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의 발견은 남주혁이라는 배우가 지적인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점이 아닐까도 싶어요.
아까 영상 인터뷰 때도 그렇게 말해서 놀랐어요. 본인은 연기가 너무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요. 시청자들은 다들 감탄하며 보고 있거든요. 베테랑 배우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폭발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가 오히려 쉽다고, 일상의 연기, 오버하지 않고 남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연기가 더 어렵다고요. 그걸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해내고 있어요.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되게 많이 받는 편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주어진 대본이 가진 포텐셜의 80%라도 보여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요. 막상 현장에 가면 즐겁게 하지만, 집에서 연기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폭발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신이든, 차분한 감정으로 연기하는 신이든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요. 그냥 딱 한마디로 정말 어려워요. 이번에 더 느꼈어요. 이번에는 현장에 가서 감독님이나 동료 배우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서로 정답을 찾으면서 연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베테랑들도 계속 그래요.
맞아요. (선배님들도) 계속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웃음)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촬영하면서 저라는 사람이 좀 많이 작아졌었나 봐요. 청춘물을 많이 하다 보니까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전 왜 주혁 씨가 지적인 캐릭터에 적격인지 알 것 같아요. 목소리와 딕션 때문이 아닐까요? 연습을 많이 하잖아요.
그건 이 작품만을 위해서 한 건 아니죠. 몇 년 전부터 발성과 발음 연습은 일상의 루틴이 되었어요.
그렇죠. 그렇다고 그 연습을 한 시간씩 하지는 않아요. 목 푸는 것처럼 짧게 하는 거죠.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목소리 좋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하고 있어요.
백이진이 리포팅할 때 목소리랑 발음은 그 정도 연습의 결과물이 아니던데요?
아, 리포팅 연습은 좀 많이 했어요. 이진 캐릭터가 수습기자부터 시작하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이진이가 처음에 수습일 때의 어설픈 모습에서부터 짧은 기간이지만 조금씩 능숙해지는 모습으로 그려지도록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이진이가 극 중에서는 사실 어른처럼 나오지만 직업 세계에서는 사회생활에 갓 뛰어든 철없는 신입이잖아요.
스물둘 혹은 스물셋의 나이. 솔직히 그 나이 때 어떻게 잘할 수 있겠어요. 고등학생 친구들이 봤을 때는 너무나 어른스러워 보이겠지만 어른들이 이진이를 봤을 때의 시선은 다른 거죠. 희도가 성장하는 것처럼 이진이도 깨지고 부딪히면서 성장할 캐릭터라 생각해서 그런 작은 성장의 디테일을 잡아둔 거죠.
멀티 포켓 울 캔버스 블루종, 실크 포플린 셔츠, 브라운 데님 팬츠, 실크 타이, 삭스, 더비 슈즈 모두 디올 맨.
이제 주혁 씨도 첫 주연 맡은 지 한 6~7년 차가 되었죠? 연기 경력은 10년이 되고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진이보다는 이진이 사수 경력에 더 가까운 셈이라, 그런 게 보였나 봐요.
제가 그동안 느꼈던 것과 봐온 것이 도움이 됐어요. 배우로서의 성장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진이에게 그 감정을 투영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운동선수 같아요. 농구 선수 출신, 운동과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 그런 심플함이 배우로서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뭐든 칠할 수 있으니까요.
전 좀 격한 운동을 좋아해요. 격한 운동을 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승부욕 등의 감정들을 즐겨요. 생각해보면 대체로 승부를 가릴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람들은 ‘운동’이라고 하니까 그저 건강하게만 생각할 수 있는데, 막상 들어가서 해보면 다칠 만큼 격해요. 특히 농구는 몸 끼리 부딪치는 운동이다 보니 안 다치는 게 이상하죠. 게임 끝나고 나면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 있을 만큼요.
농구 선수 생활을 했었잖아요. 스무 개가 넘는 패턴을 외우고 있었어요. 시합에서 감독이 갑자기 어떤 작전을 요구할지 모르잖아요? ‘3번, 7번’ 이런 식으로 지시가 내려왔는데, 내가 그걸 기억하지 못해서 수행을 못 했다? 그럼 팀 패턴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거죠. 그런 책임감이 정말 무거웠어요.
그런 패턴 방식이 사실 연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솔직히 연기에는 모든 게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사소한 거라도 다 도움 돼요. 예능을 봐도 연기에 도움이 되거든요.
한창 테니스를 마음에 뒀었는데, 아직 하지는 못했고 복싱을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제가 정말 운동을 좋아하거든요. 또 하나를 시작하면 정말 열심히 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 찍을 때 세트장에 탁구대가 있었어요. 드라마 촬영 8개월 동안 쉬는 시간이 날 때면 매일 탁구를 쳤어요. 꽂히면 그것만 파는 성격이에요.
실력이 많이 늘었죠. 처음에는 잘 못 쳤는데, 마지막에는 제가 다 이겼어요. 처음에는 한 스태프 에게 졌거든요. 초반에는 계속 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비슷해졌고 결국 마지막엔 제가 이겼죠. 생각해보니 스태프들이랑 운동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다 보니 즐겁게 찍은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 때는 스태프들이랑 같이 현장에서 족구도 했어요. 족구대가 없으면 조명 팀이 양쪽에 조명 삼각대를 세우고 그 사이에 끈을 연결해서 족구장을 만들어줬어요. 그렇게 점심시간을 보냈죠.
그게 정말로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일 수 있겠어요.
스태프들이랑 정말 가족처럼 지냈거든요. 배우들과 만나기 전에 이미 감독님과 스태프들은 늘 함께 해오던 사이라 워낙 친하기도 했고요.
울 체크 재킷, 체크 셔츠, 실크 타이 모두 디올 맨.
이건 좀 뜬금없는 질문인데 고백해본 적 있어요?
안 해볼 수가 없죠. 초등학생 때도 고백해봤고 유치원 때도 해봤죠. 유치원 때는 늘 고백했던 것 같은데요? (웃음)
소꿉놀이를 한창 할 때니까요. “네가 엄마 해, 네가 아빠 해.”
그때가 헤어지고 만나는 일이 제일 많죠. 별반 애가 좋았다가 달반 애가 좋았다가.
유치원 때랑 초등학생 때 고백을 많이 해봤군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고백하지 않을까요.
지난주 방영분에 나희도가 어마어마한 고백을 했어요.
그냥 다 흘러갔던 것 같아요. 좋아하면 고백했고, 누가 날 좋아해 고백받을 때도 있었죠. 좋아하면 좋다고 얘기해야죠. 희도도 보세요. 그 마음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지 않잖아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고백하고 보잖아요.(웃음) 중요한 건 시도를 해야만 뭐든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고백뿐만이 아니죠. 제가 연기라는 걸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테니까요.
갑자기 저희 중학생 때 영어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하루는 영어 단어 시험을 봤는데 선생님이 영어 단어 20~30개를 못 외워와 많이 틀린 친구들을 혼내면서 ‘너네는 운동부보다 못한 애들’이라고, ‘쟤들은 한 골을 넣으려고 평소에 슛을 1000번씩 쏘는데, 너희는 단어 스무 개를 못 외웠다’라고요. 당시에는 운동부를 무시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많았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거든요.
엄청 감동받았었어요. 당시에 매일 새벽에 운동하고 낮에 수업 듣고 오후에 운동하고 야간에 운동하고 자고, 이런 생활 패턴으로 계속 살다 보니 정말 피곤했어요. 그런 와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감사했죠.
그런 운동선수의 근면 성실함이 사람들이 남주혁에게서 놓치고 있는 면 중 하나인 것 같아요. 2020년도부터 지금까지 작품 다섯 개를 찍었어요. 이 정도면 거의 쉬지를 못하죠.
쉬는 걸 안 좋아했어요.(웃음) 따지고 보면 20대 초반에도 쉬면서 일하지는 않았어요. 그전에도 오래 쉰 적이 없어요. 하루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나의 20대를요.
근데 아까처럼 매번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그냥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까지 받으니까….
아, 내가 걱정할 건 아닌데 우리 주혁 씨 힘들어서 어떡하나.(웃음)
에이,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좋은 배우가 되겠죠.
스팽글 장식을 더한 자카르 스웨터, 블루 데님 팬츠, 삭스, 더비 슈즈 모두 디올 맨.
생각해보니, 〈보건교사 안은영〉의 홍인표도 안은영을 돕고, 〈조제〉의 영석도 조제를 돕고,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도 나희도를 돕는 역할이에요. 누군가를 돕는 역할에 남주혁이 잘 어울려서일까요?
저도 한번 물어보고 싶어지네요. 그 부분은 생각을 안 해봤어요. 왜 제작진이 저를 선택하셨는지를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어떠한 이유였는지 이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 처음 생각해보게 되네요.
근데 만나보지 않고서는 저의 차분한 성격을 모르셨을 테니까요. 다음에는 꼭 물어볼래요. “왜 저를 뽑으셨어요”라고.
이제 궁금해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요. 한 7, 8년을 정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한 번 쉬고,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네요.
참고로 전 남주혁이 과하지 않은 게 큰 미덕인 배우라고 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진이 옆에 여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희도가 “나머지 20은 뭔데”라고 물었을 때 “눈이 있으면 알 것 아냐”라고 대답하는 그 정도의 적당함. 그거 사실 코믹하게 하려 들면 전혀 웃기지 않을 힘든 대사거든요.
늘 어떻게 하면 과하지 않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요. 과하지 않게, 어떻게 하면 진짜 살아 있는 사람처럼 표현할 수 있을지를요. 솔직히 과하게 연기를 하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그보다는 흘러가듯이,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싶어요. 보는 사람들도 흐르는 강물 보듯 자연스럽게 제 연기를 볼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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