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뉴 웨이브 [3] 첼리스트 한재민 "나의 음악이 빛났던 순간은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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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뉴 웨이브 [3] 첼리스트 한재민 "나의 음악이 빛났던 순간은요..."

어리지만 강력한 클래식의 새 물결이 당도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인의 연주자를 만나 젊은 예술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나른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4.29
 
 

HAN JAEMIN

The Cellist
 
첼리스트 한재민을 수식하는 모든 말엔 ‘최연소’가 들어간다. 만 8세 최연소로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 만15세 역대 최연소로 제오르제 에네스쿠 콩쿠르 우승, 최연소 예술 영재로 발탁되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 화려한 경력을 가진 한재민은 고작 열여섯 살이다. 그의 활 끝에서 나오는 풍성한 음색, 리드미컬한 박자감, 시원시원한 표현력,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현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저 작은 소년 안에 도대체 어떤 거장이 자리한 건지 물음표와 느낌표가 정신없이 교차한다. “과감한 접근, 거침없는 연주. 현란한 기교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물고 늘어지는 승부근성!”(류태형), “장차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황장원), “한재민은 이미 자신의 강점과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잘 알고 있다”(황진규)는 단언에 가까운 찬사에 열여섯 살 한재민은 무어라 화답할까. 어리다는 말 이전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제오르제 에네스쿠 콩쿠르 첼로 부문 역대 최연소 수상, 한예종 최연소 학생을 비롯해, 당신의 이름 앞에는 최연소가 항상 붙어요. 5세 때 첼로를 잡았고 아직 16세죠. 사람들이 이렇게 경탄할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요?
전 최연소라는 말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아요. 음악은 음악만으로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제 음악에서 소년미가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전 음악 그 자체로 평가 받고 싶어요.  
또래보다 성숙한가요?
어릴 때부터 선배님들과 지내는 게 익숙해서 그런 편이죠. 애늙은이라는 말도 많이 듣는데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웃음) 제 연주엔 이 나이대만의 감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가로서 16세, 지금 당신의 나이는 어떤 나이인가요?
황금 같은 나이죠! 어딜 가도 제일 어린 건 장점이에요. 어리니까 좀 봐주거든요.(웃음) 농담이고,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음악가로서는 조금씩 아이 티를 벗는 나이기도 해요. 테크닉면에서나 깊이 면에서나 성장이 보이는 시기랄까요. 좋은 연주자들과 작업하고, 많이 영감 받으며 이 시기를 보내야죠.
사춘기 아니에요?
어쩌면 사춘기일 수도⋯. 많이 겪는 만큼 부딪히는 시기이긴 해요. 그런데 저는 좀 부딪혀봐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내 눈으로 못 보면 못 믿고, 남들이 아프다 그래도 이렇게 대봐야 아픈 줄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부딪히면서 배우고 있는 지금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키가 더 클 나이죠.
혈기왕성한 열여섯 살이니까요! 무대에 올라가면 감각으로만 하려는 면이 있거든요. 연습할 때는 정교하게 만들어내야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들로 연주를 채우죠. 그게 라이브 콘서트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재즈나 탱고도 감각적으로 소화하던데요. 마크 서머(Mark Summer)의 ‘Julie-O’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현을 기타처럼 뜯고 첼로 몸통을 타악기처럼 두드리던데, 클래식 연주자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이라 흥미로웠어요.
재즈를 좋아해요. 클래식은 정교한 틀이 있다면, 재즈는 틀을 허물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매력이죠. ‘Julie-O’는 미국 첼리스트가 만든 곡인데, 이렇게 대중에게 편안하고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첼로 레퍼토리가 흔치 않아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재즈죠.
곧 콩쿠르 우승 후 첫 리사이틀을 개최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직접 기획한 첫 리사이틀이에요. 제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고 싶어요. 아직 어린 연주자지만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했어요?
프렌치 특유의 멜랑콜리한 무드를 좋아해서 프랑크, 드뷔시 위주로 짜봤어요. 나이 역순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는데요. 프랑크가 60대에 만든 소나타, 드뷔시가 50대에 만든 소나타, 쇼팽은 30대에 만든 소나타와 10대 때 만든 폴로네이즈 순이죠. 점점 젊어지는 셈이에요. 사실 프랑크를 첫 곡으로 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엄청 화려한 곡이라 대개 마지막에 연주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프랑크의 도입부로 리사이틀을 성대하게 시작하고 싶어서 맨 앞에 배치했죠. 보통 애피타이저처럼 짧은 곡을 먼저 하고 긴 곡으로 마무리하곤 하는데 이 리사이틀에선 그것도 반대예요. 일단 잘 차려낸 메인부터 먹고, 그다음에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거죠!
연주하면서 가장 신났던 적이 있나요?
좋은 연주자와 함께 좋은 음악을 연주하며 마음이 딱 맞았다고 느낄 때. 그럴 때 음악이 빛난다고 느껴지고, 연주가 이대로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어요. 또래 친구이자 훌륭한 피아니스트인 임윤찬과 듀오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를 연주했을 때 정말 그랬거든요. 지금도 유일하게 다시 듣는 제 연주곡이에요.
스스로의 연주를 사랑하나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는데 평생 그런 순간이 올까요? 연주자는 평생 자기 음악에 만족 못하고 죽는다고 하던데 말이에요.
존경하는 연주자가 있나요?
그때그때 바뀌는데, 요즘 가장 좋아나는 첼리스트는 다닐 샤프란이에요. 자기 색채가 강한 연주자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저는 그분만의 색깔이 있는 게 좋아요. 요즘엔 첼로 말고도 다른 곡을 많이 듣는데요. 루빈스타인의 쇼팽 앨범과 장-에프랑 바브제의 드뷔시 앨범, 바순 연주곡들, 빌 에반스와 쳇 베이커, 배리 해리스 음악을 들어요. 어, 말하고 보니 재즈를 많이 듣네요.
혹시 케이팝도 들어요?
이문세, 김광석, 유재하 노래가 좋아요. 그분들 노래는 예술이죠. 그분들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겠지만 와 닿는 노래를 하는 가수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가요는 거의 안 들어요. 기계적인 소리에 거부감이 있거든요.
요즘 애들이 좋아할 만한 건 안 좋아해요?
네. SNS도 잘 안 하고, 게임도 못해요. 제가 유일하게 졸업식을 한 게 초등학교 때인데요, 그때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서 만났는데 다들 게임을 하고 노는 거예요. 그냥 뒤에서 보다가 집에 갔어요.(웃음)
어른들의 세계에서 활동하니 당연한 건지도요. 김선욱, 손열음처럼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듀오를 한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어린 연주자로서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죠. 저는 함께 연주하며 배우는 게 되게 많은 사람인데 행운이었어요. 손열음 감독님은 정말 절 예뻐해주세요. 김선욱 선생님은 “이제 네가 한국의 첼로를 이끌 거다, 같이 연주하자”고 번호를 받아가셨는데 지나가는 말씀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진짜 전화가 와서 2주 뒤에 듀오 연주를 하자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했죠! 함께 브람스 소나타 1,2번을 연주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브람스를 깊게 이해하는 피아니스트와 연주를 하니 황홀했지요.
연습을 매일 5시간에서 10시간까지 한다던데?
자라면서 연습을 하루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기준도 높아졌고요. 낮에 학교를 가니까 연습하다 보면 새벽 두세 시에 자는 게 루틴이 되어버렸어요. 콩쿠르나 중요한 공연을 앞두면 밥 먹는 시간 빼고 연습해요.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만, 공연을 하면 정말 해소가 돼요.
또래들이 한창 놀 시기에 아쉬움은 없어요?
전혀요. 각자가 자기 삶을 사는 거잖아요. 그리고 또래 친구들 얘기도 들어보면 새벽까지 공부하고 입시 준비하느라 바빠요. 물론 놀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축구를 하거나 봐요. 손흥민 선수가 있는 토트넘의 팬이에요. 스포츠랑 음악은 비슷한 점이 있어요. 저희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듯 그들은 경기장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죠. 닮았으면서도 달라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은 플루트 전공자라고 들었어요. 플루트가 아닌 첼로를 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부모님은 음악을 권하지 않았는데 제가 첼로를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어린 마음에 크면 다 멋있어 보였거든요. 콘트라베이스 안 한 게 다행이에요.(웃음) 자연스럽게 꿈이 됐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에 첼리스트라고 적어낸 순간부터요.  
이제 첼로를 한 지 10년 됐죠?
딱 10년이네요. 하지만 10년도 오래 한 건 절대 아니죠. 아직도 초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열 배는 더 음악을 해야 하는 걸요. 그런데 클래식은 앞날을 모르거든요. 무명 연주자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도 하고, 잘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음악에는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어요. 그렇기에 더 긴장하면서 열심히 해야 해요.
언제까지 첼로를 하고 싶어요?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첼로가 싫어지지 않는 한 오래요.
당신에게 첼로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동반자죠. 하지만 제 몸의 일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얘도 다른 사람이거든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고, 어떨 땐 달래주기도 해야 하는 존재예요. 지금 가지고 있는 첼로는 5개월째 함께하고 있는데 마치 어려운 여자 같아요.(웃음) 제가 제발 나와주라, 나와주라 부탁해야 어렵사리 좋은 소리를 내주죠.
지향하는 태도와 닮은 음악 용어가 있나요?
애드리브. 예술을 하면서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요?(웃음)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말처럼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클래식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자칫 클래식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는 문제거든요. 순수예술의 희소성도 지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당신의 야심은?
지금 당장 도전해보고 싶은 건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에요. 그리고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 솔로 독주회를 하고 싶네요. 그리고 한동안 콩쿠르에만 전념했는데 이제는 인간으로서 깊어지고 싶어요. 그게 좋은 연주자의 전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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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REELANCE EDITOR 이예지
    PHOTOGRAPHER 김성룡
    HAIR & MAKEUP 김환/이소연
    LOCATION 오드 메종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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