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지독한 빈티지 콜렉터들의 지독한 수집품 이야기 3

지독한 수집가 3명에게 가장 힘들게 만난 물건에 대해 물었다.

BYESQUIRE2021.08.09
 
 

HARD TO FIND

 

2809 Sunglasses

MATSUDA
일본의 하우스 브랜드인 마츠다에서 출시한 선글라스로 안경 옆 부분에 사이드 실드가 장착됐고, 전면부는 스프링 브리지를 활용하여 스팀펑크 장르가 연상되어 매료됐다. 영화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에서 사라 코너가 착용하여 이슈가 됐다.

일본의 하우스 브랜드인 마츠다에서 출시한 선글라스로 안경 옆 부분에 사이드 실드가 장착됐고, 전면부는 스프링 브리지를 활용하여 스팀펑크 장르가 연상되어 매료됐다. 영화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에서 사라 코너가 착용하여 이슈가 됐다.

태생적으로 수집벽을 가지고 태어났다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언젠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여러 가지를 모으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경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건 악다구니를 쓰며 쓸어 모아야 직성이 풀리다 보니, 결국 빈티지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대략 1000점 정도의 안경을 모았고, 결국 빈티지 안경 박물관까지 차리게 되었다. 안경을 수집한다고 말하면 패션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 착각할 때가 있는데, 사실 나의 안경 수집은 패션과 거리가 꽤 멀다. 안경에 대한 패션적인 접근은 이것이 날 돋보이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집중한다면, 내가 집중하는 것은 오로지 안경 그 자체다. 이 안경과 내 얼굴의 궁합은 뒷일이고, 안경의 건축학적 요소와 인체공학적 요소가 결합된 형태를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게 내 수집의 묘미다.
 
수집품이 많다는 건 그만큼 소유욕이 강하다는 말과 같다. 그 때문에 구하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괴롭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구하는 걸 손에 넣는 일뿐이다. 그렇게 광야를 헤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안경을 수집했다. 지금까지 모은 안경들 중 가장 어렵게 구한 제품은 세 가지가 떠오른다. 뮤지엄 피스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 아메리칸 옵티컬의 제품, 조니 뎁의 착용으로 유명한 1950년대 타르트 옵티컬의 제품, 그리고 ‘마츠다의 2809 선글라스’. 앞선 두 안경은 사실 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전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제품이고, 후자는 지구에서 인기 높은 빈티지 안경 중 하나니까. 그런데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제품은 의외로 마츠다의 2809 선글라스였다.
 
사실 2809 선글라스를 구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제품이 만들어진 시기가 1988~ 1990년 사이로,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다. 안경 빈티지에 대한 구분은 다른 빈티지와는 사뭇 다르다. 1930~1970년대 사이에 출시된 모델들만 흔히 이야기하는 ‘빈티지’ 안경에 속한다. 마츠다의 선글라스는 빈티지로 분류하기에도 조금 애매했던 셈이다. 게다가 이 선글라스를 처음 마음에 뒀을 당시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외 사이트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에 마음을 놨다. 가격 장난치는 셀러를 거르고, 말투가 마음에 안 드는 판매자를 거르는 식으로 느긋하게 구매를 미뤘다. 언제든지 더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어느 시점엔가 시장에서 이 모델이 싹 사라졌다.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국내외 빈티지 안경 숍에서 마츠다의 모델이 일제히 증발하듯 사라졌다. 세계 구석구석을 뒤졌으나, 구경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다. 남대문시장은 한국의 안경 성지이기도 하지만, 내공이 없으면 엄한 곳에서 사기당하기 일쑤라 던전이라고도 불린다. 국내에는 당연히 씨가 말랐을 줄 알았던 2809 선글라스가 남대문 한 지하상가 안경원에서 악성 재고 취급을 받아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물건은 컬렉터에겐 보물이지만, 당연히 판매자 입장에선 고물이니 거래는 금세 성사됐다. 지금은 2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에 거래되는 이 모델을 너무 싼 가격에 구한 행운은 덤이다. 행여 거래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기분 좋은 마음을 숨기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때부터 남대문 던전에서 보물찾기를 시작해, 지금도 종종 방문하고 있다. 마츠다 2809를 볼 때마다 남대문 안경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짜릿함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수집은 단순한 소유욕의 발로가 아니라 수집품과의 기억을 쌓아가는 경험의 축적인지도 모른다.
 
WHO’S THE WRITER?
안경 수집가 서정현은 ‘안경 쓴 거북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테스투도 빈티지 안경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Streamline lounge chair H-269

United Arts and Crafts Manufacture
동유럽을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 인드리히 할라발라가 1920년대에 디자인한 이지 체어다. 흔히 볼 수 있는 1950~1960년대 모던 디자인 가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다. 캔틸레버를 차용한 형태로, 의자 구조에서 나오는 탄성 덕에 착석감이 아주 편안하다.

동유럽을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 인드리히 할라발라가 1920년대에 디자인한 이지 체어다. 흔히 볼 수 있는 1950~1960년대 모던 디자인 가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다. 캔틸레버를 차용한 형태로, 의자 구조에서 나오는 탄성 덕에 착석감이 아주 편안하다.

빈티지 가구에 대한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구에서 ‘빈티지’란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빈티지는 와인에서 따온 말로 특정 생산연도를 말하며 보통 지역과 함께 표기한다. 예를 들어 같은 보르도의 같은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같은 품종의 2003년 빈티지와 2018년 빈티지는 큰 틀에서는 지역적 특성을 공유하면서도 당해년의 포도 작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캐릭터를 띤다.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 역시 비슷하다. 사실 빈티지와 리프로덕션의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 그리고 그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생산하는 당해 연도의 제작 능력과 상황이 합쳐져 디테일의 차이가 만들어진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2021년에 복각되어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양산화를 위해 또는 경제적 이유로 디테일 요소에서 오리지널 빈티지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며 같은 연도에 생산된 제품의 복원품이라도 어떻게 또는 누가 복원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드리히 할라바라의 스트림 라운지 체어 H-269는 내게 이런 빈티지의 의미를 일깨워준 제품이다. 평소 친분이 있던 원오원 아키텍츠의 최욱 소장의 부탁을 받아 언젠가 네덜란드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인더스트리얼 가구와 소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네덜란드에서 빈티지 숍을 돌아보니 그곳의 물건들은 터무니없이 가격이 높고, 제품의 진위 여부가 의심되는 것들이 많아 보였다. 여차저차 ‘슬로바키아에서 물건들을 구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동유럽으로 출발했다. 헝가리부터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까지 쭉 돌면서 인더스트리얼 숍을 찾았으나 쓸 만한 물건은 전혀 없었다. 딜러들에게 물어보니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제품들은 네덜란드로 직행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구경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어디 한 곳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빈티지 숍을 계속 돌다 보니, 그들의 입에서 계속 등장하는 한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할라발라’라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동유럽 전체를 통틀어 디자이너는 할라발라밖에 없다는 과장 섞인 얘기까지 했다.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체제에서 체코는 동유럽의 가구 생산 전체를 담당하다시피 했는데, 이 체코 가구 회사들 중 가장 규모가 큰 ‘United Arts and Crafts Manufacture’의 수석 디자이너가 바로 할라발라였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가구의 영역은 거의 독점하다시피 디자인했다고 한다. 즉 할라발라의 디자인 요소를 대표하는 스트림라인 라운지 체어 H-269는 곧 동유럽의 고급 가구를 대표하는 디자인인 셈이다.
 
당시 한국에는 동유럽 디자인 가구가 없었다. 할라발라의 얘기를 들었을 때 동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인 체어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H-269를 구매하기 위해 딜러를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그때 만난 딜러가 ‘오타’다. 유럽인치고는 무척 독특한 이름이라 기억에 남았다. 오타는 할라발라의 체어에 생각보다 비싼 값을 불렀다. 유럽에서 가구를 살 때 같은 값이면 운송이 편한 네덜란드나 독일을 선호한다. 굳이 체코에서 오타에게 비싼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었다. 한번 눈에 들어온 김에 H-269를 찾아보려 서유럽의 페어를 돌기 시작했다. 가끔 동유럽의 제품들이 눈에 띄면 유심히 살펴봤는데, 오타가 보여준 물건과 서유럽 페어의 물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다른 부분이 결국 디테일, 즉 ‘빈티지’에서 온 차이였다.
 
할라발라의 스트림라인 라운지 체어 H-269는 1920년대 디자인이다. 처음 생산될 때부터 패브릭을 사용해, 지금까지 멀쩡한 가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패브릭이 손상되어서 리폼을 거쳤다. 체코에서마저 리폼을 할 때는 패브릭 안에 스펀지나 라텍스를 집어넣었다. 오타는 그들과 달랐다. 그는 그 옛날 공산주의 체제 때부터 의자를 제작하던 장인을 수소문해 옛날 방식 그대로 복원해냈다. 결국 H-269를 찾기 시작한 지 2년 반을 넘기고서야, 다시 오타를 찾아갔다. 제대로 복원이 안 된 물건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H-269는 유럽에서 생각보다 구하기 어려운 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같은 H-269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타는 의자의 패브릭 밑을 열고, 스프링을 세척하고 끈으로 묶은 뒤, 말총과 마로 덮어 복원했다. 이후 아프리카 건초와 마를 다시 덮고, 그 위에 천을 덮고, 또 그 위에 말총을 덮은 뒤에야 패브릭을 씌운다. 총 10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복원이 완성된다. 패브릭은 내가 덴마크에서 공수한 크바드라트 패브릭을 사용했다. 모든 과정은 당연히 수작업이기 때문에, 의자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한국에서 배송받을 때까지 장장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주변 패브릭 리폼을 하는 업자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을 일일이 다 거쳐야만 이 의자의 폼이 50년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스펀지나 라텍스를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의자가 꺼지기 시작한다. 디자이너의 의도까지 정확히 재현하는 복원의 방식은 빈티지 제품들 사이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WHO’S THE WRITER?
빈티지 가구 수집가 권용식은 1940~1970년대 유럽의 미술, 디자인, 가구를 다루는 ‘비투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빈티지 컬렉팅을 기록한 〈마이 디어 빈티지〉를 썼다.
 

 

HF1

BRAUN
1958년 브라운에서 생산한 TV로, 디터 람스의 선배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히르헤가 디자인을 맡았다. 1950년대 디자인에서 보기 힘든 민트에 그레이를 섞은 컬러이며, 플라스틱으로 금형을 시도한 초창기 모델이다. 제품 윗부분에 커버를 만들어 버튼을 숨겨놓고, 전면부에는 전원 버튼만 놓은 디자인에 빠졌다.

1958년 브라운에서 생산한 TV로, 디터 람스의 선배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히르헤가 디자인을 맡았다. 1950년대 디자인에서 보기 힘든 민트에 그레이를 섞은 컬러이며, 플라스틱으로 금형을 시도한 초창기 모델이다. 제품 윗부분에 커버를 만들어 버튼을 숨겨놓고, 전면부에는 전원 버튼만 놓은 디자인에 빠졌다.

디터 람스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 어느 오디오 숍이었다. 어릴 적부터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은 오디오 제품과 CD를 구매하는 일이었으니 수집의 바탕은 있되 아직 무엇엔가 ‘꽂히기 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어떤 제품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오디오를 구매하러 한 오디오 매장에 방문했다가 디터 람스의 턴테이블인 ‘아뜰리에(Atelier)’를 만났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처음 아뜰리에를 봤을 땐 정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현대 오디오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톤 앤 매너와 형태에 매료됐다. 정해진 예산을 훌쩍 넘었지만 이건 꼭 지금 가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턴테이블이 필요 없었음에도 일단 사무실로 가져왔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학창 시절 사놓았던 바이닐이 몇 개 있었다. 턴테이블에 올리니, 당연하다는 듯이 눈물이 나왔다.
 
그건 과거에 대한 회상의 눈물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나는 웹 디자이너 생활을 20년 가까이 한 시점이었다. 웹 디자인은 그 특성상 만들고 버려지고, 만들고 버려지는 일의 반복이다. 소비되는 디자인이기에 남는 게 없었고, 보람도 적었다. 디터 람스의 아뜰리에를 보며 생계형 디자이너로 살고 있는 나는 디자인의 영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디터 람스 그리고 브라운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후, 일과가 바뀌었다. 그와 관련된 모든 제품을 수집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됐다. 휴대폰을 켜면 항상 이베이 화면이 첫 화면에 떠 있었다. 수집품의 대부분은 이베이에서 구할 수 있었다. 셀러들은 대부분 독일과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주로 제품을 올리거나 경매를 하는 시간은 한국에서 새벽이라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3년간 밤을 새우며 매일 집요하게 브라운의 제품을 추적했다. 그렇게 찾고 사고 택배를 받고, 물건을 닦고 고쳤다. 그 일이 내 인생의 행복이 됐다.
 
가장 애타게 찾은 건 ‘HF1’이었다. 어느 정도 수집을 하고 나니 셀러들과의 친분도 생겼다. 셀러들에게 ‘HF1’을 꼭 사고 싶으니 보게 되면 먼저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계속 수집하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다고는 생각했다. 문제는 만났을 때 그 가격이 얼마일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점차 이베이에 틈날 때마다 들어가 HF1을 찾는 일이 열망이 아닌 무의식적인 습관에 가까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토플레이’를 하루 종일 켜두는 게임 중독과 비슷한 상태에 가까웠을 것이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브라운, 디터 람스와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 HF1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역시 없구나’라고 실망하며 휴대폰을 끄기 일쑤였다.
 
그날도 새벽에 일을 마무리하고 화장실에 가 무의식적으로 이베이를 켰던 기억이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보고 있는데 HF1이 올라왔다. HF1을 찾은 것도 놀라운데, 가격은 80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구매를 눌렀다. 독일의 셀러에게 물어보니 가정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고물 TV라 누가 사가겠나 싶은 마음에 이베이에 올렸다는 것이다. 구매를 확정하고 난 후 3년간 지새운 밤을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혼자 만세를 불렀다. 구매 후 문제는 제품 픽업이었다. 독일은 일반의 감각보다 훨씬 큰 나라라, 시골에서 제품을 픽업하는 과정이 절대 쉽지 않다. 그전부터 수집을 하면서 조금의 노하우가 생겨 픽업을 해줄 사람을 구하고 픽업한 제품을 한국까지 날라다 줄 컨테이너를 섭외했다. 제품 픽업 후 기다린 시간은 두 달이다. 혹시 모를 문제라도 생길까 싶어 불안해하던 마음이 고스란히 쌓여 제품을 무사히 받았을 때 같은 양의 기쁨이 되었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제품은 닦고 보수할 곳이 꽤나 많은데, 내가 구한 HF1이 손댈 곳 없을 정도로 깨끗한 상태였다는 부차적인 무용담이다.
 
WHO’S THE WRITER?
디터 람스 및 바우하우스 관련 수집가 제이슨 팍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4560 디자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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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윤승현
  • PHOTOGRAPHER 정우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