보자에게는 너무 비싸다.
 
포르토피노 오토매틱(3천5백90파운드, 레더 밴드)은 내가 생각하는 시계에 더 가깝다. 순수한 40mm 사이즈 다이얼 위에 은으로 도금된 로마 숫자 6과 12, 그리고 세리프체로 쓰인 ‘IWC SCHAFFHAUSEN’ 글자가 어우러져 지나치게 차갑지 않을 만큼만 미니멀하다. 이 시계는 심오한 ‘오브제’다. 하지만 나는 요트 애호가가 아니고, 이 시계는 요트용 시계다. 심지어 나는 정장을 즐겨 입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다이버 및 파일럿 시계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디자인하고 러버 스트랩이 달린 아쿠아타이머 오토매틱 2000m는 수중 시계의 깔끔한 재해석이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아래에 다이브-타임 게이지가 있고 검은색으로 영리하게 절제시킨 페이스의 ‘오션 2000 35주년’ 기념 에디션은 두께가 14.5mm로 확실히 두툼하지만, 그래도 다이버 워치 중엔 날씬한 편에 속한다. 이 시계는 과도하게 ‘저돌적인 남성’을 추구하는 다이브 워치가 아니다. 하지만 6천4백50파운드라는 가격이 내 능력 밖이다.
 
절제된 블루 노트의 커버 아트가 생각나는 시계다. 소매 밑으로 슬쩍 드러나는 이 시계의 오렌지색 숫자가 미팅 분위기를 미묘하게 바꾸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나는 마크 18 파일럿 워치로 거의 결정할 뻔했다. 마크 18은 IWC가 1948년에 국방성을 위해 제작한 마크 11 밀리터리 워치의 현대적 개량품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IWC의 마크 11은 그 유명한 ‘더티 더즌’ 밀리터리 워치 중 하나다. 마크 18을 시착하기 전에 매니저 아메드는 1940년대에 나온 마크 11의 진품을 보여주었다. 55mm라는 작은 프라이팬만 한 어마어마한 사이즈에, 스트랩은 손목이 아니라 허벅지에 두를 수 있을 정도로 길다. “이건 성배와 다름없어요.” 페리는 그 시계를 탐욕스럽게 어루만지며 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걸 만지고 있다니 믿을 수 없네요.”
 
마크 11의 후손인 스테인리스스틸제 ‘2017 마크 18’은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된다. 더 비싼 칼리버에 다양한 크로노그래프와 퍼페추얼 캘린더를 갖춘 버전이나 큰 사이즈도 있는 한편, 빅 파일럿 워치(감탄스러울 정도로 명확한 이름이다)라는 더 큰 버전은 손목을 삼켜버릴 정도인 46mm 사이즈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전통적인 40mm 사이즈의 마크 18이다. 소박한 페이스 위의 깔끔하고 분명한 산세리프 아라비아 숫자는 1950년대 유틸리티 워치의 꾸밈없는 완전무결함을 되살린다. 이는 현대적이고 남의 시선을 갈망하는 소모품과 거리가 먼 세계다. 어둠 속에서 신속하게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숫자 12 대신 2개의 점이 찍힌 밀리터리 트라이앵글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직 시계 그 자체를 추구하는 시계다. 이 점이 나를 납득시켰다. 검은색 다이얼도, 조종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에게 헌정한 ‘어린 왕자’의 명랑한 파란색 페이스도 마찬가지다. 가죽 스트랩이 딸린 3천4백90파운드라는 가격 덕에 IWC 마크 18은 내 첫 시계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인근의 롤렉스 플래그십 스토어도 방문했다. 그냥 지나친다면 무례한(그리고 멍청한) 일일 것이다. 친절한 지배인인 마이크 허슨에게 나 같은 시계 입문자가 분명 처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시계 입문자 중에 늙은 축에는 속하겠지. 그가 맨 먼저 추천한 롤렉스는 36mm 사이즈의 스테인리스스틸 오토매틱 오이스터 퍼페추얼 데이저스트다. 부드러운 베젤과 은색 페이스에 좀 더 드레시한 주빌리보다 커다란 브레이슬릿이 달려 있다(4천9백 파운드). 그가 추천한 스테인리스스틸 데이토나도 내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약 7년을 기다려야 한다(그리고 9천1백 파운드는 내 지불 능력을 조금 벗어난다). 그렇지만 데이저스트는 내가 롤렉스에 기대했던 무게감과 존재감을 모두 지니고 있고 스테인리스만으로 이루어진 마감은 절묘한 인상을 만든다. 예전에는 묵직한 오이스터 브레이슬릿이 뽀빠이와 거리가 먼 내 팔뚝에 조금 과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물로 보니 오이스터 브레이슬릿은 케이스에서 터미네이터 T-1000의 액체 금속처럼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바로 이 점이 롤렉스가 디자인의 고전이 된 이유다.
 
혹은 사파이어 크리스털과 검은색 다이얼로 된 39mm 사이즈의 오이스터 퍼페추얼 익스플로러(4천8백 파운드)가 맘에 들 수도 있다. 이 시계는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1953년에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때 롤렉스가 헌정했고 일반에 판매한 적 없는 시계의 후계자다. 나는 약간의 향수를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자라난 교외 지역은 1950년대에 조성되었고 그곳에는 텐징 로드, 힐러리 크레센트, 그리고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의 펍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인가? 이 시계는 유혹적이다. 나는 전통을 원했는데… 자, 답이 여기 있다. 이 시계는 핵심만 남도록 멋지게 절제되었다. 그저 시·분·초침뿐이고 날짜 창은 없다. 이 최신형 익스플로러에는 돋음새김한 숫자와 파란색 야광이 추가되었다. 게다가 롤렉스는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둘 중에 에베레스트와 관련 있는 블랙 다이얼의 익스플로러가 우세할 것 같다. 그러니 후보군에 추가한다.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벌링턴 아케이드의 여러 부티크에 들렀다. 그곳에는 수많은 중고 오메가와 롤렉스, 빈티지 튜더가 있고 위블로와 브라이틀링, 벨앤로스의 시계도 있다. 또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도 있다. 1965년에 나사가 우주 계획을 위해 선정한 그 유명한 크로노그래프이자 1969년에 처음으로 달에 도착한 시계다. 나는 아폴로 시대에 성장한 우주 애호가다. 이 특별한 시계의 곡선을 그리는 크리스털과 세월의 흔적이 어린 베젤은 영화 〈필사의 도전〉과 오버랩된다. 이게 바로 내 시계일까? 하지만 오리지널 2998 레퍼런스의 가격은 약 2만5천 파운드… 아마도 나의 시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시계 덕분에 중고 오메가에 관한 워치로드의 조언이 떠올랐다. 역사와 장인 정신, 그리고 조용한 권위를 원한다면? 자, 여기 답이 있다. 워털루 다리 북편 스트랜드에 있는 수집가를 위한 매장인 오스틴 케이에서 우리는 매우 아름다운 1958 오메가 씨마스터 오토매틱을 목격했다. 독특한 검은색 다이얼에 레더 스트랩이 달려 있고 날짜와 크로노미터도 없는 콤팩트한 33mm 사이즈이며 거의 시계의 정수라 할 정도로 미니멀하다. 매끈한 베젤 위의 가볍게 닳은 1950년대 버블 스타일 크리스털의 곡선은 내가 지금까지 본 시계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검은색 다이얼은 리스토어되었지만(우리가 발견했다) 그 완전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제임스 본드는 1995년에 씨마스터를 차기 시작했지만 은색 시간 마커와 스크립트체 휘장이 있는 이 시계는 숀 코너리 시대 이전에 골든아이 별장에서 집필하던 이언 플레밍을 연상시킨다. 확신하건대 이 시계는 ‘달스턴행 야간 버스’ 테스트와 ‘아내’ 테스트를 모두 통과할 것이다. 나는 문자로 그녀에게 사진을 보낸다. 그녀는 흥분했다. 그리고 가격은 단 1천3백95파운드다. 내 예산의 최저선 근처다.
 
“여기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하나 있어요.” 오늘 조사한 내용을 이야기하러 펍으로 가는 길에 페리가 말했다. “생각해야 할 점이 있어요.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이 시계가 내 손목 위에 있다면 행복할 것인가? 시계에 수만 달러를 쓸 수 있지만 그게 올바른 물건이 아닐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이건 가격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 시계가 당신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생각해야 할 유일한 문제죠.”
 
소박한 페이스 위의 깔끔하고 분명한 산세리프 아라비아 숫자는 1950년대 유틸리티 워치의 꾸밈없는 완전무결함을 되살린다. 이는 현대적이고 남의 시선을 갈망하는 소모품과는 거리가 먼 세계다.
 
“어떤 사람들은 단 하나의 브랜드로 구성된 시계 컬렉션을 가지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의견을 세계적인 드럼&베이스 그룹의 기타리스트이자 로드 사이클 경주의 웨일스어 실황중계자의 조언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다른 견해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언 애슈비라는 사람에게 묻기로 했다. 그는 아주 비범한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직업 축구 선수인 애슈비는 1994년에 더비 카운티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나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가장 길게 활동한 클럽인 헐 시티의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그건 애슈비가 2003년에서 2008년 사이에 헐 시티를 디비전3에서 프리미어 리그로 끌어올리며 주장으로서 팀을 영국 축구의 최하위 디비전에서 정상으로 승격하게 만든 사상 최초의 선수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수 생활은커녕 다시 걷지도 못하게 될 뻔한 부상을 포함한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그를 지탱한 철저한 헌신과 철인의 본성 때문이다. 피어스 모건은 한때 그를 두고 ‘베컴을 부끄럽게 할 정도의 구식 영웅’이라 했다.
 
이언 애슈비는 시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현재는 시계 거래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2012년에 축구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뒤 메이페어와 험버사이드에 자리 잡은 고급 시계 및 보석상인 블로워스에 합류했다. 그는 내가 이야기를 나누어본 모든 진정한 시계광과 똑같은 특징을 보여준다. 바로 열광적이고 전염성 있는 열정과 이를 전달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16~17세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흥미를 갖게 되었죠.” 그가 말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프로 선수들이 멋진 브라이틀링이나 롤렉스, 프랭크 뮬러 같은 정말로 훌륭한 시계를 차고 있는 걸 보곤 했죠.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어떤 시계가 나에게 맞을까?’ 업계의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 모든 세계에 매혹됐어요.” 그의 첫 진짜 시계는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였고 그 뒤로 몇 개의 태그호이어가 이어졌다. “브라이틀링은 팔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어릴 때는 돈이 없었죠.” 그는 프로 선수가 되면서 자연히 돈이 들어왔다.
 
2002년 헐 시티와 계약한 애슈비는 오후 1시에 훈련이 끝나면 시내에 있는 블로워즈 매장으로 향하곤 했다. “그냥 구경하고 배웠죠. 그게 젊은 선수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에서 나를 멀리 떨어뜨려놓았던 것 같아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한때 부상을 입고 재활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경력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총지배인인 마크 블로워스에게 축구 선수 생활이 끝나면 이 사업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제 애슈비는 블로워스의 스포츠 분야 담당자다. 그는 축구 선수, 권투 선수, F1 드라이버 그리고 골프 선수들에게 신흥 부자가 된 스포츠 선수가 써야 할 돈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믿을 만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선수들에게 그저 최신 시계를 팔아치우려는 사람이 많죠. 시계의 가치가 어떻게 유지될지 무시한 채 말이에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선수들에게 보다 개성 있고 가치가 오래 유지될 독특하고 흥미로운 시계, 그러니까 빈티지 파텍필립, 롤렉스, 오데마 피게 혹은 위블로 같은 시계를 보여주려고 해요. 예를 들어 롤렉스의 스틸 스포츠 워치인 데이토나 서브마리너, GMT는 지금도 그 가치를 아주 잘 유지하고 있죠. 유행을 타지 않아요.”
 
주급이 수만 파운드가 안 되는 덜 사치스러운 잠재적 시계 구매자에게 어떤 조언을 줄 수 있을까? 그에게 내 생각을 알려주었다. 고전적인 1960~1970년대 스타일의 화려하지 않은 다이버 혹은 파일럿 워치, 골드보다는 스틸, 디자인이나 기능이 과하지 않은 든든하고 독특한 시계. 애슈비는 진정한 시계 애호가답게 신중히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롤렉스 익스플로러나 IWC 파일럿 워치를 추천한다. “롤렉스와 IWC는 위대한 시계이자 위대한 무브먼트이고 다른 유명 브랜드보다 기계적으로 더 좋아요.” 오메가도 있다. 애슈비의 말에 따르면 오메가는 지난 몇 년을 잠잠하게 보낸 뒤 뛰어난 무브먼트, 아름다운 디자인과 함께 진짜로 예전의 폼을 회복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오메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내 생각에 이제 ‘복수’를 하러 돌아온 것 같아요.” 그의 말이다. “이번 주에 우리 사무실에서 타임그래프로 1960년대의 오메가를 점검했죠. 3만~4만 파운드짜리 시계처럼 부드럽게 작동했어요. 오메가는 정말로 훌륭한 브랜드죠.”
“아마도 레더 스트랩이 달린 오메가 아쿠아 테라?”
그가 조언했다. “입문 단계의 예산이라면, 2만5천 파운드 정도면 정말로 훌륭하고 합리적이죠. 그 정도라면 훌륭한 시계 구입이자 확실한 투자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오메가나 IWC가 완벽하죠.”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보는 사람임에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다. 심지어 약간 부러워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제 고도로 집중해야 할 때가 왔다. 모든 메모를 살피고, 아이폰 사진과 비교하고, 손목을 몇 번이고 살펴본다. 어떤 시계로 할까? 오렌지색 사각형으로 숫자를 표시한 오리스 다이버 워치는 아름다운 물건이다. 하지만 내가 평범한 베젤을 원한다는 걸 깨달았다. 롤렉스 익스플로러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내게 롤렉스가 정말로 어울릴까? 셔츠 소매를 약간 끌어 올리는 것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비즈니스 미팅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없다면(난 그럴 일이 없다) 롤렉스는 약간 낭비처럼 보인다. 내 리듬에는 IWC 마크 18이 좀 더 어울린다. 과묵하고 개인적이며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이 시계를 손목에 찬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한편에서 빈티지 오메가를 추천하는 워치로드와 이언 애슈비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어느새 검은색 다이얼의 1958 씨마스터를 찬 내 손목을 계속 상상하고 있다.
 
후보가 또 있다. 오스틴 케이 매장의 씨마스터 옆에 다른 종류의 시계가 있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제작한 빈티지 티모르다. 36mm 케이스는 광을 내지 않은 채 세월의 흔적을 지니고 있으며 밴드는 1945년 나토 스타일의 나일론 스트랩이다. 이 시계는 징병제 시절에 영국군을 위해 여러 회사가 대량생산한 12종의 시계 라인의 별명인 ‘더티 더즌’의 하나다. 더티 더즌 내에서도 시계마다 희귀한 정도가 다른데, 티모르는 약 1만3천 개를 생산했다. 티모르는 다른 시대에서 온 유틸리티 워치의 고전이다. 이 시계의 경우 다이얼을 교체했기에 가격은 고작 795파운드지만 무브먼트만큼은 오리지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손목에 검은색 다이얼의 1958 씨마스터 오토매틱을 차고 있다. 페리가 자신의 롤렉스를 보며 하듯이 나는 손목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우와, 멋있잖아.’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이언 플레밍, 즉 작가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책상 위의 상자에는 기분 전환을 위한 티모르가 들어 있다. 시계가 없었던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즉 올바른 시계가 사람의 기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놓치고 있었다. 씨마스터는 비로소 나다워지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어떤 이는 하나의 시계로 된 컬렉션을 보유한다. 이제 나는 2개의 시계를 갖고 있다. 나의 세 번째 시계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