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국립현대 '올해의 작가상' 이슬기는 무엇을 엮었나?

2020년은 당분간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로 남을 것이다. 그 중요한 해에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0’ 수상자 이슬기에게 질문을 던졌다.

BYESQUIRE2021.04.24
 
 

2020년의 이슬기

 
Q 직접 만나고 싶었으나, 작가님이 계신 로마는 지금 제가 가기엔 너무 먼 곳이네요. 지난 4월 4일에 종료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는 두 번 가서 유심히 봤습니다. 전시장의 두 벽에 마주보고 난 네 개의 문에 단청 색깔로 달이 흐르는 모양의 문살이 그려져 있던 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실행 과정에서 최초의 구상과 달라진 점은 있는지,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차질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네, 대화로나마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작업을 오래전부터 지켜봐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또 김민애, 정희승, 정윤석 작가 옆에서 작업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이번 〈동동다리거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형 과정이 있었어요. 최근 진행했던 다른 프로젝트들의 연장선에서 여자들이 부르던 야한 민요를 찾는 데서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고려시대 한 여인이 불렀다고 전해오는 ‘동동다리’라는 사랑요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속된 노래에 나오는 밤, 보름달 그리고 달의 회전을 생각했고, 또 월령체라는 노래 형식 이외에도 실제로 그 이름이 ‘만월창’인 경복궁 집옥재 완자문 등을 생각했습니다.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에 대한 감명으로 시작되어, 제 직감으로 이런 문양에 대한 발상이 이미 존재한다는 데 힘을 얻어 어떻게 하면 미술 작가로서 오늘날 동시대 미술로 과거의 언어를 번역하는 게 가능할지를 모색했습니다. 한자를 본뜬 한국의 나무 문살뿐만 아니라 모로코의 기하학적 문양으로 구성된 무샤라비아 또한 창, 문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 문양들이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엔 문살의 큰 틀을 없애고 전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4m 높이 문 크기로 나무 문살을 만들어 사람들이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는데요. 틀과 내용의 서열을 붕괴시키고 모두 평등하게 엮어내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무의 구조적 특성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여러 문살 장인들과 건축가, 엔지니어님의 조언으로 들었고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그 과정을 거쳐 다시 단청 문양으로 탄생했습니다. 임의로 정한 노래 리듬을 긋기단청에 묻어내게 하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다시 말해, 선들이 겹치는 부분이 노래 악보입니다. 전시 후에는 없어지는 비물질적인 노래의 성격과 더 맞다고 생각되었고,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만지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려 이런 작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2020년 4월 6일 이슬기 작가의 모습.

2020년 4월 6일 이슬기 작가의 모습.

Q 공간 전체를 정의하는 듯한 문살 작업과 전시 내부의 다른 작품들이 무척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달빛이 전시장의 온 벽에 스며들어 약간씩 다른 연한 회색으로 들어갔고 그 위에 단청으로 한 줄 한 줄 그어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북동문, 북서문은 이미 있는 문으로, 맞은편에 대칭으로 남서문, 남동문을 뚫었죠. 문살 모양 긋기 획 한 줄 한 줄에 가락이 숨어 있다면, 문살 전체 모양엔 달이 숨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유리 시험관들이 달려 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한국 전시에 못 올 지인들을 생각하며 프랑스의 여러 강, 코펜하겐, 멀리 뉴욕 등 그들이 살고 있는 집 근처 강 하구 부분(강과 바다가 만나는 접점)의 물을 우편으로 받은 것들을 한곳에서 만나게 했어요. 다시 말하자면, 여인(들)이 불렀을 법한 야한 노래의 임의적 가락을 품은 달 모양을 한 큰 문의 그림자가 색깔로 벗겨져 나왔고, 그 너머는 어느 곳에서 온 강물 물방울들이 있고 또 원초적 여인의 모습을 한 나무놀이가 있습니다.
 
Q 어떤 분들과 협업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수원 문살 장인 권혁천 씨, 서울시 무형문화재 심용식 문살 장인의 조언을 받았고, 경기문화재단 노현균 씨의 추천으로 여주 강성철 목수님과 문살 작업을 했으며, 그 모든 과정을 한승우 건축가님과 같이 했습니다. 단청은 친구 최희정의 소개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단청조교 김수연 선생님 팀과 작업했습니다. 단청에서 쓰지 않는 색깔까지 현장에서 주광관 단청 이수자님께서 직접 섞어주셨고요. 물론 단청 안료의 성격상 테이프 작업 없이 수십여 년의 단련된 손으로, 긋기단청으로 한 줄 한 줄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김수연 선생님과 함께 하시는 김경렬, 성호준, 주광관, 최태성 님은 여러 해 같이 작업해 오신 분들이라 어느 분이 어떤 선을 그었는지까지 알아보실 정도였어요. 단청팀과 아울러 설치를 위해 권혜성, 이세준, 이이난, 특히 작가 친구 정소영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험관은 종로 김종진 사장님, 바가텔 나무놀이의 재해석은 화성의 김재경 씨와 협업했고, 전시장에 던져놓은 듯 가끔 나오는 다리세기 소리는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1990년도 초에 녹음한 것을 빌려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형식의 협업이지만 강물은 엘피 튜르팽, 소피 비구루, 솔렌 모렐, 야콥 파브리시우스, 제시카 몰건, 필립파 올리비에라, 이자벨 텔리에가 보내왔습니다. 모두 아트센터나 미술관의 디렉터네요. 프로젝트마다 어떤 협업을 누구와 할지 생각해나가는 건 단체여행을 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단청문살을 확대한 모습. 작가는 살이 겹치는 부분들이 전체 작업의 시작이 된 민요의 악보라고 설명한다.

단청문살을 확대한 모습. 작가는 살이 겹치는 부분들이 전체 작업의 시작이 된 민요의 악보라고 설명한다.

Q 그간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봐온 사람이라면 조금 놀랐을 것 같아요. 오방색으로 수놓은 누비이불로 작업한 이불 프로젝트나 탈 연작을 예상했던 사람들이라면 절제된 색감과 예상치 못한 문살 작업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색깔’이 어디서 왔는지를 찾다가 몇 년 전부터 통영의 누비 장인들과 협업으로 이루어진 이불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이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1980~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찬란한 색깔의 여름 홑누비이불을 본떴어요. 이불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공동체 의식이 담긴 속담을 품게 하여 그 이불을 덮고 자는 이의 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이불 관점에서 본 주술적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불을 한 줄 한 줄 누비는 장인들의 반복적인 행위를 염원으로 생각해서 그 섬세하고 기교한 부분들에 대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U: 쥐 죽은 듯’에서는 밑부분에 까발라 자빠진 쥐의 세모 얼굴, 반달 몸, 수평 꼬리를 수평으로 한 줄 한 줄 누벼서 바닥과 같은 ‘납작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죠. 어떻게 보면 이번 문살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거의 매년 보러 갑니다. 보통은 전시장이 꽉꽉 차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이슬기 작가의 공간은 비어 있다고 느꼈어요. 이번 작품의 도록에 해제를 남긴 김성원 교수는 작가님께서 본인 전시의 텅 빈 공간을 두고 ‘공간을 벗긴다’라고 표현했다고 썼습니다. ‘공간을 벗긴다’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번 프로젝트는 야한 노래를 나무 문살 안에 담는 것이었어요. 보통 야한 노래라 하면 남자분들이 부르는 노래를 연상하는데, 여자분들이 부르는 야한 노래들이 분명 있습니다. 대체로 은유의 형태를 통해 감추는 듯하지만 할 말은 다 하는 노래들이죠. 물론 제가 용의하게 ‘공간을 벗긴다’고 표현했을 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여자들이 불렀을 야한 노래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텅 비어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뭐가 있는… ‘어, 이거 뭐지?’ 하고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들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실 어떤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자체에도 야한 의미를 둘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프와투나 브르타뉴 지방에서도 들을 수 있는 노래 중에 큰 성당에 남자가 무릎을 꿇고 양초를 들고 들어가는데, ‘너무 뜨겁다 불이 나서 머나먼 라 로셸에서 소방수들이 출동한다’고 노래하는 내용이 있어요. 오늘날처럼 소통 수단이 발달한 때에 서로 같이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귀해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Q 작가님의 한국어 인터뷰가 귀한데, 이번에 국립현대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니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재미’, ‘재미있어서’, ‘재밌더라고요’ 등이었어요.
악. 재미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1955년 조르주 바타유가 쓴 라스코 동굴벽화에 대한 책에 놀이와 위반에 대한 분석이 나옵니다(바타유는 라스코 벽화의 탄생에 대해 고찰하며 놀이와 예술을 노동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위반’으로 해석한 바 있다).
 
‘U: 고양이 세수하듯’, 2020, 통영 누비 장인과의 협업. Seulgi Lee © Adagp Paris 2021

‘U: 고양이 세수하듯’, 2020, 통영 누비 장인과의 협업. Seulgi Lee © Adagp Paris 2021

Q 2016년 작인 누비이불 시리즈의 ‘U: 내코가석자’, ‘U: 수박겉핥기’ 등의 작품은 이미지와 제목 사이에서 오는 약간의 뒤틀림도 역시나 ‘재미’일 것 같아요.
이불 프로젝트에서 오는 재미는 한 줄 한 줄 누빈 입체 선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재미라 할 수 있을까요? ‘U: 내코가석자’는 갤러리현대에서 소개되었던 〈다마스스〉전에 소개가 되었고 ‘U: 수박겉핥기’는 파주 미메시스에서 열린 〈분화석!〉전에서 소개가 되었습니다. 최근 덴마크인 디렉터 야콥 파브리시우스의 초청으로 참여하게 된 부산비엔날레에 소개되었던 이불 프로젝트 작품 중 ‘U: 고양이세수하듯’에서는 고양이 몸뚱어리가 아래위 두 개의 원으로, 그 두 원이 겹친 부분을 이용해 고양이 귀 두개를 세우고 고양이가 왼쪽 손을 머리(코) 근처에 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쪽은 손을 아래위로 드는 모습이므로 아래위 방향으로 누볐고, 그 손으로 다가가는 얼굴도 아래위 수직으로 누볐고요. 고양이들 중 기분이 바뀌면 귀를 수평으로 내리는 놈들이 있어요. (제가 아는 고양이는 성이 날 때 그랬는데요) 그래서 귀 부분은 수평으로 한 줄 한 줄 누볐어요. 그런 모습이 담긴 형상을 보는 이는 속담 속 고양이 모습을 떠올리게 되죠. 그 보편적이지만 개인마다 또렷한 동물 형상이 이불 속의 거의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나타나 만나는 부분, 희미하지만 뚜렷한 그 부분이 제일 재밌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이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인식하고 만나는 공간이 아닐까요.
 
Q 아트의 세계에는 여러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작년에는 조각가 정서영의 호두가 참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각자의 재미를 가지고 있을 텐데요. 이슬기의 재미가 갖는 특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도 정서영 작가님 작품 좋아해요. 물체와 공간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하시는 방법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말씀하신 작품에서 작은 호두가 사람의 두뇌를 닮았고 (이성) 또 창자랑도 닮았어요 (몸). 녹색 호두면 아직 덜 자란 호두일까요?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들을 끌어내는 듯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님들 중 또 김범 작가님의 작품들 팬입니다. 저는 작업하는 데 있어 재미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재미있게 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지난 4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이슬기의 〈동동다리거리〉 전시장 전경. 달을 품은 문살의 그림자가 단청의 색으로 밤 빛의 벽을 물들이고 있다.

지난 4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이슬기의 〈동동다리거리〉 전시장 전경. 달을 품은 문살의 그림자가 단청의 색으로 밤 빛의 벽을 물들이고 있다.

Q 이번 ‘올해의 작가상’ 수상 전시인 〈동동다리거리〉가 탄생하기까지 정말 긴 예술적 연구의 여정이 있었죠. 지금은 사라져가는 멕시코 오악사카주에 있는 산타마리아 익스카를란이란 작은 마을에서 사어화되어가는 언어인 익스카텍어, 그 언어 중에서 그 마을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시적인 문장과 단어만 따와서 바구니 장인들과 함께 만든 작업이 2017년 〈다마스스〉전에서 선보였던 ‘W 시리즈’이지요. 또 브르타뉴 북쪽 지역에 있는 특별한 이름의 섬 ‘여인의 섬’의 민요를 수집하고 이 민요의 멜로디를 편집하고 개사해 영상과 함께 엮은 작업이 ‘여인의 섬’입니다. 〈동동다리거리〉는 이 두 작업 방식을 복합적으로 합한 것 같아요.
맞습니다! 사실 전시 내용뿐 아니라 전시 제도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어떻게 하면 이 전시를 4개의 개인전이 아닌 하나의 전시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영국 터너프라이스 작가들은 공동 선언을 했는데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왜 작가들은 지원금을 초월한 시간과 금전을 투여하는 시스템 안에 있을까.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에 돌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다 같이 뭔가 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 이순간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아니라 ‘올해의 작가들’ 전시라 생각하면서 천연 항균 효과가 있는 삼베로 마스크를 만들어 미술관에 소개하기도 합니다.
 
Q 언어에 대한 탐구를 오래 하셨어요. 누군가는 이슬기가 파고드는 걸 쉽게 ‘전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상형문자, 갑골문자, 빗살무늬에 작가가 몰입하는 과정을 보면 이슬기는 ‘전통을 연구한다’라고 하기보다는 마치 상징의 탄생, 언어를 포함한 여러 기호의 호환성을 깊게 파고드는 중인 것 같아요.
네. 저는 배워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인류학자인 피에르 델레아주(Pierre Déléage) 씨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네요.
 
Q ‘여인의 섬’에서 개사 전 노래와 작품에 삽입된 노래의 가사 내용은 뭔가요?
브르타뉴 지방의 ‘여인의 섬(Ile aux Femmes)’ 근처에서 녹음기가 보편화될 무렵부터 추출되어 남아 있는 노래 중 여러 시도 후 10곡을 실어서 영상을 만들었는데요. 바로 2019년 여름이었어요. 전시를 브르타뉴 수도 렌 시립미술관에서 했는데, 거기 온 관람객들 중 리듬을 듣고 “어? 나 이 노래 아는데, 들어봤는데”라고 하시는 분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간혹 있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고요. 제가 안로흐 뱅상(Anne Laure Vincent), 클레망스 미모(Clémence Mimault)와 협업해 만든 가사에는 ‘여름밤 여인의 섬/ 내 바구니 만지지 마’ 등의 가사가 등장합니다. 리네트 장드롱 (Linette Gendron)이 부르고, 피에르 슈브리에(Pierre Chevrier)가 수집한 프와투 노래(Chansons en Poitou)의 가사에는 ‘낭트에 왔다 세 대의 큰 배/ 내 신발 만지지 마 내 신발’이라는 내용의 가사가 나오죠. 참고로 (영국과 가까운) 브르타뉴 지방은 아직도 불어와 많이 다른 방언이 남아 있습니다. 그 지방 민요에서 바구니는 여자 음부를 뜻합니다.
 
‘U: 쥐죽은듯’ 일부, 2020, 통영 누비 장인과의 협업. Seulgi Lee © Adagp Paris 2021

‘U: 쥐죽은듯’ 일부, 2020, 통영 누비 장인과의 협업. Seulgi Lee © Adagp Paris 2021

Q 프랑스를 베이스로 활동하셨고, 지금은 로마에 계신 걸로 알아요. 작가가 아닌 개인 이슬기에게 2020년은 어떤 해였는지, 코로나 시국에 있어서 프랑스의 분위기나 로마의 분위기 그리고 서울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안하고 두려운 한 해였어요. 다행히 초청해주신 전시가 많았는데 2020년 초에는 유럽에서, 중반부터는 한국에서 보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처음에 코로나는 소위 잘사는 나라들에서 급격히 퍼졌는데 이미 있던 빈부 격차를 비롯한 사회적 문제들이 더 악화되는 것을 관찰했고 나라마다 분위기가 너무 달랐어요. 더구나 공동체 형성의 유형들을 찾아다니던 저에게는 더욱 근본적인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저는 지금은 로마에 있지만 프랑스 파리에 집이 있고 거기서 산 지 한 30년이 됐어요. 보통 유럽에선 취소된 전시도 많고 취소되지 않은 전시라도 3개월에서 1년이 넘게 연기됐습니다. 2020년 3월 초 이미 코로나 때문에 프랑스의 분위기가 산만해져 있을 때 저랑 같이 일하는 파리의 주스앙트르프리즈 갤러리의 추천으로 옥션에 참여했었죠(미술 작품을 기증해서 옥션에 팔린 돈으로 마스크를 사 병원 의료진에게 나눠주는). 3월 14일 오픈 예정이었던 포르투갈 리스본의 아트센터에서 〈우리는 대칭이 아니다〉 전시 준비를 하러 가게 되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생기는 바람에 포르투갈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결국 오픈 이틀 전에 오프닝 행사가 취소되었고, 오픈 당일엔 아트센터 문을 닫았죠. 저는 계획대로 프랑스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거의 쫓겨나듯이 왔었고요. 파리 집에 돌아오자마자 첫 번째 록다운이 시작됐어요. 저는 ‘한국에 올해의 작가 전시를 하러 가려면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장보는 거 빼곤 산책도 하지 않고 두문불출했어요. 내한을 하자마자 2주 격리를 했고요. 갤러리현대에서 제가 격리하는 곳에 먹을 것을 배달해 주신 게 생각나네요. 하루하루 죄인처럼 보냈던 것 같아요. 한국은 확진자를 직접 아는 경우가 아니라도 하루에 5번 이상 알람이 오는 상태였고, 프랑스는 한 다리만 건너면 코비드로 죽은 사람이 몇몇 나올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2020년 봄 얘기예요. 프랑스 정부는 2주에 한 번씩 방역 정책을 바꾸었고요. 록다운 땐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일하러 나가거나 장보러 나갈 때 이동증명서를 들고 나가야 했죠. 이 증명서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서 어디로 간다는 등의 내용이 명시되어 있어요. 처음엔 마스크가 없어서 록다운 한다는 말도 있었어요. 지금 머무는 로마에선 빌라 메디치에 몇 달 머물게 됐는데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코비드 확진자가 제일 먼저 나온 나라라 사람들의 마음이 준비가 더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제가 이탈리아어를 잘 못해서 그런지 통제가 프랑스보다 덜한 것 같아요. 물론 일 때문에 이동하는 이들 중 거의 매일 코로나 테스트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일과 생활이 밀접하고, 삶은 만남의 우연이라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제일 신기했던 건 2020년 제가 내한할 때쯤 프랑스는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이었는데 분위기가 좋았어요. 한국은 500명이었는데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게 기억납니다. 가만 보니 프랑스는 1만3000명에서 1만 명으로 감소해서 기뻐하는 분위기였고, 한국은 200명에서 500명으로 배나 뛰어서 걱정하는 분위기였어요. 중요한 건 바로 곡선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어디서든 마음을 편하게 갖고 조심하며 서로를 지키는 태도가 절실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토론으로 같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바바라 스티글레르(Barbara Stiegler)는 코비드가 팬데믹이 아니라 신대믹(Syndemic)이라고 정의합니다.
 
이슬기 작가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보내온 사진.

이슬기 작가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보내온 사진.

Q 코로나 이후의 예술은 정말 크게 변할 것 같아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디지털 문화도 발달하겠지만 오히려 저는 심플라이프, 슬로라이프와 병행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번 클릭하는 데 소요되는 자연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컴퓨터 없는 날을 정해야 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
 
Q 앞으로 이슬기의 기호는 어떤 형태로 발전해나갈까요?
지켜봐 주세요. 지난해 파리 퐁피두센터 공동전에 초대되었는데 한 2년 연기된 거 같고요. 올해 9월 초쯤 오픈 예정인 인천아트플랫폼에서 김현진 신진감독에게 전시 초청을 받아서 기뻐요. 그때는 직접 뵐 수 있겠네요.
 
*서면으로 받은 이슬기 작가의 글에는 간혹 생소하게 느껴지는 구문이나 문장이 포함되어 있으나 〈에스콰이어〉 편집부는 이를 작가의 개성으로 보아 그대로 살려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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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성룡
  • PHOTO 국립현대미술관/ 갤러리현대/ 이슬기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