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먼훗날 2020년의 '사료'가 될 이 물건들

지금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물건이 미래의 역사를 정의할 테니까.

BYESQUIRE2020.12.08
 
 

 ARCHIVING 2020

 
 
 
조지 플로이드가 죽던 날, 아리케 오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영국 흑인의 역사를 기리는 유일한 국립 유산 기관인 흑인문화아카이브(BCA) 수장인 그녀는 비탄에는 이미 익숙한 사람이었다. “BCA는 흑인이 이끄는 조직이에요. 스태프의 90%, 임원의 90%가 흑인이죠. 우리는 살해 장면을 굉장히 많이 보지만, 그때마다 늘 마음이 아프긴 해요.” 조지 플로이드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무릎에 목이 짓눌려 사망했고,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BCA 역시 팀을 파견해 필히 시위자들을 인터뷰하고 대답을 기록해야 했다. 하지만 팬데믹 시기였다. 당시 영국의 사망자 수는 유럽에서 가장 높았고, 세계 전체에서는 두 번째였다. 봉쇄령이 내려진 후에는 센터 스태프들도 모두 임시 휴직 중이었다. “새로운, 실험적인 뭔가를 하기에는 정말 최악의 타이밍이었죠.” 아리케 오케의 말이다.
 
숙고의 결과 그들이 내놓은 프로젝트가 바로 ‘다큐멘트! 블랙 라이브스 매터’였다. BLM(흑인민권운동) 아카이브를 만들 수 있도록 사진, 영상, 아트워크, 청원, 기사, 시 등을 모아달라고 대중에게 요청한 것이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한 가지 질문이었다. “미래 세대가 이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재미있는 건, 이런 질문을 던진 게 BCA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박물관과 문화 기관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혼돈으로 남을 한 해, 2020년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강력한 사회적 이슈와 심각한 헬스 케어 이슈(코로나19) 등 여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죠. 역사적 순간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훗날 돌아봤을 때 내가 어디쯤 있는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뉴욕시박물관의 프린트 및 사진 큐레이터 션 코코런의 말이다. 그는 팬데믹, 경제적 몰락, 경찰의 폭력에 대항하는 시위에 관련한 오브제, 사진,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CovidStoriesNYC’와 ‘#ActivistNY’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각자의 소스를 공유해달라고, 뉴욕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뉴욕역사협회도 비슷한 일을 진행 중이다. ‘역사의 반응’이라는 프로젝트다. 이들 역시 의미 있는 아이템을 요청 중인데, 좀 더 상세한 질문들을 던진다. “시위에 참가하며 스스로 구호판, 전단, 포스터, 티셔츠를 만들고 있나요?”, “자가격리 상황에 대해 일기를 쓰거나, 목록을 만들거나, 사진을 찍고 있나요?”, “배달해 먹는 음식 메뉴, 아파트 건물 안내문, 지역 전단지가 팬데믹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마지 호퍼 박물관장은 그 질문들의 숨은 의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모으는 아이템은 사람들이 공포와 고립감을 표현할 각자의 방법을 찾고 있음을 보여주죠.”
 
 
위기의 시대에는 물건들이 그전과는 다른 의미와 목적을 품게 된다.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디자인 큐레이터 브렌던 코미어는 ‘팬데믹 오브제’에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컬렉션에는 손 세정제, 어린이가 그린 무지개 그림,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 타이틀이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줄넘기 줄, 폴딩 자전거, ‘보살피는 이들을 위한 박수(의료진, 봉사자 혹은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박수를 보내는 캠페인)’를 대변하는 발코니도 들어갔다. “박물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스페인 독감’을 검색해본 후 그 시기에 수집한 게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100년여 전의 동료들에게 큰 불만을 느꼈죠. 왜 그걸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사소한 기록으로도 우리가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아마도 이런 형태의 큐레이팅이 최근에 시작된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진행 중이거나 최근에 완료된 이슈와 관련한 함의를 지닌 물건을 박물관에서 수집하는 걸 ‘신속 반응 수집’(Rapid Response Collecting)이라 부른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그 시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중화에 공헌하기는 했다. 이들은 2014년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줄 수 있는 오브제’를 수집하는 새로운 활동을 발표했다. 바이프 리로드 전자 담배, 2017년 여성 행진에서 널리 사용됐던 핑크색 고양이 모자, 패스트 패션을 대표하는 방글라데시산 프리마크 면바지 같은 것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대로 반발도 있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독일 도자기 회사 마이센의 작품들, 16세기 악기, 찰스 디킨스의 원고 등 200만 개가 넘는 귀한 물건을 보유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이 박물관이 그에 걸맞은 희귀하고 아름다우며 장인 정신이 담긴 것들만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속 반응 수집이 당시에 급진적인 움직임으로 여겨졌다면, 팬데믹 오브제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구석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신속 반응 수집을 진행할 때는 그 물건들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구상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팬데믹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가 진화하고 바뀌어가잖아요. 전시나 아카이빙 기관은 대체로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요. 이야기가 다 끝나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뭔가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는 뜻이죠. 기준을 좀 낮추고 실험적 요소가 있는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건 그들에게도 아주 신선한 경험이에요.” 브렌던 코미어의 설명이다.
 
 
“미술관이 문을 닫은 후로는 현장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는 게 녹록지 않은 일이 됐죠. 그래서 우리가 가지러 가거나 전달을 받는 게 안전해질 때까지 일단 물건들을 잘 간수해달라고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있어요.” 워싱턴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의 큐레이터 에런 브라이언트의 말이다. 스미스소니언 기관의 일부인 이 박물관은 현재 아트워크, 벽화, 시위 팻말, 전단지, 시위자들의 복장에 대한 글을 모으고 있다.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사료를 모으기 위해 대중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반응은 꽤 폭발적이었다. 에런 브라이언트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어디에나 부당함이 존재한다는 건 단순한 팩트예요.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이걸 ‘인정의 정치’라고 했죠.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아야 하며, 특정 집단이 부당한 처우를 받을 경우 심리적·사회적 손해가 생긴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어느 집단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 똑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 집중하고 일상의 위치를 높이려고 하는 거죠. 역사를 만드는 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잖아요.”
 
에런 브라이언트는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 힘을 쏟는 것도 동일한 이유라고 말했다. 다른 집단의 이야기든, 다른 시대의 이야기든, 결국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저는 제가 지금 모으는 물건들이 100년 뒤의 사람들에게도 울림이 되길 바라요. 사람들이 이야기에서, 오브제에서 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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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WRITER JOHNNY DAVIS
  • PHOTOGRAPHER MATTHEW DONALDSON
  • TRANSLATOR 이원열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