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서울 충무김밥 맛집 4

원조 밥도둑 혹은 마약김밥의 조상님.

BY남윤진2021.08.05

충무할매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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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이름에 붙은 ‘할매’라는 말은 일종의 맛집 보증 같은 것이다.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쇼핑타운 건물 지하에 자리한 충무할매김밥은 이러한 법칙을 여실히 증명하는 가게다. 나무로 된 식탁과 의자에서는 오랜 세월이 거쳐간 정겨운 냄새가 나고, 은행에서 받은 달력보다 조금 큰 노란 메뉴판에는 김치볶음밥과 감자 수제비 등 할매의 손맛을 절로 기대하게 만드는 추억 속 음식들이 가지런히 쓰여있다. 그러나 시골 할머니댁을 방불케 하는 편안한 분위기와는 달리 여느 할매네 식당처럼 이곳에도 몇 가지 단호한 암묵적 룰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진한 손칼국수나 감자 수제비 국물에 아무리 소주 한 잔 생각이 날지언정 결코 음주는 삼가할 것. 충무김밥과 함께 나오는 오징어무침은 아쉽지만 ‘더 주세요!’ 금지. 추가 주문은 불가하니 만전을 기해 먹을 만큼의 메뉴 엄선 필수. 현금으로 계산할 시 할인을 해준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 팁이다.
 

통영박이충무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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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박이충무김밥에는 문득 충무김밥 생각이 난 통영 출신 손님들이 종종 들르곤 한다. 고향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찾을 만큼 본토 맛을 완벽히 재현한 곳이기 때문이다. 내부 벽면에는 통영초·중·고 출신임을 증명하는 통영박이충무김밥 사장님의 약력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고, 한쪽에는 자랑스러운 고향의 명소 곳곳을 표시해둔 커다란 통영 지도가 그려져 있다. 통영 토박이가 만든 ‘진짜’ 충무김밥임을 여기저기 인증해둔 셈. 무엇보다 반가운 통영의 흔적은 김밥과 곁들여 먹도록 제공하는 빨간 어묵 무침인데, 통영식 그대로 쟁반 위 소담스럽게 담아낸 달짝지근한 오징어무침과 시원하게 잘 익은 섞박지, 반질반질한 김에 싼 흰 쌀밥을 더하면 출신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취향에 따라 찍어 먹을 수 있게 주는 참기름장은 이 맛있는 조합에 고소한 풍미를 한층 더해준다.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가는 손님들을 위한 달걀프라이 서비스로 고향의 정까지 갖춘 이곳은 덕분에 문을 연 동안 반가운 감탄 소리가 내내 들려온다.
 

명동충무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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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이 충무김밥의 본고장이라면 명동은 ‘제2의 고향’쯤일 테다. 명동 한복판에 있는 명동충무김밥은 통영식 충무김밥이 아닌 ‘명동식 충무김밥’을 판매한다. 1983년 서울에서 새롭게 탄생한 명동식 충무김밥은 통영식 충무김밥처럼 손가락 한두 마디 만한 작은 김밥 몇 개, 시뻘건 오징어무침과 섞박지를 모두 한 접시에 놓는 단출한 구성이다. 언뜻 봐선 뭐가 다른지 전혀 알 수 없겠지만 먹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얼굴에 낯선 열기가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희한한 점은 고통스러울 만큼 매운맛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김밥과 반찬을 입 안에 번갈아 넣게 된다는 것이다. 입가심인지 불장난인지 모를 우동 국물까지 한 숟갈 떠 마시면 이미 한껏 달아오른 목구멍과 혀는 마침내 활활 타버리고 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서울 사람들 입맛을 겨냥한 명동식 충무김밥의 유혹에 빠진 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호기롭게 포장까지 해 저마다 봉투 하나씩을 손에 들고 떠난다. 집에서는 배달 앱으로도 주문이 가능하니 이토록 강한 중독성을 이겨낼 방도가 없다.
 

호랑이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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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프리미엄 김밥집’으로 잘 알려진 성북동 호랑이김밥의 메뉴들은 하나같이 특이하다. 꽃등심 불고기 김밥, 박고지 김밥, 전복 톳나물 김밥 등 귀한 재료를 넣은 온갖 이색 김밥 덕분에 처음 방문한 손님들은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봐도 선택이 쉽지 않다. 그러다 그나마 친숙한 충무김밥을 골라 몇 입 집어 먹어 보고 나면, 마음속 경계가 순식간에 풀려 설렘과 호기심으로 바뀌는 기분 좋은 경험을 겪는다. 바로 이때부터 호랑이김밥이 초대하는 김밥의 신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문지기이자 간판 역할을 하는 충무김밥은 특히 더 공을 들였을 터. 푸석하지 않은 마른 김에 만 적당히 고들고들한 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알맞게 매콤한 오징어무침과 섞박지로 호랑이김밥이 만든 프리미엄 충무김밥은 아주 섬세하게 딱 균형을 잡아낸 것 같은 개운한 맛을 선사한다.  
 
 
_프리랜서 에디터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