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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20세기 의자 디자인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라인'들

의자 디자인의 역사에 변곡점을 만들어낸 7개의 선에 관하여.

BYESQUIRE2021.08.02
 
 

20th Century Lines

 

LCW

성형한 곡면
2011년에 허먼 밀러에서 제작한 원목 라운지 체어 LCW by 오드플랫.

2011년에 허먼 밀러에서 제작한 원목 라운지 체어 LCW by 오드플랫.

베니어판이라고 하면 으레 날림으로 지은 가건물의 벽면이나 조악한 가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들 명품 디자인으로 칭송하는 LCW의 선, 인체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3D형 곡선은 베니어판이 아니었다면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가볍고 강도가 높으면서도 몰드로 성형이 가능한 합판은 19세기초부터 수많은 발명가들의 시도와 열망이 만들어낸 소재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견인했던 전투기 모스키토가 합판 비행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특수강으로 된 비행기를 타고도 비행 공포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는 기가 찰 일일지 모르겠으나 합판 비행기는 그 전쟁을 승리로 견인한 주역이었다. 알바알토, 마르셀 브로이어, 미스 반데어로에 등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기라성 같은 모던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합판을 의자 디자인의 신소재로 끌어들인 개척자들이기도 하다.

 
특히 LCW의 곡면은 제2차 세계대전 합판 부목을 해군에 납품했던 임스의 야심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축적된 합판 기술이 만나 이루어낸 성취다. 명품 의자가 베니어판으로 만들어졌다며 얼굴을 찡그리지 말라. 우리가 아는 수많은 디자이너 체어는 베니어판이 아니었다면 탄생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베니어판은 19세기에도 지금도 인간이 만들어낸 목재 아닌 목재,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신소재다.

 

 

DAX

최초의 플라스틱 
1955년에 허먼 밀러에서 제작한 다이닝 암체어 DAX by 오드플랫.

1955년에 허먼 밀러에서 제작한 다이닝 암체어 DAX by 오드플랫.

최초의 플라스틱 의자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차지한 임스의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의자는 사실 1948년 모마에서 주최한 ‘저가 가구 디자인 국제 공모전’ 당선작이다. ‘저가 가구’ 디자인 국제 공모전이라는 이름 그대로 임스는 누구나 살 수 있는 의자, 현대 생활에 가장 어울리는 의자를 염두에 두고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의자를 만들었다. 오늘날 디자인 마켓에서의 임스라는 브랜드의 위상과 세련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저가’라는 단어가 영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의자의 최초 예상 판매가는 단돈 6달러 17센트였다.

 
임스 이후 수많은 플라스틱 의자가 세상에 등장했지만 그 어떤 모델도 임스 플라스틱 의자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색색깔로 시선을 사로잡는 이 경쾌한 의자의 선에는 미국이 전 세계에 아메리칸 스탠더드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한 1950년대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타파웨어, 선더버드 자동차, 텔레비전, 주크박스, 엘비스 프레슬리, 바비큐, 대형 슈퍼마켓, 레빗타운, 멜라민 식기, 포마이카 테이블 등 인공미로 가득한 가장 미국적인 신세계의 요소가 이 의자의 선에 담겨 있다. 플라스틱이 오늘날의 IT산업처럼 누구나 예측 가능한 앞길이 탄탄한 산업이었던 시절, 임스의 플라스틱 의자는 플라스틱에 의한, 플라스틱을 위한, 가장 플라스틱다운 의자로 미국 중산층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1950년대의 아메리칸 스탠더드 라이프는 2021년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LC1

기술 시대의 상징
1980년대에 카시나에서 제작한 라운지 체어 LC1 by 원오디너리맨션.

1980년대에 카시나에서 제작한 라운지 체어 LC1 by 원오디너리맨션.

1928년 르 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느레 그리고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디자인계의 영웅들이 모여 합작으로 만들어낸 의자가 바로 LC 패밀리다. 당연하게도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디자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자로 등극했다. LC 패밀리의 직선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산업 재료인 크롬 도금된 강관의 물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탄성이 있는 강관의 성질을 최대한 수용한 골격은 재료와 형태, 기능 사이의 명징한 논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기계적이고 능률적이지만, 동시에 등받이와 시트에 철 스프링을 달아 막상 앉아보면 안정적이며 편안하다.

 
이질적인 소재인 가죽과 강관을 동시에 사용한 의외성은 LC 시리즈를 디자인의 클래식으로 만들었다. 특히 인체의 무게를 견디도록 디자인되어 뒷다리와 엉덩이 받침부를 단단하게 연결하는 LC1의 곡선 강관은 기술과 현대성의 상징이다. 누가 모던은 불편하며 기술은 차갑다고 했는가? 산업 재료인 강관으로 구현해낸 기술과 그 기술로 그린 모던의 세계관은 결국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의자를 만들어냈다.

 

 

S 34

건축적 성취
1960년대에 토넷에서 제작한 캔틸레버 체어 S 34 by 오드플랫.

1960년대에 토넷에서 제작한 캔틸레버 체어 S 34 by 오드플랫.

S 34는 인류가 디자인한 최초의 캔틸레버 체어다. 수평보가 기둥 밖으로 길게 뻗어 나와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건축 구조에서 비롯된 단어인 캔틸레버는 더 많은 하중을 효과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철근 콘크리트의 발명과 함께 비롯되었다. 마르트 슈탐은 이 건축적 성취를 의자에 적용하고자 했다. 건축가에게 철근 콘크리트가 있었다면 마르트 슈탐에게는 강관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의자의 주재료로 군림해왔던 나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구조가 강관으로는 가능했다. 강관의 유연성을 최대한 이용해 ‘ㄷ자'로 구부림으로써 뒷다리 없이 오로지 앞다리만으로 지탱되는, 마치 떠 있는 듯한 이 기묘한 의자가 탄생했다.
 

S 34의 선은 사람의 하중을 견디는 조형적인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그러면서도 응당 있어야 할 것을 가뿐하게 제친 경쾌함과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지금 우리에겐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 의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마치 의자가 공중 부양하는 듯 보이지 않았을까? S 34에 앉으면 공기를 가르는 가벼움과 미세한 진동에도 감응해 떨리는 선과 부재의 미학이 느껴진다고 하면 과장일까?

 

 

CHANDIGARH CHAIR

자본의 상징이 된 공공의 꿈
1956년대에 제작되어 실제로 찬디가르 시테에서 사용한 찬디가르 체어 by 빈트갤러리.

1956년대에 제작되어 실제로 찬디가르 시테에서 사용한 찬디가르 체어 by 빈트갤러리.

찬디가르 체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 찬디가르 체어에는 지적 재산권이 없다. 오리지널이라는 딱지 하나에 10만 달러가 넘는가 하면 200달러짜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찬디가르 체어는 르코르뷔지에가 인도 펀자브의 주도인 찬디가르를 계획할 당시, 그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가 공공기관과 대학 등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디자인한 의자다. 주로 공무원들이 공공기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의자라, 디자인 등록조차 하지 않았으며 가장 저렴한 재료로 손쉽게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당시 인도에서 가장 흔한 목재로 취급받던 티크(고무나무의 일종)와 버드나무 가지를 뚝딱 엮어 만들 수 있게 디자인한 찬디가르 체어는 그래서 인도의 그 어떤 목재 공방에서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막 디자인된 것은 아니다. 두 다리가 A자(보통의 라운지 체어) 혹은 X자(일부 다이닝 체어의 형태)로 교차하며 팔걸이와 받침을 지지하는 이 의자의 형태는 무게를 효과적으로 분산해 다리의 접합부가 쉽게 고장 나지 않는다. 공공의 재산인 이 찬디가르 체어가 자본주의적 가격 결정의 상징이 된 건 좀 슬프다.
 
1980년대까지 찬디가르 체어는 르코르뷔지에의 시테만큼이나 잊힌 유물이었다. 시테의 지하 창고에 망가진 찬디가르 체어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는 증언이 디자인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 찬디가르 체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카다시안 집안의 장녀 코트니 카다시안이 12개나 수집했다고 자랑스럽게 외칠 만큼 핫한 의자다. 2000년대 들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급기야 인도 정부는 2011년부터 오리지널 찬디가르 체어를 문화재로 지정하고 해외 반출을 금지했다. 물론 반출을 금지한 이후 희소성이 증가해 가격은 더 급격하게 치솟았다. 다리 교각을 닮은 찬디가르 체어의 A자형 다리선은 ‘자본주의의 선’이기도 하다.
 


 

RED BLUE CHAIR

의자가 된 추상
1970년대에 카시나에서 제작한 레드 블루 체어 by 원오디너리맨션.

1970년대에 카시나에서 제작한 레드 블루 체어 by 원오디너리맨션.

등받이 기울기 25도, 시트 기울기 10도. 게리트 리트펠트가 찾아낸 의자의 황금비율이다. 막대를 조합해 만든 가장 간단하고 본질적인 의자, 세부를 뜯어보면 각목으로 뚝딱뚝딱 만들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의자의 명성은 직관에서 나온다. 누구나 한눈에 몬드리안의 추상화 ‘빨강, 노랑, 검정, 회색과 파랑의 조합’을 연상할 것이다. 한쪽은 의자고 다른 쪽은 추상화지만 이 의자의 컬러 배치와 형태를 본 우리의 눈이 둘을 단박에 연결해 인식할 만큼 유사하다. 3D로 구현된 몬드리안이라고나 할까? ‘모더니즘의 이상을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 형태로 옮겨놓은 것’이라는 평가 그대로 레드 블루 체어는 그래서 의자가 된 추상이다.
 

선과 색으로 만들어지는 면. 미술사의 역사가 만들어낸 테크닉과 형태를 비롯해 시대별 스타일, 장식 등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버리고 남은 미술의 본질, 가장 순수하기에 유행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 패션이나 메이크업을 벗어던진 순정의 육체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레드 블루 체어의 직선이 가진 아름다움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오로지 핵심만이 응축된 세계다.

 

 

NO. B9 LE CORBUSIER

기술과 현대의 곡선 
1980년대에 토넷에서 제작한 원목 암체어 No.B9 르 코르뷔지에 by 원오디너리맨션.

1980년대에 토넷에서 제작한 원목 암체어 No.B9 르 코르뷔지에 by 원오디너리맨션.

르 코르뷔지에가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해 아예 그 이름을 ‘No.B9’에서 ‘No.B9 르 코르뷔지에’로 바꾼 의자다. 1925년 파리 국제장식예술 박람회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파리 부아쟁 계획’을 선보인 역사적인 전시 ‘에스프리 누보관’에 등장함으로써 모던 스타일의 상징이 되었다. B9의 우아한 곡선에는 가구의 산업화 시대를 견인했던 모던의 정신이 숨어 있다. 휨 가공을 거친 구부러진 나무를 이용해 의자 프레임의 구성 요소를 일체화함으로써 보다 경제적이며 능률적으로 생산 가능한 모델을 고안하고자 했던 마이클 토네트의 비전이 바로 그것이다.

 
B9의 간결하고 직관적인 형태는 오로지 나사만으로 이루어진 이음새와 휨 가공이라는 마이클 토네트의 신기술이 르 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과 만난 결과물이다. B9 특유의 구부러진 곡선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그건 바로 합리성을 추구하고 경제성을 따지는 자세, 기술이 가져다줄 혁신과 진보에 대한 믿음, 기차역과 에펠탑, 만국박람회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과학의 모던 세상, 그러한 시대를 열망한 19세기 인류의 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who's the writer?
이지은은 사물의 이력에 천착하는 장식미술사학자다. 〈오브제 문화사〉와 〈사물들의 미술사〉를 썼다.
 

Keyword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이지은
  • PHOTOGRAPHER 정우영
  • COOPERATION 오드플랫(LCW/ DAX/ S 34)
  • COOPERATION 빈트갤러리(CHANDIGARH CHAIR)/
  • COOPERATION 원오디너리맨션(NO.B9 LE CORBUSIER)
  • COOPERATION 원오디너리맨션(LC1/ RED BLUE CHAIR)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