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미국 농무부가 만든 이토록 아름다운 과일 수채화 콜렉션

과일, 수채화, 그리고 책이 있는 풍경.

BYESQUIRE2021.07.31
 
 

수채 과실 도감

 
1910년, 미국 농무부의 수석식물학자 프레데릭 버논 코빌은 생면부지의 여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발신인은 뉴저지에서 크랜베리 농장을 운영하는 조셉 화이트의 장녀 엘리자베스 콜먼 화이트. 농무부에서 보낸 회지를 읽어본 바 ‘늪지 허클베리(swamp huckleberries)’가 유망 작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가능하다면 함께 제대로 재배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코빌도 기꺼이 화답했다. 그녀에게는 대를 이어 내려온 재배 노하우와 너른 대지가 있었고, 직접 모으고 골라 동봉했다는 야생 블루베리 샘플들은 꽤나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 뉴저지 화이츠보그에서 늪지 허클베리라고 부르던 작물의 정체는 오늘날의 블루베리이니까. 코빌과 화이트의 블루베리 묘목은 전국 각지로 팔려 나갔고, 뉴저지는 블루베리 재배 산업으로 호황을 맞았으며, 화이트는 ‘블루베리 여왕(The Blueberry Quee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Blackberry, Mersereau R. C. Steadman, 1922.

Blackberry, Mersereau R. C. Steadman, 1922.

물론 두 사람 이전에도 블루베리는 존재했다. 인기도 나쁘지 않아서 야생 블루베리를 채취해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이 많았는데, 다만 이 야생 베리를 길들여 농장 형태로 재배하는 데에는 다들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다. 1916년 최초로 블루베리 재배 및 산업화에 성공한 코빌과 화이트의 차이점은 두 사람이 블루베리의 생장 환경을 심도 깊게 연구했다는 점, 그리고 블루베리 나무들을 분류하고 교차 수정을 통해 더 나은 품종을 개발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 산하에 과실학부서(Division of Pomology)가 만들어졌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미국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새로운 과일 작물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농업을 다각화하고, 수입품을 대체하고, 기후와 토양에 더 적합한 품목을 찾기 위해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이렇듯 산업적, 과학적인 비전으로 만들어진 부서에 수채화가들이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50여 년 동안 무려 66명의 화가가 이 부서에서 일했다. 과일 종류를 체계화하고, 더 나은 품종을 개발하고, 퍼뜨리기 위해서는 개체의 기록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는데, 사진은 아직 기록 매체로 쓰일 만큼 발달하지 못한 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그림이 굳이 수채화여야 했던 이유는 코빌의 블루베리 개발 일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블루베리의 개량종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과실의 색깔이다. 2세대 개량종은 색깔에서 더 넓은 다양성을 보여준다.
 
Peach, Arkansas R. C. Steadman, 1918.

Peach, Arkansas R. C. Steadman, 1918.

미국 농무부의 연구 활동은 대개 당대에 산재한 농업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효용은 단순히 그에 머물지 않았다. 일례로 이들의 아카이브에는 50만 종이 넘는 과일 씨앗이 축적되어 있다. 미국의 과일을 위한 보험 센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미처 보관하지 못한 작물도 있는데, 그럴 때는 과실학부서의 수채화 컬렉션 같은 기록이 도움이 된다. 카토바 블루베리와 레드스킨 블루베리의 그림처럼. 코빌과 화이트는 새로운 품종 연구 도중에 이 ‘알비노 블루베리’들을 찾아냈다. 기록에 따르면 전말은 이렇다. 이 독특한 색의 블루베리들은 맛이 기가 막혔는데, 외관 때문에 당시 시장 환경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였고, 그래서 그냥 지나치게 되었으나, 코빌은 그것들에 더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 거라고 직감해 그림으로나마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199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핑크색 블루베리가 시장에서 각광받기 시작할 때 개발 연구에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Plum, Coeur de Boeuf B. Heiges, 1900.

Plum, Coeur de Boeuf B. Heiges, 1900.

과실학부서는 블루베리뿐 아니라 사과, 포도, 배, 오렌지 등 온갖 과일의 개체를 기록했고, 1886년부터 1942년까지 총 7584개에 달하는 수채화를 남겼다. 물론 누구나 유추할 수 있듯, 코빌의 알비노 블루베리 기록에 관한 일화는 흔치 않은 경우다. 이 수채화 기록들이 오늘날 실질적인 쓸모를 갖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측면의 초고해상도 사진과 뉴클레오티드 단위의 성분 기록으로 과일을 구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다만 그것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한 나라의 과일 체계를 7500여 장의 수채 세밀화로 남길 일은 없을 것이다.
 
Mango, Ameeri, Amiri E. I. Schutt, 1909.

Mango, Ameeri, Amiri E. I. Schutt, 1909.

LA, 베를린, 런던,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출판사 아틀리에 에디션이 한 세기 전의 농무부 문서를 책으로 엮어 내기로 한 건 그런 이유다. 본연의 쓸모는 사라졌지만, 사라졌기에, 이 아카이브를 새로운 미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 〈An Illustrated Catalog of American Fruits & Nuts〉의 서문을 쓴 작가 애덤 리스 골너는 그걸 이렇게 표현한다.
 

〈An Illustrated Catalog of American Fruits & Nuts: The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Pomological Watercolor Collection〉 Atelier Éditions.

〈An Illustrated Catalog of American Fruits & Nuts: The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Pomological Watercolor Collection〉 Atelier Éditions.

미국 농무부의 수채화 컬렉션은 여전히 효용성을 가진다. 사라진 사과 품종을 찾는 사람들이나 핑크 블루베리의 재배자들에게. 혹은 국립농업도서관의 스페셜리스트 컬렉션 책임자인 수잔 푸게이트가 말했듯 ‘미국 과일 문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자료’로서.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는 것이 우리 눈을 위한 필수영양소(비타민)라고 여기는 그 누구에게나. 적어도 나는, 이 그림들을 그 시대에 남겨진 유럽의 회화 작품들과 다른 태도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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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Courtesy of Special Collections
  • USDA National Agricultural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