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왜 사람들은 로커가 디스코를 싫어한다고 오해할까?

정말 로커들은 디스코를 싫어할까?

BYESQUIRE2020.10.10
 
 

정말 로커들은 디스코를 싫어할까? 

 
얼마 전에 카페에서 서른 정도로 보이는 두 여성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두 사람 중 검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디스코는 완전 구리다는 뜻의 아주 험한 욕을 큰 소리로 했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는 어떤 팝송을 싫어했던 것 같다. 친구인 단발머리는 황당해서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정색을 하더니 그러면 안 된다며 누가 무슨 노래를 듣든 그냥 취향일 뿐인데 왜 욕을 하느냐고 했다.
 
검은 셔츠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한잔 마신 데다 자존심도 강해서, 그럼 구린 걸 구리다고 하지 뭐라고 하느냐며 한참을 둘이 티격태격했는데 장난 반에 말다툼 반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단발머리는 디스코가 그렇게 구리면 네가 좋아하는 록은 꼰대 음악이라고 했다. 그러자 검은 셔츠가 너는 오아시스 안 좋아하느냐며 너도 꼰대라고 맞받았다. 그들의 논쟁은 거기까지였다. 둘 중 한 사람이 음악을 영화에 비유한 다음부터 옆길로 새기 시작해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다가 복고풍 패션에 접근하더니 마지막엔 연애 얘기로 화제가 넘어갔던 것 같다. 일단 듣기에는 별로 고민할 것도 없었다. 취향 존중은 이미 널리 알려진 화제가 아닌가. 단발머리의 말이 옳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검은 셔츠의 말에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아주 없진 않았다. 자기 감정에 솔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주장은 마치 나쁜 장난을 치다가 야단맞은 어린아이의 불만이나 답답함 같은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
 
초기의 디스코 팬에는 유색인종과 성 소수자들이 많았는데 1970년대에 록 팬 중 일부 인종주의자들은 디스코 열풍을 무척 싫어했다. 이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에 록이 꼰대 음악 취급을 받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로큰롤은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섞인 것이며 본래는 인종주의와 거리가 멀다. 록 스타들은 디스코를 싫어했을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로커들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행동했다. 롤링 스톤스는 ‘미스 유(Miss you)’라는 디스코 스타일의 곡으로 인기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키스, 지지 탑 같은 하드 록 밴드들도 디스코 리듬을 사용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결국 디스코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디스코를 연주했고 디스코를 연주할 수 없는 사람들은 디스코를 나쁘게 말한 셈이다.
 
블루스 록 밴드인 올 맨 브라더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 시절엔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라고 했다. 디스코와 뉴웨이브의 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옛날 로큰롤이 무대를 차지했을 때 뒷줄로 밀려난 재즈 밴드의 색소폰 연주자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심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록 음악 팬들은 디스코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춤출 수 있을 땐 춤을 추고, 돌아서서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욕을 했을 것이다. 밥 딜런 다큐멘터리에 적절한 비유가 있다. 밥 딜런이 전통 포크 음악에서 록으로 전향했을 때 객석에서 야유를 퍼붓던 포크 음악 팬들이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 연주되면 다 함께 따라 부르고 그 노래가 끝나면 다시 야유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 비슷한 록 음악인데도 히트곡이 나오면 관객들이 좋아했는데, 그것이 록을 대하는 당시 포크 음악 팬들의 일반적인 자세였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기성세대가 ‘요즘 젊은 것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듯이 모든 음악 팬들도 그들의 시대가 저물면 다음 시대를 비난했다. 비밥 재즈 팬들은 로큰롤이 수준 낮은 싸구려 음악이라고 인상을 찌푸리고, 록 마초들은 디스코가 밥맛없는 음악이라는 캠페인까지 열었다. 1980년대 헤비메탈 팬들은 얼터너티브 세대가 록을 다 망쳐놨다고 욕하고, 얼터너티브 세대는 2000년 이후 음악이 약해빠졌다고 투덜댔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디스코가 유행이다. 정말 돌고 도는 세상이다. 선미와 BTS를 보라. 디스코가 이토록 멋지고 새롭게 부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터넷은 음악을 듣는 데는 아주 민주적이다. 누구든지 사용료만 내면 어떤 음악이든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이 “저는 장르를 안 가리고 다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가 너무나 다양해졌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게 없다시피 하다. 마일스 데이비스를 듣거나 비틀스를 듣거나, 또는 이름 모를 핀란드의 어떤 아저씨가 지미 헨드릭스를 연주해서 유튜브에 올린 것이라도 듣는 사람이 좋으면 그만이다. 20년 전에 어떤 아이돌 가수가 로커로 변신했을 때, 레드 제플린 음악을 안 들어봐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가 대중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지금 같으면 그런 전국적인 비난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검은 티셔츠를 입은 여자의 말이 삐딱하게 고개를 쳐든다. 어떤 음악은 좋고 어떤 음악은 후졌다고 말하면 왜 안 되나?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잘못됐나? 그녀가 주장한 음악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모든 작품에는 어떠한 논리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해도 여전히 영향받지 않고 남아 있는 일종의 감정적 잔여물이 있다. 그러므로 악마 숭배나 갱스터 같은 나쁜 사상과 도덕성에서도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고, 그걸 즐기는 사람의 취향도 일정한 한도를 넘지 않는다면 그리 올바를 필요는 없다.
 
예술적으로 정말 재미없는 것은 모든 연주자와 음악 팬이 아주 도덕적이고 공정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다 함께 올바를수록 그만큼 취향은 밋밋해진다. 예술에는 정답도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논쟁이 뜨거울수록 재미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신앙으로 여길 정도의 지독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인신공격이나 폭력성이다. 1979년 시카고에서처럼 야구장에 디스코 음반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거나, 또는 1980년대 LA의 클럽 공연장에서처럼 헤비메탈 팬과 펑크 팬들이 싸움을 벌여 서로 때리고 피를 흘리는 일은 물론 없어야 한다.
 
WHO'S THE WRITER?
정승환은 20여 년간 DJ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