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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는 위블로, 시곗바늘은 브레게, 크라운은 까르띠에인 시계가 있다?

이토록 기이한 시계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신념.

BYESQUIRE2020.10.03
 

STRANGER THINGS 

 
〈스타트렉〉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비아니 할터의 딥 스페이스 투르비용. 그는 농담조로 이 작품을 ‘미스터 스팍도 반할 맞춤 제작 시계’라고 부른다.

〈스타트렉〉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비아니 할터의 딥 스페이스 투르비용. 그는 농담조로 이 작품을 ‘미스터 스팍도 반할 맞춤 제작 시계’라고 부른다.

전통적 오트 오롤로지(haute horology: 최고급 워치메이킹)의 세계에는 품위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 있다. 전통, 사회적 위상, 정교한 공예 솜씨, 고급스러움에 대한 철저한 집착 같은 것. 그와는 반대되는 것, 이를테면 논란을 일으킬 만한 요소와는 거리가 먼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2년 전 이 원칙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벌어졌다. 장본인은 오트 오롤로지업계의 명가인 메일란이 2012년에 인수한 후 새로이 론칭한 샤프하우젠 소재의 공방 H.모저앤씨. 이들이 발표한 시계 스위스 아이콘스는 시계업계 전체를 도발하는 모델이었다. 각 스위스 워치 메이커의 시그너처 격인 요소들을 따와 하나의 모델에 전부 모아놓은, 이른바 ‘프랑켄슈타인 시계’였기 때문이다.
 
1대 한정 생산 제품인 스위스 아이콘스는 롤렉스 GMT 마스터II의 레드앤블루 베젤을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형태로 축약시킨 뒤 그걸 파텍필립과 파네라이에서 따온 다이얼에 장착했다. 누가 봐도 케이스는 위블로, 시곗바늘은 브레게, 크라운의 카보숑은 까르띠에, 투르비용 브리지는 지라르-페레고에서 따온 것이었으며 다이얼에 새겨진 셰리프 폰트의 ‘HMC 샤프하우젠’ 문양조차도 이웃 공방인 IWC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였다. 괴상하면서도 도발적이고, 못생긴 동시에 아름다운,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작품을 형언하려면 시계업계 내에는 마땅한 언어가 없기에 음악, 예술, 생물학, 패션 관련 용어로 범주를 좀 넓힐 필요가 있다. 매시업, 포스트모던 브리콜라주, 유전자 접합의 결과물, 혹은 샘플링 기법 같은 표현들이 필요할 테니까.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시계업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고 이내 저작권 관련 시비에 휘말렸다.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관계자들 사이에 험한 말이 오갔고 결국 스위스 아이콘스는 발표 이틀 만에 SIHH 시계박람회 출품을 포기했다. 제작한 단 1대의 작품을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구호 단체에 기부하고자 했던 계획까지 폐기되었다. 전시하는 것조차 금지되는 바람에 H.모저앤씨는 부품을 회수하기 위해 시계를 해체했고(투르비용을 폐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각 부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영원히 봉인된 상태다.
 
이토록 대놓고 다수의 지적재산권을 무시해버린 작품에는 어떤 뒷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H.모저앤씨의 젊은 CEO 에두아르 메일란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재미있다는 듯 선뜻 답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왜 진행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제 소감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죠. 일단 스위스 아이콘스의 의도는 우리 업계가 진정한 혁신, 창의성, 그리고 선구적인 영감에 기반해야 한다는 걸 천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스위스의 럭셔리 시계 제작업계가 존재하게 한 유수의 브랜드들을 찬양하는 동시에, 실상 마케팅에만 관심을 두는 그 한 단계 아래 브랜드들에도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거죠.” 업계 전체를 상대로 ‘트롤링’을 한 사람의 말이니 가려 들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오해로 인해 논란이 빚어진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브랜드들까지 화를 내더라고요. 저희 메시지가 몇몇 분들에게는 헷갈렸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위스 아이콘스가 H.모저앤씨의 오점으로만 남겨진 건 아니다. 대당 평균 2만6천5백 파운드 상당의 시계를 연 1500대가량 제작하는 이 중소 규모의 가족 소유 공방은 결국 스위스 오트 오롤로지업계의 상징성과 비전에 대한 논의의 한가운데에 설 수 있게 됐다. 비용이나 마케팅 측면으로 더 덩치가 큰 업체들을 이기긴 어려워도 재치를 통해 인지도를 높일 수는 있었던 것이다.
 
 
H.모저앤씨에서 발표해 세계 시계업계의 공분을 산 ‘프랑켄슈타인 시계’스위스 아이콘스의 콘셉트 이미지.

H.모저앤씨에서 발표해 세계 시계업계의 공분을 산 ‘프랑켄슈타인 시계’스위스 아이콘스의 콘셉트 이미지.

 
우리 업계는 진정한 혁신, 창의성, 그리고 선구자들이 만들어가야 합니다.”
에두아르 메일란
 
대형 워치 메이커들에 대한 재치 있는 논평자이자 평론가, 서포터 역을 자임함으로써 H.모저앤씨는 오늘날 경영에서 통설처럼 통하는 기법을 오트 오롤로지업계에도 도입했다. 우버, 브루독, 에어비앤비 같은 타 업계 브랜드들 사이에서는 이미 식상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하는 당돌한 접근법이지만 오트 오롤로지업계에서는 최근 독립 공방, 이단아 디자이너, 급진적 엔지니어, 통념을 탈피하려는 브랜드들이 두루 시도하고 있는 전술이다. 바로 생태계 교란자, 혹은 괴짜가 되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생겨났던 다수의 독립 공방, 즉 고사양 테크노드라마를 표방하는 우르베르크, 흡사 생명체를 닮은 듯 미래적 빅토리아풍 디자인을 선보이는 MB&F, 스타트렉풍의 정교한 미학을 구사하는 드 베튠 등의 브랜드가 하나의 대안적인 업계 세력을 형성해가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괴짜가 판도 전체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많다.
 
스위스 럭셔리 시계업계에 에두아르 메일란이 파란을 일으킨 건 스위스 아이콘스 소동이 처음이 아니다. 스위스 출신 하인리히 모저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넘어가 1828년에 설립하고 러시아혁명 이후 다시 스위스로 이전한 공방을 메일란 가문이 인수한 2012년 이래로 H.모저앤씨는 유머를 무기 삼아 줄곧 기업 규모에 걸맞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H.모저앤씨의 기계식 시계 스위스 알프 워치는 실리콘밸리 출신 스마트워치에 대한 발칙한 반격 같은 제품이다.

H.모저앤씨의 기계식 시계 스위스 알프 워치는 실리콘밸리 출신 스마트워치에 대한 발칙한 반격 같은 제품이다.

 
우린 달라야 해요. 포인트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귀 기울이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놀라게끔 하는 겁니다.”
에두아르 메일란
 
애플 워치의 등장으로 무언의 패닉 상태에 휩싸였던 2016년의 스위스 오트 오롤로지업계. 자사 제품의 다이얼과 스트랩에 스마트 기능을 도입하는 브랜드가 하나둘씩 생겨났고 결과물은 들쑥날쑥했다. 이에 H.모저앤씨는 정반대 접근을 택했는데, 2만 파운드짜리 작품인 스위스 알프 워치가 바로 그것이었다. ‘알프 워치’와 ‘애플 워치’는 이름의 스펠링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시계 본연의 기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추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이 ‘블루투스 연동 기능이 들어간 시계를 제작할 계획이냐’고 계속 묻는 바람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였어요.” 메일란의 설명이다. “H.모저앤씨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을 할 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의 예상과 정반대로 우리의 가치와 스위스 시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담은 시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는 알프 워치를 보고 최신 기기를 샀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건 제대로 된 무브먼트를 갖춘, 문자 따위 확인은 안 되는, 완전한 기계식 시계’라고 답해줄 생각에 즐거웠다고 했다. “이 일은 그 재미로 하는 거죠. 시계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농담처럼 들리지만 자못 진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사람이 시계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 시계는 사람에게 시간을 선사해야지 사람에게서 시간을 앗아가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에는 치즈로 제작한 시계를 발표했다. 스위스 시계업계를 꼬집기 위해 케이스를 경화 스위스 치즈로 만든 시계를 단 한 개 제작한 것이다. ‘스위스제’라는 승인을 얻으려면 기존에는 무브먼트 평가액의 50% 이상이 스위스산 부품을 사용해 스위스 내에서 조립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2017년 초 스위스 정부는 자국 내 시계 생산 촉진이라는 명목으로 이 기준을 ‘완성품 시계 평가액의 60% 이상’으로 조정했다. R&D 비용 등의 요인까지 가산할 수 있으니 심지어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생산한 시계일지라도 ‘스위스제’ 승인을 얻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른 독립 공방들과 마찬가지로 메일란은 이 정책이 속임수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의의 표시로 자사 제품에서 ‘스위스제’라는 문구를 빼버리고 ‘역대 최고로 스위스스러운 시계’를 발표하기로 했다. 소가죽 스트랩, 스위스의 상징인 레드앤화이트에 H.모저앤씨의 스모크 효과인 퓌메 기법을 적용한 다이얼, 그리고 자사의 HMC 327 캘리버 무브먼트로 구동되는 시계를 바슈랭 몽도르 치즈로 만든 케이스에 탑재한 것이다. H.모저앤씨에서 붙인 제품명은 ‘스위스 매드 워치’. 익살스러운 유튜브 영상과 함께 발표했는데 이 영상에는 ‘스위스제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쓴 메일란과 공방 직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초콜릿부터 빌헬름 텔, 돈세탁 등 ‘스위스’ 하면 떠올릴 법한 클리셰를 장난스럽게 나열한다. “스위스 사람들이 유머 감각 좋기로 유명하지는 않죠. 하지만 적어도 저는 우스꽝스러운, 몬티 파이선 스타일의 유머를 좋아해요. 영상이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일에 애정과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힘이 되기도 해요. 이들은 우리를 지지하고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가 되었죠. 저는 H.모저앤씨라는 브랜드가 럭셔리함과 더불어 인간성도 갖췄으면 해요.”
 
시계업계 CEO 중 이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일을 자처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메일란은 이단아적 행보로 인한 불이익을 이미 감수하기도 했다. “스위스 아이콘스 이후로 그와 비슷한 깜짝 시도는 할 수 없게 됐죠. 그때는 제가 너무 감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이런 일을 벌여서 역풍을 맞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요.”(하지만 그는 인터뷰 이후 또 생각을 바꿔서 새로운 깜짝 시도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앞서 말했듯 이런 발칙한 접근이 H.모저앤씨 공방에 안겨준 것도 적지 않다. 매출과 소매 입지가 모두 확대되었고, 고객층은 종전의 55~65세에서 현저히 젊어진(그리고 향후 구매력 증진의 여지가 있는) 25~45세로 옮겨왔다. 스위스 매드나 스위스 아이콘스 같은 이벤트에 대해 기존 오트 오롤로지 관계자들은 못마땅해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시계를 통해 H.모저앤씨의 주력 라인, 우아하고도 미니멀-클래식한, 퓌메 처리된 블루·그린·브론즈 다이얼의 시계로 새로운 고객층이 유입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아 랑게 운트 죄네나 리차드밀 등의 브랜드에서 가장 빼어난 요소들을 한데 결합시키는 거예요.” H.모저앤씨가 추구하는 미학에 대한 메일란의 생각이다.
 
언뜻 장난처럼 보였던 그의 시도들은 기존의 시장 전략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돌파구를 제시한 진지한 마케팅이었다. “H.모저앤씨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죠. 하지만 그건 다른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제품 같은 차별화가 필요한 거고요. H.모저앤씨는 시장조사나 제품 개발을 대규모로 추진할 수 있는 큰 기업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린 달라야 해요. 포인트는 단순히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듣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거죠.”
 
 
루도빅 발루아르의 첫 작품인 업사이드 다운은 ‘현재를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루도빅 발루아르의 첫 작품인 업사이드 다운은 ‘현재를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가 이름을 걸고 만드는 시계는 반드시 새로워야 합니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시계,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루도빅 발루아르
 
아주 우아한 드레스 워치 하나를 상상해보자. 여유롭고 담백한 플래티넘 재질에 딥 블루 다이얼, 아르 데코의 영향을 받은 시계다. 즉 식견이 없는 사람이 봐도 아주 비싸 보이는 물건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이상하다. 바늘이 하나뿐인데, 길다. 분침만 있는 걸까?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다이얼의 숫자가 모두 거꾸로 되어 있는데 현재 시각을 나타내는 숫자만 정위치로 되어 있다. 시각이 바뀌면 두 장의 디스크가 회전하면서 현재의 시각만이 제대로 표시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루도빅 발루아르업사이드 다운 시계를 읽는 법이다.
 
“업사이드 다운의 영감은 2008~2009년쯤에 떠올랐어요.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때 말이죠.” 발루아르의 설명이다. 프랑스 출신에 검은 장발, 존 레넌풍 안경을 쓴 그는 정열적인 성격에 우주적·영적 철학 얘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시계공보다는 이비자에서 활동하는 디제이에 더 가까워 보인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숫자들이 하락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마치 온 세계가 뒤집힌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당시 아내가 암 투병 중이던 그에게는 바깥세상의 혼란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진짜로 중요한 건 건강뿐이지 않나요? 일단 건강하다면 괜찮은 거예요. 그때 오직 지금, 현재의 시각 외의 숫자들을 뒤집어서 표시하는 디자인을 떠올렸어요. ‘현재를 살라’는 교훈을 항상 상기시키려는 거였죠.”
 
업사이드 다운의 단순한 아이디어 이면에는 극도로 복잡한 공학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각각의 시각 표시 디스크가 서로 시간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면 디스크마다 제네바 휠 장치를 연결해야 하고 오버와인딩 방지를 위한 말티즈 크로스도 달아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발루아르는 극도로 복잡한 디자인으로 1990년대에 업계 전반에 변혁을 불러온 프랭크 뮐러에서 3년, 그 후 FP 주른에서 7년간 일하며 소네리 수버렌이라는 역작을 남긴 시계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가 닥친 그때가 과연 하이엔드 독립 시계 공방을 차리기에 적절한 타이밍이었을까?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웃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이 끝장나는 것 같았잖아요. 일단 뛰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었죠.”
 
시계 전문 블로그 ‘퀼 앤 패드’는 발루아르를 이렇게 소개한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남자.” 괴짜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는 스위스 오트 오롤로지업계에서는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1971년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네덜란드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모형 비행기에 매료된 아이로 자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명종 같은 물건을 분해했다 재결합하곤 했는데 이를 눈여겨본 교사가 진로를 시계공으로 선택할 것을 권했다. “결국 어쩌다 보니 렌시 소재의 시계공 학교에 입학하게 됐죠. 딱히 시계공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지만 그쪽 일에 소질이 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요.”
 
 
루도빅 발루아르의 두 번째 작품인 하프 타임은 사랑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루도빅 발루아르의 두 번째 작품인 하프 타임은 사랑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함으로써 내 작품을 팔고 싶었죠.”
비아니 할터
 
고향인 브르타뉴에는 시계공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일단 항공기 계기판 정비공으로 취직했다. 그 특유의 장난스러운 취향과 기발함을 꽃피우기 시작한 건 제네바로 건너가 프랭크 뮬러, FP 주른 등의 공방을 거치면서였다. 본인 이름을 걸고 발표한 두 번째 작품인 2012년의 하프 타임은 업사이드 다운의 탈상식적이고 탈직관적인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디자인이었다. 두 장의 회전하는 다이얼이 겹쳐지며 문자를 나타냈던 것이다. 오직 현재 시각을 나타내는 숫자만이 온전히 읽히고, 그 외의 숫자들은 서로 맞지 않는 두 개의 상으로 쪼개져 알아볼 수 없었다. 분침은 중앙에서 회전하지 않고 다이얼 하단에서 마치 1950년대의 전압계처럼 좌에서 우로 움직였다. 즉 시간 그 자체를 해체하는 시계였던 셈이다. 이 작품의 영감을 얻은 것은 뜻밖에도 사랑이었다고 한다. “반으로 갈라진 두 쪽이 하나로 모이면 온전해지잖아요. 사람 둘이 모여 쌍을 이루듯 서로 연결되어 가지런한 상태가 되는 거죠. 시계를 읽는 방식으로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보다 보면 금방 익숙해져요.” 그 기저에 깔린 철학은 업사이드 다운과 마찬가지로 ‘오직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 발루아르의 아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시계가 하프 타임이라고 한다.
 
발루아르에게 독립 오트 오롤로지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인과 스위스인 사이에 차이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경우 조금 더 전통적 사고를 할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답했다. “기존 법칙을 깨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게 제 방식이죠. 제 안의 철학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요. 사물에 관련된 판타지와 상상력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을 딱히 아웃사이더로 여기진 않는다고 했다. ‘톱니바퀴는 어디에 들어가든 톱니바퀴’라며.
 
그는 한 해에 약 12개의 시계를 만든다. 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달린 아크 원자로를 연상케 하는 작품 오푸스XIII을 생산하기 위해 간혹 해리 윈스턴 등의 기성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홀로 작업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는 일에도 굉장히 느긋해 보인다. 하프 타임 이후로 벌써 8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새로운 디자인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내 이름을 걸고 내놓는 새로운 디자인에는 꼭 새로운 컴플리케이션이 들어가야 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죠. 고전적인 디자인은 만들기 싫어요. 반드시 새로워야 해요.” 그의 고객 중에는 대부호가 많은데 그들도 간혹 발루아르에게 투르비용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늘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물론 만들어드릴 수야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만들어야 하죠?" 그는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다음 작품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새롭고 독창적인 컴플리케이션이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밖에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현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계 말이죠.
 
하이엔드 오트 오롤로지의 세계에는 다소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다. 시계의 영감이 역사와 전통, 그리고 오트 오롤로지의 유산과 그 가치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바다처럼 소용돌이치는 무의식의 세계, 우주에서 영감을 얻는 건 비범한 사건이다.
 
비아니 할터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2회 수상자이자 해리 윈스턴 오푸스III의 제작자, 그리고 기압계처럼 생긴 케이스로 제작한 레트로-퓨처리즘풍 오트 스팀펑크 작품인 안티쿠아를 제작한 프랑스의 선구적 시계 장인이다. 하지만 그는 2010년에 벽에 부딪혔다고 했다. FP 주른, 브레게, 본인의 시계 회사인 장비에 등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47세가 된 그는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금융 위기가 발루아르에게 스스로의 한계를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할터에게는 최악의 타격이었다. 창조적 에너지는 고갈되고 장비에에서는 고통스러운 인력 감축을 단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표 의식을 되찾고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어릴 적 나를 매료시킨 것,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상기해보려고 했죠. 현재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말이죠.”
 
 
딥 스페이스의 전면. 3중 축 투르비용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다.

딥 스페이스의 전면. 3중 축 투르비용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테슬라나 스페이스엑스 같은 기업, 다 멋지다고 생각해요. 단지 저는 시계에 매료된 사람인 거죠.”
키튼 P. 미릭


창조력 슬럼프에 빠진 할터는 자신이 어린 시절 사랑했던 1950~1960년대 영화를 떠올렸다. 〈금지된 행성〉 〈우주 전쟁〉 〈타임머신〉… 특히 오리지널 〈스타트렉〉의 오랜 팬이었던 그는 곧 1990년대에 방영한 〈딥 스페이스 나인〉 시리즈까지 섭렵하게 됐는데, 어찌나 깊이 빠져들었던지 잠결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꿈꿀 정도였다고 했다. 꿈속에서 그는 새로운 기기를 떠올렸고 그게 점차 차기작의 근간이 되어갔다. 그의 2013년 작품 딥 스페이스 투르비용은 〈딥 스페이스 나인〉에 등장하는 도넛 모양의 우주정거장을 쏙 빼닮았지만 공식 머천다이즈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다. 불룩 튀어나온 유리 돔 아래 잘 보이게 위치한 투르비용은 공간을 구성하는 3차원에 대응되는 3중 축 구조로, 여기에 시간이라는 제4 차원의 움직임까지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행접시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인데 가격이 약 16만 파운드니 그 역시 비행접시 급이다. 7년 만의 신작으로 세 번째 GPHG를 수상한 그는 극도의 진지함을 갖춘 장인이라는 입지에 더해 장난스러움을 겸비한 ‘특급 괴짜’ 시계 제작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딥 스페이스를 고안했다는 느낌이 들진 않아요. 잠시 다른 세계를 방문해서 디자인과 기계적 구조를 훔쳐서 돌아오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나는 제작자라기보다는 두 세계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한 느낌이고요.” 할터의 미학은 그 뿌리가 깊다. 그의 성장기는 마치 장피에르 죄네의 영화(로맨틱한 〈아멜리에〉보다는 고철장을 배경으로 한 활극 〈믹막〉에 가깝겠지만)를 연상시킨다. 1963년생인 그는 파리 외곽의 쇠퇴한 공업 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버려진 공장 등을 누비며 ‘테크놀로지의 발견’에 열중했다. 특히 톱니바퀴, 기계장치, 그리고 공공장소에 설치된 시계 등에 매료된 그는(지금껏 그는 시계 수집을 계속해왔으며 스위스 생트크루아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 약 120대를 소장하고 있다) 결국 파리의 시계 기술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의 견해는 이랬다. “그래도 에펠탑처럼 큰 구조물보다는 사람 크기에 맞는 기술을 익히는 게 낫지.”
 
시계 제작 기법을 익힌 할터는 1989년 스위스 생트크루아로 떠나 FP 주른의 공방에 재직했고 1994년에는 자신의 브랜드인 장비에를 설립했다. 발루아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가 자신의 참목소리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경기 불황이었다. 1996년 무렵 그는 프랭크 뮬러, 브레게, 모브쌩 등의 브랜드를 위해 컴플리케이션이 장착된 시계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아시아권의 소비가 위축되자 발주자들은 그에게 ‘조금 더 천천히 일해도 되겠다’고 했다. 이렇게 시간이 비게 된 할터는 사고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제작 기술을 단 한 개의 시계에 집어넣을 수 있으면 실력을 뽐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기왕이면 어릴 적 꿈꿨던 아이디어까지 담아내면 좋을 것 같았고요.” 그는 산업 디자이너인 제프 반스와 1년간의 협업을 통해 최초의 안티쿠아 퍼페추얼을 제작했고 1998년 바젤에서 데뷔한 이 작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안티쿠아 퍼페추얼에는 니모 선장을 떠올리게 하는 황동빛 금 재질의 케이스에 시간, 월, 일, 요일이 각각 표시된 현창(鉉窓)이 뚫려 있고, 할터가 ‘미스티리어스 매스’라고 이름 붙여 특허 등록한 와인딩 로터로 구동되는 무브먼트가 탑재되었다. 이 작품은 할터의 유별난 어린 시절이 선사한 고철장에 대한 로망이나 쥘 베른풍의 ‘오래된 미래’상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나, 그보다 한참 더 나아가 세기말적 레트로-퓨처리즘 혁명을 본격화시킨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포브스〉는 최근 안티쿠아에 대해 ‘역대 가장 혁신적인 시계 중 하나’라며 할터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표현했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함으로써 내 작품을 팔고 싶었어요. 거기에 저를 매료시킨 여러 앤티크적 요소를 전부 넣었는데, 그중에서도 항해 중 정밀한 시간 측정을 가능케 해 18~19세기 세계 정복을 견인한 마린 크로노미터가 으뜸이었죠.”
 
 
권력, 돈, 정복 같은 가치가 공명하는 물건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 문득 ‘과연 이것들이 칭송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되는 법이다. 2015년 당시 안티쿠아 퍼페추얼은 대당 5만 파운드에 팔렸다. 할터의 놀라운 점은 이토록 초고소득자들을 위한 시계를 제작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2012년에 안티쿠아 오션이라는 ‘심해용’ 모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정신이라면 누가 5만 파운드짜리 시계를 찬 채 바다 탐험에 나서겠느냐는 메시지가 담긴, 장난스러운 제스처였다. 할터는 향후 우주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곳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를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 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고 하죠. 그걸 포착할 수 있는 시계가 필요한 거예요.” 그 말을 할 때 할터는 흡사 오트 오롤로지계의 H.G. 웰스처럼 느껴졌다.
 
우주 시계, 프랑켄슈타인 시계, 미래에서 온 시계… 고급 오트 오롤로지업계 안에서도 주류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괴짜로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 중 스위스를 아예 뜨는 것보다 센 것이 있을까?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동남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곳, 캐스케이드산맥의 울창한 숲속에 시스터즈라는 마을이 있다. 서부 개척기풍으로 꾸며진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 한가운데, 뜨개질용품점 바로 옆에 미국 시계 제작 황금기의 부흥을 꿈꾸는 공방이 자리 잡고 있다. 오리건주 토박이인 키튼 P. 미릭이 제작하는 하이엔드 시계는 오늘날의 독립 오트 오롤로지의 주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유럽 제작자들은 고전적 디자인을 재탕하거나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는 반면, 미릭이 한정판으로 제작하는 원 인 써티는 누가 봐도 틀림없는 ‘미제 느낌’을 두르고 있다. 사용감 있는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 끝에 곡괭이 모양이 달린 브러시 처리된 초침, 드러나 있는 나사 헤드, 손수 부착한 이탤릭체 숫자까지. 공예 정신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 사용으로 길이 잘든 물건처럼 보인다. 다소 투박하고 한편으로 기능적이며, 미묘한 서부풍의 우아함도 묻어 있다. ‘KEATON MYRICK’, ‘OREGON USA’라는 글씨가 새겨진 굽은 플레이트에서는 카우보이 시대의 증기기관차에 달려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풍채가 느껴진다. 미릭이 자체 제작한 29.30 캘리버 무브먼트로 구동되는데, 그 디자인은 천체 관측급 투르비용 회중시계와 그랑 소네리 탁상시계를 참고했다. 가격이 2만 달러에 달하지만 그만큼 제작자의 손길과 혼이 느껴진다.
 
“단순하고 아름다우면서 극도로 정밀한 시계를 목표로 했죠.” 미릭은 롤렉스가 설립한 펜실베이니아주 소재 리티츠 시계 기술원에서 수학했다. “시계 제작을 배웠기 때문에 거기에 컴플리케이션 등 기타 요소를 추가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그 수준의 정밀도를 유지하면서 작업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요.”
 
한편 그의 열정에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다. “미국 시계 제작의 역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이 나라의 인프라 중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정말로 위대한 시계 제조사들이 한때 있었거든요. 오늘날에는 업계에서도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최고의 기기 중 으뜸은 철도용 회중시계라고 얘기하곤 하죠. 물론 테슬라나 스페이스엑스 같은 기업들, 다 멋지다고 생각하긴 해요. 하지만 저는 시계에 매료된 사람이라서요.”
 
그런데 왜 굳이 시스터즈 같은 벽지에 자리를 잡아야 했던 걸까? 그는 근처에 가족이 산다는 점, 그리고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저는 이곳이 좋아요. 시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20분도 안 돼서 메톨리어스강으로 나가 플라이 낚시를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에게 닥친 난관은 공방의 위치보다는 미국 시계 제작 인프라를 처음부터 재건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시계 케이스만 하더라도 대체 어디서 구할 것인가? “시스터즈에서 영업을 하며 가장 즐거운 건, 시계를 찾으러 방문한 고객들이 놀랄 때죠. ‘세상에, 왜 이런 곳에서 사냐’고들 하죠. 하지만 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이틀 정도 머무르고 나면 대부분 그 이유를 알겠다고 하거든요.”
 
그의 목표는 영국의 시계 장인 로저 W. 스미스가 세운 것과 같은 시계 제작사를 미국에도 설립하는 것이다.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더라도 개성과 성품이 담긴 시계를 제작해 그것을 이해하는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다고. “제 고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일 거예요.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제가 하려는 일을 지지해주고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죠. 시계 제작의 공예적 가치를 인지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을 찾고 있는 거고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누가 시계를 알아보건 말건,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닌 거예요.”
 
미릭의 우상은 비아니 할터다. 그는 할터가 한 말 중 “완벽함은 결함의 개수에 달려 있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12년에 함께 파텍필립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할터가 미릭이 제작한 시계를 살펴보다 래칫 휠에서 자그마한 흠집을 하나 발견했다고 한다. 미릭이 말했다. “그러네요. 고쳐야겠네요.” 하지만 선구적 시계공이자 ‘괴짜 선배’인 할터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고 한다. “아니, 그대로 둬요.” 왜냐고 묻자 할터는 이렇게 부연했다. “당신이 그 시계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바로 거기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