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는 정말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어요. 태오 씨에게는 어떤 영화인가요?
제 커리어에서 정말 중요한 작품이고 결과적으로 보면 저를 꽃피게 해준 작품이죠. 경험적으로 봤을 땐, 다른 나라에서 작업한 경험들 중에서도 조금 충격적인 경험이긴 했어요. 러시아라는 문화 그 자체에 놀랐달까요? 우리는 보통 서양인, 동양인, 유럽인 등에 대한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화성인 같았어요. 정말로요.(웃음) 정말 신기한 문화예요. 또 러시아 사람들은 ‘한’이 뭔지 알아요. 나라는 크지만, 수많은 갈등과 전쟁을 겪은 터라 ‘한이 맺힌다’라는 정서를 아는 것 같아요. 근데 그걸 슬프게 표현하지 않아요. ‘그게 인생이다. 그런 일로 우리가 울고불고하면 어쩌겠는가. 같이 술이나 마시고 웃자’라는 식이죠. 한국, 또는 동양과 매우 비슷해요. 그런데 코카서스 인종이 다수 인종 중 하나라 막상 겪다 보면 그 느낌이 되게 이상해요. 또 국가 전체로 따지면 동양 인종이 엄청 많아서 동양인이라고 차별받은 적도 없어요. 가장 재밌는 건 한국 같은 서열 문화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유교 사회도 아닌데, 나이뿐만 아니라 직위도 엄청 따져요. 예를 들어 감독이 방에 들어오면 사람들이 감독 눈치를 보기 시작해요. 유럽이나 미국에선 안 그러거든요. 갑자기 막 시나리오를 펼치고, 열심히 일하는 몸짓을 하고 그래요.
영원한 사랑과 결합의 맹세, 성공의 약속을 상징한다. 18K 핑크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풀파베 세팅한 러브 브레이슬릿 까르띠에. 티셔츠 코스. 데님 팬츠 리바이스. 슈즈 쥬세페자노티.
맞아요. 제가 러시아를 친근하고 놀랍게 느낀 이유가 있어요. 제가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잖아요. 지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러시아는 유럽인 독일과 아시아인 한국의 중간에 있는 나라처럼 느껴졌어요. 처음 가본 러시아에서 친근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2년간 메소드 연기를 배웠어요. 영국에서 3개월 동안 셰익스피어 극을 익히는 단기 과정을 거쳤고, 〈레토〉에선 러시아어로 연기를 했죠. 그리고 이제는 한국어로 연기를 해요. 이론과 실제 사이의 뒤틀림을 정말 자주 경험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았죠. 그래서 매일매일 새롭게 배운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1년 전과 지금 제 호흡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 미국에서 영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복식호흡을 뱉어서 말을 해요. 반면 한국 사람들 중에는 성악가나 연극 무대에 서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호흡법으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죠. 학교, 군대, 회사에 있는 서열 문화와 거기서 오는 억눌림 탓에 이런 차이가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해봐요. 이 문화에 옳고 그른 건 없어요. 서열 문화가 나쁘다는 말도 절대 아니고요. 오히려 연기자인 저로서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에 대한 경험이 ‘나’라는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범위의 폭을 늘려준 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어디 책에 써 있는 내용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한 거죠?
그렇죠. 저와 함께 트레이닝을 하는 연기 코치에게 한국적인 연기를 배우다 보니 제가 캐치하게 된 사실이에요.
연기자 중에서는 벤 위쇼를 좋아하는 걸로 알아요. 저 역시 〈디 아워스〉에서 벤 위쇼 연기를 보고 감동한 적이 있어요. 내가 영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벤 위쇼의 감정이 어떤지는 알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달력이 있었죠.
벤 위쇼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을 거예요. 앞에서 잠시 말했지만, 2004년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일종의 셰익스피어 부트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그때 벤 위쇼가 그 학교의 졸업생이었죠. 저는 그 학교에서 4년짜리 정기 교육과정을 받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벤 위쇼가 출연하는 졸업작을 봤어요. 〈햄릿〉이었죠. 제가 사실 〈햄릿〉을 별로 안 좋아해요. 심지어 보는 것도 힘들어할 만큼요. 그런데 벤 위쇼의 연기를 보면서는 내내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좀 충격적인 것 같아요. 그런 섬세한 연기를 하는 영어권의 배우 중 제가 아는 건 3명이에요. 벤 위쇼, 필립 시모어 호프먼, 덴절 워싱턴. 제가 좋아하는 계열의 배우라고 할 수 있죠. 이 3명의 배우들은 ‘자유분방한 나라’에서 살지만, 아까 얘기했던 동양의 호흡, 즉 억눌린 자아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호흡을 살려서 연기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를 생각해요.
1969년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첫 선을 보인 뒤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아이콘으로 존재하는 러브 컬렉션의 18K 화이트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스몰과 러브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티셔츠 코스.
방금 얘기하는 도중에 아까 봤던 빛나는 눈빛이 쏟아졌어요. 연기에 대한 진심 때문일까요?
저는 그 진심이 재밌어요. 그 재미가 허세나 가식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재밌어요.
연기가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요리도 엄청 잘하잖아요.
잘하진 않고 좋아서 하는 거죠. 잘하는 건 아녜요.
제 지인 중 태오 씨가 한 라따뚜이를 먹어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태오의 라따뚜이가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보다 맛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가요?(웃음) 사실 요리 잘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제가 오랫동안 무명이었잖아요. 그러니 저렴한 재료로 고급진 요리를 만들려고 고민을 했던 거예요. 오래전 충무로에 살 땐 중부시장에 가서 꼼꼼하게 장을 봐다가 레스토랑에 나올 법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죠. 그러다 보니까 창작 요리가 나오기도 했고요.
비슷한 논리예요. 백화점에서 사먹으면 너무 비싸더라고요.
처음에는 소시지, 살라미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살라미가 하몽보다 손이 많이 가요. 일일이 다 다지고 양념과 소금의 양을 다 재야 하거든요. 일반 소금이 아니라 발효에 사용하는 소금이 또 따로 있어요. 와인까지 넣어 버무리고 돼지 창자에 넣고 말리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정말 힘들죠. 근데 하몽은 그에 비하면 무척 단순해요. 소금에 절여두거나 아니면 지퍼백에 양념 허브와 함께 넣어서 일주일 동안 염지한 후에 걸어두면 끝이거든요. 제가 만드는 하몽 한 덩이를 백화점에서 슬라이스된 걸로 사려면 몇백 만원 정도 할 거예요.
그렇게 만든 하몽을 니키의 친구들이 놀러 오면 서빙해주는군요.
이렇게 완벽한 남편이 있을 수 있나 싶어서요.
재밌잖아요. 제 손님이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제 재미인걸요.
사실 좀 아쉬워요. 니키리의 위상이 확실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니키리는 사실 미국에서 아트를 공부하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어마어마한 아티스트잖아요? 파이돈에서 나온 〈Great Women Artists〉에도 올랐을 정도이고요. 태오 씨 본인도 예술인인데 아티스트와 함께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니키는 이미 하버드를 비롯해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교에 특강을 다니는 아트계의 스타였어요. 니키가 어딜 가면 관계자들이 거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정중하게 모시러 나올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니키를 잘 모르더라고요.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고. 그게 정말 아쉬웠어요. 사실 당시의 저는 엄청난 독일 촌놈이었어요. 아트의 ‘아’자도 모르는 상태였죠. 정말 존경해요. 우리가 대화를 할 때면, 심지어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제가 가진 감정들, 나의 혼란들이 정리가 되는 걸 느껴요. 결과적으로 니키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저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죠.
대담하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을 지녔다. 검지에 착용한 18K 핑크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저스트 앵 끌루 링, 약지에 착용한 18K 옐로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링 모두 까르띠에. 셔츠 준지. 데님 팬츠 조르지오 아르마니.
로맨틱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현실, 그게 사실이에요.
오늘 화보에서 찼던 까르띠에의 ‘저스트 앵 끌루’와 ‘러브’는 전설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가 50년 전 까르띠에를 위해 디자인한 시리즈예요. 느낌이 어땠나요?
너무 예뻤죠. ‘저스트 앵 끌루’는 상징적인 것 같아요. 영어로 하면 ‘이건 그냥 못일 뿐(It’s just a nail)’이라는 의미잖아요. 못은 노동자의 상징인데, 노동자의 상징이 대조적인 오트 쿠튀르의 맥락에 들어간 셈이죠. 아이리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는 비어홀에서 추던 춤이 고급 무용을 대변하는 발레로 발전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어요. ‘러브’도 마찬가지죠. ‘잠근다’는 행위의 상징성과 사랑의 의미가 직관적으로 연결되니까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1969년 까르띠에가 발표한 'LOVE(러브)' 브레이슬릿. 전용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여 착용하는 콘셉트로 출시되어 전 세계의 연인들에게 충실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브레이슬릿으로 사랑을 받았다. 시대적 디자인에 파격을 가져온 러브 브레이슬릿은 주얼리 혹은 액세서리의 착용과 예술적인 의미에 있어서 혁신적인 존재였다.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다른 한 사람의 마음으로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 그리고 자신에게 전하는 신념의 메신저로 역할한 LOVE 컬렉션. 까르띠에를 통해 소중한 감정을 봉인하기 위해 탄생되었으며,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합, 영원한 사랑의 맹세 그리고 성공의 약속을 상징한다.
「 Juste un Clou 저스트 앵 끌루
」 1971년 탄생한 '네일 브레이슬릿'을 디자인한 알도 치풀로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집 두 채 중 두 번째 집은 철물점이다." 1971년의 네일 브레이슬릿에서 영감을 받아 2012년 론칭한 저스트 앵 끌루 컬렉션은 단순하고 평범한 ‘못’ 모티브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주얼리로 거듭났다. 주얼리의 테마로는 상상을 초월한 이 오브제는 강한 개성과 뚜렷한 의지를 가진 여성 또는 남성의 손목 위에서 강렬하고 시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타원형의 절제된 디자인이 특징인 솔리드 골드 주얼리의 끝은 어디론가 뻗어 나가기를 기다리는 듯 보이며, 우아함과 강인함, 길들일 수 없는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또한 리드미컬한 곡선과 대범함으로 개성과 자유를 상징하고 있다. 까르띠에 저스트 앵 끌루는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한 주얼리다.
*유태오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6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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