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쪽에서 퍼진 표현이다. 기본적으로는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대상,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감정의 상태, 취향, 경향을 아득히 넘어서는 소위 오타쿠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모에(하다)’라는 것은 문화적 코드, 인터넷 상의밈(meme)으로 확장된 상태다. 이 ‘모에’가 갖는 이미지의 뿌리는 단순하게 말하면 ‘귀여움’이다. ‘귀여움’은 국적, 문화, 역사를 넘어서는 이미지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떠올리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종의 영역도 넘어선다. 갓 태어난 동물을 보면 다른 종, 태생이라 하더라도 공통적으로 귀엽다는 인식을 가진다. 귀여움은 어쩌면 우주와 차원을 넘어서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귀여움은 국적, 문화, 역사를 넘어서고 종의 염색체를 포용하며 아침내 우주와 차원을 넘는 유니버스의 기준’이라는 생각을 가장 극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일본의 오타쿠들이었다. ‘이 정도의 귀여움이라니 이건 그냥 귀여움이 아니야’, ‘기존의 생각, 표현,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야’라는 생각들이 모여 ‘모에’라는 문화적 코드, 밈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모에’는 단순한 귀여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에’의 특징은 그것이 기존의 ‘귀여움’과 층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귀여움’에는 최소한의 상식, 경향이 있다. 모두가 공감할만한 귀여움이라서 귀여운 것이다. 아기, 소녀, 개나리꽃, 몽실구름 같은 것 말이다. ‘모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귀여움’과 다르다. 세라복을 입은 할아버지, 턱수염 난 탈모 아저씨, 개미지옥풀, 해안에 굳어버린 용암도 ‘모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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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느꼈다. 아! 모에하다! 이 남자, 박준우는 모에하다. 착 달라붙은 짧은 곱슬머리, 그려낸 진한 눈썹, 움푹 팬 쌍꺼풀, 온 얼굴을 덮은 얼룩덜룩한 흙탕물, 심미성이 극히 떨어지는 한국군 군복 등 모든 것이 내가 선호하는 이미지가 아님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작용 때문에 - 아마 ‘믹스커피’라는 마법의 주문에 내 눈앞에 필터가 씐 것이리라 - 갑자기 모든 것이 모에했다. 이 맛에 강철부대, 강철부대 하는 거구나. 사람들은 여기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에함 앞에 남자든 여자든 군필이든 미필이든 그런 것은 상관없다. 이 남자는, 이 출연자들은, 이 프로그램은 모에하다. 남녀노소에 상관없고 성장배경, 학력, 취향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좋아할 프로그램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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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영화 〈서편제(1993)〉에는 이 ‘모에’의 상태를 굉장히 잘 표현한 대사가 나온 바 있다. 판소리를 가르치던 유봉(김명곤 분)이 극 중 인물인 어린 동호에게 전하는 말이다. “이놈아, 지 소리에 지가 미쳐서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 이것이 ‘모에’와 다르지 않다. ‘자기 취향에 스스로 크게 만족하여 뿅 가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것’이 바로 ‘모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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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the writer?
남보람은 전쟁사 연구자다. 워싱턴 미육군군사연구소와 뉴욕 유엔아카이브에서 일했고 ‘전쟁과 패션’ 시리즈 〈샤넬을 입은 장군들〉, 〈메디치 컬러의 용병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