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보기좋게 물먹은 경비행기 조종 체험기

저는 심심하면 부산에 내려가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와요. 조금 밟으면 2시간도 걸리지 않거든요.

BYESQUIRE2021.03.05
 
 

What a small world 

 
땀이 삐질삐질 난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은 이미 축축해진 지 오래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는 애먼 계기판 위만 연신 훑는다. 긴장할 필요 없이 부드럽게 조종해보라는 옆자리 조교의 말이 100m 밖에서 외친 것처럼 아득하게 들린다. 목표는 좌회전. 목각 인형처럼 굳은 몸을 삐걱거리며 간신히 성공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다음 미션이 들어온다. “잘하시네요. 그럼 이제 속도를 올려볼까요? 170km/h까지 한번 쭉 올려보세요. 괜찮아요.” 속도 대신 멱살을 올려 잡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선생님? 제가 경비행기는 처음인데 진도를 너무 많이 나가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 내가 조종하는 건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다.
 
날고 싶었다. 떠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매달 습관처럼 타던 비행기가 이토록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비행기에 들어서면 느껴졌던 건조한 공기,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비로소 편안할 수 있을지 궁금한 시트, 이륙 준비 중인 제트엔진의 웅웅거리는 소음까지. 여행이라는 설렘의 시작은 항상 날아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람 마음은 거기서 거기였던 것 같다. ‘목적지 없는 비행기 여행’이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구성은 간단하다. 약 1시간 30분 동안 국내 주요 도시의 하늘 위를 날고 돌아온다. 처음엔 ‘별나다’고 생각했지만 두 손은 어느새 ‘비행, 체험, 여행’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경비행기 앞이었다.
 
경비행기는 크게 고익기(upper wing)와 저익기(low wing)로 나뉜다. 날개가 파일럿보다 위에 있으면 고익기, 낮으면 저익기다. 우리가 흔히 타던 민간 항공기는 저익기다. 속력이 빠르지만 조종이 예민하다. 고익기는 화물 수송에 주로 사용한다. 탱크나 장갑차를 싣는 커다란 군용 수송기가 전부 고익기다.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아 안정적이지만 느리다. 교육 및 체험 비행은 고익기인 A-32 모델로 진행했다. 저익기는 날개가 시야를 가려 발밑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느리면 재미 없는 것 아니냐고? 음, A-32의 최고 속도는 240km/h가 넘는다. 느린 게 느린 게 아니다.
 
자동차는 엔진, 서스펜션, 차체 강성, 타이어 등 여러 요소가 모여 승차감을 만든다. 어느 것 하나만 부족해도 균형이 깨진다. 경비행기는 어떨까? 국토부 지정 경량항공기 전문 교육기관 ‘하늘누리항공’의 이진욱 대표는 딱 잘라 말했다. “엔진이죠.” 기종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경비행기는 여전히 기계식 카뷰레터 엔진을 주로 쓴다. A-32에는 최고 100마력을 내뿜는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Rotax-912)이 탑재됐다. 응?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맞다. 포르쉐가 사랑하는 엔진도 수평대향 엔진이다. 묘하게 포르쉐 박스터와 A-32의 엔진 소리가 닮은 듯 느껴졌지만 기분 탓일 확률이 높다. A-32의 수평대향 엔진은 연료 분사 방식 대신 카뷰레터를 사용한다. 카뷰레터는 자동차업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연료 혼합 장치다. 설계가 간단해 고장이 적고 정비가 용이하다. 자동차는 엔진이 고장 나도 갓길에 차를 세우면 그만이지만, 경비행기는 엔진이 고장 나는 순간 목숨을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경비행기 엔진은 작동 시간이 2000시간에 도달하면 안전을 위해 폐기한다. ‘미터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좀 더 타는 사람도 있겠지’ 싶지만, 개정된 항공안전법상 매년 철저한 정기 검사를 받는다.
 
 
유유자적 날고 있는 것 같겠지만, 조종석은 매우 분주하다. ‘초보비행’ 스티커라도 붙일 걸 그랬다.

유유자적 날고 있는 것 같겠지만, 조종석은 매우 분주하다. ‘초보비행’ 스티커라도 붙일 걸 그랬다.

사실 항공안전법이 개정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기 전에는 경비행기 운영이 주먹구구식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후 정부는 선박뿐만 아니라 항공 관련 법도 대폭 개정했다. 2016년의 일이다. 50여 개였던 크고 작은 경비행기 체험기관들이 법 개정 후 절반도 남지 않았다. 기준을 충족하기가 까다로웠던 탓이다. 인증을 통과한 업체 역시 정기적으로 경비행기 안전 검사와 교육 프로그램 및 파일럿 자질 평가를 받아야 한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같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공통점 중 하나는 ‘타고 내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별히 키가 크거나 몸이 다부지지 않아도 타고 내릴 때마다 ‘으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시트 포지션이 낮아서 그렇다. A-32도 비슷하다. 몸을 잔뜩 구겨 조종석에 앉으면 몸이 대문자 L을 왼쪽으로 눕혀놓은 것처럼 보인다. 엉덩이와 발의 높이가 수평에 가깝다. 등받이는 느슨하게 젖혀 있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야만 전방 시야가 확보된다. 4점식 안전벨트를 메고 조종간을 움켜쥐면 준비 완료다. 2인승인 A-32는 조종간과 페달이 데칼코마니처럼 양쪽 좌석 모두 달려 있다.
 
예열을 위해 엔진을 켰더니 소리가 요란하다. 엔진에서 발생한 진동이 조종간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날것 그대로인 승차감은 12기통 엔진의 고성능 스포츠카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다. 헤드셋을 쓰면 한결 덜 시끄럽다. 영화 속 파일럿이 항상 헤드셋을 쓴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열이 끝나면 날아오를 차례다. 눈앞엔 펼쳐진 건 맹렬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와 400m짜리 활주로뿐이다. 옆자리에 앉은 교관은 풍향지시기를 힐끗 확인하더니 이내 스로틀을 당기기 시작한다. 참고로 비행기가 날아오르기 위해선 바람의 세기보다 풍향이 더 중요하다. 이륙 방향을 기준으로 옆에서 바람이 불면 위험하다. 하늘누리비행장의 활주로가 인천국제공항의 활주로와 같은 방향인 것도 그래서다.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기체가 이리저리 덜컹거린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받아줄 쇼크업소버가 없다. 200m쯤 전속력으로 달렸을까? 기체가 서서히 떠오른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이륙은 짧다. 수백 명이 타는 여객기와 비교하면 말이다. 길이가 6.2m, 공차중량이 327kg밖에 되지 않아서다. 비유하자면, 어린아이가 ‘우다다다’ 달리다가 폴짝 점프했더니 날아오른 모양새다. 이착륙은 전적으로 교관이 담당한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이륙과 착륙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지면을 박차고 떠오른 경비행기는 순식간에 고도를 1500피트까지 올렸다. ‘고도 분리’에 따르면 경비행기가 오갈 수 있는 고도는 500~5000피트 사이다. 도로에 차선이 있는 것처럼 하늘은 고도로 길을 구분한다. 5000피트(1500m) 위는 더 큰 비행기들의 영역이다. 혹시 경비행기가 5000피트보다 위로 올라가면 어떻게 되냐고?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갑자기 엔진이 꺼지거나 날개가 꺾이는 극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산소가 희박해 엔진 출력이 조금 떨어지는 정도다. 히터가 있어 별로 춥지도 않다. 그런데도 칼같이 고도 분리를 지키는 건 안전 때문이다. 수백 톤이 넘는 대형 항공기는 기체 주변에 매우 강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유조선 같은 큰 배가 지나가면 파도가 그 뒤로 몇 km나 이어지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만약 경비행기가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복잡해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운전만큼은 자신 있었다. 5년 가까이 자동차 담당 에디터로 일하면서 다양한 운전 경험을 쌓았다. 시승과 촬영을 위해 서킷과 오프로드는 기본이고 눈 덮인 슬로프를 거슬러 달렸다. 레이싱 카트가 취미였으며 잠시나마 2종 소형 세계에도 발을 담갔다. 〈에스콰이어〉 300호 특집 기사를 위해 300km/h에 도전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경비행기 순항속도가 120~150km/h라는 말을 들었을 땐 시큰둥했다.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조종간을 넘겨받고 5초 만에 깨달았다. 아니다. 3초였던 것 같다. 나의 운전 감각은 형편없었다. 경비행기가 타임머신도 아닌데 내 몸은 10여 년 전 운전면허학원에서 처음 봉고에 시동을 걸었을 때로 돌아갔다. 다른 점이라고는 장내 기능시험장이 아닌 잠실 롯데타워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왔다. 울며 겨자 먹기로 교관을 따라 좌회전, 가속, 상승과 강하, 직진을 수행했다.
 
2차 방정식에서 3차 방정식으로 넘어가던 때를 기억하나? 변수 하나가 늘었을 뿐인데 외울 공식이 배로 복잡해졌을 때, 수학과 멀어졌다. 운전과 조종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기존에 알던 운전 상식은 무용지물이다. “자전거를 잘 타면 모터사이클도 잘 탈 거야”라고 했던 어느 선배의 근거 없는 말보다 더 쓸 데 없다. 차라리 운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백지 상태’가 낫다. 이 대표는 어린 나이에 경비행기 조종을 배울수록 습득이 빠르다고 귀띔했다. 법적으로 만 17세가 지나면 ‘경량항공기조종사’와 ‘항공무선통신사’ 면허를 딸 수 있다. 자동차보다 경비행기를 더 먼저 몰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운전면허는 만 18세가 지나야 취득 가능하다. 그래서 파일럿을 지망하는 고등학생이 선행학습 겸 경비행장을 찾는 경우가 잦다.
 
비행기 조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조종간은 전후좌우로 움직인다. 좌우로 움직이는 건 쉽다. 넓은 공터에서 혼자 운전한다고 생각하고 부드럽게 돌리면 된다. 가속도 어렵지 않다. 가속페달 역할을 하는 ‘스로틀’이 계기판 아래에 있다. 밀고 당겨 엔진 출력을 조절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변속기는 없다. 엔진에서 나온 동력이 프로펠러로 직결된다. rpm을 6000까지 올렸더니 속도계는 200km/h를 가리켰다. 그런데도 빠르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진동만 조금 심해졌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경비행기가 빠르지 않게 느껴졌던 건 속도를 가늠할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긴 터널을 달릴 때 무심코 과속하는 운전자가 많은 것과 같은 원리다.
 
 
복잡해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복잡해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어려움은 ‘상승과 강하’ 개념을 익힐 때부터 시작이다. 조종간을 몸 쪽으로 당기면 기수가 올라가고 밀면 내려가는데 속도를 계산하지 않고 다루면 기체가 위아래로 몹시 출렁인다. 고도가 뚝 떨어질 때마다 몸속 장기도 함께 철렁거린다. 그 느낌이 롤러코스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반대로 기수를 급하게 들어 올리면 중력이 몸을 짓누른다. 이를 앙다물며 아랫배에 힘을 넣어보지만 역부족이다. 서킷에서 150km/h로 코너를 돌아나갈 때보다 심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직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기체를 계속 뒤흔든다. 돌풍이다. 산이나 높은 건물에 부딪혀 갑자기 상승하는 일시적인 바람을 돌풍이라 한다. 이때 기체 밸런스를 가다듬는 역할을 하는 게 ‘러더(꼬리날개수직타)’다. 러더는 발로 조작한다. 왼쪽 러더를 밟으면 왼쪽, 오른쪽 러더를 밟으면 오른쪽으로 기운다. “그럼 조종간 대신 러더로 방향 조절을 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가능합니다. 하지만 권장하지 않습니다. 방향 조절은 조종간으로 하는 게 기본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좌우 밸런스가 맞았는지 확인할 땐 ‘자세계’를 확인한다. 자세계 속 공기 방울이 정해진 구간 안에 있으면 균형이 맞는 상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기수를 중립으로 맞추면 밸런스가 깨진다. 겨우 기수와 밸런스를 맞췄다 싶으면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향해 있다. 가감속을 위해 스로틀 조작까지 더해지면 두 손, 두 발, 두 눈까지 쉴 틈이 없다. “경비행기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하늘 위에선 평정심을 잃는 게 가장 위험하거든요. 돌발 상황이 닥칠수록 느긋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진욱 대표가 교육을 마무리하며 남긴 말이다.
 
언젠가 나이 지긋한 할리데이비슨 오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도대체 왜 양팔을 높이 치켜들고 타는 거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자유죠. 바람이 몸을 스치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듭니다.
 
경비행기는 비싼 취미가 맞다. 면허를 따는 데만 600만원이다. ‘경비행기 공유제’를 이용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여전히 1년에 450만원 정도 든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나는 듯한 기분보다 진짜 나는 게 더 즐거운 것 아닌가? 단언컨대, 경비행기보다 자유로운 탈것은 없다. 지난 1월에 열린 CES에서 GM은 플라잉카를 선보였다. 현대자동차도 2028년까지 플라잉카를 상용화할 예정이다. 플라잉카가 등장하더라도 완전 자율비행 기술이 등장하기 전엔 사람이 조종해야 한다. 이렇게 경비행기를 타야 하는 핑계가 하나 늘었다.
 
 

경비행기 알쓸신잡 

경비행기에도 에어백이 있나?
낙하산은 있다. 등에 짊어지고 뛰어내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유사시 안정적인 착륙을 돕는 ‘비행기를 위한 낙하산’이다. BRS(Ballistic Recovery Systems) 라고도 한다.
보험 적용이 되나?
물론이다. 책임보험은 의무 사항이며 자손과 자차 보험도 들 수 있다.
나침반을 보고 길을 찾는 건가?
‘ForeFlight’라는 항공용 내비게이션 앱을 사용한다. 앱을 사용하기 어려울 땐 고속도로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야간 비행이 궁금하다.
불법이다. 항공법상 레저용 경비행기는 일출부터 일몰 사이에만 비행할 수 있다.
자동차처럼 방향지시등이나 비상등이 있나?
없다.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무선 통신으로 한다. 항공무선통신사 자격증이 필수인 이유다.
경비행기도 과속이나 음주 단속을 하나?
안 한다. 경비행기는 시속 250km가 제한속도인데 더 빠르게 달린다고 경찰 비행기(그런 건 없다)가 쫓아오거나 하진 않는다.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과속은 하지 않는 편이 옳다.
경비행기 자격증을 따려면 돈과 시간이 얼마나 들까?
국가지정 교육기관 기준 600만원 정도. 이론 교육 외 30시간 이상 비행해야 한다. 만 17세부터 취득 가능하다.
경비행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A-32 모델은 제원상 1307km까지 비행 가능하다. 서울에서 도쿄까지의 거리다. 하지만 나라를 넘어가는 건 불법이다. 경기도 화성을 기준으로 제주도 왕복이 900km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