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LIFE

그럼에도 우리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

그럼에도 모두가 사울 레이터를 사랑하는 이유

김현유 BY 김현유 2022.02.01
 
아직까지 그와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조금씩 더듬으며 짐작하려 노력할 뿐이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린 것처럼 전시장에 가고, 오래전 뉴욕 거리를 찍은 사진들 사이를 홀린 듯 걸어 다니고, 갑자기 열에 들뜬 사람처럼 사울 레이터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지를 말이다.
 
단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몇 년 전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자리한 분카무라 뮤지엄 앞에서 사울 레이터의 전시를 보기 위해 줄지어 선 이들을 보았다. 입장하려면 삼십 분 정도 걸린다는 말을 듣고 잠깐 망설이다가, 도쿄도 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개인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의 내게 사울 레이터는 ‘괴물’ 아라키와 비교할 만한 무게감을 지닌 작업자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아라키의 책들을 어디 처박아두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사울 레이터는 기이할 정도로 사랑받는 작가다. 물론 사람이든 사진이든 간에, 우리가 특정한 대상에 매혹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저 몇 개의 우연과 알 수 없는 열기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 빨려들어가듯 매혹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이유에 대해 조금쯤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최근 몇 달간, 나는 20세기 중후반의 미국 사진에 대한 자료를 게걸스럽게 주워 모아 마구 읽어댔다. 피크닉(Piknic)에서 한국 최초로 열릴 사울 레이터 회고전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의 도록에 들어갈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시작은 가볍고 할랑했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로 조금 지쳐 있었고, 그저 말랑말랑하고 눅눅한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비평적 관점이니 역사적 맥락이니 하는 것들을 굳이 주워섬기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길티 플레저’와 같은 그런 글을.
 
그렇게 가벼이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사울 레이터가 살며 작업하던 20세기 중후반의 뉴욕이 일종의 ‘괴물’들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거리에는 카메라를 든 윌리엄 클라인과 게리 위노그랜드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빼곡한 마천루의 틈새에 자리한 공원과 골목에서는 다이앤 아버스가 낯선 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찍는다. 동시에 화려하고 거대한 스튜디오에서는 리처드 애버던과 어빙 펜이 대규모 스태프를 지휘한다. 사진이 낯설고 강력한 힘으로 예민한 젊은이들을 매혹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이름이 조금 광채를 잃으려 할 때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재능과 강박을 지닌 이들이 몰려들곤 했다. 이를테면 낸 골딘이나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같은 이름들이 마치 정해진 등장 순서라도 있는 연극처럼 나타났다.
 
당시의 사울 레이터가 그런 사진 ‘괴물’들과 경쟁하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나치게 빠르고 정교하며 강했고, 사울 레이터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같은 시대, 같은 곳에 로버트 프랭크가 있었다. 당시의 자료들을 찾아 읽다 보면, 로버트 프랭크의 깊은 어둠과 종말론적 세계관에 다른 작업자들이 얼어붙듯이 압도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로버트 프랭크는 즐거움과 쾌락으로 하얗게 분칠한 미국의 배 속에서 무언가가 속수무책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몰락과 고통을 잊기 위한 어리석은 이들의 카니발일 뿐이다. 그의 기념비적 사진집인 〈미국인들(The Americans)〉은 눈앞에서 반짝이는 현실이, 사실은 추락하고 있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애써 눈을 돌리는 겁쟁이들의 거짓된 가설 무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백 번 양보해서 사진이 현실을 담아낸다고 치자. 그 현실이 통째로 거짓이라면 어찌 할 것인가? 당대의 모든 작업자는 로버트 프랭크의 거칠고 선연한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사울 레이터는 자신과 같은 유대인이며, 한 살 아래로 비슷한 또래였던 로버트 프랭크를 존경했다. 그의 조수는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일어나 어디론가 뛰어가던 사울 레이터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헐떡이며 돌아온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말했다. “지금 누가 지나갔는 줄 알아? 로버트 프랭크였다고!” 사울 레이터는 먼발치에서라도 그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로버트 프랭크를 비롯한 당시의 위대한 사진가들 중에서 오늘날 사울 레이터만큼 사랑받는 이는, 단언컨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사진의 역사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에서 동상처럼 굳어진 채 앉거나 서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사울 레이터의 이름은 숱한 해시태그가 되어 지금도 인스타그램의 세계를 떠돈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상을 ‘사울 레이터 스타일’로 찍고 싶어 한다.
 
생전의 사울 레이터 역시 자신이 사랑받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던 듯하다. 랍비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교를 다녔던 그는, 자신을 추어올리는 텅 빈 말들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시와 함께 개봉한 영화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에서 사울 레이터는 “당신은 천재가 아닌가, 컬러 사진을 개척한 거장이 아닌가”라는 식의 질문을 집요하게 반박한다.
 
기이하다. 사울 레이터는 그런 질문에 그저 창문 밖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다무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예술가로 남을 수 있었다. 그의 이런 반응은 정직함인가, 아니면 짓궂은 농담인가. 나는 전자에 거는 편이다. 당시의 여러 정황과 맥락을 주워 모아 끼워 맞추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자신을 닦아세우는 이가 왜 수십 년 동안 꾸역꾸역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가.
 
어쨌거나 이런 질문들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 채로 글은 마무리되었고, 도록은 인쇄되었고, 전시는 막을 열었다. 쉽고 할랑하고 따뜻한 글을 쓰지는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마구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는 이토록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가, 동시에 왜 그는 그렇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가.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온전한 답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전시 첫날, 거의 탈진한 채로 사진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니다 독립 영화 잡지를 만드는 젊은 여성 발행인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러모은 잡다한 뒷이야기들을 조금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는 그야말로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 거의 빨려 들어가듯 매혹된 것처럼 보였다.(“모든 사진이 다 좋아요!”) 내게는 꽤 익숙한, 그러나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거칠고 강렬하고 정교한 사진을 마구 뿜어내던 1960년대 미국의 괴물 사진가들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음, 너무 수줍음이 많은 게 아닌가. 유리창 안에서, 골목 뒤편에서 조심스럽게 찍은 이 사진들은 말이다.
 
“내가 보호받는 것 같아요.” 유리창 안에서 바깥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곳에서 그는 무심히 말했다. 나는 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그럴 수도 있겠네. 모두가 세계의 타락과 종말을 향해 카메라를 겨눌 때, 사울 레이터는 수십 년 동안 그저 김 서린 유리창 안에서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즉 그는 자신이 사냥한 거친 이미지를 자랑스럽게 가져오는 대신, 세계와 우리 사이에 얇고 어슴푸레한 유리벽을 세운다. 세계로부터, 사진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사울 레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천재’나 ‘거장’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을 믿지 않는다. 그럴 듯한 비평가나 저널리스트가 쓴 글을 읽다가도 그런 단어가 나오면 창을 닫는다. 작가의 이름은 경쟁에서 이긴 것을 증명하는 트로피가 아니니까. 최소한 사울 레이터의 경우는 그렇다.
 

 
Who's the writer?
김현호는 사진비평가다. 사진을 중심으로 디자인과 현대미술, 문학 등을 다루는 출판사 보스토크 프레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Keyword

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김현호
    illustrator VERANDA STUDIO
    DIGITAL DESIGNER 김희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