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도 노동일까? 엄청난 작업량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4명의 작가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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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도 노동일까? 엄청난 작업량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4명의 작가

미술 작품에서 노동은 특정한 우연의 의미를 갖는다. 노동의 흔적이 작품일 수 있고, 번역의 노동이 작품일 수 있고, 노동의 수행이 작품일 수 있고, 고행 그 자체가 작품일 수 있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3.29
 
 Mixed media on mulberry hanji paper 97x13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Mixed media on mulberry hanji paper 97x13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Kim Minjung

‘The Street’ 2020
김민정은 마치 수행을 하듯 호흡을 가다듬고 향불로 한지를 태운다. 그가 한지를 태운 자국은 평명에선 선이 된다. ‘The Street’를 가까이서 보자. 그가 태운 면은 원의 바깥이 아니라 원을 이루는 잔 조각의 한 면이다. 언뜻 선으로 보이는 불규칙한 굵기의 짙은 갈색이 바로 태운 자국이다. 이 작품에서 큰 원은 60개가 넘는 잔 한지를 붙여 만들었다. 태운 한지로 만들어진 원이 이 작품 하나에 최소 52개가 들어 있다. 작품의 전체 구조에 따라 태운 한지가 이루는 형태가 달라진다. ‘The Street’에서는 원주에서 중심에 이르는 선들이 태운 면이었으나 ‘Petal’ 등의 작품에서는 원의 테두리가 태운 면이 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노동하는 과정의 상태가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죠. 극도의 집중력과 인내력, 정성으로 얇게 1mm가량의 한지를 태우다보면 시간의 흐름도 내 마음의 번뇌도 잊어요. 굴곡진 내 삶도 그때 비로소 평화를 찾지요.”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가 받아 적은 작가의 말이다. 미술사학자 권영진은 이를 두고 “루치오 폰타나가 팽팽하게 당긴 캔버스를 예리한 칼로 그어 오랜 유화 예술의 전통에 종언을 고했다면, 김민정은 얇은 한지를 잘게 자르고 가장자리를 향불로 그을리는 방법으로 오랜 한국화의 전통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Oil on hemp cloth 162x13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Oil on hemp cloth 162x13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Ha Chonghyun

‘Conjunction 21-38’ 2021 
단색화 혹은 단색조 예술의 요지는 작가가 어떤 노동의 방식으로 자신의 미학을 완성할 것인가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박서보의 묘법, 정상화의 격자화, 하종현의 배압법이 떠오른다. 하종현 배압법의 대표적인 작품 시리즈 ‘접합’, 그중 아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높이 162cm, 너비 130cm의 거대한 마포에 검은 물감으로 바탕색을 칠한다. 올이 굵은 마포의 뒷면에 흰색 물감을 두껍게 발라 천의 앞면으로 물감이 새어 나오도록 밀어낸다. 마대 캔버스의 뒷면에서 밀어낸 물감은 작가의 몸에서 전달받은 각각 힘의 크기만큼 앞면에 송골송골 맺힌다. 피부에 돋은 소름처럼 검은 표면을 뚫고 돋는다. 하종현은 종종 밀어낸 물감이 그대로 중력에 따라 흘러내리게 두거나 판판한 나무 막대 등으로 긁어내기도 한다. 접합의 방법론은 근 반세기 동안 변화했다. 2021년 작인 ‘Conjunction 21-38’은 초기작에 비하면 더 두터운 레이어가 쌓여 있어 멀리서 보고 또 가까이서 보기에 즐겁다. 가까이서 보면 마포 위에 어른거리는 검은색, 검은색을 뚫고 나온 흰색이 보이고, 그 위에 작품 전체의 주된 심상을 결정하는 청색이 얹어져 있다. 잠시 이 작품의 사이즈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대한 마대 화폭에 그가 1974년부터 계속 발전시켜온 복잡한 노동의 레이어들이 쌓이고 나서야 ‘접합’ 시리즈의 한 작품이 완성된다.
 
 North Korean hand embroidery, silk threads on cotton, middle man, smuggling, bribe, tension, anxiety, censorship, ideology, wooden frame, approx. 1600hrs/2persons 160▼24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uggenheim Museum.

North Korean hand embroidery, silk threads on cotton, middle man, smuggling, bribe, tension, anxiety, censorship, ideology, wooden frame, approx. 1600hrs/2persons 160▼24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uggenheim Museum.

 

Ham Kyungah

‘What you see is the unseen / Chandeliers for  Five Cities SK 01-05B’  2018-2019 
함경아는 2008년부터 삐라를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모은 전쟁과 테러에 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대중가요 가사의 일부, 자신의 인사말 등을 적은 자수 도안을 만들어 중국 등의 중간자를 통해 북한에 있는 자수 공예가에게 보냈다. 이 도안에 따라 자수를 놓았을 북한의 공예가는 어쩔 수 없이 대중가요 가사와 인사말, 전쟁과 테러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읽었을 테니, 리움미술관의 태현선 학예연구실장에 따르면 이것은 ‘대화’다. 2015년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샹들리에’와 같은 시리즈이며 구겐하임 미술관이 소장 중인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 SK 01-05B’는 이 대화의 연장 선상에 있다. 헤아릴 수 없이 촘촘한 픽셀 단위의 자수 도안을 북한에 보냈으며 2명의 노동자가 높이 160cm 폭 247cm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을 대략 1600시간에 걸쳐 채웠다. 함경아가 의뢰한 노동에선 필연적으로 오류가 일어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글에 따르면 작품은 작가가 의도한 도안과는 조금 달라져서 온다. 함경아는 “파스텔 톤으로 보낸 색감은 진해져서 온다. 북한 자수가들은 흐린 색보다는 진하고 강한 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오류가 생길 수 있는 대화의 양상에 대해 반이정은 ‘반전의 번역이 개입됐다’고 밝혔다.
 
 Stainless steel vaccum chamber, oil diffusion pump, rotary pump, heat exchanger, condenser, hydrogen, water pump, high voltage power supply, mixed media 150x120x17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Ulsan Art Museum.

Stainless steel vaccum chamber, oil diffusion pump, rotary pump, heat exchanger, condenser, hydrogen, water pump, high voltage power supply, mixed media 150x120x17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Ulsan Art Museum.

 

BeaK JUNGKI

‘Fusor’ 2021 
백정기가 이 작품을 제작하는 데는 준비 단계부터 1년이 걸렸다. 여러 작가들이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작품을 업체에 의뢰해 만드는 것과는 달리 그는 직접 모든 과정을 완성했다. 일반 모터펌프로 만들 수 있는 상태보다 진공도가 더 높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진공확산펌프를 찾아다녔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진공 체임버 안을 수소 원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아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체임버 안쪽에 있는 그리드를 음극으로, 체임버 그 자체를 양극으로 대략 3만~6만 볼트 고전압을 흘린다. 이 고전압을 일으키기 위해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산업용 장치인 정전기 연기 포집 장치를 입수해야 했다. 고전압을 흘리면 자유전자들이 양극으로 튕겨 나가며 체임버 안에 매우 낮은 밀도로 떠도는 수소 원자와 충돌한다. 자유전자와 충돌해 양이온이 된 원자는 가속 상태로 고전압이 흐르는 음극으로 달려들고 이때 음극에서 만난 이온들이 부딪혀 핵융합이 일어난다. 관객들은 해태가 지키는 계단을 올라 체임버 안쪽을 볼 수 있게 만들어둔 관측장을 통해 최첨단 과학의 현장, 핵융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플라즈마 현상을 관찰한다. 백정기는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학생 이동규의 자문을 통해 이 모든 기계를 손수 구하고 설비해 장치를 완성했다. 그는 “서양의 관측기구는 기능에 중점을 둔 심플한 디자인인 반면 우리 조상이 만든 간의나 혼천의는 기계를 받치는 기둥에 용 조각이나 구름 문양을 새겼다”며 “이는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최신의 기술인 핵융합과 주술적 동물들의 상을 융합해 지금 우리가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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