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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프로듀서 개코 "멘털 관리는 체력 단련 같은 것"

‘G.O.A.T’의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없고 아무나 쓸 수도 없다. 그러나 개코에게 ‘그의 시대에선 최고’라 말할 정도의 용기는 있다. 10년 전부터 ‘국힙 원톱’인 개코를 만났다.

BY박세회2021.11.23
 
 

the GREATEST HIS of TIME 

 
아까 인터뷰 중에서 형들 녹음할 때 괜히 가서 몇 마디라도 끼려고 작은 소리로 버스 읊조렸다는 얘기가 참 재밌었어요.
과장 아니고 실제로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이에요. 음악 비즈니스라는 게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던 시절이니까요. 힙합 장르는 더 그랬죠. 그 시절에 힙합 장르에는 서로 품앗이 해주는 문화가 있었어요. ‘네 거 내가 도와줬으니까 내 것도 해줘’라는 분위기였어요. 형들 눈에 띄면 “너 잘하네, 우리랑 같이 놀자”가 되는 그런 분위기? 지금도 그런 게 남아 있긴 하지만, 조금 더 사업화된 것 같아요.
힙합에 아직 품앗이가 있던 시절. 말만 들어도 참 좋네요. 전 솔직히 방송 힙합의 팬이기도 한데요. 방송 힙합에도 이제 나름의 역사와 레이어가 좀 생긴 것 같아요.
그렇죠. 전 이게 〈소프라노스〉나 〈왕좌의 게임〉 같은 시리즈랑 비슷한 것 같아요. 여러 시즌을 오래 제작하고 매 시즌 사람들이 열광하죠.
 
프린팅 재킷 보라미 비귀에 by 아데쿠베. 블랙 베스트 설밤 by 아데쿠베. 블랙 레더 팬츠 살바토레 페라가모. 블랙 버킷 해트, 블랙 글러브, 블랙 로퍼 모두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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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는 주인공이 매번 바뀌죠.
주인공은 바뀌지만 바뀌지 않는 일종의 틀 같은 게 있잖아요. 흐름이랄까요? 아티스트가 성장하는 서사나, 개인사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갖고 있죠.
저는 그중 ‘불공정’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이 크다고 봐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죠.
팀을 고를 때 꼭 33명을 뽑아놓고 5명씩 4팀에 들어가게 하는 식으로 13명을 떨어뜨리죠. 그때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거든요.
프로듀서의 취향이나 부가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하죠.
인생 같지 않아요? 인생이 딱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시대를 참 잘 반영한다는 생각을 해요. 좋아할 거리도 많지만, 씹을 것도 많고 욕할 것도 많고요. 사회 경쟁 구조의 축소판 같은 걸 보여주니까, 불공정함에 대해 분노하면서 몰입하는 거죠. 막 몰입하고 있는데, 내가 응원하던 사람이 떨어져. 그게 드라마로 치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죽는 거거든요.
그렇죠, 그렇죠. 그럼 드라마는 작가 욕을 하러 게시판으로 달려가는 거죠.(웃음)
이 정도로 과몰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같아요.
분노가 결국 힐링이라는 사실도 있지요. 어디에선가 쌓인 화를 풀면서 힐링하는 거기도 하니까요.
그쵸. 어디 욕할 대상 없나 찾던 사람에게는 힐링이죠. 요새는 또 〈쇼미〉처럼 매운맛 프로그램이 잘 없잖아요.
〈쇼미〉는 아직도 맵고 짜고….
단 거.(웃음)
방송 힙합에서 참 역대급 무대가 많았는데, 전 나플라와 개코가 함께 했던 'Sunbbang' 무대가 생각나네요.
아, 나플라. 너무 좋아하죠, 제가.
그때 더콰이엇이 한 얘기가 참 인상 깊었어요. “지금의 개코가 나플라다”라는 말이요. 근데 심지어 개코는 아직도 현역이잖아요.
더콰가 비유로 한 말이지만, 우린 좀 달라요. 나플라가 하는 음악은 (제가 하는 음악에 비하면) 훨씬 더 ‘퓨어’하죠. 나플라는 나플라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에너지 등의 교집합은 있겠지만, 나플라는 좀 더 순수한 힙합 그 고유의 매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요. 다이나믹 듀오는 사실 어쨌든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했거든요. 다듀는 메이저 힙합 그룹과 언더그라운드의 갈림길에서 좀 더 대중적인 힙합을 지향한 팀이에요. 힙합이라는 음악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어떻게 희석시킬지를 고민했죠. 나플라도 그런 고민을 했겠지만…
(나플라는) 말 그대로 그냥 산지 직송이죠.
정말 걔는 그곳 바이브를 가지고 있는 친구예요. 그래서 제가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반면 전 완전 토박이죠.
그것도 대단한 거 아니에요? 유학도 안 가보고 하는 거.
대단하다기보다는….그냥 저희가 좀 더 일찍 접한 거죠.
언제까지 이 피지컬과 폼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뭐 제가 능숙함이나 노련함은 가지고 있죠. 워낙 오래 했고 음악을 하면서 계속 무대에 와서 그저 시동이 안 꺼지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현장에 계속 있으면서 모티베이션을 받다 보니 시동을 끌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운 좋게 회사를 설립한 일, 가정을 꾸린 일들도 모티베이션이 되거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직도 음악을 좋아해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해요. 아직은 지나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직 플레이어들하고 같이 뛰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리빙 레전드?(웃음)
아니요. 레전드라니요.(웃음)
근데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정말로.
정말 감사하지만, 평가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거거든요.(웃음) 정말 동전 뒤집히듯이 뒤집혀요.우리가 정말 많이 경험해봤거든요. 20년 동안. 별의별 쌍욕을 다 먹던 때가 있고, 속된 말로 똥을 싸도 좋아해주시는 때가 있었죠.(웃음) 너무 취하지 않으려고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다듀 노래를 다시 들었어요. 듣다 보니 ‘고백’ ‘살발해’ ‘도돌이표’ ‘맵고짜고단거’ 등의 노래는 친한 동네 형이랑 술자리에서 대화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더군요. 곡을 쓸 때의 솔직한 고민이 다 녹아 있어요.
그게 저희가 선택한 장르의 매력이긴 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전달하고 지금 느끼는 바를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요. 그래서 고민도 있어요. 최자랑도 많이 얘기해요. 힙합이 어쨌든 젊은 세대의 음악인데, 지금 우리가 그 어린 친구들인 척하며 이야기를 쓸 수도 없고, 그렇게 해도 공감도 못 얻는다는 거죠. 그냥 사람들이 좀 덜 좋아하더라도 그냥 우리가 지금 느끼는 걸 얘기하자고 생각했어요.
 
블랙 볼캡 이자벨 마랑 옴므. 실버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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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가사에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로 공연 뛰는 얘기도 나오고.
아직도 공연하면 그래요.(웃음)
남들은 돈 되게 잘 버는 줄 아는데, 까보면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오고.
(웃음) 모든 직업이 빚과 그림자가 있잖아요.
그럼 이제는 슬슬 중년의 랩이 나올 때가 됐군요.(웃음)
그렇죠. 중년이죠. 참 그게…최자가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네가 어릴 때 쓴 랩을 들어보면 표현이 상상을 자극해서 그림이 막 떠올랐는데, 요새 하는 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사회적 이야기 같기도 하더라”라고요. 최자는 제가 보기엔 반대예요. 예전에 최자 가사는 좀 더 관념적이고 더 철학적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그림을 보듯이 쓰더라고요.
가사의 주제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이번에 〈쇼미〉를 보면서 20대 래퍼가 치열하게 살아온 성장기나, 플렉스 얘기 등은 이제 좀 대중에게 진부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죠. 지금은 “내가 힘든데, 이거 다 이겨낼 거야”라는 얘기는 재미가 없죠. 플렉스에 대해서는 좀 얘기할 게 있어요. 요즘 친구들을 보면 확실히 자본에 대한 집착이 있긴 하거든요. 그게 미디어의 자본 미화에 선동된 것도 있겠지만, 사실 정말 힘든 시절을 보내서이기도 해요. 대체로 힙합을 하려는 요즘 세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부모님들이 빚이 있거나 가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아, 옛날보다요?
네, 예를 들면 다듀는 강남에서 태어났고 운 좋게 용돈 받으면서 살았고, 힙합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나 가난해’라는 음악을 쓰지 않았죠. 그게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가난한 길거리에서 자랐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의 서사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저희는 애초에 할 생각도 안 했던 반면, 지금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그런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플렉스 가사를 쓰는 건 그런 과거에 대한 보상 심리죠. 예전에 저희 세대는 유복해도 그걸 잘 안 보여주고 험블하게 구는 게 미덕이었다면, 지금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번 돈이야. 난 그냥 내가 산 거 보여줄래’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 말이 맞네요. 힙합 하면 압구정이었고, 압구정 친구들의 가정은 대체로 부유했죠.
맞아요. 저희 음반을 내면 로데오, 압구정, 강남역에선 진짜 많이 팔렸어요. 전국으로 보면 순위가 낮은데, 압구정에선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HOT보다도 많이 팔리기도 했죠.
미국의 컴튼 같은 무서운 곳에서 유행한 음악을 한국의 부유한 압구정 친구들이 캘리포니아에 유학 갔다가 듣고 그걸 한국에 돌아와 전파한 건데, 그 음악을 다시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하고 있군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접한 거거든요. 저희 형의 유학생 친구들이 방학 때 한국에 오면서 문화를 가져왔고, 저는 그 수혜를 받았죠. 제 감각으로는 요즘 음악 하는 친구 10명 중에 7~8명은 집안이 힘들어요. 그런 친구들이 플렉스를 노래하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앞으로는 플렉스 가사를 다르게 듣게 되겠네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개코는 앞으로 어떤 버스를 쓸 건가요?
글쎄요 그냥. 살다 보면 나오겠죠. 제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들, 가족, 와이프, 친구, 음악, 음악 비즈니스에서 일어난 일 등이 소재가 될 거예요.
하긴, 나이가 든다고 해서 재밌는 이야기가 더 적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제 기우였습니다.
그런데 또 제가 쓴 이야기를 좋아할지 안 할지는 대중의 선택이니까요.(웃음) ‘어유, 꼰대. 듣기 싫어!’라고 할 수도 있죠.(웃음)
 
*개코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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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윤송이
  • STYLIST 한종완
  • MAKEUP 김미애
  • ASSISTANT 송채연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