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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왕국의 바람직한(?) 멸망

만약 카카오톡의 독점을 정부에서 강제로 규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지역별로 다른 메신저를 쓰라고 한다면? 업무 외에는 카카오톡을 쓰지 말라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더 불편해질 것이다.

BY김현유2021.09.27
 
 

카카오 왕국의 바람직한(?) 멸망 

 
옛날 PC 시절, 윈도우95를 쓴 이후 든 버릇이 있다. 조금이라도 컴퓨터가 버벅거린다 싶으면 바이러스 검사 후 포맷하는 것이다. 윈도우를 재설치하는 그 순간은 중학생인 내게 세상 무엇보다 고결하고 신성한 시간이었다. 비록 수십 장의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계속 넣고 빼느라 반나절을 홀랑 날리곤 했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나이 앞자리가 4가 된 지금도 난 같은 의식을 치른다. 스마트폰이 좀 버벅댄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공장초기화를 해서 폰을 순수한 시절로 되돌리는 것이다. 깔끔한 초기화면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리라.
 
요즘은 좋은 시대라 복원 프로그램을 폰 제조사가 잘 지원해준다. 기존에 사용하던 앱을 그대로 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왕 순정 상태로 초기화를 했으니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꼭 필요한 앱만 설치하리라 마음먹는다. 늘 그 첫 시작은 어떤 앱이다. 카카오 열매도 안 나는 나라에서 왜 하필 앱 이름을 카카오로 지은 걸까? ‘카카오’로 구글 플레이를 검색하면 나오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다행히도 이것들 대부분이 원래 쓰던 필수 앱이다. 카카오톡이 설치되는 동안 카카오택시,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자주 쓰는 카카오 계열 앱들을 한 번에 설치한다. 참 많기도 많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앱이 꽤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 앱’이 되었다.
 
지금은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내 첫 직장은 통신사였다. 2003년부터 PDA폰을 쓰고 있었던 터라 언젠가 모두가 피처폰을 버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사과폰’ 때문이 될 줄은 몰랐다. 국내 표준이던 WIPI(국내 기술로 만든 무선인터넷 플랫폼)를 무시하고, 보란 듯 와이파이를 탑재해 출시된 사과폰은 강력한 외래종이었다. 이후 모두 아는 것처럼 새로운 경쟁에 대비하지 못한 피처폰은 자취를 감췄다. 시장은 급속도로 스마트폰 위주로 재편되었다.
 
이 격변의 시기에 몇몇 회사들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카카오였다. 짧은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남긴 채 카카오는 국내 메신저 시장을 빠르게 점유해나갔다. 너무나 당연히 쓰기에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메신저는 안정성이 중요하다. 중단이 있어선 안 된다. 사람들은 공짜로 쓰면서도 빠르고 정확한 전달을 원하니까.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서버, 전용회선 다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수익모델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카카오가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듯 그런 일은 없었고, 카카오톡은 적자를 버티며 살아남아 시장을 지배했다.
 
모두가 사용하는 메신저는 되었지만 돈을 어떻게 벌까 궁금했는데, 웬걸. 메신저는 금광이었다. 사람들은 메신저 기반의 게임을 했고, 별 시답잖은 이모티콘을 돈을 주고 샀으며, 메신저 속에서 놀았다. 메신저 안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아예 새로운 서비스보다 편했다. 자세히 말하면, 홈 버튼을 누르고 나가서 다른 새로운 앱을 켜는 것보다 메신저 안에서 해결하는 게 편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중국의 카카오톡이라고 할 수 있는 위챗 역시, 위챗 내부의 ‘미니앱’으로 일상생활 대부분의 서비스를 해결할 수 있다. 메신저는 서비스가 아니라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안드로이드나 iOS만큼이나 강력한 플랫폼.
 
거대 플랫폼 카카오가 등장한 지 10년 남짓 지났다. 지금 대한민국은 카카오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혹자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묻는다. 카카오 제국이 메신저를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을 잠식해 산업을 독과점하면 큰일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큰일이 맞다. 요즘 우리 모두는 어딜 들어가도 스마트폰부터 흔들고 본다. 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는 전자출입명부 QR서비스는 작년부터 네이버와 카카오, PASS(통신 3사의 앱)로 시작했고 올해부턴 토스로도 가능하다. 당시 기사를 보면 정부에서 이런 빅테크 회사들에게 참여를 요청했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행정안전부가 카카오, 네이버, 토스를 통해 ‘국민비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행정문서 발급, 국민지원금 신청 등 행정 업무를 모바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정부 앱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빅테크 앱을 고객 채널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국내 빅테크 앱의 위상을 보여주는 건데, 카카오는 여기서 다른 빅테크 앱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행정 업무를 넘어 수많은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선물을 할 때도, 택시를 탈 때도, 모르는 곳에 갈 때도 카카오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새로운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도 카카오 계정으로 가입하기를 이용하고 있진 않은가? 카카오페이의 본인 인증 서비스로 가상화폐를 거래하고, 여러 증권사에 로그인하고 있진 않은가? 카카오의 서비스들은 이제 사회 인프라처럼 되었다. 정부도 그걸 인정했기에 고객 채널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고 말이다.
 
이렇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올 상반기 기준, 카카오의 계열사는 117개에 달한다. 문어발이 아니라 지네발이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논란은 카카오뱅크의 상장으로 더욱 거세졌다. 상장 후 주식평가액만 볼 때 인터넷 전문 은행인 카카오뱅크의 가치는 37조원까지 상승했다.  2위인 KB금융그룹 전체의 27조원을 훌쩍 넘는 금융 대장주가 된 것이다. 산업자본은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은산분리 정책을 완화해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여론은 카카오의 확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요금 인상을 발표했던 카카오 모빌리티는 거센 여론의 반발로 인상안을 철회해야 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착실히 독과점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배웠다. 경제학 원론에도 경쟁이 소비자 편익을 높인다고 쓰여 있다. 문제는 IT, 모바일 서비스는 독점 상황일수록 고객 효익이 크다는 데 있다. 메신저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다. 내가 쓰고 친구가 쓰면 바꾸기도 쉽지 않다. 만약 카카오톡의 독점을 정부에서 강제로 규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지역별로 다른 메신저를 쓰라고 한다면? 업무 외에는 카카오톡을 쓰지 말라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더 불편해질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큰 서비스는 독과점을 막기 어렵다.
 
바다 건너 윈도우와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규제하는 쪽은 다른 방식을 택한다. 이종산업으로 확산을 규제하는 것이다. 윈도우에 브라우저 끼워팔기를 규제했던 게 그 예다. 당시 미국연방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포함시켜 판매하는 것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보고 회사를 둘로 쪼개라고 명령했다. MS는 끼워팔기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하고서야 겨우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카카오를 규제할 수 있다. 가령 IT와 O2O(Online to Offline, 온·오프라인 연계)는 다른 영역이니 카카오는 접근하지 말라고 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O2O 서비스인 카카오택시나 카카오헤어샵을 금지하고, 새로운 사업자만 서비스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배달의민족 같은 독점 대기업이 또 탄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고객은 다시 불편해진다. 새로운 서비스를 인지하고, 설치하고, 가입하는 수고로움이 수반되니까. 그렇다고 그냥 둘까? 독점 상황에서 사업자는 나태해지고 폭리를 취하기 십상이다. 어려운 문제다.
 
시장경제의 장점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정화된다는 것이다. 피처폰 시대가 스마트폰으로 저물었듯, 골리앗 카카오도 새로운 다윗의 등장엔 무너질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네이버도 응당 가져갈 수 있었던 모바일 시장을 카카오에 빼앗긴 셈이니까. 수백, 수천의 다윗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노량진에서 청춘을 보내기보다 창업하는 게 훨씬 나은 나라라면, 그렇다면 카카오 제국의 운명도 풍전등화일 수 있다. 거대한 독점 제국의 멸망이 그렇게 이뤄질 수 있다면, 김범수 의장도 웃으며 떠날 수 있지 않을까?








Who's the writer?
길진세는 통신회사를 거쳐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회사원이다. 〈왜 지금 핀테크인가〉, 〈더 이상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를 썼고 〈아웃스탠딩〉, 〈ㅍㅍㅅㅅ〉, 〈모비인사이드〉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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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길진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