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비슷해 보이는 두 의자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

오리지널과 리프로덕션 사이의 거리.

BYESQUIRE2021.09.04
 
 

Hommage á Jeanneret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사진 속 두 의자는 약간 다르다. 둘의 차이점은? 하나는 디자이너 피에르 잔느레가 ‘찬디가르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을 당시에 제작된 이른바 ‘오리지널’ 찬디가르 체어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잔느레 사후 인도에서 ‘리프로덕션’된 제품이라는 점이다. 오리지널 앞 ‘이른바’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따지면 찬디가르 체어의 디자인에는 지적 저작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리지널’이니 ‘리프로덕션’이니 다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잠시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도는 북서부에 위치한 찬디가르시를 지금껏 없던 ‘유토피아적 행정도시’로 개발하겠다는 부푼 꿈을 세웠다. 그들이 찾은 도시 설계자는 잔느레와 그의 사촌인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였다. 이들이 도맡아 꾸리기 시작한 도시계획이 바로 ‘찬디가르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도로를 짓고, 사회자본을 도로의 뼈대 위에 나열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주요 행정 건물을 설계하는 동안 잔느레는 건물 내에서 쓰일 가구를 디자인했다. 유토피아적 행정도시라는 닿기 어려워 보이는 목표를 위해 잔느레는 특유의 ‘실용적 미학’을 쏟아냈다. 현지에서 구하기 쉬웠던 티크(고무나무의 일종)와 버드나무 가지를 주재료로 삼고, 인도 전통 공예 기술을 접목해 단순한 디자인의 가구를 내놓은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디자인이 바로 사진 속 A자 다리 형태의 라운지 체어다.
 
잔느레는 인도에서 계속 자신이 디자인한 찬디가르 체어를 생산해, 누구나 계급에 관계없이 쉽고 편리하게 의자를 접하길 바랐다.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던 인도에서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인도의 몇몇 공방에서는 잔느레가 제작한 것과 같은 재료와 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가구를 생산했다. 현지에서 충당 가능한 최소한의 재료만 사용한 덕에 대량생산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15년을 머문 잔느레가 찬디가르를 떠난 뒤 찬디가르 체어는 잊혔다. 관공서의 의자들은 낡아갔고, 부서졌으며 심지어 헐값에 팔려 장작으로 쓰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것이 바로 ‘오리지널’이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찬디가르 체어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컬렉터들의 눈에 들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후 인도 정부는 ‘오리지널’ 제품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해외 반출을 금지했다. 물론 반출을 금지하자 가격은 더욱 급격하게 치솟았다. 그렇게 잔느레의 찬디가르 체어는 킴 카다시안의 언니 코트니 카다시안, 빅뱅의 태양, 다비치의 강민경 등 유명 셀럽들이 목 빠지게 찾고 기다려 품에 안는 럭셔리가 됐다.
 
잔느레의 사후, 특히 가격이 치솟기 시작한 이후에도 인도의 공방에선 찬디가르 체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제품들을 오리지널과 구분해 ‘리프로덕션’이라 부른다. 편집숍 챕터원 EDIT이 모셔온 ‘피에르 잔느레 리프로덕션’ 제품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구하기 힘든 티크목 등 오리지널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으며, 당대의 제작 방식을 최대한 살려 만들었다. 앞서 이탈리아의 럭셔리 가구 브랜드 카시나 역시 ‘Hommage á Pierre Jeanneret(피에르 잔느레를 향한 경의)’라는 이름으로 찬디가르 체어를 재해석해 내놓은 바 있다. 그 어떤 리프로덕션이든 오리지널에 뒤진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적어도 이 의자만큼은 그렇다. 더 많은 사람이 찬디가르 체어에 앉는 것이야말로 아마 지적 재산권을 등록하지 않은 잔느레의 바람이었을 테니까. 더 많은 찬디가르 체어로 잔느레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