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들: 대체 책이란 무엇인가

책이 뭐길래.

BYESQUIRE2020.10.24
 

책이 뭐길래 

 
 
성공하면 소고기 쏠게 부탁해~♡”
 
무려 소고기에 하트까지. 결혼 10년 차 부부 사이에 이런 메시지가 오가는 건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작년 이맘때, 아내는 결연한 각오를 품고 두 아이를 대동한 채 PC방으로 향했다.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던 나 역시 자세를 가다듬고 웹 브라우저를 열었다. 팬클럽 ‘아미’를 대상으로 한 BTS 콘서트 사전 예매 시작 한 시간 전이었다. 티켓 판매 사이트에 그때부터 접속해 있어야 티켓팅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호들갑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내가 소고기를 사준다는 게 얼마 만이며 하트는 또 얼마 만인데. 군소리 없이 지시를 따랐다.
하지만 로그인 버튼을 누르자마자 멈춘 사이트는 꼼짝을 할 줄 몰랐다. 아내는 ‘새로고침’(F5) 버튼을 누르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야근 틈틈이 브라우저를 들여다보다 시간 초과로 튕겨져 나오기를 몇 번. 간신히 로그인을 한 때가 티켓팅 개시 후 10분 뒤. 예매는 언감생심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음 날 예매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국내 굴지의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를, 그것도 팬클럽 한정 사전 예매만으로 장시간 마비시키다니.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빛나는 BTS도 아닌, 21세기 대표 사양산업이라는 ‘책’을 사려는 사람들 때문에 ‘국내 굴지의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가 다운된 적이 있었다. 주요 온라인 서점 사이트는 물론이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2014년 11월 20일.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날이었다. 반값 할인은 예사였고, 90% 할인한 책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한 온라인 서점의 주간 베스트셀러 50위 안에 그해 출간된 책은 오직 다섯 권. 그나마도 요리책과 자동차 서적, 컬러링 북 등 실용서가 전부였다. 현행 도서정가제 이전에 실용서는 할인이 자유로웠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미생〉 전집은 50% 할인에 25% 포인트 적립, 제휴 카드 할인 등을 더해 2만원대 초반이면 수월하게 살 수 있었다. 9만900원이라는 정가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고작 10% 할인하는 신간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었다.
나 역시 느려지고 다운되기 일쑤이던 온라인 서점에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책을 고르고 사댔다. 할인율순으로 정렬해서 샀던 그 많은 책들. 온라인 서점에서 당시 구매한 책의 리스트를 찾아보니 참 낯설다. 5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양장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첫째 크면 읽히려고 산 책들을 지금 둘째가 읽고 있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집에 남아 있는 책이 거의 없다.
 
요즘 출판계 안팎에선 다시 도서정가제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도서정가제가 3년마다 보완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정가제’라기보다는 ‘도서 할인 규제’에 더 가깝다. 출판사는 책에 가격을 표시해야 하고, 판매자는 마일리지 등을 포함해 15% 이내에서 할인 판매할 수 있다. 2014년 처음 시행한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7년 유지 결정에 이어 올해 다시 유지, 보완 또는 폐지 사이에서 정부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법 시행을 한 달 앞둔 지금까지도 뚜렷한 안을 내놓지 못한 것.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선 예전처럼 나온 지 시간이 지난 책을 할인해서 파는 일이 가능해지면 새로 낼 신간이 주목받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현행 도서정가제 유지 혹은 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명분이 소규모, 1인 출판사와 동네 서점 보호다. 전국 동네 서점 정보를 담은 ‘동네서점지도’를 제작하는 퍼니플랜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97곳이던 독립서점이 2019년엔 551곳이 되었다. 도서정가제로 가격 경쟁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퍼니플랜 남창우 대표의 말에 따르면 동네 서점 붐이 잦아든 요즘도 일주일에 세 곳 정도는 전국 곳곳에 작은 서점이 문을 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의아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많던 레코드 숍과 비디오 대여점이 모두 사라졌는데 왜 유독 동네 서점만은 지켜야 하는 걸까? 책은 갈수록 팔리지 않고, 사람들의 독서량도 줄어드는데 매년 나오는 신간의 수가 늘고 특색 있는 동네 서점의 수가 느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그 답도 정해져 있다. 책은 상품인 동시에 문화적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며, 동네 서점은 사기업인 동시에 책과 독자를 잇는 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와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한없이 당위에 가까운 이야기다. 정부를 향한 발언이라지만 전국 동네 책방 대표들이 SNS를 통해 #도서정가제가_사라지면_동네책방도_사라집니다 라는 다소 과격한 해시태그를 퍼트리고, 1인 시위에 나서고,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재미있는 건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근거로 책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작년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무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의 결론은 이렇다. “지식 전달의 매체로서 책은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 정책은 부담스러운 가격에 도리어 독자에게 책을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
적극적으로 이용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두 ‘지식 전달의 매채로서 책’이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는 곳’을 알고 있다. 무료로 책을 읽고 일정 기간 빌려 볼 수 있는 곳. 도서관이다. 엄밀히 말해 공공재는 책 자체라기보다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일 것이다. 책은 그릇에 불과하다. 도서정가제의 참의의 역시 책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생산하고 지역에 유통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독자와 만나는 서점까지, 책을 만들고 퍼트리는 생태계를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견주는 것이 아닌, 가격 경쟁에서 보호하는 것. SNS로 자기 생각을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는 지금도, 갈수록 팔리지 않고 읽히지 않는 지금도 작가와 편집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함께 만드는 책은 생각을 질서 있게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체다. 책을 쓰는 작가와 읽는 독자 사이를 출판사와 서점, 도서관이 연결하며 우리 사회의 생각하는 폭을 넓히고,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시인 박준은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작가 토크에서 위태롭지만 유의미한 그 공동체를 숲에 비유했다. “숲에서는 끊임없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면서 생태계가 유지됩니다. 포식자와 초식동물, 약한 동물이 공존합니다. 그런데 숲을 없애고 경쟁을 부추긴다면 그 작동 방식은 전혀 달라집니다. 경계를 지켜주는 게 도서정가제라고 생각합니다.”
 
WHO'S THE WRITER?
정규영은 〈GQ〉, 〈루엘〉 등의 피처 에디터를 거쳐 지금은 출판사 모비딕북스 편집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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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노준구
  • WRITER 정규영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