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86세 영국 화가 로즈 와일리가 토트넘과 손흥민을 그린 이유

지난 10년 동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페인터로 꼽혀온 로즈 와일리의 대형 전시가 마침내 열렸다.

BYESQUIRE2021.01.11
 
 

HULLO HULLO, ROSE WYLIE

 
Sitting on a Bench with Border (Film Notes) 2008 Oil on canvas 282x242 cm Rose Wylie

Sitting on a Bench with Border (Film Notes) 2008 Oil on canvas 282x242 cm Rose Wylie

 
작은 모니터로만 작가님의 작품을 보다가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풀 사이즈 〈Girl Now meets Girl Then〉을 봤을 때를 기억해요. 그 거대한 캔버스가 표현하는 감성에 압도당했죠. 그런데 이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에 그런 풀 사이즈 작품 130여 점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작품 사이즈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문화학자이자 저명한 평론가인 저메인 그리어가 2010년 가디언에 작가님에 대해 쓴 글에서 ‘갤러리스트들이 로즈 와일리에게 좀 작은 작품을 달라고 간청을 해도 소용이 없다. 작은 (일상의) 모티브와 허위 없음 그 자체를 거대하고 매력적인 무언가로 만드는 것이 로즈 와일리 작업의 요체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죠. 작가로서 그의 해석에 공감하시나요?
네, 그렇다고 봅니다. 평범하고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을 크게 부풀리고 그에 상응하는 경의를 표하죠. 늘리고 또 늘리고 더하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그 외에 작가님의 작품에서 캔버스 사이즈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앞서 이야기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이젤’ 위에서 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영화 또는 미술관용 작품의 스케일로 넘어가면 관객이 작품과 공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봐요.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과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은) 다르죠.
 
 
작가님이 ‘unstretched canvas’(팽팽하게 늘려 틀에 짜 맞추지 않은 상태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 역시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될까요?
스트레칭이 되지 않은 캔버스는 포개지고 주름이 지며 윗부분이 울어 곡선을 만들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덧댈 수 있다는 점, 또 옆, 위, 아래로 늘릴 수 있다는 거죠. 작업이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시작하기도 전에 제한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어는 작가님의 작품에 숨겨진 분노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죠. 나이가 들면서 내면의 소녀가 어떻게 또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기존의 획일화된 아트 교육이 어떻게 젊은 아티스트들을 망치는지에 관해서 말이죠. 당시의 로즈 와일리에겐 분명히 그런 (반항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후로 10년이 흘렀어요.
학교에서 배운 기법들은 언제든 버릴 수 있어요. 자신에게 맞는 방식만 남도록 하면 되죠. 크로스해칭 (cross-hatching), 단축법(foreshortening) 등의 기법은 저도 꾸준히 사용하는 편이에요. 학생 시절에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다루는 작업을 중요시했는데, 작업에 스며드는 자유로움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도움이 되기도 하죠. 단순히 나이를 더 먹는 것보다는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캔버스 위에 덧칠을 하거나 천을 덧대어 작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그리어가 말했던 〈Lords and Ladies〉의 신부 얼굴처럼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자국이 남아 있던데요.
저는 항상 작품을 고치고 또 고쳐요. 괜찮아 보이다가 갑자기 맘에 안 들기도 하거든요. 새롭게 변한 모습이 더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변화 자체에 목적(이나 의미를)을 두고 바꾸는 건 아니에요.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결국 완성된 그림이 괜찮아 보일 때까지 계속 수정을 반복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가 무척 다양한데요. 초코 비스킷, 쿠바 댄서, 할리우드 핀업걸, 아스날, 토트넘, 손흥민, 세레나 윌리엄스 등이 생각나네요. 어떤 방식으로 소재를 선택하고 구상하기 시작하시나요?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소재라면 뭐든지 그릴 수 있어요. 그리고 싶다는 충동을 받고 그것을 기록하죠. 언제 어떻게 작업이 시작될지는 저조차도 몰라요. 그림 그리기에 좋은 때는 없어요.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죠. 그럼에도 그렇게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그 그림이 완성됐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와요.
 
Son 2020 Coloured pencil, biro and collage on paper 40.7x26.3 cm Rose Wylie

Son 2020 Coloured pencil, biro and collage on paper 40.7x26.3 cm Rose Wylie

 
손흥민을 그린 작품이 한국에서는 꽤나 화제가 됐어요. 작가님과 손흥민 선수가 메신저로 나눈 대화가 이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기도 하죠. 인연의 시작이 궁금하네요.
남편과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자주 보았는데, 제 남편이 토트넘 팬이었어요. 실제로 축구를 경기장에 가서 본 건 딱 한 번이었는데, 그때도 토트넘 경기였어요. 그래서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에게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가장 익숙한 팀이기도 하고요. 몇 년 전 토트넘과 아스널 경기를 3m가 넘는 작품으로 그린 적도 있죠. 토트넘 클럽의 색깔이 마음에 들고 수탉이 축구공 위에 앉아 있는 엠블럼이 마음에 들었어요. 토트넘의 엠블럼은 (같은 런던 팀인) 아스널의 대포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사실 그전에도 유명한 축구선수들을 많이 그렸는데 운 좋게도 한국의 스타 플레이어인 손흥민에게까지 가 닿은 것 같기도 해요. 한국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거론된 작품은 주로 다른 주제를 다룬 거였어요. 그런데 손흥민의 친척 분이 제 작품의 팬이고,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걸렸던 제 작품 〈Pin-up and Porn Queen〉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좋은 인연의 시작이었죠.
프리미어리그 팀 중엔 토트넘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런던에는 아스널도 있고 첼시도 있는데요.
아니에요. 제가 응원하는 팀은 그때그때 달라요. 가족들과 함께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볼 때면 제 가족이 응원하지 않는 팀을 응원해요. 그래야 경기를 보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응원할 팀을 찾다 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팀’이 많아지죠.
지금 사시는 곳이 런던 동남부에 있는 파버샴으로 알고 있어요. 따로 응원하는 지역 축구팀이 있나요?
아니요, 전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선수들(big-boys)만 좋아해요.
 
Black Cat and Black Bird 2020 Oil on canvas 183x160.5 cm Rose Wylie

Black Cat and Black Bird 2020 Oil on canvas 183x160.5 cm Rose Wylie

 
NK (Syracuse Line-up) 2014. Oil on canvas 185x333 cm Rose Wylie

NK (Syracuse Line-up) 2014. Oil on canvas 185x333 cm Rose Wylie

 
Scissor Girl, Big hair (hullo hullo) 2017 Oil on paper 59.4x84.1 cm Rose Wylie

Scissor Girl, Big hair (hullo hullo) 2017 Oil on paper 59.4x84.1 cm Rose Wylie

 
이번 전시의 제목이 〈Hullo Hullo, Following on〉인데요. 본인의 작품 〈Six Hullo Girls〉에 있는 텍스트를 따온 것으로 알아요. 전시 전체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테이트모던 멤버스룸(테이트모던의 정회원만 들어갈 수 있는 방으로 비공개 작품들이 전시된다)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제의를 받은 후 많은 작품을 그렸어요. 그 일련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소녀들과 작품명은 〈그레이엄 노튼 쇼〉(BBC의 코미디 토크쇼) 의 오프닝 영상에서 따왔어요. 물속에서 마치 가위처럼 길게 찢은 다리를 하고 수영하는 ‘돌리 걸’의 애니메이션이 등장하죠. 그 영상이 너무 짧아서 형체의 팔이 어떤 모습인지 항상 놓쳤어요. 그래서 작품에는 가위 모양으로 벌린 팔을 비롯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요.
‘hullo girl’을 찾아보니 한국 사전에는 ‘전화교환수’라고 나오더군요. 이게 맞나요?
아녜요. ‘Hullo, Hullo’는 그레이엄 노튼이 방송에서 관객들에게 항상 하는 인사말로 이전 전시에 이미 전시명으로 사용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Following-on’을 추가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를 통해 거대한 캔버스에 넘쳐흐르는 로즈 와일리의 기지 넘치는 소녀 감성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보면 좋겠어요. 본인의 그림에서 한국 관객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포인트가 있나요?
손흥민 선수를 추상적으로 그린 드로잉 한 점이 이번 전시에 걸려 있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무수히 올라오는 많은 사진 가운데 그 그림은 없더라고요. 단 한 번도 말이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데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워요. 사람들이 SNS에 어떤 작품을 올리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Sitting on a Bench with a Border〉는 단 한 번 올라왔고, 〈City Road〉는 아직 인스타그램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전시를 연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너무 조급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Sitting on a Bench〉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로 좋아해요.
 
사실 이 정도 전시면 한국에 오셨을 텐데 이번엔 불가능했죠. 만약 한국에 왔다면 무엇을 꼭 하셨을까요?
전 세계 고대 벽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고구려 무덤에 그려진 고대 벽화를 보러 갔을 것 같네요. 최근에 들어서야 이 벽화를 복원한 사진을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은 2021년 3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3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전시장 한편에 로즈 와일리의 작품으로 만든 다양한 굿즈도 구입할 수 있다.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은 2021년 3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3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전시장 한편에 로즈 와일리의 작품으로 만든 다양한 굿즈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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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Jari Lager
  • PHOTO 권순학/ 문현주
  • COURTESY 유엔씨/ 초이앤라거/ 데이비스 즈워너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