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뉴 웨이브 [1] 피아니스트 박재홍 "지금 이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도록"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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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뉴 웨이브 [1] 피아니스트 박재홍 "지금 이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도록"

어리지만 강력한 클래식의 새 물결이 당도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인의 연주자를 만나 젊은 예술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나른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4.28
 
 

PARK JAEHONG

The Pianist
창공을 가르듯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의 도입부. 그 순간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가진 힘은 이미 가늠된다. 장장 45분에 달하는 고난도의 대곡에 격정적인 타건과 극적인 해석, 황홀한 몰입이 이어진다. 국내 연주자에게서 보기 드문 187센티미터의 체구와 12도를 짚는 커다란 손, 연주에 쏟아 붓는 에너지의 파고가 넘실대는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2021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과 동시에 4관왕을 거머쥐며 차세대 연주자로서 자신을 각인시켰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15세 때 아르헨티나에서의 독주회를 시작으로 국제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는 중이다. “스케일 큰 연주는 에밀 길렐스를, 대범함과 여유는 게릭 올슨을 연상케 하며, 압도적인 파워와 견고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대곡도 여유롭게 장악한다. 세계적인 대형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할 것”이라는 황장원 평론가의 말로 그를 소개한다. 여기, 샛별이 아닌 태양처럼 빛나는 대형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 한 리사이틀 잘 봤어요. 연주에 쏟아 붓는 에너지의 파고가 대단하던데요. 앙코르도 무려 3번까지 했고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신체에서 오는 어드밴티지도 있겠지만 체력보단 정신력이에요.(웃음) 무대에선 음악과 나만 존재하는 완전히 제3의 세계에 돌입하는 거라, 그 위에 올라가는 순간은 음악에만 집중해요.
실제로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깊게 몰입한 게 느껴지더군요.  
그게 저의 가장 큰 재능이에요.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이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대곡인 베토벤 ‘함머클라비어’로 유명해요. 부소니 콩쿠르에서도, 최근 리사이틀에서도 선보인 곡이죠. 고난도로 손꼽히는 곡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피아니스트라면 죽기 전에 한번쯤 쳐보고 싶은 곡이죠. 전체 피아노 문헌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함머클라비어를 고를 거예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위, 화성, 구조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보는 기분이죠. 제게는 에베레스트 같은 산이고, 조금 어릴 적부터 치기 시작했지만, 열심히 오르는 중이이에요.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감히 한 번 올라보고 싶은 산입니다.
짐머만이 내한했을 때, 당신의 함머클라비어를 듣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던데요.
아직도 꿈만 같네요.(웃음) 마스터클래스를 받게 됐을 때, 짐머만 선생님이 함머클라이버를 쳐보라고 하셨어요. 긴 곡이니 1악장 정도에서 끊으시겠거니 했는데, 다 치고 나서도 한동안 말이 없으신 거예요. 워낙 높은 기준을 지닌 분이시니까 비평의 말을 고르고 계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쳤냐고 하시는 거예요. 2년이라 하니 사람들은 몇 십년간 이 곡에 매진해서 너처럼 치길 바란다고, 경이롭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얼떨떨했죠.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저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읽어요. 유서라고 하면, 죽기 전 넋두리나 이루지 못한 데에 대한 한 같은 게 담기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그의 유서는 힘을 지니고 있어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까지 절대 죽지 않을 거고,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무시무시하죠. 베토벤의 초판 악보는 지웠다가 썼다가 한 흔적투성이에요. 많은 고심 끝에 한 음 한 음을 창조해냈고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위대한 곡들을 써내려갔죠. 베토벤의 음악은 음악 같지 않아요. 어떤 예술이든 어떠한 경지에 오르면 그것이 장르를 뛰어넘어버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존경하는 연주자가 있나요?
에밀 길렐스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의 연주 습관을 닮을까봐 경계해요. 소콜로프, 단명한 유리 에고로프도 좋아해요.
동시대보다 옛날 연주자들을 좋아하네요?
맞아요. 감히 말씀드리면, 요즘은 레퍼런스가 너무 많고 너무 근처에 있는 시대예요. 유튜브에만 검색해도 유명 연주자의 연주가 있고, 구글에만 쳐도 논문부터 브람스가 쓴 편지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죠. 유럽에서 음반을 만드는 선생님이 요즘 모든 연주자들의 해석이 비슷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스탠더드가 되는 연주자의 연주로 연습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정답이 생겨나버린 거죠. 옛날엔 악보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잖아요. 바흐도 오르간 연주자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으려고 400km나 걸어갈 정도였죠. 그러니 누군가의 연주는 자기만의 엄청난 고민과 방황 끝에 나오는, 그 사람만의 음악인 거예요. 저는 오리지낼리티를 흠모하는 사람으로서 예전 연주자들을 더 좋아합니다.
피아노는 어떻게 시작했어요?
저는 완전 돌연변이에요. 친가나 외가에 음악가가 하나도 없거든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피아노에 앉는 과정 자체는 자연스러웠어요. 11세에 시작했으니 연주자치고 엄청 늦은 편이었지만요. 대신 매일 열 시간씩 쳤어요. 뭐든 하나에 꽂히면 제대로 파야 하거든요.  
피아니스트로서 23세, 어떤 나이인가요?
알에서 부화도 안 한 상태죠.(웃음) 저는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씨가 멋있다고 생각해요. 몸과 목소리를 쓰는 직업인데, 예순 살 때 춤을 제일 잘 추고 싶고 노래도 제일 잘하고 싶다고 하시잖아요.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에요. 저는 죽기 전까지 연주를 하고 싶고, 언젠가의 정점을 대비해 계속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에 폴리니 내한 프로그램 보셨어요? 어우,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80대의 연세에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게.
먼 훗날 노년의 박재홍의 리사이틀에서 제가 그런 말을 하고 있길 바라요.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웃음)
이탈리아 투어를 마치고 귀국한 지 몇 시간 안 됐어요. 그리고 곧 다른 리허설에 가야 하죠. 이렇게 해외에 들락거리며 사는 것도 힘들지 않아요?
저는 너무너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이번 투어에서는 8일간 7개의 도시를 다니면서 기차 타고, 짐 끌고, 공연하는 연속이었는데, 지치다가도 무대 위에 올라가면 다음날 짐 끌 힘이 나더라고요.
피아노는 자기 악기를 들고 다닐 수가 없지요. 결국 공연 때마다 처음 만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셈인데, 그건 어떤 일인가요?
말 타는 것과 비슷해요. 말은 이 사람이 자기가 태울 자격이 있는지를 안대요. 어떨 때는 당나귀 같은 친구를 만날 때도 있고, 야생마, 잘 조련된 말, 어린 말을 만날 때도 있지요. 이탈리아에 간 첫째 날 베르가모에서 공연을 했는데, 버르토크가 쓰던 피아노가 있더군요. 100년 된 피아노였는데, 성격 좋은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느낌이었어요. 젊을 때만큼 민첩하진 않지만 따듯하고 연륜 있었죠. 그리고 페라라에서 세 번째 공연을 했는데, 극장에 파브리니 피아노가 놓여 있었어요. 소콜로프가 치던 피아노인데요. 그걸 쳐봤는데, 와, 처음 보는 동물 같았어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내면 그냥 버려요. 한 음 한 음 정성을 싣지 않으면 소리를 안 내더라고요. 소콜로프의 위대함을 느꼈어요. 엄격히 통제하며 섬세한 소리를 뽑아내길 원하니까 더욱 예민한 피아노를 원하셨겠죠.
미술 작품에도 관심이 깊던데, 마주했을 때 음악적 영감으로 이어지는 작품이 있었나요?
시대와 사조를 가리지 않고 좋아해요. 로스코의 그림은 한국, 이스라엘, 유럽 세 곳에서 직접 봤는데요. 보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이 응어리지듯 아파오고, 무언가가 따듯하게 번져온달까요. 영혼을 보듬는 것 같아 눈물이 나더라고요. 로스코의 색들이 제 안의 감정들, 음악적 팔레트를 넓혀준 것 같았어요. 쇼팽을 치는 데 도움을 줬죠. 그리고 저는 폴록의 현대미술 앞에서 현대음악을 이해하게 됐는데요. 원래 현대음악은 그 음악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폴록으로 이해해보니, 페인트 드리핑으로 그려진 작품에서 저기 흩뿌려진 페인트는 저 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거더라고요. 저 점 하나는 저기 있어야 할 운명이고 그래야만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죠. 현대음악도 비슷해요. 저 음이 저기 있어야만 가지는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콜드플레이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한다면서요?
제가 듣는 음악은 80이 클래식, 20이 다른 장르인데 그중 10이 콜드플레이에요. 화성악적으로 잘 짜여진 음악이고 팝에서 드물게 4/5박자, 겹박자를 쓰죠.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행을 가거나 큰 일을 앞두고서 다시 읽곤 하는 책입니다. 조르바의 자유의지는 누구나 흠모할 만하지 않나요? 조르바는 니체의 ‘초인’을 떠올리게 하는데, 저는 니체 철학이 예술가가 지녀야 할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데아를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믿음. 음악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손에 쥘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 허무맹랑하고 모호한 것을 확실하게 붙들어줄 수 있는 개념이 니체의 철학이죠. 많은 이들이 그의 철학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랬고요.  
지향하는 태도와 닮은 클래식 용어가 있나요?
‘안단테’. 이탈리아어로 안다르, 걷다에서 나온 말이거든요. 뛰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으면서 한결같이 걸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클래식이 과연 대중화될 수 있을까요? 클래식은 불친절하고 진입장벽이 높지요. 하지만 그만큼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향유해왔기 때문에 빛날 수 있었어요. 저는 클래식이 쉽게 다가서기 위해 격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퀄리티가 유지된 채로 많은 대중이 접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요.
유학 갈 생각도 있나요?
유학보다는 유럽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어요. 빈, 하노버, 뮌헨, 베를린, 독일어권 나라에서. 거기엔 사방에 석판에 뭔가가 쓰여 있는데, 이를테면 ‘슈만이 떨어져 자살하려고 한 창문’을 보며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쇼팽이 1년 동안 살았던 집’을 보며 그의 흔적을 느끼고, ‘슈베르트가 좋아했던 호프집’의 의자에 앉아 한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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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LANCE EDITOR 이예지
    PHOTOGRAPHER 김성룡
    HAIR & MAKEUP 김환/이소연
    LOCATION 오드 메종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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