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에 싸인 고미술 컬렉터, '바라캇 서울'의 주인 바라캇을 만났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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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에 싸인 고미술 컬렉터, '바라캇 서울'의 주인 바라캇을 만났다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북촌의 갤러리 골목에는 신비로 가득 찬 바라캇 서울이 조용히 서 있다. 한창 이집트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 갤러리의 주인, 북촌 갤러리 타운에서 가장 미스터리어스한 남자 파에즈 바라캇을 만났다.

ESQUIRE BY ESQUIRE 2021.08.21
 
 

The Temporary Guardian

 
Q. 파에즈 바라캇 씨를 이렇게 만나는군요. 당신은 4만 점의 유물을 비롯해 전 세계에 9개의 갤러리를 가지고 있는데, 어디를 가장 좋아하세요?
제 페이버릿이요? 당연히 서울이죠. 저는 런던도 좋아하지만, 서울에 있을 때 가장 집 같아요. 어쩌면 제 아내 때문에 서울에 박물관을 지을지도 모르겠어요.
 
Q. 이 동네를 걷다 바라캇 서울에 들어와본 사람들은 정말 크게 놀라곤 하죠. 저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수천 년 전 유물이 서울 한복판에 떡하니 있다는 사실에요.
아까 서울 얘기를 했잖아요? 서울에 갤러리를 연 건 아내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울에 바라캇 갤러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제겐 일종의 철학이 있는데, 제 자신을 고대 유물의 수호자로 여긴다는 거에요. 저는 이 유물들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수호하고 보호할 뿐이에요. 그리고 제가 가진 유물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전시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고양이 미라(BC 600~300)를 안고 있는 바라캇 서울의 대표 파에즈 바라캇.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고양이 미라(BC 600~300)를 안고 있는 바라캇 서울의 대표 파에즈 바라캇.

Q. 예전 인터뷰에서 ‘temporary guardian’이라고 표현한 걸 봤어요.
그것에 관해서는 좀 영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싶군요. 저는 명상을 종종 하는데, 명상 중에 내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자주 해요. 어느 날 명상을 하던 중에 (그렇게 몸을 빠져나가서) 수호천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저는 천사에게 “저는 누구고 전생의 저는 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라고 물어봤어요. 50년 전에 제가 20대 초반 때 일어난 일입니다. 천사가 말하더군요. “너는 한때 이집트의 파라오 아크나톤의 신전을 지키는 대사제였으며, 또 다른 생에서는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였다”고요. 로마시대 유대 역사가인 그 플라비우스요. 그래서 저는 물었죠. “그럼 이번 생에는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천사가 “너는 신성한 사원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러나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제가 모은 것들을 생각해봐요.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은 유물들은 대부분이 어떻게든 믿음, 종교, 신앙과 연관이 있습니다. 4만 점의 유물과 이를 다룬 140만 페이지 분량의 자료가 저희 웹사이트에 있어요. 전 세계에 있는 약 500명의 교수들이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것들이 제 신전인 셈이죠. 엄청난 책임감을 느껴요. 만약 내가 죽으면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죠. 서울 얘기를 좀 더 하고 싶네요. 한국에 와서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방문했을 때 느낀 게 있어요. 성서시대,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문명에 관련된 것은 물론 가까운 고대 중국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컬렉션도 너무 적더라고요. 제가 다녔던 대영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 세계의 다른 박물관에 비하면요. 한국 박물관의 고대 문명 소장품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진 것보다 적어요. 서울에 온 이유입니다. 문화를 알리고 교육의 소명을 다하는 게 제 의무이니까요.
 
Q. 맞아요. 바라캇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게 바로 교육적인 측면이었어요. 단돈 5000원을 내고 들어서면 전문 연구원이 정말 상세하게 작품은 물론 그 문명의 배경까지 설명해주죠.
저희가 처음 갤러리를 시작했을 때는 입장료를 전혀 받지 않았어요. 5000원, 어떻게 보면 커피 한 잔과 같은 그 돈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정말 유물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을 선별하기 위해서였죠. 돈을 벌기 위해서 받는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이해하겠죠? 이 4층 건물의 전기요금도 그보다는 많이 나올 테니까요.
 
Q. 대영박물관 등이 다른 문명을 전시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문화의 기원을 보고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진이나 이미지를 보는 것이 글 천 줄을 읽는 것보다 낫고 그마저도 실제 유물을 보는 경험과는 비할 수가 없죠. 유물이 있는 공간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 존재의 에너지를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 유물의 아름다움을 3차원적으로 보고, 그 작품을 만든 솜씨를 느껴보는 거죠. 사진은 그 오라와 솜씨의 디테일을 다 전달하지 못합니다. 10%나 보여줄 수 있을까요?
 
Q. 이번에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이유는 사실 이집트 때문이기도 해요. 파에즈 바라캇의 컬렉션 중에서 이집트가 가장 방대한 분량을 차지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환상게임 : 바라캇 이집트 보물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집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꼭 이집트가 가장 방대한 컬렉션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제가 가진 스무 가지 문명의 컬렉션들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합니다. 또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 이집트 유물들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네요.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오시리스 청동 흉상(BC 700~500)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오시리스 청동 흉상(BC 700~500)

Q. 바라캇 가문은 150년 전 예루살렘 인근에서 수집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예루살렘이면 성서시대의 유물이 많을 것 같은데, 이집트 문명에 가닿은 과정도 궁금하네요.
약 150년 전 19세기 말 당시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대 때 저희 가문은 아트 딜러가 아니었어요. 농사를 지었죠. 당시에는 가끔 경작을 하다 보면 무덤이 발견되곤 했어요. 무덤에는 사자가 사후에 사용하라고 넣어둔 물건들이 있었죠. 옹기나 도기 등이 나왔는데 당시엔 아무도 그게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애들이 그런 옹기를 차고 놀았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선조는 똑똑했죠. 무덤에서 나온 것들을 모아서 예루살렘을 지나던 관람객들에게 팔기 시작했고, 이 일이 사업화되며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아트 딜러가 제대로 사업화된 건 제 대에 와서입니다. 전 어려서부터 이런 데 관심이 많았어요. 고고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이런 작품들의 가치에 대해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죠.
 
Q. 어릴 때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인 캐슬린 케니언과 함께 작업한 게 도움이 됐겠군요.
맞아요. 고고학의 선구자인 그녀와 만났을 때 저는 아이였죠. 절 굉장히 아꼈고 발굴 현장에 데리고 다녔죠. 그녀의 발굴 현장에서 찾은 동전 하나, 깨진 도자기 조각 등에 매료된 게 고대 문명에 대한 제 관심을 일깨워주기도 했죠.
 
Q. 이집트 유물은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나요?
예루살렘에서 처음 모으기 시작한 건 성서시대의 유물이었고 그다음 이집트,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박트리아 유물 순으로 모으기 시작했죠. 그 패턴이 인간의 문명이 구축되는 시간의 순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Q. 전 이집트 문명이 다른 문명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수천 년 동안 기술 발전은 있었지만 양식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죠. 고립된 그러나 고립된 상태로 매우 발달한 양식을 가지고 있어요.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이런 이집트 문명의 특징이 저를 사로잡기도 합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그걸 둘러싼 이야기, 즉 신화가 있죠. 아직 종교로 발전하기 전 단계의 신화는 사람의 상상력을 근원으로 합니다. 다 사람이 만들어낸 얘기죠. 그래서 반대로 그 신화 혹은 믿음의 본질을, 어째서 인간이 상상의 산물인 신화를 믿는지를 파고들다 보면, 결국 그 본질은 인간과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와의 신성한 연결성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종종 이집트와 힌두의 세계관이 매우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힌두교 문화에 드러나는 애니미즘, 모든 자연과 기물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방식이 두 문화의 특징입니다.
 
Q. 한국의 무속신앙도 모든 것에 영이 깃들어 있다고 보지요. 한국의 유물들을 보면서 그런 영적인 기운을 느낀 적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런 일종의 샤머니즘은 저에게도 매우 익숙한 개념입니다. 정말 파워풀한 주술사 같은 경우에는 영이 깃든 물건에서 그 힘의 95%에서 99%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사실 저희 바라캇 컬렉션 역시 대부분이 의례용이거나 부장품이죠. 전 샤먼이 일종의 배우라고 생각해요. 동물이 가진 에너지, 또는 자연이 가진 에너지, 사물이 가진 에너지, 또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에너지에 민감하게 반응해 이를 연기하는 배우라고 봅니다.
 
Q. 이번 전시의 제목이 〈The Game of Heh〉이지요. 이 제목도 역시 이집트 미술의 특징 중 하나를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여신 ‘헤(Heh)’는 영원을 상징하지요. 이 ‘영원’의 개념을 빼놓고는 이집트 미술을 설명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집트 문명에서 영원이라는 개념 또 신과 창조에 관한 가장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스카라브’(혹은 ‘스카라베’)에서 시작됐습니다. 풍뎅이는 이집트인들에게 정말 알 수 없는 미스터리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동물의 배설물에서 갑자기 나타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건 무에서 유가 되는 창조의 문제로 여겨졌죠. 한 동물의 똥에서 풍뎅이가 태어나서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집트인들은 창조와 영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영원은 풍뎅이로 상징되는 이 창조의 사슬이 계속해 반복되는 거였습니다. 그런 영원의 관념이 이집트의 철학과 예술 작품에 잘 녹아 있죠. 이집트의 부장품에 황금 풍뎅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집트 귀부인의 장례용 아마포 초상화 (AD 200~300)

이집트 귀부인의 장례용 아마포 초상화 (AD 200~300)

Q. 바라캇 씨 개인의 아트에서도 영원은 매우 중요한 주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제 작품 시리즈들 중에 〈영원을 넘어서〉라는 의미의 〈Beyond Infinity〉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의미적으로는 〈환희를 넘어서〉, 즉 〈Beyond the Bliss〉라고 이름 붙인 시리즈가 더 가까울 것 같아요. 영국의 ‘Royal Society of Medicine’이라는 국립 의료교육기관에서 펀딩을 받아 작업하고 있는 시리즈인데 제 회화 작업들을 디지털화한 후 영상으로 만들어 예술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이 시리즈에서 제가 목표로 하는 게 바로 이 현생과 보이는 것들을 넘어서 다른 차원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거든요.
 
Q. 아까 아래층 작품들 사이에 걸려 있던 바라캇 씨의 회화 작품은 어떤 시리즈인가요?
아래층에 전시된 회화 작품 4점은 모두 〈Beneath the Seas〉 시리즈예요. 안료에 저만의 테크닉으로 레이어를 줘서 산호초와 그 아래 존재하는 바다보다 깊은 세계의 내면을 그려낸 시리즈죠.
 
Q.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중엔 후기 왕조의 유물들이 많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이집트 문명이 다른 문명과 충돌하는 장면들이 보여서요.
그렇죠. 아래 전시장에 있는 이집트 로마시대의 장례용 여성 채색 마스크 같은 경우를 보면 만들어진 기법이나 헤어스타일은 이집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받아 기원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요. 아래층 안쪽 벽에 걸린 이집트 귀부인의 장례용 아마포 초상화를 보면 이집트에서 사망한 로마 여인으로 추정됩니다. ‘앙크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 이집트에서는 생명을 뜻하는 표식이었고, 초기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는 콥트 정교회 십자가를 상징하죠.
 
Q. 실례가 안 된다면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네요. 파에즈 바라캇의 피라미드는 어떤 부장품으로 장식하고 싶나요.
그 어떤 것도 가져다 두지 않을 겁니다. 이 중 어느 것도 제 소유가 아녜요. 이 세계의 것입니다. 전 그저 이 유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린 것뿐입니다.
 
①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채색 목조 마스크(BC 600~500)
②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석관(BC 712~332)
③ 이집트 26왕조 시대 석관 조각(BC 664~525)
④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화강암제 부조(BC 7세기경)
⑤ 이집트 고왕국시대 고위관직자 초상화(BC 2300~)
⑥ 이집트 말기 왕조시대 고양이 미라(BC 600~300)
⑦ 이집트 로마시대 장례용 여성 채색 마스크(기원후 2세기경)
⑧ 이집트 블레셋 출토 인간 형상 테라코타 관(BC 1500~1200)
⑨ 이집트 제3중간기 채색 목판(BC 1080~720)
⑩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카르투슈가 있는 사암제 부조(BC 285~246)
⑪ 이집트 제3중간기 채색 목판(BC 1080~720)
⑫ 이집트 장례용 남성 채색 마스크(AD 1~2세기)
뒤쪽으로 파에즈 바라캇의 〈Beneath the Seas〉 시리즈의 작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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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성룡
    PHOTO 바라캇 서울(작품사진)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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