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이진욱이 수염을 잔뜩 길렀던 이유, 그리고 말끔히 정리한 이유

읽는 사람. 잘 쓰고자 하는 사람. 끓는 에너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 그럼에도 행복이 최우선이라는 사람. 여전히 재미있다며, 신기하다며, 오랜 직업에 새삼 감동하는 사람. 짧은 대화에도 비치는 이진욱의 깊은 면면들.

BYESQUIRE2021.08.24
 
 

What He's Made of

 
오늘 화보 촬영 중에 수염을 미셨어요. 자연스럽게 난 채로 절반 찍고, 면도하고 절반 찍고. 
가만 보면 저에 대한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수염 있는 게 낫다 반, 없는 게 낫다 반. 그래서 이렇게 화보를 촬영할 때가 몇 번 있었죠. ‘찍다가 밀어보자’ 하는 식으로. 개인적으로는 수염 있는 게 더 좋긴 하죠. 수염 있는 사람은 그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아시잖아요.
아까 패션 디렉터 선배랑 그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수염 있는 게 훨씬 멋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저나 디렉터 선배나 다 ‘수염인’이라서 그랬군요.
수염 진짜 좋아요. 수염이 있으면 뭘 입어도 왠지 분위기 있어 보이잖아요. 막 멋진 분위기라기보다, 뭔가 사연이 좀 있어 보인달까요.
아무렇게나 길렀다가 이렇게 싹 밀었을 때의 낙차도 멋있죠.
기자님 같은 분은 그런 이해가 쉽죠. 그런데 회사 직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아요. 싫어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깎은 게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글러브가 달린 터틀넥 니트 톱 펜디.

글러브가 달린 터틀넥 니트 톱 펜디.

명실공히 한국 수염남들의 이상향과 함께 이렇게 수염 이야기를 하다니, 영광스럽네요.
에이, 이상향은. 저보다 멋있게 나는 사람 많은데요.
못 본 것 같은데요.
저는 기자님처럼 숱이 많지는 않아요. 그게 단점이에요. 숱이 더 많았다고 제가 뭐 대한민국 수염의 그런 거다, 말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데.(웃음) 아무튼 전 그러기엔 숱이 적고 털이 굵어요.
사람 욕심이 끝이 없네요. 저는 진욱 씨처럼 볼에 수염이 좀 더 났으면 하고 늘 바랐거든요.
저도 볼에 그렇게 많이 나는 편은 아닌데요. 제 수염 라인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요? 제가 본 중에 저랑 제일 비슷한 것 같아요.
이 발언은 제가 꼭 싣겠습니다. 에디터가 이진욱과 비슷한 수염 라인을 가졌다. 이번에 엄청 길게 길렀던 것도, 한 번에 싹 깎았던 것도 다 작품 때문인 거죠?
맞아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불가살〉의 내용 흐름에 따라서 기르고 잘랐죠.
얼마 전에 그 작품에 대해 말하면서 ‘끓는 에너지 때문에’ 선택했다고 했잖아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게 좀 생겼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작품에서 뭔가를 더 불태우고 싶다는 열망. 그런데 배우들에게는 항상 여의치 않은 상황이, 시간이 있어요. 사실 예전에 했던 것과 비슷한 것들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거든요. 만드는 입장에서는 배역 하나하나에 도전적인 캐스팅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대중이 저에게서 보고 기대하는 느낌도 있을 거고요. 이해는 하지만 저한테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해소되지 못한 채로 쌓이는 거죠. 어떨 때는 그게 분노처럼 끓어오르기도 하고요. 〈불가살〉이 그런 에너지를 쏟기에 굉장히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글러브가 달린 터틀넥 니트 톱, 메탈 로고 장식의 베이지 울 팬츠. FF 바게트 모티프로 장식된 크로커다일 엠보싱 로퍼, 다크 블루 셀러리아 가죽 소재의 피카부 아이씨유 백 미디엄, FF 모티프 장식 실버 링 모두 펜디.

글러브가 달린 터틀넥 니트 톱, 메탈 로고 장식의 베이지 울 팬츠. FF 바게트 모티프로 장식된 크로커다일 엠보싱 로퍼, 다크 블루 셀러리아 가죽 소재의 피카부 아이씨유 백 미디엄, FF 모티프 장식 실버 링 모두 펜디.

3년 전에도 〈에스콰이어〉와 인터뷰를 하셨잖아요. 그때는 굉장히 초연한, 달관한 배우 같았어요. 그때와 지금의 ‘끓는 에너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그냥 시시각각 바뀌는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생 때 제일 여유로웠어요. 거의 신선처럼,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 같았고, 20대 초반에는 또 굉장히 치열했죠. 그러다 정신없이 일하게 됐고, 어느 순간 또 차분해졌을 테고. 그냥 그때의 시간을 제가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택해서 살고 있잖아요. 거기서 오는 영향이 있죠. 에너지가 쌓이고, 연기로 풀고, 스스로를 쥐어짜야 하는 작품을 하다 보면 지쳐서 비교적 편안한 작품도 하고. 그 어느 순간에는 좀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때는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개봉 직후였으니까. 그 영향도 있을 수 있겠고요.
아마 그랬을 것 같아요.
경유라는 캐릭터에 대한 인터뷰 내용도 인상 깊었어요. 오래도록 소설가 등단을 목표로 해오다가 포기하고 여자친구 집, 친구 집, 옛 연인의 집을 전전하며 대리운전으로 연명하는 중년 남자잖아요. 결국 그들 모두에게 버림받거나 배신당하고. 뭐라고 코멘트하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비참한 캐릭터인데, 진욱 씨는 그 처지에 대해서는 따뜻하면서도 과오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표현을 하더라고요. 마치 현실 세계의 절친한 친구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그 당시에는 제가 맡은 캐릭터였으니까 그랬겠죠. 애착이 있고, 일정 부분은 저라고도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까요? 물론 경유가 겪은 일을 제가 겪지는 않았죠. 하지만 그의 ‘힘듦’을 이해하고 비슷하게 접근할 수는 있는 거죠. 경유라는 캐릭터도 그런 측면에서 제가 이해를 잘했던 것 같아요.
하긴, 진욱 씨도 배우로 데뷔하기 전에는 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건 사실, 제가 그렇게 말했던 거긴 한데요. 어릴 때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진짜 힘든 사람들에 비하면 저는 고생을 안 했다고 보는 게 맞거든요. 물론 고통은 각자가 느끼는 거기 때문에 그걸 서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일찍 잘된 편이에요. 제가 워낙 즐겁게 일하는 긍정적인 타입이기도 하고요. 스물한 살 때 대학교 중퇴하고 서울 올라와서 혼자 뭘 해보려고 했으니, 제가 했던 고생은 학교 안 다니면 당연히 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혼자 사진 찍어서 직접 여기저기 돌리고 꽤 고군분투한 것 같던데요?
그것도 상상하는 것처럼 몇십 곳 다니고 그랬던 게 아니라 잡지사 두세 군데 보냈나? 그랬는데 바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시작하고, 그게 광고로 연결되고, 광고 하나 찍으니까 다음 광고로 연결되고 그랬어요. 한 해에 광고를 9개인가 찍었죠. 그래서 제가 고생했다는 건 신인 때 멋모르고 과장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부끄러워요. ‘나 신인 때 고생했다’ 그런 소리를 하면 동료 배우들한테 미안해요. 진짜 고생한 친구들도 많이 봤고, 많이 알기 때문에.
연예계가 웬만한 고생으로는 엄살도 못 떨 곳이기는 하죠.
정말 그래요. 박완서 작가가 〈도둑맞은 가난〉에서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의 낭만까지 가져가려고 한다’고. 저는 그 글을 보고서 되게 충격받았거든요. 좀 다른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저는 안 그러려고요.
 
파이핑 장식의 블랙 새틴 블루종 재킷, 마이크로 펜디 로고 패턴 실크 셔츠 모두 펜디.

파이핑 장식의 블랙 새틴 블루종 재킷, 마이크로 펜디 로고 패턴 실크 셔츠 모두 펜디.

적절한 인용인 것 같아요. 책 좋아하시죠.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 중 하나로 책을 꼽을 정도로.
요즘은 또 잘 못 읽어요. 최근 몇 년은 책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사놓기만 하죠. 사서 집에 놓고, 또 갖다 놓고, 그 위에 또 놓고.
글을 쓰기도 하나요?
그건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들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뭔가를 쓰는 사람, 머릿속에서 문장을 완전하게 만드는 사람의 어휘나 표현 같은 게 많다고.
아니, 노력은 하는데요. 이게 연결이 잘 안 돼요. 오히려 옛날에 쓴 것들 보면 어릴 때 글을 더 잘 썼던 것 같아요. 확실히 책을 놓은 뒤로 이렇게 된 부분이 있겠죠. 그리고 뭐든 메시지로, 카톡으로 보내는 시대이니까.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들고, 그런 걸 안 하게 된 부분도 있을 거고요. 아무튼 너무 못 쓰더라고요. 책을 다시 읽어야 되나?
책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걸까요?
나라는 사람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게 책인 것 같아요. 내가 겪은 것, 내가 아는 것 이상의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니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정해진 만큼의 시간을 살잖아요. 그 안에서 얼마나 성공하느냐,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느냐, 그런 것도 물론 중요한데요. 저는 ‘어디까지 생각을 해봤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삶을 확장해주는 매체군요.
그렇다고 제가 뭐 이렇게 늘 진지하게 사는 건 아니에요. 저 진짜 대충 살거든요. 그렇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대충 산다고 해서 제가 ‘나도 모르게 그랬어’ 그런 경우는 없거든요. 대충 살고 싶어서 대충 사는 거죠 저는.
삶의 질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배우라는 직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알면서 산다는 게.
정말 중요한 자세죠. 인간의 깊이나 사람 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는 건 진짜 중요한 것 같고. 인간으로서도 중요하지만, 배우로서는 뭐… 그걸 하는 배우와 안 하는 배우 사이에는 차이가 있죠. 극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진욱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9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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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ASHION EDITOR 고동휘
  • FEATURES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김희준
  • STYLIST 이하정
  • HAIR 이에녹
  • MAKEUP 이봄
  • PROP STYLIST 이선화
  • ASSISTANT 이하민/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