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티워모가 어김없이 개최됐다. 1월 11일부터 13일로 팬데믹 이전보다 하루 줄었고, 장소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포르테차 다 바소(Fortezza da Basso)로 전과 동일했다. 이른 아침 피티워모로 향하는 길, 15℃ 안팎의 따뜻한 겨울 날씨를 체감하고 나서야 피렌체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혹여나 마스크를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백신 접종 인증과 PCR 테스트의 관문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전시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대한 건 각양각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패션 피플을 만나는 것. 캐주얼이 국제적 트렌드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테일러링의 본고장과 같은 이곳에서도 정직한 슈트 차림보다는 캐주얼한 스타일링이 주를 이뤘다. 이번 피티워모에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 브랜드는 총 548개. 그중 이탈리아 브랜드가 70% 이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빈티지 셀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앤티크와 빈티지 아이템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 것. 이탈리아 전역의 유명 빈티지 숍들이 직접 셀러로 참여해 어떤 부스보다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전시장은 정통 클래식 테일러링 테마의 판타스틱 클래식, 캐주얼한 브랜드로 구성한 다이내믹 애티튜드, 컨템포러리 스타일의 슈퍼 스타일링 3가지 세션으로 구성됐다. 장르는 모두 달랐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한층 어려지고, 캐주얼해지는 분위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옷이 통용되는 시대를 반영해 적절히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전반적으로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관람객이 줄어 한산했지만, 덕분에 모든 브랜드를 하나하나 꼼꼼히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피티워모 101을 통해 새로운 남성복을 먼저 만난 신선한 감상을 4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테일러드 슈트를 표현하는 방식이 부드럽고 유연해졌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우람한 어깨와 드넓은 라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얇아진 라펠과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채웠다. 컬러 또한 담백하고 침착한 것들이 도드라졌는데, 아마도 이탈리안 테일러링의 전통적 취향보다는 팬데믹 이후의 경향성을 적절히 반영한 선택으로 보인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여가 시간을 보낼 때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슈트가 대거 등장했다.
이번 시즌 역시 지속 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엿보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포멀부터 캐주얼까지 장르에 국한될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앞다퉈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들었으니까. 재활용 소재,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작업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투박하고 수더분한 슈즈가 유독 많이 보였다. 어디서고 아무 때고 마음 놓고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밀리터리, 모터사이클, 아웃도어… 철저히 기능을 위해 탄생했던 옷들이 패션이 됐고, 그렇게 수십 년간 쌓인 아카이브는 장르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번 시즌 각 장르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각자의 동시대적 해석을 가미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정통적이지만 전형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