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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브라운은 어쩌다 좀 노는 1020의 유니폼이 되었나?

야, 내 옷 입지 말랬지.

BYESQUIRE2020.11.29
 
 

야, 내 옷 입지 말랬지 

 
톰 브라운을 팔기로 했다. 팔에 하얀 세 줄이 있는 톰 브라운의 카디건은 꽤나 아끼던 옷으로, 톰 브라운 매장이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시절 해외 배송을 통해 구매한 것이었다. 10년 전, 그걸 입고 나가면 몇몇 사람들의 눈길이 하얀 세 줄에 꽂히는 게 전기처럼 느껴졌다. 내 미소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브랜드입니다. 꽤나 우쭐했다.
 
이후 톰 브라운이 한국에 들어오자 옷 좀 입는다는 이들 모두가 톰 브라운을 입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가장 뜨거워졌던 건 2018년이었다. 국회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전북지회장이 출석했다. 그는 머리에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나와서는 “전국에 있는 원장들이 전부 루이 비통은 아닙니다. 저는 아침마다 눈뜨면 새벽부터 이렇게 불을 켜고 일합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입은 옷이었다. 그의 셔츠 깃에는 빨간색과 하얀색과 파란색 줄이 유독 도드라지게 빛났다. 톰 브라운의 시그너처였다. 인터넷은 폭발했다. 63만원짜리 셔츠를 입고 돈이 없어 월급도 못 준다고 징징댄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셔츠는 곧 사립유치원 비리의 어떤 상징이 됐다. 전북지회장은 다시 TV에 나왔다. 울면서 “시장에서 산 4만원짜리 짝퉁"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곧 톰 브라운은 시장 가판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거대한 짝퉁 시장은 슈프림에 이어 가장 뜨거운 돈벌이를 발견한 것이다.
 
톰 브라운의 옷은 일종의 유니폼이다. 하얀 세 개의 선(지금 네 개로 바뀌었다), 프랑스 국기 같은 빨간색과 하얀색과 파란색 줄무늬, 그리고 몸에 사정없이 달라붙는 특유의 핏. 톰 브라운을 입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톰 브라운이 되는 것이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워낙 강력한 나머지 당신은 톰 브라운을 입었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그것은 브랜드에게 두 가지 함정으로 작용한다. 하나, 짝퉁 시장이 베끼기 용이하다. 둘, 브랜드를 화려하게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의 유니폼이 될 확률이 높다. 이런저런 연유로 톰 브라운은 전국 방방곡곡 좀 노는 10대와 20대들의 유니폼이 되기 시작했다. 계급적·정치적 불공정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톰 브라운은 지금 한국 ‘양아치 패션'의 어떤 상징이 됐다고 과격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미안해요 톰 브라운 양반. 하지만 ‘현상’은 ‘현상’이니까 어쩔 도리 없지 않겠습니까?)
 
비슷한 현상은 사실 영국에서 먼저 벌어졌다. 대상은 버버리였다. 버버리는 몇 년 전 체크무늬 모자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했다. 차브족 때문이었다. 차브족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영국 노동계급 출신의 양아치 젊은이들을 의미하는 단어다. 삼선 아디다스 저지나 축구팀 유니폼 상의, 의외로 값비싼 스니커즈, 거기에 버버리 모자를 더하면 모든 것은 완벽해진다. 차브족들은 비슷한 패션을 하고 영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특정 브랜드를 선택하는 일은 꽤 자주 벌어진다. 톰 브라운과 버버리가 브랜드 본연의 특징과 몇몇 우연의 결과로 좀 노는 친구들의 브랜드가 됐다면 프레드 페리와 뉴발란스는 특정 소비자층의 좀 더 적극적인 정치적 소비로 망가진 브랜드다. 영국 브랜드 프레드 페리는 뜻하지 않게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남성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의 공식 유니폼이 됐다.

단체의 창립자인 개빈 매키니스는 평소 프레드 페리의 검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폴로 셔츠의 팬이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점점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한 백인우월주의자 남성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면서 프레드 페리를 입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위험한 남자들은 프레드 페리를 입기 시작했다. 왜 하필 프레드 페리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적이 없다. 다만
개빈 매키니스가 1970년대 시작된 영국 브랜드 프레드 페리를 ‘가장 백인스러운’ 브랜드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은 내놓을 수 있다. 프레드 페리는 아메리칸 프레피룩의 상징인 폴로 랄프 로렌이나 타미 힐피거보다 좀 덜 대중적이다. 모든 제품이 매우 심플하고 단정하다. 프라우드 보이스들은 자신들이 극단주의자도 아니고 파시스트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일반적인 목소리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그렇다면 옷을 아무렇게나 입을 수는 없는 일이다.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되자 백인 청년들은 횃불을 들고 ‘백인 목숨도 소중하다'며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그들이 ‘갭(GAP) 매장에서 갓 튀어나온 것처럼 단정한 옷을 입었다’고 묘사했다. 프라우드 보이스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미국의 보통 청년들을 대변한다고 망상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단정한 피케 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왁스를 발라 넘긴 머리를 하고 횃불을 든다. 진짜 정체성을 가장 ‘중산층적인' 브랜드와 겉모습 뒤로 감추려는 것이다.
 
뉴발란스 역시 프레드 페리와 비슷한 고초를 겪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난 2016년, 미국 전역에서 뉴발란스 운동화를 불태우는 소셜 미디어 운동이 일어났다. 많은 소비자는 뉴발란스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사실 뉴발란스 내부 인사들이 불을 지핀 것이다. 매튜 르브레톤 뉴발란스 대외담당 부회장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TT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관한 질문을 받고 “오바마 정부는 우리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트럼프가 당선되니 모든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뉴발란스는 나이키와는 달리 모든 신발을 미국에서 생산한다. 당연히 TTP는 뉴발란스 같은 회사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우파 웹사이트 데일리 스토머를 운영하는 백인우월주의자 앤드루 앵글린이 “뉴발란스를 백인들의 공식 운동화로 선포한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뉴발란스는 트럼프와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지지하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프레드 페리와 뉴발란스는 이 같은 흐름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프레드 페리는 “프라우드 보이스와 우리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 그들을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프라우드 보이스들이 가장 애용하는 검은색, 노란색 피케 셔츠의 생산을 아예 중단했다. 뉴발란스 역시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뉴발란스는 미국에서 운동화를 만드는 기업이며, 앞으로도 미국에서 신발을 만들기를 원한다"고 했다. 어쨌거나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동의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 내 제조업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모두 지지한다". 약간은 비겁한 변명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TTP를 지지하는 것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의견을 소비자들에게 남기려고 애쓴 것이다.
 
과연 브랜드는 자신의 소비자를 정치적·문화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오래전에는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20년의 브랜드는 소비자를 자기 입맛대로 통제할 수 없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특정 계층을 위한 럭셔리로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럭셔리의 대중화를 이미 이룩한 지금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버버리의 실패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차브족이 애용한 이후 누구도 버버리의 노바체크 모자를 (적어도 영국에서는) 부끄러움 없이 쓸 수는 없게 됐다. 프레드 페리는 백인우월자들과 완벽한 동의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앞으로 적어도 몇 년간은 검은색과 노란색의 프레드 페리 피케셔츠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입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톰 브라운은? 나는 곧 톰 브라운의 카디건을 당근마켓에 내놓을 생각이다. 오래 입었으니 원래 가격의 한 20%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깨끗한 물건의 상태를 생각하면 가히 획기적인 가격이다. 마포구 인근에 거주 중인 10대와 20대 여러분은 ‘톰 브라운'이라는 검색어를 꼭 저장해두시길 부탁드린다. 저렴한 가격에 짝퉁이 아닌 톰 브라운의 회색 카디건을 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입는 방법도 간단하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몸에 부담스럽게 딱 맞는 언더아머 트레이닝 바지, 패턴이 화려한 구찌 클러치와 매치하시라. 구글에서 ‘톰돼지'를 치면 나오는 일러스트와 매우 근사하게 비슷해질 것이다. 카디건 손목 아래로 살짝 보이는 문신까지 한다면 정말이지 완벽할 게다. 맞다. 이 글
은 오로지 나의 당근마켓을 홍보하기 위해 쓰는 글이 맞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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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