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옷으로 갈아입으니 또 완전히 다른 사람 같네요.
영상이나 사진들 보니까 평소에는 이런 스트리트 패션을 선호하는 편인 것 같더라고요.
엄청 좋아하죠. 저는 갖춰 입는 것보다 편한 게 더 좋더라고요. 이렇게 입으면 보는 사람한테도 편안함을 좀 주는 것 같고요. 편하면서 독특하고 예쁜 옷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전체적인 콘셉트랑 맞지 않아 화보에서는 안 쓴 프라다 보머 재킷도 계속 입고 돌아다녔잖아요. 그러다 결국 영상 인터뷰도 그걸 입고 촬영하게 됐고.
(웃음) 제가 프라다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라프 시몬스를 굉장히 좋아해요. 저 보머 재킷은 지금은 아예 구할 수가 없고 프리 오더만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스타일리스트 실장님이 한번 입어보라고 가져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입어봤다가, 네. 어쩌다 그대로 인터뷰까지 하게 됐습니다.
블랙 오버사이즈 재킷 준지. 블랙 셔츠, 화이트 타이 모두 프라다.
여전히 옷을 좋아하는군요. 예전에 그런 말도 한 적이 있잖아요. 본인이 번 돈을 다 옷에 쓸까 봐 걱정이라고.
그건 늘 걱정이죠. 어머니도 항상 걱정 많이 하시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하나의 낙이 된 것 같아요. 옛날처럼 집요하게 컬렉션을 다 모으겠다는 느낌은 아니고, 사고 싶은 옷이 생기면 기분 전환하는 느낌으로 하나씩 사는 거예요. 여전히 옷을 좋아하지만 집착은 없어진 거죠.
예쁜 옷을 입는 게 좋은 걸까요? 아니면 예쁜 옷이라는 매혹적인 물건을 소장하고 모으는 데에 포만감이 드는 걸까요?
사실 가장 좋은 건 택배에 대한 설렘인 것 같아요.(웃음) 문 앞에 배송 완료됐다고 문자 알림 왔을 때. 그러면 정말 ‘와’ 하고 신나서 얼른 택배 박스를 개봉하고. 그렇게 보니까 하나하나가 다 재미인 것 같네요. 택배 받고, 박스 열고, 신발 신어보고, 신고 나가고, 지인들이 새 신발 알아봐주고.
이렇게 슈트 계열 의상들 입고 촬영하면 느낌이 새롭겠어요. 평소에 안 입는 스타일이니까.
그렇죠. 생각해보면 제가 패션 화보에서밖에 이런 걸 입을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너무 재미있는, 일종의 놀이 같아요 일단은. 꼭 슈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화보 촬영 자체가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하잖아요. 또 오늘 다들 좋은 분들이랑 좋은 작업을 한 것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저는 사실 제가 인터뷰이라고 상상하면 화보 촬영이 마냥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업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스무 명, 서른 명이 모여 있고, 다들 내가 즉석에서 뭔가를 해내기를 바라는 분위기고.
맞아요. 저도 예전에는 그런 걸 굉장히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다들 저를 위해서 준비해주시는 분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스태프들의 시선이 자신감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아직도 피부 상태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싶은 날은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만 아니면 시선을 즐기게 된 것 같아요.
아까 현장 세팅하고 있을 때 스태프가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재욱 씨가 1년 반 전과 좀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 같으냐고. (이재욱은 〈에스콰이어〉 2020년 4월호에 인터뷰와 화보를 진행한 적 있다) 그때는 그냥 좀 더 남성적인 느낌이 생긴 것 같다고 답하고 말았는데, 화보 첫 컷 테스트 보면서 확 느꼈어요. 어떤… 오라라고 할까요? 카리스마? 그런 게 생긴 것 같다고요.
오라요? 와, 그런 게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저도 좋겠네요.
배우 특유의 압도감이랄까… 죄송해요. 민망하게 왜 자꾸 진부한 표현만 나오지?(웃음) 그런데 정말 분위기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꼈거든요.
그렇게 봐주시면 저는 너무 감사하고요. 그냥 그때에 비하면 제가 모든 상황을 좀 더 즐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태도에서 나오는 모습일지도 모르죠. 지나고 보니까 부담 때문에 긴장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그러는 게 되게 바보 같은 짓이더라고요. 그걸 승화시켜서 더 좋은 작업물로 만들어내야지.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긴장감, 시선, 이런 것들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좀 더 즐기려고 하는 방향으로.
블랙 재킷, 블랙 팬츠, 옐로 패턴 롱존 모두 프라다.
저번 인터뷰는 한창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촬영하고 계실 때였죠.
제가 딱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까지 안 쉬고 계속 달렸던 것 같아요. 동시에 여러 작품 촬영하면서 정신도 좀 없었고, 급급하기만 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고요. 이번에 제가 6개월 정도를 쉬었는데요. 쉬면서 뭔가 다듬어지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더라고요. 딱 잘라서 말할 순 없지만… 뭐랄까, 좀 더 여유로워졌달까요.
그때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그전에 했던 작품들과 다른 결이 있다고 했었어요. “우뚝 선 나무가 되는 게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잘 섞인 숲을 보여드리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죠.
맞아요. 되게 즐겁게 촬영했어요, 처음으로. 잘 섞일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았고, 애드리브도 흔쾌히 수용해주는 분위기였고요. 그런 현장에서 나오는 장우의 모습들은 제가 스스로 뭘 만들지 않아도 나오는 측면이 있었죠. 장우라는 분위기 그 자체가 곧 저였던 거예요. 그냥 현장에서의 제 모습.
저는 이장우 캐릭터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능청스러우면서도 멋쩍어하는 특유의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몇몇 순간에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굉장히 새로운 캐릭터 같다고 느꼈어요.
그냥 저를 잘 펼쳤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했다기보다 환경이 좋았던 거죠. 장우라는 캐릭터가 선택의 폭이 넓기도 했고요. 이걸 선택해도 정답이고 저걸 선택해도 정답인데, 조금 더 재미있고 ‘이재욱스럽게’ 표현한 게 지금의 장우인 거죠.
지금껏 맡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아쉽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장우는 아쉬움 없는 캐릭터로 남았을까요?
글쎄요.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러 선택적인 측면에서요. 어떻게 해도 모니터링을 해보면 아쉬운 부분은 나오는 것 같아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다 그럴 거고요. 다만 ‘아쉽다’는 말이 곧 실패를 말하는 건 아닌 거죠. 어쨌든 조금이나마 부족하다는 마음이 있고, 다음번엔 더 잘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조금 더 성장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거고요.
*이재욱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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