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전시된 현남의 조각을 보면 질문의 방울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것일까? 조각에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놓쳐서는 안 될 맥락이다. 그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 현남은 더 그렇다. 그는 자신이 ‘굴’을 파고 그 굴에 질료를 들이부어 굳힌 후 다시 이를 ‘채굴’한다고 말한다. 단열재로 자주 쓰이는 스티로폼 혹은 핑크색 보드(아이소핑크)로 거대한 덩어리를 만든 후 그 안에 굴을 판다.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굴을 판 후에 액체 상태의 에폭시를 부어 굳힌다.
‘쌍둥이.' 에폭시수지, 안료, 시멘트, 탤크, 유리섬유, 철, 폴리스티렌.
이 과정은 개미굴에 액체 상태의 금속을 부어 굴 모양을 캐스팅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에폭시는 경화되는 과정에서 열을 뿜는다. 이 열이 굴의 질료인 스티로폼을 녹인다. 굴의 모양엔 어쩔 수 없이 우연이 더해진다. 그 뒤에 끄집어내는 ‘채굴’ 과정에서 다시 의도적인 우연이 덧입혀진다. 현남은 최종적으로 거푸집인 폴리스티렌(스티로폼과 아이소핑크) 덩어리를 아세톤으로 녹여 결과물을 끄집어낸다. ‘기지국’, ‘쌍둥이’ 등의 작품을 보면, 현남은 그 과정을 생생히 상상할 수 있도록 재료들이 반응한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기도 한다.
‘파노라마(덫).' 에폭시수지, 안료, 시멘트, 유리섬유, 아크릴, 나무, 폴리스티렌.
마치 수석에 새겨진 물결 무늬처럼. 이 모든 것이 현대적 랜드스케이프의 축경이다. “조각을 통해 풍경을 다룬다는 생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수석(水石)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작가 현남은 말한다. “수석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한 가지 흥미롭게 다가온 것이 ‘축경’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수석의 축경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방식이 디오라마에서처럼 실재하는 풍경을 고스란히 작은 크기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서 발견한 사물 그 자체를 작은 풍경으로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축산(쌍봉)’. 에폭시수지, 안료, 시멘트, 폴리스티렌.
수석이 축경일 수 있는 이유는 풍경을 만드는 재료, 즉 풍경의 바탕인 땅과 돌이 같은 구성 성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아트디렉터 안소연이 렘 콜하스의 말을 빌려 ‘정크스페이스’라 부른, 현남이 배회한 도시의 풍경은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스팔트, 시멘트, 철근 그리고 스티로폼과 아이소핑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