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TI라도 봐야 하나 싶네요.” 직원 30명 정도의 F&B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A의 고민이다. A는 미적 취향과 기회의 냄새를 맡는 동물적인 감각을 두루 갖추고 있어, 그의 사업도 그에 맞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인사는 어렵다. 개인사업자 규모를 넘어선 중소 규모 F&B 업계에서 인사는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이 업계는 근속기간이 짧고 업무 몰입도에 개인별 차이가 있으며 동기부여가 쉽지 않아서다.
“이력서나 자소서만 참고하면 남자는 뽑을 수가 없어요. 너무 대충 써서요. 그렇다고 이력서와 자소서를 기반으로 뽑아서 일을 시작했을 때 그 문서와 업무 능력이 비례하지도 않아요.” 그 결과 그의 체감상 1)이력서 2)자소서 3)면접 4)인상 등의 지표 중 실제 업무 성과를 알 수 있는 요소는 “없다.”
그러니까 MBTI가 채용에 쓰이는 걸까. ‘MBTI로 사람을 뽑는 게 말이 되냐’라고 묻는다면 ‘그거라도 안 보면 어쩌란 말이냐’라고 대답하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요즘 MBTI가 인사지표로 쓰이는 건 신문 기사로도 소개되었을 만큼의 이슈다. MBTI가 다방면으로 쓰이는 세태는 조선일보, 한겨레, 여성신문 등 신문 정파를 가리지 않고 보도되었다. 이 중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중소 광고대행사는 물론 LS전선이나 아워홈처럼 시스템 수준의 공채 제도를 운영하는 큰 회사까지 채용 시험에 MBTI와 관련한 문항을 넣었다.
MBTI 비판은 큰 의미가 없다. 당연히 논리적 구멍이야 있겠지. 정말 신기하고 의미 있는 건 MBTI가 계속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인 앤 컴퍼니 출신의 영어 교수 메르베 엠레도 이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저서 〈성격을 팝니다〉에서 MBTI의 신기한 역사를 정리하고 유사 종교+비즈니스(원래 이 둘은 큰 차이가 없다) 형태로 진화한 오늘날의 MBTI를 관찰했다. 엠레는 처음부터 내내 MBTI에 비판적이면서도 어느새 MBTI에 스며들어 이런 결론을 내리고 만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도구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다 좋다. 그럼 왜 MBTI가 자기 스스로의 성향을 들여다보는 걸 넘어 채용 같은 일에도 쓰일까?
“저희는 채용에 비용을 상당히 많이 투자합니다.” MBTI를 채용지표로 보지 않는다는 B 대표의 말을 들으니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직원이 50인가량인 F&B 업체를 운영하는데, 채용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고 했다. “기존 경험이나 역량은 많이 보지 않아요. 여기서 일을 처음 배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신 우리와 목표가 비슷한지를 봅니다. 그걸 알기 위해 많은 직원이 면접에 투입됩니다. 이사진이 전부 들어가거나, 실무진 모두와 이야기를 나눠요. 코로나 전에는 식사 면접도 있었습니다. (이게 다 일하는 사람의 시간 자원이니) 회사 규모에 비해 면접에 비용을 많이 쓰는 셈이죠.” 결국 비용 문제다.
나와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비용, 시간, 자원, 어떤 단어로 표현하든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고 파악하려면 시간을 내어 공을 들여야 한다. 각종 인력 감축을 진행하는 중에도 대기업이 인사 조직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MBTI? 그런 거 안 봐. 인적성 검사도 한계가 있어”라고 어느 대기업 인사 담당자 C가 전화로 설명해주었다. “AI나 빅데이터도 결국 통계 기반이잖아. 통계는 결국 기존에 있는 걸 바탕으로 모델을 짜서 예측을 하는 거지. 인간은 기존 데이터로만 봤을 때 변수가 너무 많아. 날씨나 주가 같은 건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어도 인간을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그러니까 나 같은 인사쟁이들이 경험과 네트워크로 사람을 파악하는 거지.” C가 가장 신뢰하는 지표는 동료 평가다. 역시 특수한 비용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이런 경향으로 보면 MBTI는 개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저비용 도구인 셈이다. 비용이 낮은 만큼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0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MBTI가 우세할까. 나는 모바일 디바이스의 전 국민 보급과 앱 비즈니스 확산도 하나의 이유일 거라 주장하고 싶다. MBTI 테스트를 PC 시대에 하는 것과 모바일 디바이스로 하는 것에는 상당한 편의성 차이가 있다. 매일 손에 쥐고 다니는 기계의 스크린을 켜서 링크를 따라간 후 양자택일 질문을 50번만 클릭하면 당신이 누군지 알려준다니 아주 저렴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처럼 자아를 찾으려 북미에서 이탈리아와 인도를 거쳐 발리까지 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직간접적 MBTI 테스트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다. 인간의 선택과 관심은 현대사회의 새로운 자원이다. 인터넷 검색 등 기록으로 남은 인간의 속마음을 정리해 상품화하는 게 빅데이터 비즈니스의 한 축이다. MBTI 테스트를 돌려 인간의 선택을 모으고, 메일 주소나 성별 같은 개인정보라도 긁어낸다면 서비스 진행자도 남는 장사다. 모바일 디바이스 시대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언제나 정보와 잔재미를 교환한다. MBTI 테스트도 그중 하나다. 정리할수록 MBTI가 계속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살다 보면 자존 그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선언하고 남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상당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살기 힘드니까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기득권에 끼려는 것이다. MBTI는 ‘저비용 정체성 발견 서비스’이자 ‘저비용 정체성 선언 대행 서비스’다. 이지선다형 문항 몇십 개만 클릭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영문 4자 코드명이 계시처럼 내려온다. 그 코드를 받아 “나는 INFP라서 조금 감정적이야”라고 말하면 사람들도 바로 이해해준다. 얼마나 편리한가.
저비용은 늘 대가를 치른다. 옷도, 술도, MBTI도 그렇다.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사회학자답게 성격 유형 검사를 ‘개인의 소멸’이라는 멋진 말로 비판한다. 인간의 개성을 특정 유형으로 가둔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아도르노쯤 되는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맞춤옷을 입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기성복을 입고 다니는 것 아닌가. 저가형 자아 검사 도구(?)는 MBTI 전에도 여럿 존재했으니, 대표적으로 혈액형과 별자리가 있다. MBTI가 이들보다는 건강하다. 피는 바꿀 수 없고 인간 성격 유형이 단 4개라는 건 너무 적다. 별자리는 더하다. 인간이 태어난 시점에 따라 성격은 물론 운명까지 정해버린다.
사람에게는 (그게 뭐든) 뭔가로 규정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역시 그게 뭐든) 답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 MBTI는 그런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네 가지 코드로 규정한 후 일종의 ‘솔루션’을 준다. “ENTP인 당신은 논쟁을 즐기고 논쟁에서의 승리에 치중한다. 타인의 감성적인 부분을 이해하고 배려해 타협에 이르는 방식을 깨달으면 더욱 성숙한 ENTP가 될 것이다”처럼. 나를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을 알아볼 만큼의 삶의 자원이 모자란 사람이라면 MBTI가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MBTI를 해보지 않았다. 나는 나를 알고, 네 글자 코드로 나를 소개하거나 누군가 나를 예측하게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나를 알고 싶다면 약속을 잡아 만난 후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나는 조용한 식당을 좋아한다. 공개 지면에서 알려줄 수 있는 내 성향은 이 정도다. 이런 말을 듣던 어느 20대는 내게 “요즘엔 MBTI 거부자 타입도 따로 있어요”라고 말해주었다. 으, 현대사회에서 유형화와 레이블링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