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팬데믹 시대, 영화를 보는 당신의 표정이 궁금하다

지난 2년 사이, 영화 주간지를 만들기 위한 기자의 업무 분장 방식은 확연히 변했다.

BY김현유2021.10.10
 
 

영화를 보는 당신의 표정이 궁금하다

 
지난 2년 사이, 영화 주간지를 만들기 위한 기자의 업무 분장 방식은 확연히 변했다. 코로나19 확산세와 거리두기 단계가 변할 때마다 배급사, 홍보 마케팅사에 전화를 걸어
 
그대로 개봉하는 거 맞죠?
 
라고 물어보는 일이 새롭지 않은 일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제작비 규모에 걸맞은 계절적 타이밍, 경쟁작 현황, 트렌드 등을 두루 아울러 개봉 시기를 잡는 배급, 유통 전문가들도 종종 무력함을 숨기지 않은 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거나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반쯤 하소연이 섞인 답을 내놨다. 어렵게 개봉 일정을 잡아 홍보에 나선 영화감독, 배우들은 “극장에 영화를 보러 와달라고 말해도 될지 영 조심스럽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실무를 움직이는 업계 플레이어들, 첨단 방역 시스템을 홍보하는 극장 캠페인과는 또 다른 고민이었다. 예리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은 관객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외부 세계로 나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극장에 영화를 걸어놓고 극장에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감독과 배우들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갔다.
 
지난 7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전체 관객수는 2002만 명으로, 2004년에 전산망이 가동한 이후 최저치였다. 그사이 코로나19 확산세의 지속으로 〈승리호〉와 〈서복〉 같은 기대작들은 각각 넷플릭스행을 택하거나 극장과 웨이브 동시 공개라는 이례적 행보를 걸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웅〉, 〈킹 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과 같은 대형 기대작들은 후반 작업을 마무리하고도 아직까지 개봉 시기를 고르고 있다. 한국 텐트폴 영화의 새 이정표로서 SF 장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또 다른 작품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과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을 어떤 관람 환경에서 접하게 될 것인가 역시 업계의 관심사다.
 
올해 여름 성수기 시장엔 지난해 개봉을 연기했던 〈모가디슈〉가 드디어 출격했고 〈인질〉, 〈방법: 재차의〉가 합류했다. 현재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2021년 최고 흥행작이라는 수식을 거머쥔 상태다.(참고로, 〈모가디슈〉 이전에 상반기 흥행 1위를 차지한 것은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로 228만을 기록했다)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주 소말리아 남북 대사관 식구들이 공조해 생존을 도모한다는 실화 자체가 매력적인 데다, 깔끔하게 집약된 내러티브 위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카 체이싱 액션이 해외 로케를 만나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제작비 200억대의 블록버스터가 올해 최고 관객수 달성작으로서 받아 든 숫자는 생경하고 이상했다.
 
〈모가디슈〉는 개봉 44일(9월 1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만에 관객수 330만을 기록했고, 2021년 최초로 350만 관객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2020년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435만)와 〈반도〉(381만)가 그랬던 것처럼 위기 속의 선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 결과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2년 차에 접어든 올해는, 더 이상 현 상황을 임시적인 과도기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징한 자각과 함께 〈모가디슈〉의 스코어에 대한 아쉬움도 짙어졌다. 마스크를 낀 350만의 관객 너머로, (〈베테랑〉으로 천만 영화 클럽에 가입한 류승완 감독의 전적으로부터 어림잡아 〈모가디슈〉가 지금보다 두 배 정도의 관객수를 동원할 수도 있었으리란 추측을 더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또 다른 350만의 관객을 상상하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팬데믹 시대 한국 영화의 위기는 당장 1~2년 뒤를 예측하기 힘든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정부 지원책, 고갈되어가는 영화발전기금 차원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다. 자본의 연결과 흐름은 산업에서 가장 중대하고 다급한 이슈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만난 창작자들은 의외의 지점에서도 당황하고 있었다. 자기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비가시적 소비자들의 시대에 영화 관객이란 점점 온라인상의 리뷰와 별점으로 체감되기 마련인데, 팬데믹이 이를 예기치 않은 형태로 심화시킨 것이다. “재생 순위도 높고 평도 괜찮아 안도했다. 그런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관객이 어떤 반응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지질 않는다.” OTT 개봉을 결정한 영화감독 A씨가 했던 말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드라마 시리즈를 연출한 영화감독 B에게도 들은 바 있다.
 
영화 못지않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정작 관객이 어떤 기기와 환경에서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큰 수익성을 기대하지 않는 독립·예술 영화의 경우 팬데믹 이전이나 지금이나 관객과의 연결점이 절실한 존재 이유가 된다. 방역 규정을 살뜰히 준수해 20명 남짓한 사람들과 관객과의 대화(GV)를 마치고 나왔던 어느 독립영화의 감독과 배우는 이런 시국에도 우리가 여전히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는 한편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고 했다. 얼마 전 예술대학들의 입시 상황을 취재하던 중 모 영화학과 교수에게서 들은 한 마디가 떠올랐다. ‘관객 없이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인재상이라는 것이다. 교수가 강조한 것은 창작의 본질에 집중하는 진정성이었겠지만, 나의 시뮬레이션은 언젠가 메타버스에서만 관객을 만나게 될 창작자들의 난망한 상황까지 다소 멀고 험하게 뻗어나갔다. 즐겁거나 냉담한 눈빛, 박수와 하품, 감동 또는 실망이 떠오른 얼굴과 접촉하는 것이 영화의 최종 완성 단계일 것이라고 막연히 믿어온 날들이 있었다. 그 어떤 매체나 예술 장르보다도 많은 인력의 현장 노동을 요구하는 영화가, 막상 완성된 이후에 ‘현장’에서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도 아이러니하다.
 
극장의 침체와 동결된 자본 상황이 우선 숨통을 틔우고 나면, 이러한 화두가 비평의 지대뿐만 아니라 창작자와 관객의 자리에서도 친밀하게 논의되길 바란다. 관객과의 직접 접촉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자기 영화의 관객이 누구인지 점점 더 상상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시대에 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드는 이유나 소명에 관해 재고하는 시간을 정말 가지게 될까. 영화와 관객을 잇는 가교 역할이 영화 기자의 일 중 하나라고 믿었던 나 역시 밤새워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던 중 검은 모니터 화면에 비친 익숙한 얼굴과 마주한 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Who's the writer?
김소미는 〈씨네21〉의 기자로, ‘영화 기자’라는 희한한 단어의 의미를 아직 탐구 중이다.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독립영화잡지의 창간 에디터 등으로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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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김소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